11.01.2026 주일 설교

성령강림 후 제 23주

그 자리에 누가 앉아 계신가?

Who Sits in the Seat?

마태복음 23:1-12

1그 때, 예수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3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지는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4그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올리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짐을 지기 위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5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모든 일을 한다. 그래서 말씀 상자를 크게 만들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6이들은 잔치에서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7이들은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을 좋아하고, 선생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8그러나 너희는 ‘선생’이라는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선생님은 오직 한 분이고, 너희 모두는 형제들이다. 9그리고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인데, 하늘에 계시다. 10너희는 ‘지도자’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오직 한 분뿐인 그리스도시다. 11너희 가운데 큰 자는,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 12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고,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쉬운성경)

1 Then Jesus said to the crowds and to his disciples, 2 “The teachers of religious law and the Pharisees are the official interpreters of the law of Moses. 3 So practice and obey whatever they tell you, but don’t follow their example. For they don’t practice what they teach. 4 They crush people with unbearable religious demands and never lift a finger to ease the burden. 5 “Everything they do is for show. On their arms they wear extra wide prayer boxes with Scripture verses inside, and they wear robes with extra long tassels. 6 And they love to sit at the head table at banquets and in the seats of honor in the synagogues. 7 They love to receive respectful greetings as they walk in the marketplaces, and to be called ‘Rabbi.’ 8 “Don’t let anyone call you ‘Rabbi,’ for you have only one teacher, and all of you are equal as brothers and sisters. 9 And don’t address anyone here on earth as ‘Father,’ for only God in heaven is your Father. 10 And don’t let anyone call you ‘Teacher,’ for you have only one teacher, the Messiah. 11 The greatest among you must be a servant. 12 But those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Mt 23:1-12, NLT]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쳤으며 종교적인 의무를 철저히 지켰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경건하고 모범적인 종교 지도자들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신앙 안에 심각한 모순이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지만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도 정작 그 짐을 함께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삶의 진정성은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말씀으로 살아내기 위해 씨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올리는 그들을 따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만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무리들과 제자들입니다. 1그 때, 예수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위선은 지도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문제입니다.

  1. 말씀 앞에서 떠는 경건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모든 일을 한다. 그래서 말씀 상자를 크게 만들고, 옷술을 길게 늘어 뜨린다. 개역개정 성경은 말씀 상자를 ‘경문 띠’로 번역했습니다. 이마와 팔에 매는 가죽 상자인데, 유대인들은 그 안에 말씀을 기록하여 넣고, 율법 글귀를 기록한 경문을 틈나는 대로 보면서 경건생활에 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주신 것이,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전혀 다른 율법학자가 있습니다. 에스라입니다. 그는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방 민족과의 통혼에 빠졌다는 소식이 에스라에게 전해집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방백과 지도자들이 이 죄에 앞장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에스라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기가 막혀 주저앉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내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스 9:4 상) 그리고 저녁때까지 에스라는 무릎을  꿇고 우리의 죄라고 부르며 회개했습니다. 백성의 죄의 짐을 자기 어깨에 올린 것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쌓일수록 우리의 말씀 상자도 커질 수 있습니다. 아는 말씀이 많아지고, 맡은 일이 늘어나고, 보이는 경건이 자라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마음에 새겨지지 않은 말씀은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결국 내가 지고 다녀야 하는 짐이 되고, 그 짐은 언젠가 다른 사람의 어깨로 옮겨집니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이 욕구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게 살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인정이 나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게 될 때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문제를 단순히 감정이나 숨겨진 내면의 문제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첫번째 죄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죄와 수치를 감추고, 하나님 앞에서조차 스스로를 지키려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은 후 자신의 수치를 가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물으셨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신 마음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높아지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거룩하게 살아내야 할 자리에서도 작은 일에 서운하며 마음이 상합니다. 그런데 복음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비추며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씀을 알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6이들은 잔치에서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7이들은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을 좋아하고, 선생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예수님은 그들이 잔치에서 윗자리를 좋아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문제는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 사람들의 인정을 얻으려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주어진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 권위가 자신을 높이고 인정받는 수단으로 변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만 삶의 중심에서 은혜가 희미해졌습니다. 은혜로 서지 못하는 사람은 자리로 서려 합니다.

2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들이 앉은 자리를 모세의 자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섰을 때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시며 지도자의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이후 민수기 12장에서 그 모세의 자리가 도전받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비방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하고만 말씀하셨느냐, 우리하고는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12:2)고 따집니다. 사실상 모세의 자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권위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성경은 모세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모세는 매우 겸손했습니다. 모세는 땅 위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민12:3) 모세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직접 변호하셨습니다. 이 일로 미리암은 나병에 걸렸는데, 모세는 그녀를 고쳐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자리는 누군가의 아픔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지만, 모세의 마음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은 자신을 변호하는 일도, 높이는 일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교만의 본질을 이렇게 말합니다. ‘각 사람의 교만은 다른 이들의 교만과 경쟁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연회장에서 거물급 인사처럼 행세하는 사람을 볼 때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내가 그런 거물급 인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높아짐을 불편하게 여기는 마음 안에 나 역시 그 자리에 서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인정과 지위를 다른 사람이 누리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면 그 안에 있는 내 마음의 욕망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먼저 그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좋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떨 줄 아는 경건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사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겸손하고 자기 죄를 뉘우치는 사람, 나를 두려워하고 내 말을 따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 66:2)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떠는 사람입니다. 이 경외심을 평생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 높이시는 분께 맡기라

8그러나 너희는 ‘선생’이라는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선생님은 오직 한 분이고, 너희 모두는 형제들이다. 9그리고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인데, 하늘에 계시다. 10너희는 ‘지도자’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오직 한 분뿐인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선생이나 아버지,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 위에 서려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도자는 오직 한 분뿐인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은 사람답게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영생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10여러분은 하나님께 각기 다른 은혜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진 종들과 같습니다. 그러니 신실한 종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갖가지 은혜의 선물을 가지고 서로에게 봉사하십시오. 11설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은 사람답게 일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하십시오. 영광과 권능이 영원토록 그분께 있습니다. 아멘. (벧전 4:10-11)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역할과 책임을 맡겨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이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형제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맡아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섬기고 세우라고 주신 책임입니다.

예수님은 11너희 가운데 큰 자는,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섬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섬김은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데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힘과 권위를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다른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섬김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풍성히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뜻에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개역개정, 마 1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며 참된 쉼을 얻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복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웠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의 짐을 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으뜸이 되려는 자는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말씀하시며 자기 자신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개역개정, 마 20:28)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12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고,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높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켜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평생 그 자리로 가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누가 계신지 아는 사람은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지키려 했던 자리와 이름과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나를 위해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묻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신 그 은혜 안에 머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를 빚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다른 사람의 어깨에 짐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지친 사람을 일으키는 말이 되도록, 우리의 직분이 사람 위에 서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자리가 되도록,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 앞에서 기쁘게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성령께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새겨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경건이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높아지려는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담아내는 우리의 삶과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0. 25. 2026 주일 설교

성령강림후 제 22주

시온의 대로

The Highway to Zion

시편 84:1-12

1만군의 여호와여, 주가 계시는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2내가 여호와의 성전 뜰을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쓰러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나의 온몸과 온 마음으로 살아 계신 주께 부르짖습니다. 3만군의 여호와, 나의 왕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여, 주의 제단 곁에는 참새도 깃들 곳이 있고, 제비도 새끼를 품을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4주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이 주를 영원히 찬송할 것입니다. (셀라) 5주께로부터 힘을 얻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시온을 향하여 가는 것을 사모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6그들이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그 곳을 샘이 되게 하며, 가을비가 우물을 가득 채워 줍니다. 7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갈수록 점점 더 힘을 얻습니다. 모두들 시온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8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어 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셀라) 9오 하나님, 우리의 방패를 살펴 주소서. 주께서 기름 부으신 왕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10주의 성전 뜰에서 보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더 행복합니다. 내가 악한 자들의 집에서 사느니 차라리 내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로 있겠습니다. 11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태양이며 방패이십니다. 여호와는 우리에게 은혜와 명예를 주십니다. 주는 정직하게 사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십니다. 12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의지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쉬운성경)

1 How lovely is your dwelling place, O LORD of Heaven’s Armies. 2 I long, yes, I faint with longing to enter the courts of the LORD. With my whole being, body and soul, I will shout joyfully to the living God. 3 Even the sparrow finds a home, and the swallow builds her nest and raises her young at a place near your altar, O LORD of Heaven’s Armies, my King and my God! 4 What joy for those who can live in your house, always singing your praises. Interlude 5 What joy for those whose strength comes from the LORD, who have set their minds on a pilgrimage to Jerusalem. 6 When they walk through the Valley of Weeping, it will become a place of refreshing springs. The autumn rains will clothe it with blessings. 7 They will continue to grow stronger, and each of them will appear before God in Jerusalem. 8 O LORD God of Heaven’s Armies, hear my prayer. Listen, O God of Jacob. Interlude 9 O God, look with favor upon the king, our shield! Show favor to the one you have anointed. 10 A single day in your courts is better than a thousand anywhere else! I would rather be a gate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live the good life in the homes of the wicked. 11 For the LORD God is our sun and our shield. He gives us grace and glory. The LORD will withhold no good thing from those who do what is right. 12 O LORD of Heaven’s Armies, what joy for those who trust in you. [Psalms 84:1-12, NLT]

시편 84편은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고라 자손이 지은 오늘 시는 깃딧에 맞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포도 추수의 즐거움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즙 틀에서 포도송이는 짓이겨지는 것입니다. 포도즙 틀의 영적 의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이 범죄하기 전에는 영원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후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을 잃어버린 인생을 찾아오신 이야기가 시온의 대로입니다. 창조 때는 에덴동산을 지성소로 세우시고 그곳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났습니다. 그 이후 범죄 한 인생을 향해서는 스스로 임할 영광의 임재 장소로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하시고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지으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신 기적의 길을 고라 자손이 걸었던 것입니다. 순례자의 짧은 시 속에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는 순례자의 노래는 곧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는 시온의 대로였습니다.

첫째, 시온의 대로를 가진자들은 주의 장막을 사랑합니다.

고라는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땅이 갈라지면서 고라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산채로 스올에 빠져 멸망하였습니다. 고라 자손은 하나님을 배반한 조상들로 인하여 인정받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조롱받는 자리에 서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시온의 대로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성인 남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는 순례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예배 자리에서조차 쫓겨난 그들이 순례길을 걸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 순례길 끝에서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고백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하고 부름은 천사들과 우주 만물의 군대를 거느리시는 위대한 통치자이자 전능하신 하나님을 최고로 높였습니다. 그 위엄 앞에서 시인은 주의 장막이 사랑스럽다고 노래하는 감동의 인생이었습니다. ‘어찌 그리’라는 표현은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어 놀라워하며 소리치는 기쁨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임재하는 주의 장막의 아름다움을 만난 순간이 순례자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순례자에게 보잘 것 없던 주의 장막은 가장 아름다운 주의 궁정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하여졌다 고백합니다. 날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모든 힘이 소진되고 기진맥진할 정도로 하나님을 갈망함으로 영혼이 쇠약했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시인의 삶은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절대적 충성의 삶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을 향하는 순례길은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는 영광의 날을 갈망하는 긴 여행입니다. 그 순례길에서 점점 초췌하여지고 시들어 가지만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를 부르며 걸었던 순례길에서 만난 하나님이 참된 왕이며 통치자이심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거룩하고 경건한 성전 제단과 번제단, 분향단이 하나님의 성소 앞뜰에 놓였습니다.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그 위엄의 장소에 하잖은 존재인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은 것을 보며 그들의 일상이 부러움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만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시인은 참새도 제비도 새끼를 키우는 보금자리를 얻었는데 만물의 영장이고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일상에서 마땅히 하나님 중심으로 몸 된 교회를 사랑하기만 해도 돌봄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 하지만 우리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고 싶으셔도 받을 만한 그릇이 안 되는 성도들의 일상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선악과나무 열매를 먹은 인류는 현실에서 늘 생각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에 매여있으니 안타깝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우리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성전을 향한 순례길을 신앙으로 걸어간 자들이 닿은 곳에서 그들은 마침내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성전의 문지기와 빵 굽는 요리사와 성전 봉사와 찬양 직분을 맡아 주의 성전에서 충성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둘째, 시온의 대로를 걷는 자들은 눈물의 골짜기를 견딥니다.

그들은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 주의 제단, 주의 집을 향하는 순례길에서 힘을 얻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자의 마음에는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시며 거룩한 언약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 감격하고 회개한 영광의 자리였습니다. 시내 산의 약속은 옳고 그름의 말이 아니라 거룩, 영광, 회복, 자랑, 기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반면에 시온의 대로가 없는 자들은 모든 일에 원망과 불평이 가득할 뿐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실력이 없어서 가나안 땅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구원의 기쁨에서 멈춘 이들은 가나안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순례자의 길에는 어쩔 수 없는 눈물 골짜기로 지나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 눈물 골짜기는 울음의 골짜기라고 말합니다. 순례자들의 울음으로 그곳에는 많은 샘이 생겼습니다. 그 ‘눈물 골짜기’는 단순한 고난과 역경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갈망이 깊어질수록 많은 샘과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는 신비한 곳입니다. 이른 비는 복을 감싼다는 의미로 그 자리가 파종하고 경작하게 되는 은혜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순례자들의 울음 위에 부어진 은혜임을 바라볼 줄 아는 영적 성장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대로를 걷는 자의 부르짖음은 놀라운 것입니다. 눈물 골짜기는 단순한 슬픔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본향을 향하는 성도들은 시온의 대로에서 힘을 얻고 더 얻습니다. 예배하는 성도들에게서 빛이 나는 이유입니다. 시온으로 향하는 여정은 고난과 희생을 의미하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생명이 넘칩니다. 모두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드디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났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순례길을 가능하게 하신 이 앞에 예배하는 영광입니다.

순례길은 누군가가 가야 하는 길이었고 누군가가 건너야 할 강이었습니다. 이 깊은 강에서 주님의 손을 붙들 때 생명을 얻게 됩니다. 만약 주님의 손을 붙들지 못한다면 세상 권세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맙니다. 세상의 거친 문화와 어둠과 악의 권세와 죄로 말미암아 눈물의 골짜기를 만날 때 우리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 눈물 골짜기에서 만나주시고, 건져주시는 하늘 아버지로 인하여 자신을 지켜가길 바랍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서 소금의 맛이 나는 이유입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세상의 소금이라’하시며 시온의 대로를 걷는 성도들의 삶의 영광을 교회 시대가 열어가야 함을 선포한 것입니다. 순례자들처럼 사막이 옥토로 변한다는 놀라운 진리 속에서 승리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셋째, 시온의 대로를 가진 자들은 성전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순례자들은 성전이 가까워지니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완전한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이제 순례자는 이 세상과 우주를 주관하시는 가장 강력하고 전능하신 왕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만군의 여호와를 의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부르짖음은 허물 많은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은혜를 베푸신 야곱의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순례길의 시작은 나의 문제였으나 주의 궁정을 사모하며 만군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놀랍게도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소서.”한 기도를 통해 순례자의 삶에 하나님 나라를 간구하는 성화가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를 노래함으로 그들의 순례길이 최상의 아름다움이 되었습니다. 성전에 도착한 그들에게 이 감격과 감동의 순간은 너무나 특별하였습니다.

순례자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도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는 완전한 신앙을 노래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천 날이라는 긴 시간보다 궁정에서의 한날이 더 소중한 경험은 주를 만난 영광을 노래한 것입니다. 악인의 장막은 땅의 권력과 명예, 부로 인한 호사스러운 삶보다 하나님의 성전에 성전 문지기로 가장 낮고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가 더 행복한 것은 성령의 기름 부음의 기쁨입니다.

고라 자손이 걸었던 이 길을 교회가 걸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하였습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 하였습니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꿈을 성도들에게 담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성전 삼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주의 명령 따라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킴으로 날마다 거룩한 성전을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고라는 하나님께 범죄하고 배반하며 산채로 음부에 빠졌지만, 그 자손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그 영혼이 쇠할 정도로 주님을 찾고 사랑했더니 그 후손들이 복되고 성문에 서는 자의 영광을 노래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순례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며 우리의 해요 우리의 방패라 선언하는 담대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복의 자리로 성장하였습니다. 좋은 것이 많아지면 나누고 풍성하여지는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증인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끝에 성령이 임하시고 난 후 예수님 제자들의 얼굴에는 어떤 시련과 핍박 고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은혜로 가득하여진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향해 기쁨으로 뛰어가고 예물 드림이 기쁨이고 충성할 때 기쁨이 충만한 예배자들이 주께 힘을 얻습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들에게 준 행복입니다. 이스라엘이 만난 하나님은 역사를 완성하시는 하나님, 승리 주시는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창조자 하나님이 그들 인생을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다윗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항상 최고의 것을 주시는 분을 따라 시온의 대로를 걷는 자 되길 축원합니다.

10. 18. 2026 주일설교

(성령강림 후 제 21주)

노래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A New Song for the Songless

시편 98편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십시오. 그분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능력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우리에게 승리와 구원을 주셨습니다. 2 여호와는 온 세상에 그의 구원을 알리시고, 온 세계에 그의 의로우심을 알리셨습니다. 3 주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을 기억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집을 향한 주의 성실하심을 기억하셨습니다. 세상 끝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4 온 땅이여, 기쁨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외치며, 악기에 맞추어 기쁨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5 수금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여호와께 드리십시오. 수금과 노랫소리로 주를 찬양하십시오. 6 나팔과 호각을 불면서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외치십시오. 7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아, 높이 외쳐라. 온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아, 다 노래하여라. 8 강들아, 손뼉을 치고 산들아, 함께 즐거워하며 노래하여라. 9 여호와 앞에서 노래하십시오. 그것은 그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세상을 바르게 심판하시고 민족들을 공정하게 판단하실 것입니다. (쉬운성경)

1 Sing a new song to the LORD, for he has done wonderful deeds. His right hand has won a mighty victory; his holy arm has shown his saving power! 2 The LORD has announced his victory and has revealed his righteousness to every nation! 3 He has remembered his promise to love and be faithful to Israel. The ends of the earth have seen the victory of our God. 4 Shout to the LORD, all the earth; break out in praise and sing for joy! 5 Sing your praise to the LORD with the harp, with the harp and melodious song, 6 with trumpets and the sound of the ram’s horn. Make a joyful symphony before the LORD, the King! 7 Let the sea and everything in it shout his praise! Let the earth and all living things join in. 8 Let the rivers clap their hands in glee! Let the hills sing out their songs of joy 9 before the LORD, for he is coming to judge the earth. He will judge the world with justice, and the nations with fairness.[Ps 98:1-9, NLT]

존 파이퍼 목사(John Stephen Piper, 1946)는 시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은 구약 성경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책입니다. 그 이유는 시편이 다른 어떤 성경보다 많은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게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편은 가장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이끕니다.”

시편은 우리의 낙심과 탄식까지도 하나님께로 가져오게 합니다. 본 시편 98편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말씀합니다. 98편 안에는 슬픔과 탄식이 그치고 처음 부터 끝까지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시편의 사람은 이미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찬양합니다.(1절-3절) 4절로 8절은 온 땅과 모든 피조물이 왕이신 여호와를 기쁨으로 찬양하라고 요청합니다.(4절-8절) 그리고 9절은 여호와께서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러 오신다고 선포합니다. 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영혼 깊은 곳에 있던 갈증이 채워지고, 기쁨이 새노래로 흘러 나옵니다. 시편 98편은 죽음을 통과한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를 우리에게 들려 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십시오.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십시오. 그분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능력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우리에게 승리와 구원을 주셨습니다. 2 여호와는 온 세상에 그의 구원을 알리시고, 온 세계에 그의 의로우심을 알리셨습니다. 3 주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을 기억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집을 향한 주의 성실하심을 기억하셨습니다. 세상 끝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노래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그 구원의 은혜가 오늘 나의 삶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과 성실하심을 기억하셨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의 손과 거룩한 팔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향해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슬픈 사람 취급을 받았으나 우리는 항상 기뻐하였으며,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였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 같으나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고후 6:10)

믿음은 아픔이 없는 삶이 아니라 아픔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노래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 뒤에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폭풍 한가운데서도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보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엡3:18)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십자가는 그 사랑이 어디까지 우리를 찾아오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며칠 전 도시선교팀들이 모여 하버드 스퀘어로 걸으며 노방전도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외면하는 사람, 준비한 선물을 받지 않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계속 거절 당하면 마음이 위축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자리는 우리의 수고와 열매로 증명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며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둘째 왕이신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십시오.

4 온 땅이여, 기쁨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외치며, 악기에 맞추어 기쁨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5 수금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여호와께 드리십시오. 수금과 노랫소리로 주를 찬양하십시오. 6 나팔과 호각을 불면서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외치십시오. 7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아, 높이 외쳐라. 온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아, 다 노래하여라. 8 강들아, 손뼉을 치고 산들아, 함께 즐거워하며 노래하여라.

노래를 잃는 두번째 이유는, 세상의 기준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비교, 사람들의 평가가 나를 증명하는 기준이 되면 우리는 나를 세상속으로 몰아붙이게 됩니다. 내 삶을 지키려고 애쓰다가 정작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립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교회가 세상에 소망을 말할 수 있을까?’ 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미리 정해 놓은 탁월한 자들의 길로 가지 않습니다. 자주 이해받지 못하며 자주 어리석게 여겨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갑니다. 그에게는 이기심이라 부르는 세상의 지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고 기이한 길에서 열린 눈을 가진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분만이 그 길을 온전히 가셨습니다. 그 길은 그 분을 십자가로 인도했습니다.” 우리는 내 삶을 지키려고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고난을 받으시며 자신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은 고통을 당하시며 우리에게 새노래를 주신 것입니다. 세상이 가장 어리석다 여긴 그 십자가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시편은 외칩니다.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외치십시오. 우리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온 땅과 바다, 온 세계가 하나님을 노래하라고 요청하는데, 마치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왕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삶에 참된 만족이 시작되고 새로워진 마음에 새노래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움켜 지던 손이 펴지고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매일 찾아 오시는 주님으로 인해 평안이 넘칩니다. 현실의 문제가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문제를 왕이신 하나님께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죄를 이기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뛰던 그 노래를 다시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그 노래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려 세울 것입니다.

셋째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으로 살아가십시오.

9 여호와 앞에서 노래하십시오. 그것은 그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세상을 바르게 심판하시고 민족들을 공정하게 판단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잃는 이유는 지금의 고통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편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르고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정직하게 보면 모두가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구원받는 우리를 사랑으로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그날에는 억울하게 짓밟히던 이들이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은 성도들이 부를 새 노래를 자세히 기록합니다. “그들은 어린양에게 새 노래로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은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은 죽임을 당하셨고, 그 흘리신 보혈의 대가로 모든 민족, 언어, 나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사셨습니다. 피로 산 그들을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그들이 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계 5:9-10)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둡고 깨어져 있어도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이 흔들리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구원은 멈추지 않습니다. 염려 때문에 감사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세상의 어두움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지켜야 할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사랑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어두움을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믿으며 오늘의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예수께서 오실 때에 새 노래를 부르는 성도들은 그저 반가운 정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을 뵙는 기쁨에 눈물이 나고, 감격으로 맞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 11. 2026 주일설교

(케임브리지한인교회 창립 48주년 기념예배)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The Church Gathered and The Church Scattered

사도행전 2:1-4

김태환 목사

1 오순절이 되어 제자들이 한 곳에 모두 모였습니다. 2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나더니, 사람들이 앉아 있던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3 그리고 혀처럼 생긴 불꽃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불꽃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그 곳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4 사람들은 다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자기들의 언어와 다른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1-4, 쉬운성경)

1 On the day of Pentecost, all the believers were meeting together in one place. 2 Suddenly, there was a sound from heaven like the roaring of a mighty windstorm, and it filled th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3 Then, what looked like flames or tongues of fire appeared and settled on each of them. 4 And everyone present was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speaking in other languages, as the Holy Spirit gave them this ability. (Acts2:1-4 NLT)

교회의 기원에 대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이 돌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약속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의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성령께서 임하셨고, 그 모임은 곧 교회의 탄생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기도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ἐκκλησία)’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됩니다(사도행전 5:11).

이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탄생시킨 힘이 성령이었고, 교회를 움직이고 이끄는 힘도 성령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 내려가면 이런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들이 평화를 되찾았으며, 터전을 든든하게 잡았습니다. 교회는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사도행전 9:31) 이 말씀은 초대 교회 공동체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성장하게 했던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이 바로 성령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가 곧 갈릴리와 사마리아 땅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성령은 교회를 한 곳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은 모이게도 하시지만, 때가 되면 흩어지게도 하십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 “성령의 불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각 사람(each of them)’에게 임했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다른 언어를 말하게 하셨다(3절)”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성령을 받은 ‘각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루살렘 밖으로 나아가 다른 사람, 다른 문화, 다른 지역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게 하려는 선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20세기의 교회론을 새롭게 제시한 두 신학자가 있습니다. 한스 큉(Hans Küng)과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입니다. 이 두 신학자는 교회를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성령으로부터 태어나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라고 보았습니다. 몰트만은 그의 책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creature of the Spirit)’이다. 따라서 교회가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인위적인 목적에 사로잡히는 것은 성령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다. 교회는 성령께서 자유롭게 일하시도록 자신을 개혁하고 미래를 향해 개방하는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성령이 이끄는 공동체는 모든 구성원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 상호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저는 최근에 성경공부 모임에서 자신이 받은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질문해 보았습니다. 참석자들 대부분이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고도 열심히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를 발견하고 그 은사에 따라 봉사한다면, 우리는 더욱 자유롭고 기쁘게 성령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사 사용의 장소를 꼭 교회 안으로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은사를 교회 안에만 가두는 것은 도리어 성령의 자유로운 사역을 제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세상 사이의 담을 허물고, 세상을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봉사해야 할 선교적 삶의 현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의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병원에서 환자들을 고치고, 교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사업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사업 현장에서, 음악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음악을 연주하거나 곡을 만드는 일로, 상담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로, 섬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자신이 받은 은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네델란드의 선교 신학자 호켄다이크(J.C. Hoekendijk)가 그의 저서 ‘The Church Inside Out (흩어지는 교회, 1966)’에서 처음으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라는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교회가 건물 안에만 갇혀 있으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교회 내부(Inside)에서 나와 세상 밖(Out)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섬기는 교회는 “나는 이 세상에 섬기러 왔다(마가복음 10:45)”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섬기는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이 기도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섬기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마가복음 16:1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전치사 ‘into’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에이스(εἰς)’는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의미하는 전치사입니다. 사람들의 기쁨이 있는 곳, 눈물이 있는 곳, 아픔이 있는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흩어짐’이야말로 성령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입니다.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들어가 삶과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을 너무 좁은 의미로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책임질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복음의 실천적 의미를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해서 복음에 대한 ‘통전적인 이해(holistic understanding)’를 해야 합니다. 단순히 “예수를 믿으라”는 말의 선포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인 섬김의 삶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제가 로마서 말씀을 읽다가 큰 은혜를 받은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방인들이 성령으로 거룩하여지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하였습니다.”(로마서 15:16)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섬김의 목적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단순히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섬김을 통해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영혼들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존재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호켄다이크가 강조했던 ‘흩어지는 교회’의 참된 의미입니다. ‘모이는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기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교회가 선포해야 할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교회가 가까이 왔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복음 4:17)”였습니다. 한스 큉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증언하며, 그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공동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한스 큉과 몰트만의 교회론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교회가 사람을 모으고, 예배를 드리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건물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공을 교인 수나 예산이나 건물의 크기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얼마나 자신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구원을 드러내셨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지난 48년 동안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얼마나, 어떻게 드러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여류 시인 중에 베시 앤더슨 스탠리(Bessie Anderson Stanley, 1879-1952)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1904년 보스턴의 한 출판사가 성공을 주제로 주최한 공모전을 열었는데, 스탠리는 이 공모전에 응모해 1등을 차지해 상금 250달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195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의 묘비에 그녀의 시 “성공(Success)”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동안 이 시가 에머슨의 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에머슨의 글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원작자가 누구인지 밝혀진 것입니다.

그녀의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자신이 세상에 왔을 때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어 놓고 떠난 사람, 이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그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영감(靈感)이 되었고, 그가 남긴 기억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저는 이 말을 우리 교회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는가?” 스탠리는 당신 때문에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다면, 당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면, 당신은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도 우리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으로 흩어져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답습해 왔던 제도와 구조에 머물러 변화되지 않았던 것이 교회가 신뢰를 잃어버린 중요한 원인입니다. 신뢰를 잃어버린 교회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미래는 우리가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어떻게 사용하시고, 이교회를 통해 무엇을 하실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게 주어진 과제는, 과거의 구조와 제도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하면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그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교회 안에 가두어 두지 않고 우리를 세상으로 내보내십니다. 부디 우리 교회가 성령의 사역에 민감하게 응답해서 우리 교회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 04 2026 주일 설교

세계성만찬 / 장학헌금 주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Looking to God

시편 19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3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4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5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6하늘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7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8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9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10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11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12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13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14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쉬운성경)

1 The heavens proclaim the glory of God. The skies display his craftsmanship. 2 Day after day they continue to speak; night after night they make him known. 3 They speak without a sound or word; their voice is never heard. 4 Yet their message has gone throughout the earth, and their words to all the world.God has made a home in the heavens for the sun. 5 It bursts forth like a radiant bridegroom after his wedding. It rejoices like a great athlete eager to run the race. 6 The sun rises at one end of the heavens and follows its course to the other end. Nothing can hide from its heat.  7 The instructions of the LORD are perfect, reviving the soul. The decrees of the LORD are trustworthy, making wise the simple. 8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are right, bringing joy to the heart. The commands of the LORD are clear, giving insight for living. 9 Reverence for the LORD is pure, lasting forever. The laws of the LORD are true; each one is fair. 10 They are more desirable than gold, even the finest gold. They are sweeter than honey, even honey dripping from the comb. 11 They are a warning to your servant, a great reward for those who obey them. 12 How can I know all the sins lurking in my heart? Cleanse me from these hidden faults. 13 Keep your servant from deliberate sins! Don’t let them control me. Then I will be free of guilt and innocent of great sin. 14 May the words of my mouth and the meditation of my heart be pleasing to you, O LORD, my rock and my redeemer.[Psalms 19:1-14, NLT]

인생의 큰 문제 앞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면 마음이 깊은 곳까지 떨어집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시선은 자꾸 문제에 갇힙니다. 시편은 그런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놓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아픔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보게 합니다. 시편 19편의 시인은 세 곳을 바라봅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를 숨김없이 드러내시지만 그런 우리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빛과 은혜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늘을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1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2절은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고 말합니다. 문제에 갇혔던 시선이 하늘을 향할 때, 우리는 우리를 지으시고 오늘도 붙드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3절), 하늘은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떠오른 해를 보며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 자체가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것도 놀랍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목회할 때 한 성도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집 벽에는 작은 해 모양 장식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먼저 떠난 남편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와 아이들을 지키신다는 마음을 붙든다고 하셨습니다. 말없이 떠오르는 해가 그분에게는 날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말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해를 노래하며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늘로 피할 수는 있어도 해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빛도 그렇게 온 세상과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비춥니다. 그 빛은 우리를 드러내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5절은 해가 자기 길을 기뻐하며 달리는 용사 같다고 노래합니다. 이번 주 금요 찬양 예배에서 인도자가 자신이 청년 시절부터 금요 예배를 찾아온 이유를 돌아보며 고백했습니다. 팀장들의 권면 때문이기도 했고, 간사님들에게 미안해서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솔직한 이유는 힘들고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회사에서도 잘하는 것 같지 않은 불안, 비자와 신분의 문제, 모아둔 돈도 없었던 미래의 불확실함, 하나님 앞에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기도 했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말씀해 주셨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삶에 문제가 사라지기를 바라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일, 직장에 다니는 일,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자라가는 일을 통해 우리는 애쓰고 수고합니다.

해는 기뻐하며 자기 길을 달리는데 우리는 불안해서 달리고 두려워서 달리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려갑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까? 그 끝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주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예배하고, 다시 말씀 앞에 서고, 다시 기도하며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주님과 함께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삶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삶이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아갑니다.

7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8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9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10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11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편의 기자는 여호와의 말씀이 완전하고, 그 증거가 확실하여 영혼을 살리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고 순결하여 듣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으며 위로와 은혜를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던 내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시편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하고,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달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더 달콤한 것들에 길들여져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욥의 신앙을 의심합니다. “욥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십니까?” (욥 1:9)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의 소유물 때문이라고 참소합니다. 그런데 많은 것을 잃은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소유물을 잃고 난 후의 이 고백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성도들의 고백입니다. 말씀 앞에 서면 내 마음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그 마음을 그대로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는 날마다 머리 위에 펼쳐지는 하늘이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손에 들린 성경이라는 책입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라고 부릅니다. 하늘이 말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시인은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셋째, 말씀 앞에서 나를 봅니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여기서 ‘허물’은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모르고 짓는 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레위기 4장은 부지중에 지은 죄에도 속죄제를 드리라고 명합니다. 내가 몰랐다고 해서 죄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인은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죄, 내가 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잘못까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드러납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고의로 짓는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시인 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성경 속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를 보았습니다. 스랍들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외치는 소리 앞에서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재앙이 내게 닥쳤구나.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요, 또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서 사는데, 이런 내가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를 내 눈으로 직접 뵈었구나.” 그때 스랍이 제단에서 핀 숯을 가져와 그 입술에 대며 말합니다. “네 허물은 사라지고 네 죄도 용서받았다.” 이사야의 고백은 우리가 드려야 할 입술의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빈 그물 앞에서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혔을 때, 그는 기뻐하는 대신 무릎을 꿇습니다. “주님,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그가 본 것은 고기가 아니라 고기를 채우신 분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선생님”이라 부르던 분을 이제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말씀이 그분을 보게 했고, 그분이 베드로 자신을 보게 했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고백합니다. 율법이 “탐내지 마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롬 7:7) 살인이나 도둑질은 남의 눈에 보이지만, 탐심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숨은 허물입니다. 말씀이 그 숨은 허물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 죄인 중에서도 가장 큰 죄인이었습니다.”(딤전 1:15) 신앙의 성숙은 내가 덜 죄인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죄인임을 알고 더 크게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서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말과 마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하게 한 숯불이 제단에서 왔듯이,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은혜도 우리의 노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하는 성찬의 식탁 앞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고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기념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고백했고, 베드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한 자리에서 사람을 낚는 제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바울 역시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가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본이 되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오늘 함께 드리는 장학헌금도 그 고백입니다. 말씀으로 받은 은혜를 다음 세대를 섬기는 일로 실천하는 삶의 고백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성찬의 식탁 앞에서, 나의 숨은 마음을 솔직하게 주님께 내려놓으십시오. 작은 걱정 하나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내 삶을 붙들었던 마음, 소유와 욕심이 내 삶의 이유가 되었던 마음, 그리고 누군가를 치열하게 미워했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 대신 자리하고 있던 그 모든 것을 오늘 이 식탁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시편 19편의 마지막 구절이 우리의 기도가 되도록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4절) 주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과 더욱 깊은 만남을 이루어 가는 사랑하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