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제 1주
오늘, 이 말씀이 이루어졌다
Today, This Word Is Fulfilled
누가복음 4장 16-21절
16 예수께서는 자신이 자라나신 동네인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셨습니다. 17 그때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펴서 다음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습니다. 18 “주의 성령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나를 보내사 포로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며, 억눌린 사람을 풀어주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예수께로 쏠렸습니다. 21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쉬운 성경)
16 When he came to the village of Nazareth, his boyhood home, he went as usual to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and stood up to read the Scriptures. 17 The scroll of Isaiah the prophet was handed to him. He unrolled the scroll and found the place where this was written 18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for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that captives will be released, that the blind will see, that the oppressed will be set free, 19 and that the time of the Lord’s favor has come. 20 He rolled up the scroll, handed it back to the attendant, and sat down. All eyes in the synagogue looked at him intently. 21 Then he began to speak to them. “The Scripture you’ve just heard has been fulfilled this very day!”(New Living Translation)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공허하고 외로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름 모를 두려움과 공허함은 하나님을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감리교회 설립자인 존 웨슬리는 어려서 부터 경건을 알았고 말씀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복음이 그의 삶의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35살때 쓴 일기입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웨슬리는 마지못해 올더스게이트의 한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이루시는 변화를 서술하는 단락에서,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분께서 진정 나의 죄를, 나의 죄까지도 가져가셨다는 사실과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내게 주어졌다.”
웨슬리는 오랜 시간 말씀과 기도로 경건훈련을 하며 신앙생활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그날 주어진 말씀이 웨슬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성경 안에 성취된 것이 말씀을 통해 믿어지고 깨달아진 것입니다. 웨슬리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은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안에 쌓여 있던 말씀이 살아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운동선수가 결정적인 순간 골을 넣는 장면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훈련장에서 흘린 땀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실때 준비시키고 훈련하신 후에 사명을 부어주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고향땅 나사렛 유대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쉬운 성경) 예수님께서는 은혜의 때가 왔음을 선포하시고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이루어졌다.’ 는 페플레로타이: πεπλήρωται는 ‘가득차게 하다. 성취하다.’ 라는 뜻을 지닌 플레로오: πληρόω의 단어의 수동태 직설법으로 그것이 ‘성취되었다. 충만하게 되었다. 가득차게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약속의 말씀이 이뤄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사야 61장을 읽으시며 700년전 이사야를 통해 주어졌던 약속이 이제 내게 이뤄졌다, 자신을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내리셨다.”는 것은 부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 안에는 ‘부어주다, 임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크리스토스, Χριστός 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이 기름부음은 삼중직을 맡은 자들에게 부어졌습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메시아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중보자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으로 받아 내셨습니다. 이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세상이 줄수 없는 사랑과 기쁨이 주를 믿는 자들에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 안에 성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부여 받은 사명을 말하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포로된 사람에게 자유를,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다시 보도록, 억눌린 사람을 풀어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가난한 자리가 복음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가난한 마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결핍, 사랑의 목마름, 끝없는 경쟁 속에서 느끼는 허무함과 공허함, 두려움이 나를 잡고 채워도 만족하지 못하는 자리가 바로 가난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해지면 그 자리에서 나의 시선이 바뀝니다. 상처와 삶의 짐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마음 무겁게 하지만 사명자는 오래참음과 눈물의 시간을 요구하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시는 자리, 품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걸음입니다. 복음은 아무것도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사명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다면 내 자아를 포기하고 내려놓는 일은 어렵습니다. 사명이 분명한 사람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흩어졌습니다. 함께 말씀을 듣고 살아냈어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자 죽음이 두려워 문을 잠갔던 제자들이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이미 이기신 주님과 함께 나아간 것입니다. 죄에 포로된 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주저합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은 담대히 나아갑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장 15-16절) 하나님께 마음이 열린 사람들에게 부요함을 주시고 그 부요함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때때로 사명이 오래참음과 눈물의 시간을 요구받게도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힘을 주시며 도와 주십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고 돌보고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되면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의 계절들을 지나다 보면 내 힘으로는 도저히 버티기 어려운 날들이 찾아옵니다. “하나님 더는 못하겠습니다.” “두렵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답을 주지 못합니다. 위로도 관심도 오히려 더 힘들고 불편해집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찾아옵니다. 그토록 두려워 하던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숨을 쉬게 합니다. 세상에 두었던 나의 마음이 하나님을 붙들 때 말씀 안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나를 오래 붙들고 있던 두려움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말씀을 신뢰하고, 말씀에 마음을 열며 기록된 말씀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말씀이 발목에서 무릎으로, 허리에서 머리끝까지 채워질때 세상에 취해 가던 욕망이 힘을 잃고, 은혜의 물에 잠겨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자꾸 내 힘으로 감당하려 합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버티는 것은 나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이기에 결국 소진되고 지쳐갑니다.
18 “주의 성령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나를 보내사 포로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며, 억눌린 사람을 풀어주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가난한 마음이 채워지면 묶인 것들이 끊어집니다.
포로 되고 눌린 자들에 대한 메시야의 선물은 묶여있는 것들에게 ‘자유함’을 주신 것입니다. 메시야가 주는 자유와 해방은 구약에서 희년과 관련이 됩니다. ‘주의 은혜의 해’는 구체적으로 ‘희년(year of jubilee)’을 기다리는 해방의 해를 뜻했습니다(레 25:8-55). 이 희년 제도는 매 50년마다 실시되었는데 그때는 땅의 경작이 중지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고향으로 귀환되며 노예들이 해방되었습니다. 빚을 탕감받는 것과 노예의 해방 차원만이 아니라 희년은 하나님께서 베푸실 구원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에 의해 터져 나오는 구원의 기쁨입니다.
우리를 포로로 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끊으려고 해도, 용서하려고 해도, 사랑하려고 해도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자리에서 우리는 자주 멈추게 됩니다. 하늘에서 불을 끌어 내렸던 엘리야도 깊은 실의에 빠져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먹이시고 재우시며, 세미한 음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힘으로 끊어낼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온 것입니다. 성결은 하나님께 끌리는 것이고, 세상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하나님을 원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수록 매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더 깊은 나의 죄성을 보게 됩니다. 주 앞에서 가까이 나아갈수록 하나님은 세상속에서 구별되게 하십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의 힘으로 안되는 문제를 만나기도 하고, 용서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 일들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포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포로 된 것들로부터 해방시킵니다. 말씀에 삶을 드릴때 내가 집착하고, 중독되었던 우상들이 힘을 잃어 가고, 근심이 변하여 주님의 말씀으로, 상처보다 진한 주님의 보혈이 삶을 채우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 열심이 아닙니다. 그 열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의 씨름은 결단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주를 의지함으로 다시 일어 서는 것입니다. 거룩한 여정을 걸을수록 내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복음과 사명을 나의 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내 힘을 붙들수록 오히려 더 지칩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우리는 날마다 죽음의 권세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나의 연약함을 마주할수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봅니다.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말씀이 들립니다. 자기중심적 삶의 어둠이 걷히고 감춰진 하나님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인간의 완고한 마음을 두드립니다. 우리의 삶이 거룩해 지도록, 날마다 새 힘을 부어주시고 거룩함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가난한 자가 부요해지고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는 것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할때 우리 안에 상처와 결핍이 회복됩니다. 내 뜻대로 살고 싶던 마음이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싶어집니다. 기도하고 싶어지고,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시고, 권세를 지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열어두신 은혜의 날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성령님을 구하십시오. 1738년 웨슬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일이 일어날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말씀이 그의 심장을 뛰게 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감옥에서 사형 당하기 전 약혼자에게 시 한편을 써보냅니다. “지나간 일들이 우리 마음을 누르고 힘든 날들이 우리를 짓누르지만, 주님, 두렵고 지친 우리 영혼을 당신이 원하신 모습으로 구해 주소서. 두려움 없이, 사랑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의 사랑, 그 능력에 안전하게 둘러싸여 우리는 두려움 없이 내일을 기다립니다. 하나님 당신은 저녁에도, 아침에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죽음 앞에서도 말씀이 사람을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말씀이 살아있는 자리입니다.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가득하고 마음의 결핍도 남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의 열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는가? 내 안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충만하게 채워지는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요하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가난한 마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그 자리가 복음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머리로 알던 말씀이 가슴으로 내려와 내 죄를 대신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리, 가난한 자가 부요하게 되고,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으며,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