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0 2026 주일설교

부활절 제 6주(어버이 주일, 졸업예배 주일)

두려운 나그네에게

To the Fearful Stranger

베드로전서 3장 13-22절

13여러분이 열심히 선한 일을 하려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려 하겠습니까? 14혹 옳은 일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더라도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겁먹지 마십시오.” 15오직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모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희망에 관하여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십시오. 16그러나 답변을 할 때에는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부드럽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양심을 깨끗하게 지키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천하는 선한 행실을 헐뜯던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십시오. 17만일 고통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악한 짓을 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의 죄 때문에 단 한 번이자 마지막으로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나님께 인도하시려고 죄를 지은 적이 없는 분이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몸은 죽임을 당했으나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19또한 성령으로, 갇혀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20그 영들은 오래 전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셨으나 순종하지 않던 자들입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에 들어감으로써 물을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뿐이었습니다. 21그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와 같습니다. 세례는 몸에서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나님께 드리는 서약입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22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쉬운 성경)

13 Now, who will want to harm you if you are eager to do good? 14 But even if you suffer for doing what is right, God will reward you for it. So don’t worry or be afraid of their threats. 15 Instead, you must worship Christ as Lord of your life. And if someone asks about your hope as a believer, always be ready to explain it. 16 But do this in a gentle and respectful way. Keep your conscience clear. Then if people speak against you, they will be ashamed when they see what a good life you live because you belong to Christ. 17 Remember, it is better to suffer for doing good, if that is what God wants, than to suffer for doing wrong! 18 Christ suffered[d] for our sins once for all time. He never sinned, but he died for sinners to bring you safely home to God. He suffered physical death, but he was raised to life in the Spirit. 19 So he went and preached to the spirits in prison 20 those who disobeyed God long ago when God waited patiently while Noah was building his boat. Only eight people were saved from drowning in that terrible flood. 21 And that water is a picture of baptism, which now saves you, not by removing dirt from your body, but as a response to God from a clean conscience. It is effective because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22 Now Christ has gone to heaven. He is seated in the place of honor next to God, and all the angels and authorities and powers accept his authority.(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어버이 주일과 졸업예배를 함께 드립니다. 여러분은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공부하며 나그네로 살아가며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을 품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내가 세운 계획이 틀어지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막힌 길 앞에 서야 했던 날이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었고 흔들리는 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두 단어가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첫 번째는 나그네입니다. 낯선 땅에 살고 있어서 나그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삶의 주인이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그네임을 깨닫게 됩니다. 두 번째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낯선 길에서 흔들릴 때,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허락하셨고 우리의 삶의 방향과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인생을 세워가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바로 나그네들이었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한다고 편지의 서두에 기록합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낯선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두 가지를 말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주로 거룩히 모시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인용한 이사야 말씀을 보면, “전능하신 만군의 주, 오직 그분만이 네가 거룩하다고 여겨야 할 유일한 분이시고, 네가 두려워할 유일한 분이시며, 또한 네가 무서워할 유일한 분이시다 “(사8:13)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거룩히 모시는 것, 그것이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의 어떤 두려움보다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은 400년간 애굽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출애굽의 그 순간에도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길을 막고 있었고,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맹렬히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완전한 막다른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다를 여셨습니다. 가장 절박한 순간,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구원을 그들로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경쟁사회 속에서 쫓아오는 압박들로 인해 두렵고 조급해 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막다른 그 자리, 두려움이 깊어지는 순간에 바다에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갈라진 바닷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증거였습니다. 죄와 죽음에서 건짐 받은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증거가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서 선한 일을 향해 살아갑니다. 베드로는 선을 행할수록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을 복으로 여기라고 합니다. 바울도 같은 말을 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

세상을 살면서 낙심할 만한 상황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지니고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선을 행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과 선한 일은 분리 될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새롭게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말씀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도록 오래전에 이미 예정해 두셨습니다.(엡 2:10)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한 일을 행하는 삶, 그것이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신 구원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순종을 받으시고 그 은혜를 깊이 누리게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구원 안에서 맺어지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베드로는 두려워 하지 않을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거룩하게 모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삶의 주로 인정하여 구별된 내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이 내 삶의 주인이 되면 세상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살아가면 더이상 세상의 죽음의 권세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세상은 엄격한 법과 질서로 유지하지만, 세상의 힘은 사람의 영혼까지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삶” 입니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마음의 공허를 채우려 수학 연구에 더욱 몰두했지만 외적 사물에 관한 학문을 고뇌할 때 영적인 위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그 경험을 양피지에 적어 평생 안주머니에 꿰매고 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철학자나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고, 생명의 근원인 주님을 버렸었도다. 원컨대, 나 영원히 주를 떠나지 않으리.” 그를 무릎 꿇게 한것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경외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소망의 이유를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학문 너머의 그 뿌리를 봅니다.  우리가 배우는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방향을 얻을 때, 지식은 지혜가 됩니다. 그 지혜가 소망의 이유를 말할 수 있게 합니다. 베드로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15오직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모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희망에 관하여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십시오. 16그러나 답변을 할 때에는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부드럽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양심을 깨끗하게 지키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천하는 선한 행실을 헐뜯던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십시오.

이번주 한 청년의 부모님을 뵈었습니다. 자녀를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마음이 마치 아이를 강물에 띄워 보내는 것 같았는데 역청으로 갈대상자를 보호하듯 교회의 공동체에서 잘 견딜수 있었다는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갈 자녀를 생각하며 홀로 기도하셨을 그 시간, 학비를 내야할 때마다 마주해야 했던 현실의 무게를 기도의 자리에서 감당하셨을 것입니다. 멀리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운 분들이 계십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홀로 견뎌야 했던 분들, 그 그리움을 가슴 안에 묻고 살아가는 분들, 하나님은 그 자리도 아십니다. 자녀를 외국에 보내놓고 손이 닿지 않는 자리를 기도로 채울 수 밖에 없었던 부모님들의 눈물의 기도가 우리 교회를 향하고 있습니다. 맡겨진 한 영혼을 더 소중히 여기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신실하게 붙드는 것이 우리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제 보스턴을 떠나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교우들은 낯선 땅으로 향하게 될텐데, 그 걸음이 새로운 부르심의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정든 곳을 떠나는 아쉬움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 받은 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강의실, 실험실, 가정, 직장 그 자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삶이 되도록 살아가십시오. 어떤이들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첫 날을 기억할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자리에서 기도로 버텨냈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고, 혼자 성경을 펼치고 홀로 기도해야 했던 그 자리에서부터 예배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작은 기도의 방에서 우리는 온 열방과 민족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주안에서의 헤어짐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뻐하며 기대하는 파송의 시간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 작은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기도의 자리는 위기의 순간에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나의 자녀들이 사방이 막힌 것 같은 길 앞에 서는 날이 온다면 그때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자리를 지켜내십시오. 믿음은 혼자 끌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기도를 보고 자란 자녀는 인생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자랍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삶의 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일주일 한 번의 예배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매일 매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훈련이 쌓여 단단한 믿음의 뿌리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혼자 감당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의 뜻을 함께 받아들이고, 함께 사랑하며, 함께 이루어 가도록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세상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우리는 작고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그 자리에 서 계셨던 분이 계십니다. 주님도 두려우셨을 텐데, 피하고 싶으셨을 텐데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십자가의 사명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 지금 우리 곁에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지닌 자들에게 어리석어 보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비록 눈앞의 상황이 우리를 두렵게 하더라도 묵묵히 선을 행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사명은 위에서 누르는 짐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자리입니다. 일상의 자리가 늘 평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고난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있습니다. 그 십자가 앞에 서면 내 아픔으로 타인의 부족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서 솔직히 서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사랑의 길을 걷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여전히 그 중심에는 내가 있습니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섬길수록, 자꾸만 내가 먼저 서려 합니다. 불편한 자리는 피하고, 편한 자리를 택하려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도 삶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아는 것과 살아내는 것, 그 간격은 우리의 힘으로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피하지 마시고 주님을 가장 깊이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의 죄로 인해 죽으신 주님을 한 번 더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두려워하는 나그네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분명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짐을 없애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짐을 지고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두려운 나그네의 삶 위에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혜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새롭게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혼자 감당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도록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아직 그리스도를 삶의 주로 모시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믿음의 초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그 소망을 품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이웃을 아끼고 돌보는 성도로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나그네 길이 낯설어도 두렵지 않도록 앞서 가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