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성령이 임하면 예배는 계속됩니다
The Spirit Comes, the Worship Continues
요한복음 14:16-17, 26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대신하여 너희를 도와주실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이제 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돕는 분’이신 성령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줄 것이고, 또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너희가 생각해낼 수 있도록 그가 너희에게 또다시 일깨워 줄 것이다.”(쉬운성경)
16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Advocate, who will never leave you. 17 He is the Holy Spirit, who leads into all truth. The world cannot receive him, because it isn’t looking for him and doesn’t recognize him. But you know him, because he lives with you now and later will be in you. 26 But when the Father sends the Advocate as my representative that is, the Holy Spirit. he will teach you everything and will remind you of everything I have told you.(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교회력으로 오늘부터 26주간, 우리는 성령강림절기를 보내게 됩니다. 한해의 절반이 넘은 시간을 성령의 계절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6주가 지나갈 때, 각자의 삶 속에서 성령의 세밀한 음성을 들었던 순간들이 쌓여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장 어둡고 두려운 순간, 제자들 곁을 떠나야 했던 그 자리에서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대신하여 너희를 도와주실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요한복음 14장 16절, 쉬운성경) 보시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에게 성령을 요청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선물입니다.
1년에 한번 야외에 나와 예배하고 설교를 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쉼을 얻는 날이 되지만 제게는 다른 주일예배 외에 또 다른 긴장감이 있습니다. 날씨입니다. 너무 더워도, 비가 와도, 내 힘으로 할수 없는 일들 앞에서 찾아오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비가 오는 관계로 예배하는 장소가 변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여러 부서가 말없이 움직이며 서로 힘을 모아 움직이는 것을 보며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운행하심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는 교회는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의 그 어떤 좋은 생각이 성령의 이끄심보다 앞설수 없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보다 앞세우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주인삼고 있는 우상들이 될수 있습니다.우리의 계획이 흔들려도, 성령께서는 이미 이 자리에 와 계셨습니다.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성도를 돕는 인격체입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개역개정은 ‘도와주실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로 번역했습니다. Niv 성경은 Counselor, KJB은 Comforter로 번역했습니다. 원어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인데, παρά는 곁에+κλητός는 부르심을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성령강림절 26주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와 함께 걷는 훈련의 계절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위로해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말씀이 든든하지 않습니까?
자녀들의 졸업식에 참석한 청년들의 부모님을 만나보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자리에서도 자녀를 위해 무릎 꿇어 기도하며, 믿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오신 분들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 기도와 헌신이 자녀에게는 곁에 있는 든든함이 되어, 타국에서도 담대하게 공부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할 수 있다”고 격려하시고, 쓰러진 자리에서 일으켜 주십니다. 이것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입니다. 나를 위해 중보하시는 분이 곁에 계시니, 우리는 이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 곁에서 돕고, 위로하고,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주시고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외로운 기도의 자리에서 조차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시며, 보이지 않는 침묵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연구의 긴 시간 속에서, 반복된 연습의 자리, 경쟁해야 하는 자리, 외로운 밤이 깊어 잠 못 이루는 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너무 멀리 하나님을 떠난것 같은 영적 어둠의 터널을 지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배우게 하시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특별한 존재 방식입니다. 말씀 한 구절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질 때에 그 자리에 나와 함께 계시고,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을 품게 되는 그 때에도 함께 계십니다. 진리 가운데 거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거룩한 길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요한1서 2장 1절 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동일하게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시는 분임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우리 안에서 계속하시며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죄의 유혹에 이끌리지만 성령은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합니다. 성령을 따라 힘써서 살아가십시오.
물질이 주인되어 살아가는 시대속에서 우리의 선택이 어떠한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마땅히 해야할 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기에 주가 걸어가신 길을 힘써서 걷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을 내 능력의 도구로만 이해한다면 내뜻대로 안될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버려 둔 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자녀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항상 주의 뜻을 전하도록 함께 거하시며,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도우십니다. 비록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없지만 성령께서 계시기에 선한 길로 걸어가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선택을 좀더 주의 깊게 관찰해 보시고 마음과 생각으로도 성령님의 가르침을 더 깊이 알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셔서 우리 안에 내가 주인되어 내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들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시며, 그분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십시요. 성령께서 우리를 가장 안전한 길로 이끌고 계심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이끄실 뿐 아니라,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말씀 안에서 분별하게 하십니다.
거룩한 영이 있다면 악한 영의 존재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영역, 도달하지 못한 영역들이 많습니다. 영적 세계는 단순히 인간 이성만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으며, 성령께서 말씀 가운데 분별하게 하십니다. 거룩한 영과 악한 영은 실제합니다.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영적인 세계를 믿고 인정할때 우리는 믿음생활하며 나태해 질수 없고, 내 힘을 의지하며 안심해서도 안됩니다. ‘근신하라’는 내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며, ‘깨어라’는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왜 깨어지고, 인간이 왜 육체적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지 그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창조의 기원을 창세기 2장 안에 압축해서 소개하고 3장에서 죄의 기원에 대해서 분명히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것은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이 아닙니다. 죄의 종노릇하며 살아가던 그 방향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 무엇을 줄지 선택권은 주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받는 사람의 자격이 선물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성령은 바로 그런 선물입니다.
좋은 예배로 끝내고 돌아가는 삶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내는 삶, 성령강림절 26는 바로 그 훈련의 시간입니다. 주의 일을 하고 있는데 나의 의무가 되고 나의 일이 되어서 기쁨이 사라진 분이 계십니까? 예배하고 있지만 익숙한 마음에 머물러 성령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포기하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어 성령님과 함께 하는 자리를 외면하고 홀로 서는 자리에 서있는 분은 없으십니까? 아무리 선한 열심과 헌신도 내 힘으로 버티면 결국 멈추게 됩니다. 불평이 올라오고, 비난하게 되고, 기쁨이 사라지는것은 우리가 연결되어야 할 뿌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예수님만이 진리이심을 믿으십니까? 성령은 우리 안에서 진짜와 거짓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불평하게 하고 비난하게 하고 포기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는 마음들을 진리의 영이 분별하여 알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혼합된 진리를 걸러낼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이 이끄는 불의한 생각에 이끌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신 그 사역에 동참해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때론 불 가운데를 걸어가야 할 때도 있고 폭풍 가운데에서 무너지는 날도 있습니다. 온몸을 덮쳐오는 폭풍 속에서도 잠잠히 주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불 가운데를 걸어가야 할 때도, 폭풍 앞에서 꺾이는 날도, 그 자리에서 주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삶입니다.
이제 분주했던 마음, 너무 많은 것을 붙들고 살아온 것들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의 가정도, 공동체도, 오늘의 이 예배도 우리의 열심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고 함께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지금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식었던것을 뜨겁게 하시고 포기하고 싶었던 그 마음안에서 끝까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께서 살아있는 말씀을 선명하게 보게 하실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서로를 기억하세요. 말하지 않지만 보이지 않지만 인생의 불 가운데에서도, 폭풍 가운데에서도,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도 예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완성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함께 아픈날도 마주하고 실망하는 날도 마주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배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자리로 출발합니다. 다시 연구실로 , 다시 가정으로, 다시 외롭고 무거운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강림절 26주 동안 기쁨이 멈추는 순간, 뿌리가 흔들리는 순간에서 도망가지 말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성령과 함께 이 자리를 버티시기 바랍니다. 그 이끄심 안에 머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대신하여 너희를 도와주실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 내게 가장 두려웠던 그 자리에서, 가장 외로웠던 자리에서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예배는 어떤 환경에서도 멈추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