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3. 2025 주일설교

(추수감사주일)

우리는 왜 예수를 찾고 있는가?

Why Do We Seek Jesus?

요한복음 6:25~35

25 사람들은 호수를 건너와 예수를 찾게 되자, “선생님, 언제 이리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여러분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찾는 것은, 여러분들이 기적의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여러분들을 배불리 먹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27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 애쓰지 말고, 영원토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기 위해 애쓰십시오. 인자가 그 영원한 양식을 여러분들에게 제공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인자가 이런 일을 하도록 승인해 주셨습니다.” 28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으십시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30 사람들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믿을 수 있도록 어떤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시겠습니까? 31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를 ‘그분은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그들로 먹게 하셨다.’ 하지 않았습니까?”32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여러분들에게 밝히 말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었던 이는 모세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늘에서 참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십니다. 33 하나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이가 세상에 참 생명을 주는 바로 그것입니다.” 34 ○ 사람들이 예수께 말했다. “선생님, 이제부터 그 빵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3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쉬운말 성경)

25 They found him on the other side of the lake and asked, “Rabbi, when did you get here?” 26 Jesus replied, “I tell you the truth, you want to be with me because I fed you, not because you understood the miraculous signs. 27 But don’t be so concerned about perishable things like food. Spend your energy seeking the eternal life that the Son of Man[f] can give you. For God the Father has given me the seal of his approval.”28 They replied, “We want to perform God’s works, too. What should we do?”29 Jesus told them, “This is the only work God wants from you: Believe in the one he has sent.”30 They answered, “Show us a miraculous sign if you want us to believe in you. What can you do? 31 After all, our ancestors ate manna while they journeyed through the wilderness! The Scriptures say, ‘Moses gave them bread from heaven to eat. 32 Jesus said, “I tell you the truth, Moses didn’t give you bread from heaven. My Father did. And now he offers you the true bread from heaven. 33 The true bread of God is the one who comes down from heaven and gives life to the world.” 34 “Sir,” they said, “give us that bread every day.” 35 Jesus replied, “I am the bread of life. Whoever comes to me will never be hungry again. Whoever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호수까지 건너와 예수님을 찾았다는 구절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대단한 열심을 보여줍니다. 지난 밤 사람들은 항구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북쪽 호수 벳세다 근처 오병이어 기적을 베푼 곳에서 주님을 기다리다가 예수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제자들이 그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갈때에도 예수님이 함께 타지 않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찾기 위해 그분이 올라가셨던 산에도 올라가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벳세대로 들어온 작은 배를 타고 호수까지 건너와 예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갈릴리 바다로 나갔을때 그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그날은 일상과 달리 갑자기 강풍이 휘몰아치면서 물결이 사나워졌습니다. 제자들의 힘으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모든 방법을 시도했을때쯤 예수께서 풍랑 위를 걸어오셨고, 제자들은 배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배는 순조롭게 가버나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밤 중에 물 위를 걸어 가신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를 찾던 사람들은 작은 배들을 타고 호수를 건너와 예수님을 다시 찾게 된 것입니다. 66절에 보면, 결국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갔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를 찾았습니까? 기적을 통하여 사람들의 배고픔을 채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 채 자기 목적으로 주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쉽게 이해하도록 비유로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나는 생명의 빵이다.”라는 선언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첫번째 자기선언입니다. 빵 자체는 언젠가 썩게 되는 음식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생명의 빵이라고 설명했을때 믿지 못한 사람들은 다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빵이 무슨 뜻일까요? 빵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밥이었습니다. 모세시대에 광야에서 내린 만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 생명의 빵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것처럼 생명의 빵은 오늘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근원이며, 삶 속에서 내 의지대로 살아가다가 내 힘으로 안되는 막막한 순간 앞에 서서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그 의미가 깊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드는 것을 내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호흡은 우리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주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의 인생의 길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믿음의 시련을 견디던 순간이 모두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버겁기만 할 때 모든 것의 품이 되어 주셨던 어머니의 밥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식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품어주던 사랑과 보호의 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빵은 고단함과 피로가 가득한 삶의 길에서,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시키는 생명이고 은혜입니다. 얼마전에는 보스턴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금요예배 후 교우들과 함께 나누었던 식탁의 시간을 은퇴를 앞두고 추억하시며 편지를 보내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 식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서 서로가 나눈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나를 먹고 마시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내가 흘린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죄사함을 주신 그 용서의 은혜를 날마다 먹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붙드신다는 믿음,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는 믿음을 일생동안 선택하는 것이 생명의 떡을 먹는 삶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예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찾는 것은 기적의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여러분들을 배불리 먹여 주었기 때문입니다.”(요 6:26)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으십시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 6:29) 하나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이가 세상에 참 생명을 주는 바로 그것입니다.” (요 6:33) “내가 곧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요 6:35)

미국 텍사스 달라스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First Baptist church of Dallas 교회 앞 분수대에는 요한복음 4장 14절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나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참 샘물이 될 것이오.” 이 교회는 지난 세월 동안 주님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지역 사회에 소망의 닻을 내리고, 세속의 물결에 떠내려 가지 않도록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시는 예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생명이 되신 주님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함께 감당하도록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주안에서 하나의 몸을 이룰때 그 안에서 사람들의 생명이 살아나고, 세상과 다른 공동체가 됩니다.

오늘의 우리는 학업의 경쟁과 결과의 압박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꿈을 향해 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현실이 버겁게 느껴지고 불확실한 두려움 앞에서 감사의 마음을 찾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아무리 척박해도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이란 하늘에 계신 주를 바라 보고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하다가 넘어질 때도 실패라 생각하며 무너져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넘어짐 조차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은 우리의 길이 되어 주시고 방향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는 새로운 시작의 설레임도 있고 열정과 힘을 가지고 살 때도 있고 노력의 결실을 맺고 풍요로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변화가 없고 수확이 없는 때도 있습니다. 마음 한켠에는 항상 불안과 두려움 갈급한 마음을 마주할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내 삶의 부요와 기적, 배부름과 현실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며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기쁨, 만족, 행복을 향해 가는 삶은 결국 목마른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채워짐은 오직 주님께 붙어 있을 때 얻게 됩니다. 우리 삶의 감사가 삶의 실력이 되도록 주님과 함께 걷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이끌어 주신 은혜는 말로 다 나열할 수 없습니다. 이 땅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한인교회, 우리의 가정과 학업의 현장에서도 보이지 않으나 이미 누리고 인도함 받은 은혜가 가득합니다. 이제 우리도 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며 감사로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생명의 빵 되신 주님이 우리의 힘이 되신다.

진정한 감사는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를 지탱하는 신앙의 힘이 됩니다. 삶이 불안정하고, 마음이 낙심되어도, 진리 되시는 주님 안에서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지쳐 단단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믿음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기름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적인 길을 알아도 걸어갈 힘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증인들은 주님이 바라보시는 같은 곳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주님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에 삶의 목적을 둡니다. 예수님을 찾던 무리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을 찾았지만 생명의 빵이 되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한 채 자신들의 배를 채워주었던 그 떡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삶에서 주님은 언제나 자신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목자였습니다. 목동으로 양들을 돌보고 지키는 순간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주님의 은혜가 아닌 순간이 없습니다. 작은 일상에서도 내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생명의 빵 되신 예수님도, 우리의 삶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인도하시고, 풍랑과 광야 같은 상황에서도 생명을 붙들어 주십니다. 감사는 환경과 상황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주시는 주님께 있습니다. 이 감사는 우리가 주를 따르게 하는 힘입니다. 좁은 길을 걸어갈 때, 앞을 가로막는 험한 산 앞에서도  주님께 올려드리는 노래가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살아나게 합니다.

믿음의 성도는 감사하는 삶을 매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감사하다는 것은 넘어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평생 감사하며 살겠다는 결단은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방향입니다. 나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내 안에 세운 우상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만나는 일들을 하나님 안에서 감사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에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빵을 먹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어릴 적 추수감사절이 되면 가장 좋은 과일과 곡식들을 정성껏 준비하여 받은 은혜의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셨습니까? 내 삶의 은혜가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믿으십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드려져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매년 추수감사 헌금의 일부를 도움이 필요한 목회자들에게 선교 헌금으로 전달합니다. 감사의 마음이 우리 교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신뢰함으로 흘려보내며 섬기는것 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사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와 성도의 사명은 감사함으로 생명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매년 추수감사예배 때 장학금을 수여합니다. 그저 정해진 날에 형식적으로 정해진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도와 은혜의 감사의 마음을 흘려 보내는 일입니다. 삶의 선교이며 결단이고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며 생명을 얻는 믿음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통하여 천국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기도의 씨앗을 심고, 이렇게 채워진 사랑을 흘려 보낼때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포기하지 않을것입니다. 어제보다 더 깊어진 오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어 열방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장학금을 수여 받는 청년들에게 우리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가 담겨있는 사랑이라고 전해주었습니다. 장학금을 수여 받았던 청년이 교우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편지 내용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케임브리지 한인교회는 저에게 큰 안식처와 나의 힘든 마음을 끌고와 기도와 예배로 눈물을 쏟아내고, 또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는 부모님의 신앙을 모방하는 정도의 믿음 이었다면, 케임브리지 한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는 오로지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인격적인 믿음의 확장을 경험하게 해준 너무 감사한 저의 아버지 교회 같은 교회 입니다. 장학생들을 위해 기도 해주셨던 예배본을 편집해 그 기도를 한동안 붙잡고 지냈습니다. 비록 내가 이 세상에 혼자 인것 같고, 힘든 일을 다 내가 짊어지고 나아가는것 같아서 내 어깨가 무겁게 느껴져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기 때문에 때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항상 감사함으로 살게끔 인도해 주십니다. 제가 재정적으로 힘들어 집 밖에 나가기도 부담 스러웠던 상황에 감사하게도 장학금을 받게 되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진정한 사랑을 배운것 같아서 참 감사합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잘 배움 받아서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FKCC에 많은 유학생들이 있기에 짧은 인연으로 끝나는 것 같아 보여도  교회를 거쳐간 많은 청년들이 좋은 영향과 배움을 받고 이곳 저곳에 좋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공부하는 저희를 위해 항상 주저하지 않고 도와주시는 많은 성도님들께도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청년에게 전해진 편지속의 고백을 통해 그리고 장학금 수여식을 영상으로 보며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우리 청년들의 부모님들의 고백을 통해,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교회를 떠난 후에도 잊지 않고 장학헌금을 드리는 그 손길 속에서 우리가 받은 삶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불안과 두려움 가득한 시대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주님을 찾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우리는 세상의 기적과 표적들에 흔들리며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주님께서 오신 삶의 목적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선택하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감사의 삶을 선택할 때, 그 감사는 교회와 가정을 살리고 열방을 살려내는 생명의 힘이 됩니다. 우리는 생명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의 은혜는 우리 삶 속에서 잠시의 기쁨의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11. 16.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스물 세번째 주일)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

누가복음 23:33~43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쉬운말 성경)

33 When they came to a place called The Skull,[e] they nailed him to the cross. And the criminals were also crucified—one on his right and one on his left. 34 Jesus said,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n’t know what they are doing.”[f] And the soldiers gambled for his clothes by throwing dice.[g] 35 The crowd watched and the leaders scoffed. “He saved others,” they said, “let him save himself if he is really God’s Messiah, the Chosen One.” 36 The soldiers mocked him, too, by offering him a drink of sour wine. 37 They called out to him, “If you are the King of the Jews, save yourself!” 38 A sign was fastened above him with these words: “This is the King of the Jews.” 39 One of the criminals hanging beside him scoffed, “So you’re the Messiah, are you? Prove it by saving yourself—and us, too, while you’re at it!” 40 But the other criminal protested, “Don’t you fear God even when you have been sentenced to die? 41 We deserve to die for our crimes, but this man hasn’t done anything wrong.” 42 Then he said,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 43 And Jesus replied, “I assure you,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은 인류의 가장 어두운 순간 갈보리 언덕의 장면입니다. 그 죽음의 언덕에서 예수님이 남긴 첫번째 말씀은 ‘아버지여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라는 기도였습니다. 이 예수님의 기도는 무지와 죄를 향한 용서하심 이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의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라면 자신들을 구원해 보라고 조롱하는 관원들도, 예수님을 못박았던 군병들도 모두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함께 달린 행악자 중 한사람도 “네가 유대인의 왕이거든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고 예수를 비방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행악자라고 하는 단어를 ‘레스테스 λῃστής’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반역 정치범을 가리킬때 사용됩니다. 이런 점에서 그 행악자는 로마로부터 유대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투쟁하다가 마음이 강팍해져서 사람을 해치거나 약탈을 자행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정치적 폭동에 가담했다가 십자가에 처형되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지 못하며 분노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오늘날 세상도 여전히 갈보리 언덕과 같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인해 수많은 죄와 상처들이 우리 삶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죄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제대로 직면하지 못하고, 원망과 미움 속에 갇혀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대상이 타인만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실망과 미움 속에서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 깊은 슬픔과 연민에 빠지면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하심을 잊어버리고 나의 감정에 갇혀 살아가기도 합니다.

한편 십자가에 달린 다른 행악자는 죽음의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보았고, 죄가 없으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회개하며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는 영원한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보여줍니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죄를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예수를 믿지 않고는 최후의 심판대 앞에 떳떳하게 설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소망이 되심을 모른 채 여전히 ‘저 사람 때문에’, ‘좋지 않는 이 상황 때문에’ 라는 불평과 원망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삶은 영적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의 제자로 살았던 가룟유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영원한 절망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갔다면, 그의 삶은 허무함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보여주십니다. 주님이 잡히시는 날 그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끌려 갈때에는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는 주님을 모른다고 맹세까지하며 부인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죄값을 다 치르시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찾아가셔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베드로의 상처와 아픔을 씻겨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일흔번씩 일곱번을 용서하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크신 사랑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부어 주셨습니다. 사명의 근거에는 하나님께 받는 용서의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죄 용서가 없이는 인간은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빚을 진 사람이 빚을 갚기 전까지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 용서받은 사람의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불의한 종의 비유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인간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왕은 일만달란트 부채를 진 종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본질적인 죄 용서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을 보고, 자신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하는 그 사람을 감옥에 갇혀 있게 하였습니다. 종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본질적인 죄 용서를 받는 사람은 일상 속에서 만나는 관계속에서의 잘못을 마땅히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잘하고 있는지 불안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모든 것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누구도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인간이 평생 드려야 할 기도가 있다면 저희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간구일 것입니다.

그런데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고 가는 길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의 부채를 당연히 탕감해 주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있게 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하루동안 6천만명이 일한 품삯이기에 한 사람이 일한다고 가정하면, 2십만년 동안 일해야 하는 금액입니다. 그에 반해 백데나리온은 한 사람이 백일 일한 품삯 정도입니다. 그러니 그 광경을 지켜본 다른 종들이 기가 막혀, 왕에게로 가서 그 종이 한 짓을 낱낱이 일렀습니다. 왕은 크게 진노했고, 용서해 주었던 그 종을 불러서 마지막 한푼까지 다 갚도록 하였습니다. 이 비유는 성도들로 하여금 매일 용서함을 받고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때 가능해 집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요셉의 삶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입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노예 상인에게 팔려갔지만  20년 후 애굽의 총리가 되어 다시 형들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진심으로 회개한 것을 확인한 후에 자신을 드러내며 용서와 회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형들이 회개한 그 자리는 용서가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줍니다. 용서는 결코 가볍거나 쉬운것이 아니지만 진정한 용서안에서 하나님의 회복과 은혜가 나타납니다.

서로를 폄하하고 미워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고통과 핍박속에서도 믿음으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복음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미움의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어둠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바로 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구약성경이 묘사하는 속죄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드리는 것을 예표합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어린양의 제물로 피를 흘려 자신의 죄의 형벌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은 예수께서 흘리신 피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믿을때 죄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양심이 깨끗해 지고, 회개를 통하여 묶고 있던 죄책감으로 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십자가 이전 시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것이 인간 사회의 규칙이었다면, 주님은 새 언약을 받은 성도가 따라야 할 계명을 주셨습니다.

5:38 ○ “또 모세의 율법에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고 쓰여 있습니다. 5:39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똑같이 앙갚음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의 한쪽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거든, 당신의 다른 쪽 뺨도 대주십시오. 5:40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 겉옷까지도 벗어 주십시오. 5:41 누가 당신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같이 가자고 하거든, 기꺼이 십 리라도 같이 가 주십시오. 5:42 당신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당신에게 꾸려고 하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지 마십시오.”(마 5:38-42)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남편 짐 엘리엇이 에콰도르 인디언 지역에 순교한 후 깊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함을 신뢰하고 2년뒤 딸과 함께 남편을 잃은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 선교 사역을 펼쳤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고통 앞에서도 하나님은 그녀의 삶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눈코 뜰 새없이 바빠서 주저앉아 신세 한탄을 할 시간이 없었다’ ‘나를 죽이려는 것들이 희미하게나마 선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절망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붙들린 삶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열여섯 살부터 일기를 써서 자신의 삶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 고백 속에서 분주하고 지친 삶,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고 낙심하고 있는 삶의 순간에도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고 인도하심을 구하는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 나중에 언젠가 당신의 강하신 손이 철저히 제가 홀로 서야 하는 곳으로 저를 인도할 것입니다. 홀로, 오직 인자하신 내 사랑 당신을 위해서만. 예수님만 볼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합니다. 미래를 위한 당신의 계획은 모르지만 제 영은 당신 안에서 완벽한 집을 봅니다. 당신만으로 충분합니다. 주님, 지금 제 모든 바람은 당신만을 향해 있습니다. 어디로든 어떻게든 인도해 주십시오. 당신을 믿습니다.”《엘리자베스 엘리엇-고통은 헛되지 않아요》

살아가다 보면 관계속에서 아픔과 상처, 실수와 실패가 삶에 쌓여가게 됩니다. 때로는 숨겨진 내 안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 조차 어려워 혼자 외롭게 애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서 없이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깊은 아픔과 실패라도 하나님께 받는 용서함의 은혜는 우리를 삶에서 회복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험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말과 행동에 거침이 있을 수 있지만,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음이 깊어진 삶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성품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고통의 쓴 맛을 아는 사람은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진심으로 끌어 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용서 받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크신 손에 붙들릴 때, 우리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말씀이 회개한 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깨닫게 됩니다. 죄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속에서 살아 가야하는 삶은 우리가 받은 사랑과 은혜의 빚을 나누는 삶 뿐입니다. 부르신 자리에서 사랑을 선택하며 용서함 받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내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