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3.2023 주일설교

(부활메시지 3)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Living a new life in Christ

골로새서 3:1-11

유민용 목사

3:1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십시오. 그곳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3:2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3:3 옛 사람은 죽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3:4 여러분 모두는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 가운데 그분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3:5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죄악된 것은 다 버리십시오. 성적인 죄, 악한 행동, 나쁜 생각, 지나친 욕심 등은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입니다.
3:6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화를 내실 것입니다.
3:7 여러분이 예전에는 이런 일들을 했을지 모릅니다.
3:8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이런 것들을 몰아 내려고 힘쓰십시오.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9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3:10 여러분의 삶 속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새 생활 가운데 더욱더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그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점점 더 자라날 것입니다.
3:11 새로운 생명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할례를 받은 사람이든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야만인이든지 스구디아인 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믿는 자의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쉬운성경)

1 Since you have been raised to new life with Christ, set your sights on the realities of heaven, where Christ sits in the place of honor at God’s right hand. 2 Think about the things of heaven, not the things of earth. 3 For you died to this life, and your real life is hidden with Christ in God. 4 And when Christ, who is your life, is revealed to the whole world, you will share in all his glory. 5 So put to death the sinful, earthly things lurking within you. Have nothing to do with sexual immorality, impurity, lust, and evil desires. Don’t be greedy, for a greedy person is an idolater, worshiping the things of this world. 6 Because of these sins, the anger of God is coming.7 You used to do these things when your life was still part of this world. 8 But now is the time to get rid of anger, rage, malicious behavior, slander, and dirty language. 9 Don’t lie to each other, for you have stripped off your old sinful nature and all its wicked deeds. 10 Put on your new nature, and be renewed as you learn to know your Creator and become like him. 11 In this new life, it doesn’t matter if you are a Jew or a Gentile, circumcised or uncircumcised, barbaric, uncivilized, slave, or free. Christ is all that matters, and he lives in all of us. (New Living Translation)

지난주 월요일에 보스턴에서 국제적인 큰 행사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127년 동안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달렸을까요? 삶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기 위한 사람들,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위한 이들, 완주의 영광을 누리고 싶어서 달린 이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 달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염원을 담고 목적지를 향해 경주를 했을 것입니다. 가끔 새벽기도가 끝이 나고 저도 가볍게 동네 한바퀴를 뛰고 옵니다. 그때에 함께 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삶을 응원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른 마음으로 뛰는 그 자리의 끝에는 하나님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으면서 말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마라톤과 같은 믿음의 경주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에 비유합니다. 경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목표이지요. 1984년에 세상을 떠난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Francis A. Schaeffer, 1912- 1984) 말년에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암과 혹독하게 싸우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젊은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캠퍼스 사역에 나섰습니다. 쉐퍼는 ‘이 세상에는 확고한 가치와 기준이 없다. 그러니 젊음의 때에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될때에 향락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쉐퍼는 몸속에 암이 퍼져가고 있었지만 영원한 나라의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왜 뛰고 있는지, 왜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 목표가 흔들리면 길 위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부활주일을 지나 부활의 신앙을 마음에 품고 살아 가야 합니다. 십자가 사랑이 나를 살리셨으니 이제는 자기자랑과 세상의 가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합니다. 십자가가 진심으로 내 삶에 다가올때 옛자아가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 살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면서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한파가 찾아와도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지체들을 보면서 이들의 이 귀한 마음이 주님 앞에 올려 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지체들을 보면 그들의 삶의 자리에 주님이 친히 찾아가 주셔서 위로하여 주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는 사랑으로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새로운 삶’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경험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하시니,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 ‘새로운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천년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쓴 바울의 서신을 읽을 때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까? 성령의 깨달음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바울은 ‘새로운 삶’을 부여 받는 사람들은 하늘의 가치를 사랑하고(1절) 하늘의 가치를 생각하며(2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영광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4절) 제시합니다. 바울 자신도 오직 내가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간다고 표현했습니다.(빌3:12) 그렇다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삶의 방향입니다.

거룩함을 잃어가는 삶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삶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하늘에 목적지를 두기에 하늘에 속한 경주자가 됩니다. ‘믿음을 통한 칭의’는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달라졌기 때문에 ‘옛사람’의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옛사람에 대해서 죽었고, ‘새로운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고백하지요. ‘버린다는 것’은 삶의 우선 순위가 ‘달라진 것’입니다. 정글의 맹수들에게는 맹수들의 생활이 있고, 맹수의 위협을 받는 초식동물들도 그들만의 생활 방식이 있습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도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 사건을 통해 부활에 대해서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하나님의 타이밍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 라고 말씀하셨지요. 예수님은 온 천하와 생명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하를 얻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새생명’입니다. ‘새생명’은 현재를 살며 삶을 연장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주시는 ‘부활의 생명’이지요. 죽음에 의해서도 파멸되지 않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나사로는 살아났지만 다시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로 사건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 생명은 땅의 것을 끊어내는 능력이며,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믿을 때에 주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광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매일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완전’이지요. 바울은 율법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고 난 뒤에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삶의 목적지가 분명해 진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경주자는 옛사람을 벗어내야 합니다

3:5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죄악 된 것은 다 버리십시오. 성적인 죄, 악한 행동, 나쁜 생각, 지나친 욕심 등은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입니다.
3:6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화를 내실 것입니다.
3:7
여러분이 예전에는 이런 일들을 했을지 모릅니다.
3:8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이런 것들을 몰아 내려고 힘쓰십시오.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9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가볍게 하고 경주에 임하게 됩니다. 무거운 옷을 입고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를 달고 경주에 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경주자에게 있어서 무거운 옷은 ‘죄이며 땅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 몸 안에 안 좋은 세포가 자라고 있다면 그것을 도려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냥 두게 되면 생명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들이 버려할 할 것들 중에 성품적인 것과 행실적인 측면에서 10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적인 죄, 악한 행동, 나쁜 생각, 지나친 욕심, 하나님 외에 더 소중히 여기는 우상들 그리고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과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벗어 버리는데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벗어 버리라’는 말은 옛사람을 따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있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탄식하는 마음을 주시고, 옛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릴 새힘을 주십니다. 바울은 이 모든 과정들이 믿음의 여정의 한 부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직 완전해 진 것도 아니고 이미 이룬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고백한 것 같습니다.(빌3:12) 예수님은 우리가 넘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기다려 주시고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면죄부를 이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고백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며, 어제의 나와 모습과 오늘의 모습이 달라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일 자아가 죽는 경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가 마지막의 때를 향해 나아갑니다. 자아가 죽는 경험도 이처럼 실제적인 것입니다. 마지막이 없는 것처럼 오늘의 기쁨만을 추구하며 살아가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경험되어지는 수많은 감정들 역시 하나님께서 다루어 가실 것입니다. 과거에 묶이지 말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새생명이 되었으니 이미 우리 안의 완악함은 십자가에 함께 못박혔습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땅의 것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하는 반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의 심판이 아니라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바로 이곳, 바로 여기에 우리가 바라 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정체성이 변화되고, 삶의 존재가 변화 된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자녀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선이 향하고, 예수님이 걸어 가시는 방향으로 우리의 발걸음이 향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품’ 안에서 누리는 은혜입니다.

3:10 여러분의 삶 속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새 생활 가운데 더욱 더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그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점점 더 자라날 것입니다.

뱃속의 아이에게 뱃속 밖의 세상을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깥 세상에 나오게 된 후, 아이는 세상을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영적 세례를 받고 부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이 생명의 경험이 더 깊어 지고 생명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계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가게 되니까 세상속에서 살아가지만 죄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 (聖化)의 삶입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셋째로 새사람이 되는 변화는 모두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3:11 새로운 생명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할례를 받은 사람이든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야만인이든지 스구디아인 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믿는 자의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 지식을 모든 인류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인, 유대인, 할례를 받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야만인, 스구디아인, 종이든, 자유인이든 새롭게 되는 지식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차별이 존재하지요. 부모에 따른 차별, 신분에 따른 차별, 재물에 따른 차별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불과 100년전 만해도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이 사회적 합의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도 성경적 견해를 갖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인종문제를 성경의 기준대로 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감리교의 설립자 웨슬리와 같은 인물들입니다. 웨슬리는 상위계층으로 부터 내려와 옥외 설교를 하며 당시 부를 부당하게 축적하는 계급층들에게 정당하게 부를 사용하라고 설교했습니다. (1)“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라”. (2)“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 (3)“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주라” 이 설교는 물질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두고 청지기 신분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전히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매일 호흡하게 하시고, 매일 허락하시는 생명을 값없이 받고, 아침마다 허락하시는 태양으로 인해 새날을 맞이합니다. 문제는 이것을 당연하다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자신이 탕감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이 됩니다. 신앙의 년수나 성경적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부족한 나의 삶에 찾아 오신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지금 잡고 놓지 못하는 손을 펼쳐도 아무 것도 잃어 버리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잃을것  같은 두려운 우리의 마음에 내가 그 동안 쥐고 있었던  것이 별 것이 없었음을 느끼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사이에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모든 장벽들을 다 허무시고, 너와 나 우리의 공동체를 연결하는 삼겹줄이 되어 주십니다. 죄는 끊임없이 담을 세우려 하고, 벽을 쌓으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죄는 아무 효력이 없게 됩니다. 이 위대한 선물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금요찬양 예배의 결단 찬양이었습니다. 한주동안 이 찬양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내 안에 주님을 찾고 바라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늘을 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세상을 살다가 마음의 먹먹함이 내 삶을 짓누를때

그제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이 분주하게 세상을 살다가 인생의 허무함이 내 삶을 짓누를때 그제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돌보시는데

부족한 내 영혼은 아직도 갈 길을 모릅니다.

내게 믿음 주소서 내 연약한 마음 돌보소서 한없는 주님의 사랑 알게 하소서

영원까지 그의 백성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는 새사람이 얻게 된 새로운 지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의 기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믿는 자의 마음 속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울어도 하나님 앞에 울어 보십시오. 그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의 배를 띄우는 눈물이 되게 하십니다. 답답해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로 풀어 내보십시오.

사람 앞에 풀어 낼 때 그 말은 죄의 씨앗이 되고 내 몸과 마음이 죄의 지배를 받지만, 하나님 앞에 풀어내면 거룩한 믿음의 깊이를 갖게 하십니다. 화가 나고 불평할 일이 생길 때에 큰 숨을 쉬시며 주님의 이름을 세번 불러 보십시오. 처음 숨에 ‘나의 교만과 나의 분노’가 사라지고 두번 숨에 ‘주님이 사랑하시는 나’를 깨닫게 하시고, 세번 숨에 ‘내 삶에 주님의 은혜’밖에 없음을 느끼게 하실 것입니다. 믿는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의 눈물 찬양의 눈물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 눈물의 고백으로 옛자아와 본성이 하나님 앞에 죽어지고, 성령 안에서의 새 삶으로 살아내게 되는 은혜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0416 2023 주일설교

(부활메시지 2)

부활의 증인들

Witnesses Of Resurrection

고린도 전서 15:1-11,20

유민용 목사

15:1 <그리스도의 부활> 성도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파한 복음에 대해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받아 그 안에 굳게 선 복음 말입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파한 말씀을 굳게 붙들고 헛되이 믿지 않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3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과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5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후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6 그후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7 그후에 야고보에게,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시고,8 맨 마지막으로 조산아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9 나는 모든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입니다. 나는 과거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10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었습니다.11 내가 되었든지 아니면 그 사람들이 되었든지 간에 우리가 전파한 복음은 이런 내용이고, 여러분은 이것을 믿었습니다…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어느 조류학 저널에 게재된 연구인데요. 연구팀이 까마귓과 새인 멕시코 어치에게 까보지 않고도 땅콩 속이 비워 있는지, 차 있는지 구별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진은 무게가 같은 땅콩 안에 진흙을 넣어 무게를 1g정도 늘린 땅콩을 함께 놓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더 무거운 땅콩을 선택합니다. 새들은 여러 실험을 거친 일련의 과정속에서 적절한 무게와 소리를 통해 판단하고 선택을 한다는 결과였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속이 꽉 차 있는 땅콩을 선택 한 것이지요.

기독교 진리에 있어서 부활은 껍데기가 아니라 복음의 진수 (眞髓)입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인들에게 생명이지요. 생명이 없는 형태만 붙들고 있으면 꽃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죽은 나무 붙들고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가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일은 생명에게 주어진 운명입니다. 부활 신앙은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며, 세상의 유혹과 욕망의 껍데기를 벗고 복음의 신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케리그마는 ‘공허한’(고전 15:14) 것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기록된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은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지요. 씨앗이 겨울 내내 땅속에 있다가 생명을 통해 꽃으로 변화되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의 신비는 상처 난 부위에 새살이 돋아나는 것이고, 희망이 없던 이들이 갈 길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오직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부활을 사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내십니다. 부활을 살아가는 것은 온 생애를 다시 얻는 것이며, ‘현재’의 삶을 리셋하여 ‘새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선교 메시지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신앙고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5:2-4) 우리의 죄로 인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그의 무덤, 그의 부활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열두 사도들, 50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서 증언된 내용입니다.

첫째로 예수의 부활은 실제로 증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5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후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6 그후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7 그후에 야고보에게,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시고,8 맨 마지막으로 조산아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설명합니다. 복음의 핵심을 요약한 다음에 부활의 주님을 본 더 많은 증인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오백여명의 형제들’에게 나타나셨으며, 그들 중에 대부분은 바울이 글을 쓸 당시에도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또한 야고보와 ‘모든 사도’의 무리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바울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기록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허위로 증거한 것이라면, 2천년 후인 오늘까지 존재할수 없을 것입니다. 거짓된 증거라면 순교자들의 심리적 동기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상황에서 나타나신 예수 부활의 진실성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11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하든지 다른 사도들이 전하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이 부활의 경험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깨닫는 지혜가 임하면 어린아이의 삶에도 변화는 찾아 옵니다. 그러나 저명한 교수라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을 통달하고 꿰뜷고 있어도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의 몸도 성경대로 부활의 몸이 될 것을 믿으십니까? 하늘의 시민권을 부여 받게 되면 세상의 시작과 끝을 알게 되기에 현재의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뜨거운 믿음이 있어도 이 부활의 십자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가진 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DL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1명은 성경을 읽지만, 99명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이지요.’ 성도의 삶의 선한 모습은 연약한 지체들을 일으켜 세워줍니다. 성도들의 격려의 말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매우 지성적이고 교육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고, 유대교에 대한 열심도 대단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변화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의 사건입니다. 이 믿음은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고 보존하는 힘이 됩니다. 개인의 삶도 새롭게 살아가는 전환점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땅에서 잠자던 씨앗이 때가 되어 싹이 나고 꽃을 피우듯이 말입니다. “씨앗을 손에 들고 새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씨앗이 심겨지면 싹이 날 것이고 자라서 나무가 되면 새들이 와서 새소리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새로운 창조를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경험했습니다. 이후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심을 통해 죄를 용서 받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모든 피조물들이 갱신되듯 자신들의 몸도 부활할 것임을 믿게 된 것입니다. 이 믿음은 제자들을 박해 가운데서도 구원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처럼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계시다가 다시 ‘살아있는 자’로 경험되는 것이며, 이 믿음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매주일 사도신경을 통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이상하고 낯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말의 때를 하나님의 시간 안에 감춰 두셨습니다. 그래서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가는 존재이기에 분명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경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가 지신 십자가는 삶의 뿌리이고, 예수의 부활은 새로운 삶의 꽃입니다.

뿌리는 꽃을 피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되면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삶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을 얻는 경험이며, 깊은 수렁에서 끌어내어 올리는 힘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이 불어 흔들려도 뽑히지 않습니다. 삶에 뿌리를 깊이 내린 십자가는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다 한번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반복하며 행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17세기 화가 램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성경속 이야기의 많은 작품을 그리며 자신을 구경꾼으로 그렸습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있어요’라는 고백입니다. 가장 깊이 뿌리 내린 삶은 바로 ‘십자가 아래’ 바로 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땅속에 숨겨진 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뿌리 내리게 됩니다. 육안으로 보기에 큰나무 일수록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것이지요. 뿌리는 지지역할을 하고 양분을 저장하고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십자가 뿌리는 흔들리는 신앙을 지지해 주고, 죄를 정결케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쏟으신 그 땅에서 부활의 꽃을 피우셨습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마주하게 되는 고난은 찬란한 부활의 꽃을 피우는 밭이 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발칸 반도의 장미 향수는 반드시 한밤 중에 장미를 딴다고 합니다. 그들은 밤 12시에서 새벽 2시까지 발칸산맥에 가서 그 장미꽃을 따서 향수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발산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태양이 비취는 낮에는 장미향기의 40% 가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의 삶에 억압 당하고 살아갑니다. 하루 하루  늙어가는 시간도 생명이 억압받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염려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날까 염려도 하지만, 혹시 인생의 봄날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이 자리를 잡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우리가 참되게 믿는다고 해서, 삶에서 완전한 해방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봄이 오면 죽은 듯이 보였던 나무에 꽃이 피고 잎이 피듯이 생명의 힘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칠흙 같은 어둠속에 정금 같은 믿음의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겸손하게 바라보시며 찬란한 부활의 꽃을 피우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현재 땅속 깊이 뿌리 내리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내려 놓고, 부활의 힘을 축적하다 보면, 부활의 주님께서는 생명이 되셔서 인생의 봄날이 올때에 꽃을 피우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첫열매’라는 헬라어 단어는 ‘아파르케: ἀπαρχή’입니다. ἀπό (아포, ∼부터)와 ἀρχή(아르케, 시작)의 결합어인데, 말 그대로 ‘시작부터’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아르케’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영어 성경은 firstfruits라고 표기합니다. 즉 ‘첫 열매’라는 말은 그에게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열매는 행실을 의미하는데요. 부활절기를 보내며 선한 행실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엡5:9)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카운티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도시 중심에는 큰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 안에 세 사람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첫번째 동상은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마틴 루터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동상입니다. 루터킹은 ‘나에게 꿈 (첫열매)이 있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은 흑인들의 인권을 위한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동상은 인도 독립의 영웅 간디입니다. 간디는 미국인은 아니지만 그의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세번째 동상은 도산 안창호 선생입니다. 루터와 간디와 달리 안창호 선생이 한 일은 그저 리버사이드 카운티의 오렌지 농장에서 일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이 오고 그곳의 모든 한국인의 말과 행동이 바뀌었답니다. 그 지도력을 인정해 지역의 유지인 오렌지 농장의 주인이 적극적으로 추천하여 안창호 선생의 동상을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렌지 농장의 인부였던 안창호 선생의 삶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변화에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이번주 주보 앞면에 소개하려는 그림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님의 작품인데, Way maker 라는 그림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 하나님과 연결되는 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길이 어느 길이어도 말입니다. 부활의 기쁨과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의 삶에 새로운 힘이 되어 줄 수 있도록 십자가를 붙들고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림 속에 사람들의 표정은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림에 담긴 메세지가 따뜻해서인지 모두의 표정이 행복하게 미소짓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공동체 안에서 어떤 표정으로 서 계십니까? 세상에서 누려야 할 것도 많고,해야할 말도, 하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의 현재의 삶에 중요한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 시간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때론 더딘것 같아도 서로가 다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새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서로가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함께 동행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모세를 살린 히브리 산파들, 나아만 장군을 살린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와 그의 종들은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500여명의 제자들도 기독교 역사의 축을 세우는 일에 주님의 손과 발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고 섬기는 당신에게 주님의 빛이 비추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슴에 품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소유가 됨을 잊지 마십시요. 부활의 기쁨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