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7. 2023 주일설교

(부활메시지 5)

요한이 전하는 복음

The Gospel of John

요한복음 1:1, 14:1-14

유민용 목사

1:1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오심>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14:1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 집에는 너희들이 있을 곳이 많이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한 장소를 마련하러 간다.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한 장소를 마련한 뒤에,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가는 그 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

5 도마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저희가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진정 나를 안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그분을 알았고 또 그분을 보았다.”

8 빌립이 말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아직도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어떻게 네가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느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내 안에 계시면서 그분의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내 말을 믿어라. 나를 믿지 못하겠으면, 내가 행한 표적 그것만이라도 믿어라.12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그 사람도 행할 것이다. 심지어 이보다 더 큰 일들도 행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그리고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너희에게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쉬운성경)

1:1 In the beginning the Word already existed. The Word was with God,and the Word was God. 14:1“Don’t let your hearts be tro ubled. Trust in God, and trust also in me. 2 There is more than enough room in my Father’s home.[a] If this were not so, would I have told you that I am going to prepare a place for you?[b] 3 When everything is ready, I will come and get you, so that you will always be with me where I am. 4 And you know the way to where I am going.”5 “No, we don’t know, Lord,” Thomas said. “We have no idea where you are going, so how can we know the way?”6 Jesus told him,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an come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7 If you had really known me, you would know who my Father is.[c] From now on, you do know him and have seen him!”8 Philip said, “Lord, show us the Father, and we will be satisfied.”9 Jesus replied, “Have I been with you all this time, Philip, and yet you still don’t know who I am? Anyon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So why are you asking me to show him to you? 10 Don’t you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The words I speak are not my own, but my Father who lives in me does his work through me. 11 Just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Or at least believe because of the work you have seen me do.12 “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believes in me will do the same works I have done, and even greater works, because I am going to be with the Father. 13 You can ask for anything in my name, and I will do it, so that the Son can bring glory to the Father. 14 Yes, ask me for anything in my name, and I will do it!

1:1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오심>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1절 안에는 3개의 문장이 있는데, (1) 태초에 말씀이 존재했다. (2) 그 말씀이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요한은 말씀이신 예수가 인류 역사 속으로 들어온 사건을 밝히며 요한복음을 시작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성경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요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우레(Thunder)의 아들’이라 불리우던 요한이 사랑의 사도가 되었는가?입니다. 인간은 ‘그 말씀’ 앞에 설때에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그 말씀’은 이기심을 깨트리고 완악한 심령을 찢어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듣는 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내면에는 태초의 ‘그 말씀’을 향한 근원적인 갈망이 있습니다. 요한도 ‘그 말씀’을 향한 갈망이 사랑으로 채워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말씀(logos)’이신 예수가 누구인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의 족보를 소개하며 하나님 나라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했다면, 요한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합니다. 즉 구속사에 있어서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 사건은 절정인 것입니다. 예수가 행한 수많은 표적들도 이를 위한 표지판인 것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믿음을 종종 오해하는데, 신을 의지하려는 열심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열심이 아니라 인생의 길과 진리를 깨닫고,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길은 오직 인류 역사속에서 예수님만이 홀로 가셨던 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가는 길을 직접 내려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전하고자 합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은 동물의 언어가 아니라 태초의 ‘그 말씀’과 연결되어 지는 것입니다. 화려한 미사어구나 논리로 무장한다고 해도 태초의 말씀과 연결되지 않으면 말은 소음의 차원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이 없이 읽게 되는 성경은 이해 할 수 없는 글자일 뿐입니다.

“사랑하면 천 개의 눈이 생긴다”는 영국 속담처럼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듣고, 보고, 만진바가 되는 것입니다.

14:1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조선시대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사자소학(四字小學)이라는 기초 한문 교과서가 있습니다. 생활규범과 행실과 마음가짐에 대해서 일러주는 책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관계속에서 살아갑니다. 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세상은 끝없는 경쟁으로 관계 안에서 지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 아니라 근심에 깊이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길을 잃을 때에도 주님과 함께 머물러 있으면 되고 길이 되시는 주님을 믿으면 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살아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생명이 곧 하나님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니까 하늘의 이야기를 땅에서 써 나갔던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5 도마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저희가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진정 나를 안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그분을 알았고 또 그분을 보았다.” 8 빌립이 말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아직도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어떻게 네가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느냐? 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내 안에 계시면서 그분의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다.

본문에는 제자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도마와 빌립입니다. 3년 동안 함께 했던 제자들인데 예수님이 가는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도마는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단지 도마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에 빌립이 또 질문을 합니다.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절부터 10절 안에 있는 동사를 보면 ‘안다’와 ‘본다’라는 동사가 나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읽고 묵상하며 관찰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안다’는 동사가 참 많이 나오는데 ‘사랑하다. 믿다.’로 바꿔 볼 수 있습니다.’ 알다’라는 헬라어 “기노스코γινώσκω”나 히브리어 ‘야다'(ידע)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경험을 통해 친밀하게 사귀는 것입니다. 끊임 없은 관계속에서 생겨나는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예수님을 알아 가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시대마다 구석구석 살피다 보면 성경 안에서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아 가고자 할 때에 성령님께서는 깨닫게 해주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면 생명의 싹을 틔워 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지요. 지혜의 기초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rotation)과 공전(revolution)을 하는 지구는 우주의 질서과 법칙안에서 하루, 한해를 일정한 사이클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크신 하나님의 손을 깨닫게 될때에 매일 땅을 밟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리 남들보다 앞서 가려고 살아도 우리는 2023년 5월의 첫주일 맞이했습니디. 주어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하지만 주어지는 시간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깨닫게 될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씀을 기록하던 당시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형제를 무시하고, 미워하면서 자신들은 특별한 영지를 가지고 있어서 영생하는 자처럼 처신했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세상의 것은 다 하찮은 것이고 그림자일 뿐이며, 하나님께 이르는 깨달음은 오직 영적 지식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했습니다. 높이 계신 신이 타락한 물질세계로 가까이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특정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는 “더 높은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이웃과 더불어 친밀한 사귐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진리의 힘이 실천적 삶으로 입증되지 않는 믿음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가신 길은 아버지의 집을 예비하기 위함입니다.

2 내 아버지 집에는 너희들이 있을 곳이 많이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한 장소를 마련하러 간다.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한 장소를 마련한 뒤에,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

2009년에 방영된 ‘아버지의 집’이라는 드라마에서 10살 된 아들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는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극중에 나오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아들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이 미국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이별을 하지만 10년이 지나 돌아온 아들은 갱이 되어 한국으로 도망 오게 됩니다. 그런 아들을 위해 사고를 해결하려다 아버지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이 머리카락이 생길 때부터 이 손가락이 생길 때까지 넌 내 아들이다. 나이가 들면 아빠는 자식을 통해 꿈을 꾸는 거다. 살다가 포기하고 싶어도 너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슴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한다.” 라고 마지막 순간에도 아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남깁니다.

성경의 탕자 이야기를 보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고 다른 도시로 가서 자기 멋대로 생활하다가 완전히 망합니다. 나라에 흉년이 들자 그나마 돼지치는 일로도 먹고 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 집의 품꾼으로 가겠다고 작정합니다. 방황하면서도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집을 떠난 탕자가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애끓는 사랑의 마음으로, 저 멀리서 오는 아들을 향해 달려 갑니다.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더러워진 그의 몸은 아버지의 사랑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내 아버지의 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을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너희를 위해 한 장소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집을 마련하러 간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입니다. 선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위해 감당하신 십자가 구속 사역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유월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며 성전 뜰에서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때 ‘아버지의 집’과 오늘 본문의 ‘내 아버지의 집’이 같은 단어인 오이코스(οἶκος)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가르키며 ‘내 아버지의 집’이라 지칭하신 후 계속하여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성전 된 자신의 몸’을 가리키신 것이지요. 당시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지만, 오순절날이 되어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문을 열어 준 열쇠가 ‘성령’이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의“라고 표현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7:17)

구원받은 백성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성전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육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있듯, 주님께 속하게 될 때에 우리는 참된 쉼을 얻는 것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난 후에 집에 돌아 오면 집이 주는 안정감이 있는 것처럼, 에덴동산에서 쫒겨 난 후 인간의 삶은 하나님께 돌아 올 때에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주 동안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한 순간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지 우리의 마음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만 ‘내 아버지의 집’을 향해 올 곧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길 위에사 상실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도들에게는 기도가 있습니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내 말을 믿어라. 나를 믿지 못하겠으면, 내가 행한 표적 그것만이라도 믿어라.12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그 사람도 행할 것이다. 심지어 이보다 더 큰 일들도 행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그리고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너희에게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은 기도의 자리에 매일 찾아 오십니다. 예배 드리는 시간만 찾아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주의 7일 168시간 중에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에 찾아 오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매일 구하지는 않습니다. 기도는 새로운 삶의 문이며, 절망의 현장을 빠져 나오는 출구입니다.

1982년 미국의 범죄심리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캘링이 발표한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건물 주인이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해 둔다면, 그로 인해 절도나 건물 파괴 등 강력범죄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뉴욕의 어느 주택가에 주인이 이사간 집에 한아이가 장난으로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머지않아 그 집의 유리창들이 모두 파손 되었습니다. 그렇게 깨진 유리 조각들이 거리에 흩어졌으나 누구도 치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마을이 점차 지저분해 지고 음산해 지자 주민들은 이런 곳에서 살수 없다며 이사를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연히 주인 없는 빈집은 늘어났고 아이들은 빈집마다 돌을 던져 유리창을 부쉈습니다. 이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 되면서 결국 마을은 사람들의 따스함이 사라진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보면 곳곳이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 파괴와 훼손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과 분리된 삶을 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과 환경으로도 이 생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해결 된다는 것이 요한복음의 결론입니다. 

기도의 깊은 골짜기에서 피어나는 백합화가 절망 속에 있는 이들의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더 깊은 기도의 길은 아버지가 내안에 거하고, 내가 아버지 안에 계심을 통해서 온전한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 삶이 바뀌고 내 가정이 바뀌는 것을 넘어 상실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 신앙의 뿌리를 내리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홀로 있는 자리에서도 나의 감정이 주님께 올려진다고 생각하시며 살아보십시오. 내 마음이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상의 분노. 거절감. 풀어져 있던 악한 본성을 거스르고 삶의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아이들이 같은 시간에 하나님의 성전인 ‘아버지의 집’에서 예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뭉클하면서도 감사합니다. 귀한 아이들에게 믿음의 부모들이 되어 주십시오.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태초의 ‘그 말씀’ 앞에 서서 믿음의 본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부모의 뒷 모습으로도 아이들이 평안함을 느낄수 있도록 살아가 주십시오. 누구도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속에서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지켜내는 그 자리에 바람도 불고 비도 오겠지요. 그러나 모든 열매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주보 앞면에 보시면 그 안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따뜻한 말은 지금까지 없었다.’ 여러분 우리 삶의 어떤 모습도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변화 없이는 제대로 믿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아무리 필요한 조언과 훈계도 내 방법과 생각에 제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주도 그리스도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 살아 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십시오.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루의 첫시간을 기도로 열어가시고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오늘 본문 11절 말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너희에게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삶에 온전히 받아 들이기만 한다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뤄지는 예배의 기쁨입니다. 한주도 우리의 삶의 낮은 자리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04.30.2023 주일 설교

(부활메시지 4)

마태가 전하는 복음

The Gospel of Matthew

마 1:1, 2:13-23

유민용 목사

1:1 <예수님의 족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2:13 <예수님의 가족이 이집트로 피난 감> 박사들이 떠난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가거라.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하니, 내가 지시할 때까지 이집트에 머물러 있어라.”14 그래서 요셉은 한밤중에 일어나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15 요셉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 내었다.” 16 <헤롯이 사내아이들을 죽임>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박사들로부터 알아 낸 때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17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슬피 울며 통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기 아이들을 위해 우는데,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으려 하지 않는다.” 19 <예수님의 가족이 이집트에서 돌아옴> 헤롯이 죽자, 주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의 꿈 속에 나타났습니다. 20 “일어나라!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사람들이 죽었다.” 21 그래서 요셉은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갔습니다.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아버지 헤롯의 뒤를 이어 유대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그 곳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꿈에서 지시를 받고 나서 요셉은 갈릴리 지방으로 갔습니다. 23 그는 나사렛이라는 마을로 가서,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통해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The Ancestors of Jesus the Messiah 1:1This is a record of the ancestors of Jesus the Messiah, a descendant of David and of Abraham The Escape to Egypt 2:13 After the wise men were gone,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Joseph in a dream. “Get up! Flee to Egypt with the child and his mother,” the angel said. “Stay there until I tell you to return, because Herod is going to search for the child to kill him.”14 That night Joseph left for Egypt with the child and Mary, his mother, 15 and they stayed there until Herod’s death. This fulfilled what the Lord had spoken through the prophet: “I called my Son out of Egypt.” 16 Herod was furious when he realized that the wise men had outwitted him. He sent soldiers to kill all the boys in and around Bethlehem who were two years old and under, based on the wise men’s report of the star’s first appearance. 17 Herod’s brutal action fulfilled what God had spoken through the prophet Jeremiah:18 “A cry was heard in Ramah weeping and great mourning. Rachel weeps for her children,refusing to be comforted, for they are dead.”The Return to Nazareth 19 When Herod died,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in a dream to Joseph in Egypt. 20 “Get up!” the angel said. “Take the child and his mother back to the land of Israel, because those who were trying to kill the child are dead.”21 So Joseph got up and returned to the land of Israel with Jesus and his mother. 22 But when he learned that the new ruler of Judea was Herod’s son Archelaus, he was afraid to go there. Then, after being warned in a dream, he left for the region of Galilee. 23 So the family went and lived in a town called Nazareth. This fulfilled what the prophets had said: “He will be called a Nazarene.” (New Living Translation)

언젠가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모여 있는 캐나다 현지교회에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 한쪽 벽에 크게 출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도(Genealogy of Jesus Christ) 가 눈에 띄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에서는 뿌리를 중요시 여기는 기록이 많습니다.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가정과 배경을 밝힘으로 성서의 신뢰성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배경이 없는 사람을 소외시키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인 믿음, 하나님께 받는 사명, 성실하게 감당하는 그 사람의 삶의 태도도 매우 중요하게 기록해 놓습니다. 마태는 예수의 족보를 통해 창세기로 시작하여 예수님까지 내려오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예수에게서 완성됨을 전합니다.

1:1 <예수님의 족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헬라어 번역본으로 1절은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로 시작합니다.  “비블로스”(βίβλος) 는 “책”을 가리킵니다.  “게네세오스”(γενέσεως) 는 “게네시스”(γένεσις) 의 소유격인데 즉, 창세기라는 뜻입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서를 시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된 새로운 시대 즉 신약의 창세기를 열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왜곡된 세상을 새롭게 하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 족보는 누구는 누구를 ‘낳고’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사람의 이어짐을 ‘죽고’에 강조점을 두지 않고, ‘낳고’에 둔 것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족보가 끊기려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낳고’라는 생명의 탄생에서 끈질기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발견됩니다. 예수의 족보는 사망의 족보가 아니라 생명의 족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의 기원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신비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예수의 계보도를 깊이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삶속에는 순탄치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낳고’와 ‘낳고’ 사이에는 오래 세월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2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비옥한 땅이고, 물질적으로 풍요롭던 지역입니다. 이후 가나안으로 향하는 여정은 쉽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약속을 포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땅에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 가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의 족보에 실린 여자들은 대부분이 이방 여인들입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자를 족보에 언급하는 예도 없지만 하나님은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여인들을 통해서 예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족보를 보면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룻이라는 이방 여인의 믿음을 도외시 하지 않으십니다. 나오미의 가문에 모든 남자들이 다 죽게 되어 대가 끊어졌을 때, 하나님은 룻과 베들레헴에 살던 보아스를 만나게 하십니다. 보아스와 룻이 낳은 아들에게 사람들이 오벳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윗 왕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이지요.

예수의 오심은 다윗 왕가를 통하여 계속 이어집니다.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의 면모를 더듬어 보면 부끄러운 일이 많습니다. 다윗이 범죄함으로 낳은 솔로몬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곧 우리의 모습이며, 인간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는 다윗의 가문으로부터 왔지만 예수님의 탄생은 특정한 나라,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 끌려가 나라가 완전히 멸망했던 절망적 상황속에서도 햇살은 비추고 있었고, 하나님 나라는 땅속 깊이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3차에 걸쳐 귀환 시키신 것은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하는 순간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쉬지 않으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이제 예수의 출생 이야기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 친척집에 갔다가 몇개월 후에 돌아왔을 때에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리아는 이 아이가 성령으로 임신하게 된 것이라 설명을 하지만 요셉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워 조용히 관계를 끊이려 했습니다. 이 사건을 덮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요셉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요셉의 선택에 의해서 수천년 동안 메시아의 오심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던 사건입니다. 주의 천사는 마리아 데리고 오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예수가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실제로는 성령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암시한 것입니다.

21 그래서 요셉은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갔습니다.

성경은 요셉에게 아기 아빠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기 엄마를 데리고’라고만 말씀합니다. 육신의 아버지로 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고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이지요. 당시 헤롯왕은 2살 이하 모든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과 마리아는 애굽으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을 보면 마리아는 가난한 집안이었을 거라 추측이 됩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후에 정결예식을 하러 예루살렘 올라가서 비둘기로 제사를 드렸습니다.(눅2:24) 출산 후 정해진 정결례 제물은 ‘1년 된 어린양’입니다. 당시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어린양 대신 비둘기를 제물로 드리게 하는 약자 보호법이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비둘기를 드린 것을 볼 때 당시 마리아의 경제 상황이 넉넉하지 않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별을 따라 온 동방의 지혜자들이 바친 황금은 애굽으로 피신해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손에 잡히듯 생생하게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실패가 없습니다. 실패로 보이는 것까지 구원을 이루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한세대가 아니라 모든 나라 그리고 오는 세대를 행한 하나님의 사역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믿음의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말씀의 성취는 출세가 아니라 출애굽을 통한 삶입니다.

2:13 <예수님의 가족이 이집트로 피난 감> 박사들이 떠난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가거라.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하니, 내가 지시할 때까지 이집트에 머물러 있어라.14 그래서 요셉은 한밤중에 일어나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15 요셉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 내었다.

출세는 숨어 살던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올라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 됩니다. 출애굽으로 부터 시작되는 ‘구원 이후의 삶’입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은 새사람이 세상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그 인생이 잘되고 망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지는 것입니다. 출세를 위한 스펙쌓기의 삶에서 ‘순종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그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것이지요. 목적과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로만 삶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내는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복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가십시오.

헤롯왕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해서 요셉은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헤롯왕이 죽을때까지 거기에서 살았습니다. 마태는 이 일이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인 “내가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는 말씀이 성취되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탄생 과정에서 출애굽으로 피신하게 된 말씀을 완성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마태는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도피했다가 나사렛으로의 귀환하는 사건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과 비교함으로 예수가 인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출애굽 이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의 자랑은 세상의 성공과 출세였는데 출애굽 이후의 삶은 인간의 욕망보다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깊어지고, 세상의 스펙보다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 (창 22:18) 이라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지금도 말씀은 간절함으로 믿는 자들을 통해 성취되고 있습니다. 마태는 복음서를 마치면서 열방에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열방이 복을 받게 될 것과 예수를 통한 온 인류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두번째 예언의 성취는 헤롯왕이 두살 이하 아이를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16 <헤롯이 사내아이들을 죽임>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박사들로부터 알아 낸 때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17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슬피 울며 통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기 아이들을 위해 우는데,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으려 하지 않는다.

헤롯의 악함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슬픔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악함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악한 권세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가득한 슬픔 너머에 뜻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 기록합니다.(렘 31:15) 라헬이 자식이 없으므로 애통합니다. 라헬의 자식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지요. 라헬이 낳은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 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슬픔이 많은 세상에 새 언약의 성취자로 오셨습니다. 라헬이 라마에서 애곡하는 이야기를 유대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녀를 낳으면서 그 아이가 죽어 갈때에 라헬에게 어떤 위로가 되겠습니까? 헤롯에 의해서 당시에 살해된 사내아이들의 엄마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낼 수 있겠습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으로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의 소망입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으로만 듣던 하늘 소망을 삶으로 만날 때에 소중한 이를 떠나 보내는 그 아픔과 상실의 경험도 하나님의 일하심과 소망의 품안에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이 우리 삶에 실제가 되는 은혜의 경험들이 우리 안에 차곡 차곡 쌓이게 되면 두려움안에서도 이겨낼 힘이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는 조각상을 보면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아들로 인하여 그 마음이 칼로 찌르듯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로 인하여 영원한 위로를 받습니다. 그 아들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성령이 임함으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라마의 통곡과 애통은 성령을 부어 주실때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자가 바로 자신임을 깨닫게 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애통하고 통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에게 참된 위로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에게 작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아버지 헤롯의 뒤를 이어 유대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그 곳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꿈에서 지시를 받고 나서 요셉은 갈릴리 지방으로 갔습니다. 23 그는 나사렛이라는 마을로 가서,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통해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세번째로 성취된 말씀입니다. 예수의 시작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천한 장소였습니다. 나사렛은 전통이 없는 무명의 마을이며, 이방인들이 섞여 살던 작은 동네입니다. 나사렛 출신의 사람은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나사렛에서 메시아를 보았다고 말했을 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요1:46) 마태는 구약의 예언자를 통해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한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애굽으로 피신한 요셉 가족은 헤롯왕이 죽은 후에 당연히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 순간에 다시 꿈에 나타난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고 나사렛 동네로 들어가 살게 됩니다. 그렇게 나사렛 지역은  예수의 고향 땅이 되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나사렛’이라는 기원을 ‘네체르’라고 발음되는 ‘가지’, ‘싹’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11:1)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53:2)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께서 연한 싹과 같은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죽어 보이는 가지에 작은 순이 돋아 나는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도와 주시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세대나 진리를 꺾고 바른 힘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무너 트릴수 없습니다. 믿는 자들을 이길 세상의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취되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 안에 있으면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평안함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깨어 기도하며 주님과 더욱 친밀해 지십시오. 하나님은 문제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문제 안에 하나님을 가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그분과 동행하는 삶은 어려운 순간에 더 큰 열매로 드러나게 됩니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가십시오. 하나님에게 작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믿음의 지체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