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6.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스무번째 주일)

하나님 앞에 서는 기도

Standing in Prayer Before God

누가복음 18:1~14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끈질기게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2 “어떤 도시에 사람들을 무시하고,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다. 3 그런데 그 도시에 살고 있는 한 과부가 그를 줄곧 찾아가서 졸라대기를, ‘재판관님, 저의 억울한 처지를 들으시고, 법으로 제 권리를 찾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 그러나 그 재판관은 오랫동안 그 과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무시해 왔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5 하지만 이 과부가 이토록 줄기차게 나를 찾아와 성가시게 하니, 할 수 없이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나를 찾아와서 아주 귀찮게 졸라댈 것이다.’” 6 주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간구를 어찌 들어주지 않겠느냐? 어찌 계속 모른 체하고,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겠느냐? 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밤낮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간구를 들으시고, 신속하게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과연 세상에서 이 같은 믿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는지, 그것이 걱정이구나!”  9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소.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소. 11 바리새파 사람은 따로 서서 이렇게 기도했소. ‘하나님, 저는 남의 것을 빼앗는 강도나 정직하지 못한 사기꾼이나 간음을 저지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더구나 저기 있는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하나님께 바치고 있습니다.’ 13 그런데 세리는 멀찌감치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볼 생각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하기를 ‘오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하였소. 14 내가 당신들에게 분명히 말하겠소. 결국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세리요. 이처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오.” (쉬운말 성경)

1 One day Jesus told his disciples a story to show that they should always pray and never give up. 2 “There was a judge in a certain city,” he said, “who neither feared God nor cared about people. 3 A widow of that city came to him repeatedly, saying, ‘Give me justice in this dispute with my enemy.’ 4 The judge ignored her for a while, but finally he said to himself, ‘I don’t fear God or care about people, 5 but this woman is driving me crazy. I’m going to see that she gets justice, because she is wearing me out with her constant requests!’” 6 Then the Lord said, “Learn a lesson from this unjust judge. 7 Even he rendered a just decision in the end. So don’t you think God will surely give justice to his chosen people who cry out to him day and night? Will he keep putting them off? 8 I tell you, he will grant justice to them quickly! But when the Son of Man[a] returns, how many will he find on the earth who have faith?” 9 Then Jesus told this story to some who had great confidence in their own righteousness and scorned everyone else: 10 “Two men went to the Temple to pray. One was a Pharisee, and the other was a despised tax collector. 11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this prayer[b]: ‘I thank you, God,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cheaters, sinners, adulterers. I’m certainly not like that tax collector! 12 I fast twice a week, and I give you a tenth of my income.’ 13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and dared not even lift his eyes to heaven as he prayed. Instead, he beat his chest in sorrow, saying, ‘O God, be merciful to me, for I am a sinner.’ 14 I tell you, this sinner, not the Pharisee, returned home justified before God. For those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New Living Translation)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게 답하는 시대입니다. 오늘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이 됩니다. 한국에는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이 있어서 필요한 물건을 아주 빠르고 편하게 받아보게 됩니다. 내 물건이 어디쯤 왔는지 검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알수 없는 기다림 속에서 인내하고 버텨내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을 통해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굳게 서며 믿음으로 기도하는 삶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두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18:1-8)와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입니다.(18:9-14) 두개의 비유는 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하나님의 응답을 끝까지 신뢰하며 기도할 수 있는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조율되도록 기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비유는 지금까지 의심치 않고 지켜온 기도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교훈입니다.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꼭 붙들어야 할 몇가지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평가하고 비판하며 깨어진 현실을 드러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 나라의 기대와 기쁨 보다는 불안과 의심이 쌓여져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혼돈과 불안 속에서도 힘차게 다가오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불의한 세상을 구원하셨고, 지금도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다만 그때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우리는 믿음의 간구를 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도 과부의 끈질긴 간청에 응답했다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조율하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실리가 없습니다. 끈질긴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선택할 힘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결과에 연연하기 보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주의 자녀들에게 주신 즐거움입니다. 주의 자녀들은 낙심될 자리 상심할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이것은 기도의 결과의 차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특권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미에 반전의 말씀을 하시며 믿음에 대해서 분명히 하셨습니다.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과연 세상에서 이 같은 믿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는지, 그것이 걱정이구나!” 모든 성도는 인자가 다시 오는 날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방향을 점검하며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입니다. 성경에서 그날은 심판의 때를 가리킵니다. 누구도 알수 없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그 마지막 날에는 불의한 일들이 사라지고 정의와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며 경험하게 되는 불의와 혼란은 천년이 하루처럼 정말 잠시 스쳐가는 고난일 뿐입니다. 낙심되는 일을 만나 기도가 힘을 잃어 버릴때마다 기도의 방향을 점검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절망의 끝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힘이 부족할 때는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간절히 호소하던 과부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완전히 이루실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목적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온전히 이루어 주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빌1:6)

둘째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두번째 비유를 보면,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신앙적인 일들을 행하며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인 것에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경건함의 상징인 금식을 일주일에 두번이나 했다는 기도에서는 한해 동안 104일을 금식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득의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리며 경건함을 지켰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로마 정부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뇌물을 받고, 자기 민족의 세금으로 부를 축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던 사람들은 당연히 바리새인이 더 의롭다고 생각했을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기는 사람은 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결론으로 ‘이처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오.’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감사를 드리며 겉으로는 경건해 보였지만 그 마음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기도였습니다. 금식은 마음을 깨끗히 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는 시간인데, 바리새인의 금식은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느라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자신을 높이는데 집중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 상황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그분께 마음을 내어 맡기면, 모든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오스왈드 챔버스의 기도》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교만은 무너지고 불안한 삶의 이유는 하나님의 평안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낮아진 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을 높이고 싶었던 바리새인과 자신을 낮춘 세리의 기도의 차이는 단 하나 였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 앞에 서 있었고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무의식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이쯤이면 선하다 착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혹으로 부터 벗어나려면 내 안에 교만한 마음이 보일때마다 작은 불의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타인을 향해서는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형식적인 신앙에 갇히지 않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의지적으로 기도의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사건 이후 시대를 살아갑니다. 세리는 당시 흔한 행동이 아닌 가슴을 치며 기도드리고 있었음을 묘사합니다. 구원을 이뤄가는 여정에서 성도는 끊임없는 자기점검과 영적 긴장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는 나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드는 고백입니다.

과부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 앞에 섰습니다. 그녀는 흔들림 속에서도 끝까지 기도하며 호소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응답을 받은 결과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믿음에 있습니다. 우리 삶도 불안과 의심으로 흔들리지만 하나님 안에서 견고한 믿음으로 확신을 갖으며 기도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맡겨진 믿음의 성도로서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을 보면 불의한 일들이 가득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이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십니다. 결국엔 진리가 승리합니다. 그날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기대해야 합니다. 맡겨진 일을 다 마친 그때에 내려 놓는 것이 허무함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충성된 자에게 허락해 주시는 영광과 존귀의  자리에 앉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세번째 복음 안에서 겸손한 회개의 삶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육신의 죄를 따르려 하지만, 우리는 혼자의 힘으로 의로워 질 수도 없고 혼자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본문속 과부의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의 의를 끝까지 신뢰하며 인내할때, 우리 가운데 역사 하시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의 논리와 권력, 평가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세워집니다. 기독교의 가치는 생명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정의로움도 지나치면 생명을 해치는 행동이 되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우리도 어느 순간 마음이 안일해져 겉으로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듯하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그 기도 속에 자기의 의가 담겨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하지만 하나님 보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 살아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 (마15:8 )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에서도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과연 세상에서 이 같은 믿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는지, 그것이 걱정이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두개의 비유는 오늘날 신앙인들의 상태를 비추는 영적인 거울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집중하기에는 일상의 즐거움과 분주함이 더 큰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제 주안에 있는 참된 보물을 발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단순히 쉽고 편안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책임과 헌신, 사랑과 겸손한 회개로 날마다 믿음의 길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그 사랑에 응답하며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신실한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의 풍성한 은혜와 진리 안에서 죄와 사망으로 부터 자유케 된 길을 따라 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0. 19.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열아홉번째 주일)

누가복음 17:11~19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소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11 ○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경계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예수께서는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예수께 크게 소리를 질렀다. 13 “예수 선생님, 저희를 불쌍히 보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가시오, 제사장에게 가서 당신들의 몸을 보이시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에게로 가는데, 가는 도중에 모두 병이 나았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돌아와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16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예수께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시기를 “열 사람이 깨끗하게 낫지 아니하였소? 그런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소? 18 고침 받은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내게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는 것이오?” 하셨다. 19 그리고는,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자, 일어나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소.” (쉬운말 성경)

11 As Jesus continued on toward Jerusalem, he reached the border between Galilee and Samaria. 12 As he entered a village there, ten men with leprosy stood at a distance, 13 crying out, “Jesus, Master, have mercy on us!” 14 He looked at them and said, “Go show yourselves to the priests.”[b] And as they went, they were cleansed of their leprosy. 15 One of them, when he saw that he was healed, came back to Jesus, shouting, “Praise God!” 16 He fell to the ground at Jesus’ feet, thanking him for what he had done. This man was a Samaritan. 17 Jesus asked, “Didn’t I heal ten men? Where are the other nine? 18 Has no one returned to give glory to God except this foreigner?” 19 And Jesus said to the man, “Stand up and go. Your faith has healed you.”( New Living Translation)

성령강림절 열아홉번째 주일을 맞이하며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을 통해 새로운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생의 절망 가운데 주님을 부르짖는 열명의 나병환자가 나옵니다. 나병은 육체적으로 감각이 무뎌지고, 당시에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육체적 고통을 오랜 시간 겪게 되면 마음의 힘도 점차적으로 사라집니다. 그런데 열명의 나병환자들은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경계를 지나가셨는데, 열명의 나병환자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크게 소리를 질렀다’는 표현은 주님을 향한 믿음의 외침입니다. 예수와의 만남을 위한 믿음의 외침속에서 이미 치유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예수 선생님, 저희를 불쌍히 보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을 불쌍히 보시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합니다.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 이 기도의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성전 구석에서 감히 하늘을 쳐다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하던 세리가 생각납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교만한 기도보다 세리의 눈물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1. 절박함 속에서 찾은 하나님

절망과 절박함 속에서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온전히 설수 없는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긍휼이 가장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병환자들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할 힘 조차 없는 절망 속에서 깨어 기도하는 일 또한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나병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 사라지고, 영혼을 무디게 합니다.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깨끗하다, 나는 괜찮다”고 여기는 영적 병입니다. 우리의 기준에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 만족하는 신앙생활 안에 멈추어 있다면 주님을 향한 갈망은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은밀한 것도 살피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비춰보면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라고 다 같은 기도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실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모습을 말씀으로 정직하게 대면해야 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말씀의 거울 앞에 마음 깊은 곳까지 성찰하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위선과 연약함을 인정할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구하는 절박한 기도 가운데 주님의 순전한 은혜가 풍성하게 부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소리를 지르던 나병환자들에게 ‘가시오, 제사장에게 가서 당신들의 몸을 보이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나병은 치유된 후에 제사장에게 가서 검증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사장에게 갑니다. 나병으로 부터 치유 될 것이라는 믿음을 볼수 있는 지점입니다. 예수님께서 한사람씩 직접 치유하실수 있으셨지만, 그들을 제사장에게 직접 가라고 하신  말씀에는 그들의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내딪는 용기가 믿음입니다. 열명의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자신들의 몸이 완전히 깨끗해진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시편 30편의 고백은 다윗이 죽음에서 깨어나 하나님을 찾는 기도시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자신에게 주어진 성공이 하나님의 손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침대에 누운 채 죽어가는 동안 깊은 상실감을 경험하고 난 후에 고백한 기도를 보면, “11 주께서 내 슬픔의 눈물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고, 나에게서 통곡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입혀 주셨도다. 12 그러므로 내 영혼이 어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이까? 내가 어찌 입 벌려 주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오 주여, 내 하나님이시여, 내가 영원토록 주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리렵니다.(시 30:11-12) 다윗은 죽음의 자리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영원토록 돌린다고 고백합니다.

인생에는 기도 외에는 길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저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손길을 절박하게 찾을때입니다. 그때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동일하게 임하지만, 그 은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고침받은 열명중에 단 한명만이 예수님께 다시 돌아갑니다. 얼마쯤 갔는 지 알수 없지만 이미 계셨던 곳에서 예수님이 떠난 후였을텐데 그는 가던 길에서 돌이켜 주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오늘날 처럼 통신수단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임에도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떨어트리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깨끗하게 낫지 아니하였소? 그런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고침 받은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내게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 밖에 없는 것이오?” 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말씀하십니다.

아홉명의 나병환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 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죄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치유받은 기쁨에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내가 받은 기쁨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돌이켜 주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서 여전히 세상이 좋고, 선택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2. 감사의 삶은 구원 받는 성도들의 증거입니다.

감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내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단 한 명만이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께 돌아왔습니다. 이 사실은 감사하는 삶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사마리아인이었던 한사람은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방향을 돌이켜야 합니다.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 위해 결단된 삶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소.”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경탄의 마음이 줄어들면, 구원을 이뤄 나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것입니다. 은혜로 시작된 구원이지만 그 신비와 경외심이 사라지면 감사도 줄어들게 됩니다. 율법에 매여 살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내 삶에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발견하고, 그 깨달음을 자신의 고백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매주일 우리교회는 새로운 청년들이 찾는 교회입니다. 이 청년들이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발걸음하는지 알수 없지만 교회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소’ 라는 말씀을 자주하셨습니다. 몸의 치유만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구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세우는 차원이 아니라 가장 크고 높으신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앞에  머무는 것, 그것이 참된 구원의 삶입니다.

찬송가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는 찰스 가브리엘Charles H. Gabriel) 목사가 전쟁터로 떠나는 아들이 한 말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입니다. 아들이 전쟁에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만약에 제가 돌아오지 못하면, 하늘나라 열린 문 앞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아들을 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두렵고 아팠을까요? 그런데 아들이 남긴 이 한마디는 절망과 두려움에 있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소망과 찬양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아들의 한마디가 뭉클하지 않습니까? 근심속에 있던 아버지의 마음이 소망으로 변하였듯 믿음은 우리의 마음을 근심과 절망에서 끌어내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인생의 방향이 바뀐 성도들이 부르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감사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전에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7장 무익한 종의 비유에서 큰 믿음을 구하는 제자들에게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주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인의 명령을 따라 자신이 할 일을 다한 종이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나의 할 일을 한 것뿐이라”(눅 17:10) 고 고백합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 세상에서 내가 바라고 구하는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의 편안함과 자기 만족 속에서는 믿음의 눈이 쉽게 열리지 않지만, 감사를 고백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주님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3. 감사의 훈련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영원한 삶을 허락받는 크신 은혜가 우리의 삶을 살립니다. 이 은혜를 통하여 영원한 삶을 소망하며 성경적 가치를 따라 살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은 완전합니다. 우리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주어진 믿음의 길에서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종교들은 행위로 구원을 더하는 것이 큰 믿음이라고 성도들을 미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어떤 율법적 요소도 구원에 더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값없이 주어진 은혜에만 안주하지 말고, 구원을 이뤄가는 거룩한 삶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를 통하여 깨닫게 된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태도가 참된 믿음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아홉명의 유대인들은 치유는 경험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경험했을 뿐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를 선택한 단 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찬양했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한사람은 몸도 나았지만 영혼이 회복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무엇입니까? 넓은 길로 가는 90%의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켜 감사했던 그 한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곡의 찬양이 생각이 납니다.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외롭고도 쓸쓸한 모습  말 없이 홀로 걸어가신 길은  영광을 다 버린 나그네  정녕 그 분이 내 형제 구원 했나  나의 영혼도 구원하려나  의심 많은 도마처럼 물었네 내가 주를 처음 만난 날  그러나 죄악이 나를 삼키고  내 영혼 갈 길을 잃었네  내가 이제 주를 만남으로  죽음의 길 벗어나려네  변찮는 은혜와 사랑 베푸신  그분 만이 나의 구세주  주 예수 따라 항상 살리로다  십자가 지고 따라가리라”  

인생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시고 외롭고도 쓸쓸한 모습으로 걸어가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믿음의 자리로 불러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은 뒤 이틀이나 더 머물다가 찾아 가셨습니다. 나사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겪는 절망 가운데서도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감사를 선택하고 돌아온 한 사람에게 ‘자 일어나 가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살다 보면 구원을 이뤄가는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 자 일어나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소.” 이 믿음으로 걷는 주의 자녀들의 걸음을 붙들어 주시고, 살아계신 주님께서 그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매주일 예배 가운데 우리를 구원하신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이 단 한 사람의 나병환자를 통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가 보여 준 삶은, 바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믿음과 감사의 삶입니다.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그 순간, 감사는 우리의 삶속에 열매가 됩니다. 한 주를 시작하며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 교회가 절망 가운데 있는 삶이 새로워지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이곳 케임브리지에 세워진 우리교회를 통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