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14 2026 주일설교

성령감림절 제 3주

당신은 하나님의 보물입니다

You Are His Treasure

출애굽기 19:1-8

1이집트를 떠난 지 꼭 석 달 만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2이스라엘 백성은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시내 산 맞은편 광야에 천막을 쳤습니다. 3모세는 하나님을 만나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여호와께서 산에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야곱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4’너희 모두는 내가 이집트 백성에게 한 일을 다 보았다. 그리고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들을 실어 나르듯 내가 너희를 어떻게 나에게 데리고 왔는가도 보았다. 5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 중에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땅의 백성이 다 내게 속하였지만, 6너희는 내게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7그리하여 모세는 산 아래로 내려가서 백성의 장로들을 모아 놓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다 전했습니다. 8그러자 모든 백성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말을 여호와께 알려 드렸습니다. (쉬운 성경)

 1 Exactly two months after the Israelites left Egypt,[a] they arrived in the wilderness of Sinai. 2 After breaking camp at Rephidim, they came to the wilderness of Sinai and set up camp there at the base of Mount Sinai.3 Then Moses climbed the mountain to appear before God. The Lord called to him from the mountain and said, “Give these instructions to the family of Jacob; announce it to the descendants of Israel: 4 ‘You have seen what I did to the Egyptians. You know how I carried you on eagles’ wings and brought you to myself. 5 Now if you will obey me and keep my covenant, you will be my own special treasure from among all the peoples on earth; for all the earth belongs to me. 6 And you will be my kingdom of priests, my holy nation.’ This is the message you must give to the people of Israel.”7 So Moses returned from the mountain and called together the elders of the people and told them everything the Lord had commanded him. 8 And all the people responded together, “We will do everything the Lord has commanded.” So Moses brought the people’s answer back to the Lord.(New Living Translation)

성경의 권위는 우리의 생각과 경험보다 언제나 높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매주일 예배시 입례송을 부르며 제단 앞으로 나아갑니다. 제단의 계단을 올라갑니다. 물리적인 계단이라면 인간의 힘으로 오를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다릅니다. 믿음의 계단을 오르는 것은 성경의 권위 앞에 얼마나 자신을 굴복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결함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 -1791)는 설교를 준비하며 ‘하늘로 가는 길’에 대해 성경에서 발견된 것들을 설교에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성경의 평행 구절들을 찾고, 대조하며 그 의미를 분별했다고 기록합니다. 온 마음을 기울려 진지하게 성경을 묵상하고, 그래도 분명치 않을때는 하나님의 일에 경험이 있는 사람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말하고 있는 저작들을 찾아 보며 하늘로 가는 길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말입니다. “제가 알고 싶은 한가지는 하늘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내려 오셔서 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빌리 그래함 (Billy  Graham: 1918-2018) 목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그의 설교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The Bible says.” 라는 말씀입니다. 1949년 친구 찰스 템플턴의 회의론에 자극받아 한동안 의심에 빠졌던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확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씀임을 확증하는 데 굳건한 결심을 했고 이후 성경의 권위를 믿었고, 그의 설교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성경이 말합니다.’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7그리하여 모세는 산 아래로 내려가서 백성의 장로들을 모아 놓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다 전했습니다. 8그러자 모든 백성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말을 여호와께 알려 드렸습니다. 모든 백성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모든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말씀대로 하겠다고 응답합니다. 이것은 공동체가 함께 결단한 믿음의 언어입니다. 단순한 감정적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그분의 언약 안에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무엇이 이 백성을 한 목소리로 응답하게 만들었습니까? 1절 보시겠습니다.

1이집트를 떠난 지 꼭 석 달 만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2이스라엘 백성은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시내 산 맞은편 광야에 천막을 쳤습니다. 3모세는 하나님을 만나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여호와께서 산에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야곱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1.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를 떠난 지 꼭 석 달이 되던 날,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과거 자신을 부르셨던 호렙산으로 홀로 올라갔습니다. 이 호렙산은 시내산(Mount Sinai)으로도 불리우며, 건조한 암벽 지형으로 해발 약 2,285m~2,291m의 산입니다. 모세는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부르셨던 그 산을 다시 올랐을까요? 모세는 자신의 의지로 산을 오른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하여 산을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등산에 비유합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정상에 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경건생활은 세상이 말하는 등산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세상은 스스로 올라가라고 말하지만, 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시는 데서 시작됩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그는 한때 애굽의 왕자로서 자신의 힘으로 민족을 구원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며 철저히 낮아졌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열정에 대한 확신마저 사라졌을 때,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먼저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응답할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신앙생활은 평생 부르신 소명을 따라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 8절 이후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도 준비시키라고 말씀합니다. 메시지 성경으로 보시면, “준비하여라. 내가 짙은 구름속에서 내게 나타나겠다. 이후 하나님은 너는 백성에게 가서 거룩한 하나님을 뵐수 있도록 앞으로 이틀 동안 그들을 준비시켜라.” 모세가 호렙산에서 내려와 백성들에게 말하고 나니 백성들은 당시 성결법 대로 저마다 물로써 몸을 씻고, 입고 있던 옷도 깨끗이 빨았습니다. 몸과 마음의 성결함을 준비하며 점검한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성결한 상태로 유지하며 삼일 동안을 기다립니다.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는 로마의 ‘빌라도의 계단(Scala Sancta)’을 무릎으로 오르며 내면의 죄와 씨름하며 고행을 했습니다. 자신의 노력과 선행으로 죄 사함을 받으려고 고해성사를 하며 몇시간을 기도했지만 또 다시 올라오는 죄를 이길수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은혜(Sola Gratia)’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의 중심에 오직 성경이 최고 권위를 갖는다는 것과 더불어 은혜와 믿음이 홍수처럼 부어질때 모든 신자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외친 것입니다. 스스로 올라가려 했던 루터의 믿음이 무너진 그 자리에 하나님이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삶의 변화시킨 믿음은 루터의 오름으로 부터 시작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려오심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보물로 선택받은 사람은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각 나라는 최고의 선수들을 선발하기 위해 경쟁을 치릅니다. 모든 선수들이 수많은 경쟁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을 했지만 더 필요한 선수들을 선택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세계 무대에 서게 됩니다. 세상은 능력을 평가해서 선택하지만, 하나님의 선택방법은 다릅니다.

신명기 7장 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7: 7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돌보시고 여러분을 선택하신 까닭은 여러분의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오. 오히려 여러분은 모든 나라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나라에 불과하오. 8그런데도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신 것은 여러분의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함이며,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미국땅 보스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도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받은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은혜가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업어 오신 것은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4 너희 모두는 내가 이집트 백성에게 한 일을 다 보았다. 그리고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들을 실어 나르듯 내가 너희를 어떻게 나에게 데리고 왔는가도 보았다. 5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 중에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말씀대로 지키라는 것은 행위에 대한 초점이 아니라 관계속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언약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은 특별한 보석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당신의 가장 소중한 보석으로 삼으시고 사랑해 주시기에 우리의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그분의 뜻을 따라 살게 됩니다. 이 언약은 인간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언약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왜 선택하셨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는가에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자신 안의 쓴 뿌리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상처가 나를 완악하게 만들고 두려움이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자기의 민낯이 더 선명해집니다.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말씀도 읽는데 누군가의 말 한마디, 작은 문제 하나에도 너무 쉽게 돌아섭니다. 내 안의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예배의 은혜가 삶까지 이어지기까지 우리는 너무도 많은 일들과 생각들 안에서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흔들리는 그 자리에서도 우리를 신뢰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 안에 쓴뿌리가 뽑혀지고 새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쓴 뿌리의 자리로 찾아오십니다. 뜨겁게 쏟아냈던 열정과 쓴 뿌리와 씨름하며 버텨야 했던 많은 순간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시간이 됩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나무 하나를 던져 넣으시자 쓴 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의 쓴 뿌리를 제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십자가를 세워 주셨습니다. 다시 일어설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시내산 언약의 조건절은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어려움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집트 땅에서 선택의 자유도 없이 노예로 살던 그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듯이 건져 내셨으니, 이제는 강요와 복종으로 이끌던 이집트의 방식이 아니라 언약 안에서 말씀을 행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계약은 서로의 이해관계로 맺어집니다. 서로에게 이익이 없으면 그 관계가 끝까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다릅니다. 하나님께 성도는 손수 품에 품으신 가장 친밀한 소유입니다. 전시용 보석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손에 쥐고 계신 보석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거룩한 산을 올라갈 힘이 됩니다. 자기 중심적 생각과 죄의 본성과 싸워나가며 올라가며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처음과 마지막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우리 안에서 완성하실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도 침투할수 없는 거룩한 자녀로 삼아주셨기에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엎드리는 것입니다.

평생 이 언약 안에서 살아가지만, 믿음이 부족하여 넘어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며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언약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조차,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물로 여겨 주시기에 이제는 작은 일 하나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됩니다. 성도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석은 장식장 안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 있을 때 빛이 납니다. 우리에게 그 자리가 어디입니까? 육아에 지쳐 내 세상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 자리, 홀로 믿음을 지키며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는 그 자리, 하나님의 말씀 하나 붙들고 버텨 내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물로 두신 자리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삶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입니다. 값없이 받은 은혜 앞에서 움켜 쥐어도 나의 것이 아니니 잃을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으로 순종하며 응답하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별하셨습니다.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보물이라 불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민족과 열방이 이 고백을 드리도록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드리며 출애굽기 19장의 백성들처럼, 오늘 이 자리의 우리도 한 목소리로 고백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0607 2026 주일설교

성령강림절 제 2주 

호세아 6:1-6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What Shall I Do with You?

1“어서 주께로 다시 돌아가자. 그 분은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우리를 싸매 주시고 그 분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2이틀 만에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우리를 주의 곁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3우리가 주님을 알자.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고 애쓰자. 주님은 동터오는 새벽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단비처럼 땅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처럼 그렇게 오시리라.”  4“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에 대한 너의 충정은 아침나절의 안개만 같구나. 너희의 충정이 아침 일찍 사라지는 이슬만 같구나. 5그래서 내가 예언자들을 시켜 너희를 산산조각 나게 하였으며 내 입에서 나오는 말로 너희를 죽였고 나의 심판이 너희를 해처럼 샅샅이 비추었다. 6왜냐하면 내가 반기는 것은 사랑이지 희생제물이 아니며 예물을 불에 태워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라기 때문이다. (쉬운 성경)

1 “Come, let us return to the Lord. He has torn us to pieces  now he will heal us. He has injured us  now he will bandage our wounds. 2 In just a short time he will restore us,  so that we may live in his presence. 3 Oh, that we might know the Lord!  Let us press on to know him. He will respond to us as surely as the arrival of dawn or the coming of rains in early spring.” 4 “O Israel and Judah, what should I do with you?” asks the Lord. “For your love vanishes like the morning mist   and disappears like dew in the sunlight. 5 I sent my prophets to cut you to pieces   to slaughter you with my words,  with judgments as inescapable as light. 6 I want you to show love,  not offer sacrifices. I want you to know me more than I want burnt offerings.(NEW LIVING TRANSLATION)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코아부 수련회를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호세아 10장 말씀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부들이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했습니다. 수련회를 준비하는 섬김이들은 과연 잘 진행될 것인지 염려도 했을것이고, 빽빽한 일정을 비우고 예배의 자리로 찾아오는 것 자체가 이미 영적 싸움의 시간을 뚫고 왔을 것입니다. 희망과 믿음의 세대를 이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준비한 모든 순서를 통해 보았습니다.

16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마크 트웨인(Mark Twain:1835-1920)의 ‘왕자와 거지’란 소설이 있습니다. 거지의 아들과 왕궁에서 태어난 아들이 어느날 친해지고 두 소년은 재미삼아서 옷을 바꿔입게 됩니다. 이후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어린시절 학대받던 톰은 신분이 변화된 왕자로 살게 되고, 에드워드 왕자는 거지로 취급되면서 거지소굴을 돌아다니며 엄청난 고생을 합니다. 소설의 결말에서 진짜 왕이 맞는지 테스트를 하여 가까스로 왕의 자리로 복귀하는 내용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입니다.

신분의 변화는 삶에 분명한 차이를 가져다 줍니다. 겉 모습이 아닌 본질적인 변화의 사건은 우리의 삶속에서 놀라운 변화를 갖고 오게 됩니다. 성경은 더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왕이신 분이 스스로 수치의 옷을 입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의 목적은 옷을 바꿔 입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바꾸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호세아서는 스스로 수치의 옷을 입고 십자가의 자리까지 내려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가리킵니다. 도저히 사랑받을 수 없는 자를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존귀한 자녀로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바알의 품에 있던 북이스라엘을 향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부유했지만 정치적으로 불안했고, 영적으로는 암흑에 가까운 시대였습니다. 호세아의 외침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에 온 마음을 쏟으십시오(1, 2절)

1“어서 주께로 다시 돌아가자. 그 분은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우리를 싸매 주시고 그 분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2이틀 만에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우리를 주의 곁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어서 주께 돌아가자, 주님을 힘써 알자는 이 고백은 매주일 우리가 부르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 믿음의 노래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랑의 고백이며, 세상을 살며 상처와 실패로 인해 공허한 우리의 빈 마음에 끊임없이 메아리 쳐야할 희망의 노래입니다. 호세아서를 묵상하면 죄에 대한 심판과 회복이 동일한 손에서 나오기에 긴장감이 조성되지만, 찢으신 분이 싸매시고, 상처를 내신 분이 그 손으로 아물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죄에 대한 심판의 끝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원망과 서운함, 상처로 닫혀진 그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빗껴간 삶의 목적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우리의 얼굴을 향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얼굴을 드러내시고, 또 다시 용서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의 약속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틀 만에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우리를 주님 곁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라고 약속합니다. 우리는 이 약속이 이미 이뤄진 시대를 살아갑니다. 성도들에게 주어진 삶의 방향입니다. 이 약속 안에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님께 돌아가면,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며 주의 곁에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힘껏 알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고 스스로를 ‘제때 나지 못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늦게 부르심을 받은 자, 자격 없는 자라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선언합니다. 이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환난을 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핍박 속에서도, 자신이 전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은 깨어질 질그릇과 같지만 그 안에 예수께서 계시니, 사방이 막힌 것 같아도 괴롭지 않고 당혹스러운 일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몸에 예수의 죽으심의 흔적을 지닐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 살아 있는 자신의 몸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형식이 아니라 믿음의 본질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제사보다 낫습니다(3, 6절)

3우리가 주님을 알자.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고 애쓰자. 주님은 동터오는 새벽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단비처럼 땅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처럼 그렇게 오시리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대답하시다 6왜냐하면 내가 반기는 것은 사랑이지 희생제물이 아니며 예물을 불에 태워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면 교회는 형식만 남아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주목하고 지난 날의 영광에만 머무는 교회는 역사 속에서 교회 건물이 결국 박물관이 되거나 술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초라해 보여도 은혜가 부어진 교회에는 부흥과 영광이 임재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한 교회는 겉으로 초라해 보여도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그 어떤 상처난 마음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막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의 상처를 깨끗하고 온전하게 씻겨 주실 분은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고, 무감각해진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녀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쉬울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은혜는 자기 아들을 죽게 한 대가를 치르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히브리어로 다아트 엘로힘(דַּעַת אֱלֹהִים)입니다. 그 동사 어근은 야다(יָדַע)인데, 창세기 4장에서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매”라고 쓸 때 바로 이 단어를 씁니다. 부부가 몸과 영혼을 나누는 친밀한 앎입니다. 깊은 친분을 맺는 그 친밀함에는 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 제품 매뉴얼을 읽는 수준의 차원이 아니라 몸을 맞대고 사는 부부처럼 그렇게 나를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가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맡겨진 일을 내가 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거닐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그 자세와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토저 목사(Aiden Wilson Tozer, 1897 ~ 1963) 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은 보통 사람들의 시대이다.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평범한 수준으로 끌어 내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를 다시 깨닫는 것이다. 성실한 말씀 전파와 기도를 회복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라” 경건하고 거룩한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멈추지 마십시오. 믿음의 경주에서 벗어날때 우리의 삶은 좋지 않은 것들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따라가야 할 방향은 대세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충정은 아침안개 같지만,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십니다(4–5절)

4“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에 대한 너의 충정은 아침나절의 안개만 같구나. 너희의 충정이 아침 일찍 사라지는 이슬만 같구나. 5그래서 내가 예언자들을 시켜 너희를 산산조각 나게 하였으며 내 입에서 나오는 말로 너희를 죽였고 나의 심판이 너희를 해처럼 샅샅이 비추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아, 부르시며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두번이나 물으십니다. 이 물음은 심판의 선언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헤세드 사랑은 동이 뜨는 새벽빛과 땅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처럼 일상속에서 변함없이 확실하게 주시는 선물이지만 우리는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지 못합니다. 에브라임처럼 주어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닌데 평생 내 것인 양 살아갑니다. 우리의 충심은 아침 안개 같고 금방 사라지는 이슬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흔들립니다.

새벽에 일어나 예배를 준비할때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께서는 방학이면 새벽에 저를 깨우셨습니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 새벽시장으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세상이 고요한 그 시간에 이미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방학때 늦잠도 자고 싶고, 풀어 지고 싶은데 아버지는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한번은 용돈을 바로 주시지 않고 포도 열박스를 사주시면서 너가 한번 팔아 보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린 마음에 불편했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사주겠지 하고 찾아갔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포도 박스를 사준 것은 약국에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었어요. 많이 가져서 헌신하고 베풀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마음이 부요한 사람이 사랑을 나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사랑의 방법이셨습니다. 세상을 알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하시는 훈련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에브라임에게 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예언자들을 시켜 너희를 산산조각 나게 하였으며 내 입에서 나오는 말로 너희를 죽였고 나의 심판이 너희를 해처럼 샅샅이 비추었다.’ 빛이 샅샅이 비춘다는 것은 숨길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왜 그들을 찢고 상하게 하셨습니까? 드러내는 것이 아프고, 찢고 터뜨리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חֶסֶד) 앞에서 서면 우리의 죄가 죄 그대로 보이고,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깨우심에 긴장감이 있지만 결국엔 그 사랑이 우리를 살리는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찢겨진 자리가 치유의 자리가 된 곳이 예수께서 우릴 위해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고통의 자리로 내려오신 주님께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우릴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져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릴 회복시키십니다. 사명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높이 계신 하나님께로 끌어 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포기 하지 않고 내가 너를 살리겠다는 하나님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죽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그 어떤 계획도 하나님 보다 앞설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언가를 형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때, 우리는 비로소 보게 됩니다. 식어진 마음 안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깨달을 때, 온 마음과 삶을 다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목적은 풍요와 소유이지만 다시 태어난 성도들의 삶의 목적은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 명령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있습니다. 세상의 풍요는 우리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는 물음 앞에 서기 바랍니다. 자신이 찢기신 채 싸매주시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그 주님만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