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강림후 제 16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29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Seeing the World Through God’s Eyes
야고보서 2:1-10
2:1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2 이를테면, 만일 여러분의 회당에 값비싼 옷을 입고 금반지를 낀 어떤 사람과 남루한 옷을 걸친 어떤 가난한 사람이 함께 들어왔다고 합시다. 3 그런 상황에서, 만일 여러분이 값비싼 옷을 입은 그 사람에게는 특별한 관심과 호의를 나타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친절하게 말하고, 반면에 남루한 옷을 걸친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에 서 있든지, 내 발판 밑에 앉든지 하시오.”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면, 4 바로 여러분이 악한 마음을 품고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여 차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 ○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물려주신 것이 아닙니까? 6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런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을 학대하는 자들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또한 여러분을 재판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역시 부자들이 아닙니까? 7 뿐만 아니라, 주 예수를 믿음으로써 여러분에게 주어진 고귀한 이름을 비방하는 자들도 역시 부자들이 아니고 누구란 말입니까? 8 여러분이 성경 말씀에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율법을 지킨다면, 여러분은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9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외모를 보고 사람을 차별한다면, 여러분은 죄를 짓는 것이고, 따라서 율법은 여러분을 범법자로 판정할 것입니다. 10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다 지키다가도 그중 한 가지만 어기게 되면, 율법 전체를 어긴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쉬운말 성경)
1 My dear brothers and sisters,[a] how can you claim to have faith in our glorious Lord Jesus Christ if you favor some people over others? 2 For example, suppose someone comes into your meeting dressed in fancy clothes and expensive jewelry, and another comes in who is poor and dressed in dirty clothes. 3 If you give special attention and a good seat to the rich person, but you say to the poor one, “You can stand over there, or else sit on the floor” well, 4 doesn’t this discrimination show that your judgments are guided by evil motives? 5 Listen to me, dear brothers and sisters. Hasn’t God chosen the poor in this world to be rich in faith? Aren’t they the ones who will inherit the Kingdom he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6 But you dishonor the poor! Isn’t it the rich who oppress you and drag you into court? 7 Aren’t they the ones who slander Jesus Christ, whose noble name you bear? 8 Yes indeed, it is good when you obey the royal law as found in the Scriptures: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d] 9 But if you favor some people over others, you are committing a sin. You are guilty of breaking the law.10 For the person who keeps all of the laws except one is as guilty as a person who has broken all of God’s laws. 11 For the same God who said, “You must not commit adultery,” also said, “You must not murder.” So if you murder someone but do not commit adultery, you have still broken the law. (New Living Translation)
성령강림후 열여섯번째 주일입니다. 이시간 예배하는 교우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서가 쓰여진 1세기는 계급과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 뚜렷했던 시대였습니다. 야고보는 당시 회당에서 일어나는 빈부에 따른 차별 행위를 강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유대 사회속에서 사람들이 겪었던 차별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차별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나무위키 백과사전에서 차별금지법의 내용을 찾아보니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을 말한다.”라고 정의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차별에 대해 공감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 차별의 문제는 복잡한 양상을 보입니다. 오늘 본문은 차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 보시겠습니다.
첫째, 야고보가 말하는 차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절)
1절에서 야고보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어서 그는 차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두 사람에 대한 묘사를 가정해서 설명하는데, 한 사람은 값비싼 옷을 입고 금반지를 끼었습니다. 권세가 있거나 유력한 부자를 비유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남루한 옷을 걸친 가난한 사람입니다. 대조적인 두 사람이 회당에 들어 왔는데 부자들에게는 좋은 자리를 권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자리는 커녕 퉁명스럽게 서 있든지 발판 밑에 앉으라고 홀대합니다. 외적인 것에는 신분이나 성별, 경제적 능력, 인종, 나이, 학력, 외모 등 여러 조건에 따른 것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에 의해 차별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의 8학군 지역은 교육의 성지로 불립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학 진학률을 기준으로 학교의 서열이 정해지며, 학군 중심의 집값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은 8학군 지역에 진입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부모의 심리로 인해 지역 사회에서는 부에 따른 차별이 심화됩니다. 편애에 따른 차별의 예로,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요셉을 시기하여 노예상에게 팔아넘겼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방탕한 삶을 살고 돌아온 동생을 받아주며 잔치를 벌였고, 이로 인해 큰아들이 화를 냈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결정이 자신을 차별한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키우다 보면, 일을 더 잘하는 자녀에게 더 자주 부탁을 하거나 칭찬을 해줄 때가 있기도 합니다. 관계 속에서 완전한 형평성과 공정함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첫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의 일부를 아버지 밑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로 더 많이 받을 줄 알았다면,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호의가 부당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믿는 자들이 얻게 된 은혜에 관한 것입니다. 야고보가 차별을 금하라고 하는 이유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외적인 요소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나타난 크고 작은 죄를 판단하셔야 했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한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1세기나 21세기나 여전히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이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내용이 세상속에서 차별하는 가치와 부딪히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차별의 내용을 윤리적인 차원, 공정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신앙적 차원, 진리의 문제를 지켜나가는 고백과 결단의 의미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규범을 따르는 것을 넘어,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과정입니다. 이 회복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더 의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삶의 결핍과 비교의식이 느껴질때마다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극복할 힘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차별을 피하기 위해 더 높은 지위와 풍요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나만을 위한 명예와 성공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믿는 믿음은 어떤 삶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1절에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의 믿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낮아지시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광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야고보 사도는 스스로 낮추고 소외된 자들을 높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영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별하는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피하지 말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믿음의 태도를 바르게 유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역사 속에서 수시로 변화하지만, 우리는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공정하신 분임을 믿고 현실 속에서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차별의 근원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5-7절)
야고보는 차별의 근본적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옹호하시고, 부자에 대해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가난한 자가 믿음이 좋고 부자가 불의하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당시 부자들이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학대하며 재판장으로 끌고 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부자들의 횡포를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본문에서 부자들을 비판하는 두 가지 측면을 묘사합니다. 첫째는 잔혹하게 가난한 자를 재판장으로 끌고 가는 부자들의 악독함이며, 둘째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진 고귀한 이름을 비방하는 불신입니다. 이는 단순히 윤리적 차원을 넘어 근원적인 마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즉, 부자들 마음 안에 있는 교만함과 인간 본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돈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립적으로 다루기도 합니다. 물론 돈은 위험성이 클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돈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셨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된 부자청년의 이야기는 그 청년이 소유하고 있던 돈이라는 것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을 사랑하셨고 그가 어려서 부터 모든 율법을 다 지켰음을 인정하셨습니다. 이 청년은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이때 주님은 그에게 십계명의 다섯가지 계명을 열거합니다. 부자 청년는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1절입니다.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네게 있는 것들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비워내는 종교가 아닙니다. 주님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청년의 마음을 아시고 구원은 너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로 인해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주님을 떠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재물을 사용한다고 결단했다면 이 청년에게는 하늘의 평화와 구원의 기쁨이 넘쳤을 것입니다. 주님은 영생에 대한 관심을 갖는 청년에게 단순히 계명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요구를 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깨닫습니다. 이후에 자신이 지녔던 외적인 조건을 배설물 처럼 여기며 주를 위한 영광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맘몬의 신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돈은 무조건 멀리하라는 의미 보다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의 고백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가난도 부함도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한량없는 사랑으로 회복하셨다면 우리가 가야할 길은 현재 주어진 것들을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인해 결핍과 차별의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면, 이러한 감정들은 마음의 우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소외받는 사람들을 신원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한마리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계산법입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고아와 과부 객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바탕으로 고아원, 양로원, 학교, 병원 등이 세워졌습니다. 성경적 명령과 원칙을 실천하려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반면에 믿는 사람들은 현실을 동일하게 바라보면서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구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같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어도 상황을 해석하는 시각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회복할 수 없는 이들의 억울함을 들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사랑이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드러났습니다. 십자가의 원리는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뒤집는 사건입니다.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구원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십자가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원리는 세상의 교양과 지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며, 믿음 안에서 차별의 모든 근본적인 원인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기적을 요구했고, 그리스 사람들은 바울에게 철학적 지혜를 구했지만 야고보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셋째, 야고보는 차별의 결과 대해서 말씀합니다. (9-10절)
차별의 결과는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기에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계명 중에 어떤 것은 지키고 다른 어떤 것은 소홀히 하는 태도를 취했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모든 율법은 빠짐없이 지켜야 함을 밝힘으로써 율법의 가볍고 무거움을 따지는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율법의 모든 계명을 다 지키다 가도 그중 한 가지만 어기게 되면, 율법 전체를 어긴 셈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니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마지막 심판은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있는가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한주만 시동을 걸지 않아도 자동차의 엔진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의 성공만을 향해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율법을 지킨다면,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율법과 사랑은 대조적이지 않습니다. 이웃 사랑을 으뜸이 되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법은 구약의 레위기 19:18절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빠지면 율법주의가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이 사랑의 법을 삶의 지표로 삼고 실천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차별하지 말라는 것은 삶의 표준이 되는 명령입니다. 차별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해법은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심판받을 자들에 대해 긍휼하심을 보임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도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마 5:7) 따라서 자비로운 마음은 사랑의 새계명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율법을 긍휼의 관점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억지로 가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주의 길을 걷는자에게 함께 해 주십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성취 하셨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라 느껴질지라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영광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 주님은 영광의 보좌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함을 지닌다면, 하나님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깨달음을 주시고 자비를 실천하는 여러분에게 새힘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강림후 제 15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28
믿음의 열매
The Fruits of Faith
야고보서 1:17-27
17 온갖 좋은 선물들과 모든 온전한 은사는 저 위로부터, 곧 빛들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시는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1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19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이것을 마음에 새겨 두십시오. 즉,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노하기도 천천히 하십시오. 20 사람이 성내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들과 넘치는 악들을 다 던져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겨져 있는 말씀을 겸허하게 따르도록 하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능히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22 ○ 여러분은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들은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실천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3 만일 여러분이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24 거울 앞을 떠나고 나면,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즉시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25 그러나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주의 법을 자세히 살피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듣기만 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들은 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행한 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입니다. 26 만일 누구든지 자신을 경건한 성도라고 내세우면서도 혀를 다스리지 않고 함부로 말을 내뱉으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로서, 그런 신앙생활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27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순수하고 흠이 없는 경건한 신앙은, 의지할 데 없는 고아와과부를 잘 보살펴 주는 것이고, 또한 삼가 자신을 지켜 타락한 세상 풍조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쉬운말 성경)
17 Whatever is good and perfect is a gift coming down to us from God our Father, who created all the lights in the heavens. He never changes or casts a shifting shadow. 18 He chose to give birth to us by giving us his true word. And we, out of all creation, became his prized possession. 19 Understand this,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You must all be quick to listen, slow to speak, and slow to get angry. 20 Human anger does not produce the righteousness God desires. 21 So get rid of all the filth and evil in your lives, and humbly accept the word God has planted in your hearts, for it has the power to save your souls. 22 But don’t just listen to God’s word. You must do what it says. Otherwise, you are only fooling yourselves. 23 For if you listen to the word and don’t obey, it is like glancing at your face in a mirror. 24 You see yourself, walk away, and forget what you look like. 25 But if you look carefully into the perfect law that sets you free, and if you do what it says and don’t forget what you heard, then God will bless you for doing it. 26 If you claim to be religious but don’t control your tongue, you are fooling yourself, and your religion is worthless. 27 Pure and genuine religion in the sight of God the Father means caring for orphans and widows in their distress and refusing to let the world corrupt you. (New Living Translation)
성령강림후 열다섯번째 주일입니다. 예배 드리는 교우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넘치길 기도합니다. 두주전에 에베소서 설교 가운데 요한복음 15장 5절에 대한 언급을 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에 대해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을 끈질기게 신뢰하고 의지하며,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 진정한 제자의 길입니다.”라고 말씀했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는 의미를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단순히 주님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생활 방식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며, 예수님이 주신 사랑의 새 계명을 지켜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이 복된 삶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에서 성도는 성령의 열매인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기쁨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열매 중 하나입니다.
야고보는 오늘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과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입니다.
1:17 온갖 좋은 선물들과 모든 온전한 은사는 저 위로부터, 곧 빛들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시는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그림자에 갇혀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유혹을 받지도 않으시고 유혹하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 뒷부분에 형성이 되기에 스스로 인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죄로 인해 깨어지고 우리는 불공정한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세상의 그림자로 인한 결과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의를 외치지만 정의라는 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큰 물체는 빛에 반사되어 큰 그림자가 생기고 작은 물체는 작은 그림자가 생기게 됩니다. 또한 해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의 위치가 바뀝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 말씀은 온갖 좋은 선물과 온전한 은사가 위로부터, 즉 빛들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변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기질을 보완해 주십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리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이끌었습니다. 그의 기질은 다혈질이었습니다. 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있을 때, 백성들이 금신상을 만들고 음란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십계명을 깨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하여 백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는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완벽주의적인 기질은 책임감 있는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성도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18절을 보시겠습니다.
1:1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아 주셨다’라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자녀가 되게 해 주신 거듭남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 일은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며, 이는 율법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받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남으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바쳐졌고, 첫 열매가 되게 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소유된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칭해 주시는 믿음과 성도의 행함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최초의 회개로 인한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이 남은 인생 동안 회개와 믿음에 대한 지속적 마음가짐을 지니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 2장 6절에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한 회사의 가치를 믿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행함을 강조하는 것은 바울서신에서 언급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말씀을 보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에 해당하는 믿음과 보여지는 열매인 행함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뿌리가 건강해야 땅속의 양분을 흡수하여 열매를 맺게 되듯이 참된 믿음은 자연스럽게 삶의 열매인 선한 행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선행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선행이 구원의 요소도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살아 있는 믿음을 통하여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진실로 예수를 믿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야고보는 들음과 실천으로 참된 믿음을 설명합니다. 듣기는 빨리 듣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노하기도 천천히 하라는 것입니다. 화는 사람의 마음을 메마르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어긋나게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할 수만 있다면 화를 자제해야 합니다. 예수로 인해 다시 태어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옛자아가 죽은 사람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들, 마음에서 나오는 죄악의 마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지고, 이제 우리 안에 심겨져 있는 진리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이제 22절로 25절을 보시겠습니다. 22 ○ 여러분은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들은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실천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3 만일 여러분이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24 거울 앞을 떠나고 나면,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즉시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25 그러나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주의 법을 자세히 살피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듣기만 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들은 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행한 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첫 믿음을 주셨지만 우리는 지속적인 믿음과 순종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들은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아서 시험이 오면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만일 지속적인 믿음을 소홀히 한다면 그리스도의 은혜가 값싼 은혜가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며 말씀 속에서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우리가 기억을 상실하여 매일 내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그 자녀를 보시며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로워진 관계 속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주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와 사망, 율법의 부담에서 해방시켜 복된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바울은 온전한 율법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으로 표현했고, 야고보가 말하는 온전한 율법은 단순한 법적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실천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찾아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과 진리에 순종하고 싶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실천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요? 마태복음 22장 37절로40절을 보시겠습니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랑에는 행동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오래 참고 온유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자랑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도록 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용서하고 모든 것을 참고 믿고 견디게 합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살아갈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합니다.
셋째, 참된 경건은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26 만일 누구든지 자신을 경건한 성도라고 내세우면서도 혀를 다스리지 않고 함부로 말을 내뱉으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로서, 그런 신앙생활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27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순수하고 흠이 없는 경건한 신앙은, 의지할 데 없는 고아와 과부를 잘 보살펴 주는 것이고, 또한 삼가 자신을 지켜 타락한 세상 풍조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의 첫번째는 혀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즉 언어의 절제입니다. 말과 언어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 줍니다. 사람의 말로 인해 사람의 인격을 가늠하게 됩니다. 이웃에게 상처 되는 말, 비방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참된 경건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Worship’이라고 하는 단어는 ‘가치가 있다’라는 ‘Worth’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른 예배는 우리의 인격과 말의 품격을 변화시킵니다. 만일 예배 드리면서도 혀를 제어하지 않고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인격의 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다.
이웃사랑의 두번째는 고아와 과부를 잘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돌봄과 사랑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할 때 흘러 나오게 됩니다. 성도의 삶은 기도와 예배의 향기입니다. 참된 경건의 삶을 실천할 때에 이웃들에게 그 향기가 더 진하게 풍겨질 것입니다.
참된 경건은 자신을 지켜 타락한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세속사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수천년에 걸쳐서 성령의 감동으로 수십명에 의해서 기록된 성경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믿음은 실제로 놀라운 삶의 변화를 가져 옵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먼저는 나중심적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은 구속사적인 접근 방법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신 복음과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시는 복음의 결과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팀켈러 목사는 그리스도 중심의 묵상은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따로 떼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성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오히려 삼위일체 중심적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설교할 때 십자가의 죽음과 고난은 아들이 십자가에 죽는 고통을 지켜 보아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에게 아들을 잃어버리는 고통이었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도에게 주신 은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은혜로 인해 우리의 삶의 태도와 자세를 소홀히 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우리의 의지와 행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모든 선행도 자기 의로움에 불과하지만 복음의 능력은 우리도 주님처럼 살아가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더욱 순종하는 성도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계명을 지키는 능력이 우리 안에 없지만, 예수께서 보여주시고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