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22 2024 주일설교

(성령강림후 제 18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31

지혜의 출처를 확인하라

Verify the Source of Wisdom

야고보서 3:13~4:3

3:13 ○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진정으로 지혜 있고 분별력 있는 사람입니까?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으로, 착하고 선한 행실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그런 사람입니다.
3:14 여러분의 마음속에 강렬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욕망을 품고 있다면, 그런 것들을 자랑하지도 마시고, 또한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도 마십시오.
3:15 그런 지혜는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요, 육신에 속한 것이며,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3:16 시기심과 이기적인 욕망이 들끓는 곳에는 온갖 혼란과 악행이 차고 넘칩니다.
3:17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무엇보다 순결하고, 또한 화평하고, 너그럽고, 양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이 없고, 위선적이지 않습니다.
3:18 참으로 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화평의 씨를 뿌릴 때 거둘 수 있습니다.

4:1 여러분 가운데 싸움이나 다툼이 생겨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육신의 욕망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까?
4:2 여러분이 욕심을 부려 무엇인가를 원했는데도 그것을 얻을 수 없으면, 살인을 저지릅니다. 무엇인가 탐내어도 그것을 갖지 못하면,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만일 여러분이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3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간구했는데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육신적인 쾌락을 누리는 데 쓰려고 잘못된 동기에서 구했기 때문입니다. (쉬운말 성경)

성령강림후 열여덟번째 주일입니다. 이 시간 새마음을 주시는 주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함께하시길 소망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본문에서 하늘에 속한 지혜와 육신에 속한 지혜를 대조합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의 출처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원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읽을때에 지혜가 임하게 됩니다.

잠언 1:7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니,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잠언 3:7에서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당시 교회 내에서 스스로 지혜와 지식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이기적인 세속적 욕망에 따라 성도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정보와 같이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육신에 속한 지혜는 시기심을 낳고 이기적인 욕망을 부추깁니다. 세상에는 뛰어난 머리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으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만이 아닙니다. 더 가까이 가정과 일터, 교회에서도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나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함과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째, 하늘에 속한 지혜의 특성은 무엇입니까?(3:13-18)

13 ○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진정으로 지혜 있고 분별력 있는 사람입니까?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으로, 착하고 선한 행실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그런 사람입니다. 14 여러분의 마음속에 강렬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욕망을 품고 있다면, 그런 것들을 자랑하지도 마시고, 또한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도 마십시오. 15 그런 지혜는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요, 육신에 속한 것이며,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16 시기심과 이기적인 욕망이 들끓는 곳에는 온갖 혼란과 악행이 차고 넘칩니다. 17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무엇보다 순결하고, 또한 화평하고, 너그럽고, 양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이 없고, 위선적이지 않습니다. 18 참으로 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화평의 씨를 뿌릴 때 거둘 수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는 온유함과 선한 행실로 나타난나고 말씀합니다. 대학 시절에 묵상했던 말씀 중에서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7절의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는 세속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모든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길로 가는 일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럴 때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는 세속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믿음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죄된 마음, 시기심으로 인해 다툼과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야고보는 하늘에 속한 지혜의 열매를 열거하는데, 이 열매는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언급한 성령의 열매와 유사합니다. 지혜의 열매는 순결함, 화평함, 너그러움, 양순함, 자비, 그리고 편견이 없고 위선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참으로 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화평의 씨를 뿌릴 때 거둘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모두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약 1:17) 우리는 바울이 전한 성령의 열매와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지혜의 열매가 가르치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이방 나라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결함을 지켰더니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가 있을때에도 그곳에 주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죄가 다가올때에 바울은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롬 6장 11절) 예수와 함께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성결함은 죄의 유혹이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죄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화평함은 서로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성도는 너그러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8)고 권면합니다. 우리 안에 화평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있다면, 이는 분명 하늘로부터 온 지혜의 증거입니다. 또 다른 열매는 양순함입니다. “어질 량, 순할 순”이라는 한자어인데 , 바른 몸가짐과 순종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 앞에 바른 마음으로 서 있게 되면,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도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편견을 없애야 합니다. 편견은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고유한 가치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진실한 성도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말과 태도를 바르게 하고, 형제를 존중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형제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갈등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4:1-2)

4:1 여러분 가운데 싸움이나 다툼이 생겨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육신의 욕망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까? 4:2 여러분이 욕심을 부려 무엇인가를 원했는데도 그것을 얻을 수 없으면, 살인을 저지릅니다. 무엇인가 탐내어도 그것을 갖지 못하면,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만일 여러분이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갈등의 원인이 욕망과 욕심에 있음을 언급합니다. 쉬운말 성경은 탐내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시기하여도”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시기하여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젤루테, ζηλοῦτε “라는 단어는 ‘악의를 지니고 바라보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시기심은 상대방에 대해서 집요하게 미워하는 감정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쟁 사회 속에서 시기심을 품고 상대방에게 악의적인 마음을 가지면 갈등과 다툼이 발생합니다. ‘살인을 저지릅니다’라는 이 표현은 은유적인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살인’을 말합니다. 예수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서 지속적으로 분노하고 미워하는 것을 끊어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살인 사건들은 인간의 시기심으로 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살해한 사건은 첫 번째 인류 간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시기심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알게 해 줍니다. 야고보는 이는 육신에 속한 것이며,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기와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해 온갖 악행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기심과 이기적인 욕망이 들끓는 곳에는 온갖 혼란과 악행이 차고 넘친다”고 야고보는 경고합니다.

잠언은 마음이 평안하면 몸도 생기가 돌지만, 마음에 시기심을 품으면 뼈까지 썩는다.”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3절을 보면 2:1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기만과 위선과 시기 및 온갖 헐뜯고 비난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2:2 이제 갓 태어난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말씀의 젖을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그래야 그 젖을 먹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3 복음을 듣고서 여러분이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꼭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말씀합니다.

한 번은 목회자 컨퍼런스가 끝난 후 서로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몸이 조금 불편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시며 장애인 사역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고백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지금 제 삶이 가장 행복합니다. 이미 천국을 살아가고 있어요. 삶속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짧은 고백이지만 그분의 삶에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고백했습니다. 삶이 시들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함을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을 통해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삶의 목적이 일상의 행복을 빼앗아 가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세상의 지혜 너머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4:3)

4:3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간구했는데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육신적인 쾌락을 누리는 데 쓰려고 잘못된 동기에서 구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탁월해지기 위해서는 일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고 오랜 시간 동안 연습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이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당장 변화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고 결단하면 그분의 일하심에 동참하게 됩니다.

주의 자녀들은 모두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의 지혜 너머를 바라 보며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계획을 지니신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믿음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깊이 있는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셨다는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의 모습 너머에 하나님의 형상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알고 읽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고, 이웃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지혜의 출처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논문을 쓰는 학생이 그 출처를 정확하게 기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오랜 전통과 역사속에서 수용된 교회의 가르침을 듣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경험하지 못한 지난 역사속에서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 온 길을 우리도 걸어가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 낮은 마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주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더해 주시고 바르게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지혜는 정욕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도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난 뒤에 통회하고 자복하며 하나님께 정결한 마음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다윗의 영혼을 새롭게 해주셨고 그에게 그 은혜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배우는 것은 새로운 논문의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예술적 작품을 선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지혜의 말씀에 대한 출처를 밝히고자 한다면,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이것이 하늘이 속한 지혜의 출발점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춰 행하도록 도우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1분 1초가 주님께서 새롭게 주신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시작되는 한 주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인류에게 주어진 삶의 지침서인 지혜의 말씀을 구하고 찾으며, 두드림으로써 세상의 지혜 너머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날마다 풍성히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09. 15. 2024 주일설교

(성령강림후 제 17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30

말의 힘을 깨우다

Awakening the Power of Words

야고보서 3:1~12

1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선생 되기를 쉽게 알아 너도나도 선생이 되겠다고 나서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대로, 후일에 가르치는 사람 된 우리가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 모두는 여러 모로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만일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참으로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말을 길들여 부리려고 하면, 우리는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4 배를 보십시오. 아무리 배가 크고 거센 바람에 밀려도, 항해사는 작은 키 하나로 배를 능히 조종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배를 몰고 갈 수 있습니다. 5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혀도 매우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거대한 숲을 다 살라 버릴 수 있습니다. 6 혀 역시 불입니다. 또한 악으로 가득 찬 불법의 세계입니다. 비록 혀가 우리 몸의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진실로 혀는 우리의 온몸을 더럽히고, 우리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 삶을 망쳐놓고, 결국에는 혀 자체도 지옥 불에 타 버리고 맙니다. 7 온갖 종류의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이나 바다의 생물들은 다 길들여질 수 있어서, 사람에 의해 길들여 왔습니다. 8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으로 혀는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악이요, 사람을 죽이는 치명적인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9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또한 바로 그 혀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이처럼 같은 혀,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그러나 나의 형제들이여, 참으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11 샘이 한 구멍에서 어떻게 단물과 쓴물을 동시에 낼 수 있겠습니까? 12 나의 형제들이여, 어찌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을 수 있겠으며,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물을 내는 샘이 단물을 낼 수는 없습니다. (쉬운말 성경)

1Dear brothers and sisters,[a] not many of you should become teachers in the church, for we who teach will be judged more strictly. 2 Indeed, we all make many mistakes. For if we could control our tongues, we would be perfect and could also control ourselves in every other way. 3 We can make a large horse go wherever we want by means of a small bit in its mouth. 4 And a small rudder makes a huge ship turn wherever the pilot chooses to go, even though the winds are strong. 5 In the same way, the tongue is a small thing that makes grand speeches. But a tiny spark can set a great forest on fire. 6 And among all the parts of the body, the tongue is a flame of fire. It is a whole world of wickedness, corrupting your entire body. It can set your whole life on fire, for it is set on fire by hell itself.[b] 7 People can tame all kinds of animals, birds, reptiles, and fish, 8 but no one can tame the tongue. It is restless and evil, full of deadly poison. 9 Sometimes it praises our Lord and Father, and sometimes it curses those who have been made in the image of God. 10 And so blessing and cursing come pouring out of the same mouth. Surely, my brothers and sisters, this is not right! 11 Does a spring of water bubble out with both fresh water and bitter water? 12 Does a fig tree produce olives, or a grapevine produce figs? No, and you can’t draw fresh water from a salty spring.( New Living Translation)

성령강림후 열일곱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이 살아가는 순간마다 따뜻하게 감싸주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서 2장은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백성들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며, 믿음의 성도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차별하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믿음의 태도를 통해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혀의 악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혀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이며, 입을 통해 하는 모든 말들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신창원이라는 죄수가 부산 교도소를 탈출해서 907일 동안 숨어 지내다가 결국 체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의 907일간의 기록을 보면,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한 교사가 육성회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하며 “넌 뭐 하러 학교 나오냐고 말하며, 그의 인격을 모독하는 부정적인 말을 했는데, 소년 시절에 그는 이 말이 자신의 마음속에 악마를 만들어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말 한마디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그의 삶에 악영향을 미쳐 범죄의 길로 가는 데 힘을 실어주었으며, 그의 마음을 차갑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말이 형제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분은 선생 되기를 쉽게 알아 너도나도 선생이 되겠다고 나서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대로, 후일에 가르치는 사람 된 우리가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대부분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말씀은 경솔하게 주어진 직분을 맡으려 하지 말고 보다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첫째, 말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선생은 가르치는 자리에서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선생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랍비의 권세와 권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모든 인간이 말의 실수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말은 양날의 칼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인생을 살리기도 하고 마음을 배어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인간의 말이 항상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은 모든 인간은 말로 인한 실수로 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교회 안에도 자신의 뜻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잘못된 가르침이 많아지고, 모범이 되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말의 실수가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고,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스스로 자신의 혀를 길들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시겠습니다. 3:8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으로 혀는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악이요, 사람을 죽이는 치명적인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떠돌아 다니며, 자극적인 말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사표를 던지고 선거 캠페인을 하는 후보들은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하여 상대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 자리에 가 보기 전까지는 후보자들의 진심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상대방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역지사지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 사람의 상황에 가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서로의 환경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처한 환경에 대해서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비판과 갈등,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서로를 향한 말의 칼날을 더 날카로워 지게 합니다.

성경은 주의 자녀들에게 입술의 권세를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권세는 우리가 기도하고 행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시행하신다는 의미도 있고, 성도가 살아가며 지녀야 할 말의 품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권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를 믿는 자녀들은 이 땅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상처와 마음을 치유하고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사람들 사이의 믿음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써 나가시기를 원하십니다. 농부의 심정으로 뿌리는 말의 씨앗은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텐데, 가르치는 자의 책임도 따르지만 잘 감당하면 상급도 주어집니다. 즉 심판의 원리는 상급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주님의 자녀가 됩니다. 지난 날의 잘못이 심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용서해 주심을 통해 선한일을 위해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야고보는 잘못된 가르침과 말의 실수에 이어서 말의 영향력에 대해서 비유를 통해 설명합니다.

둘째, 말에는 선과 악을 맺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3 말을 길들여 부리려고 하면, 우리는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4 배를 보십시오. 아무리 배가 크고 거센 바람에 밀려도, 항해사는 작은 키 하나로 배를 능히 조종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배를 몰고 갈 수 있습니다. 5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혀도 매우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거대한 숲을 다 살라 버릴 수 있습니다. 6 혀 역시 불입니다. 또한 악으로 가득 찬 불법의 세계입니다. 비록 혀가 우리 몸의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진실로 혀는 우리의 온몸을 더럽히고, 우리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 삶을 망쳐 놓고, 결국에는 혀 자체도 지옥 불에 타 버리고 맙니다.

야고보는 3절로 5절에서 말의 영향력에 대해서 3가지 비유를 합니다.

첫째는 말의 재갈 비유입니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 성질이 사나운 야생마라고 할지라도 고삐를 사용해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분쟁이 생기면 사나운 말처럼 비난과 비판을 서슴치 않게 되지만, 그러한 언어를 통제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비유는 거대한 배와 작은 키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거센 바람에 밀려가는 배로 묘사하며, 키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항해사가 큰 배를 손에 쥔 키 하나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인생의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조절하는 키가 필요합니다. 키가 없다면 인생은 바람과 풍랑에 따라 표류하게 되고, 결국 배가 파선하듯이 자기 삶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즉, 작은 말의 열매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비유는 작은 불씨가 엄청난 파괴력을 지녀서 산에 있는 모든 나무를 태운 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는 혀를 악으로 가득 찬 불법의 세계에 비유합니다. 불법의 세계는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즉 혀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지옥불이라면, 그 위력 앞에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혀를 길들일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온갖 종류의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이나 바다의 생물들은 다 길들여질 수 있어서, 사람에 의해 길들여 왔습니다.” 우리는 말 못하는 짐승이나 새들, 심지어 야생 동물들이 사람의 말에 따라 정확한 동작을 하는 서커스 같은 것을 보며 무척 놀라워합니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훈련을 시켜서 사람이 말하는 대로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입니다. (창 1:28) 그래서 인간은 태초 이래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생물둘을 길들였고 또한 길들이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길들일 수 있는 동물과 길들이기 불가능한 혀를 대조하고 있는데,그런데 정작 자신의 혀를 길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 5,6절에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평안할지어다 하라. 그 집에 평안이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 집에 임할 것이요,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의 평안이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5장 7절에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을 주면 사랑을 준 만큼 사랑을 받게 되는 부메랑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믿음의 원리는 우리가 선을 행하면 인생에 복이 찾아 오고, 하나님을 떠나 악하게 살면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악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뿌린 대로 거두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말씀합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성경말씀을 믿고 행하면 그 열매를 맺게 해주시고 상주시지만,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른 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걸맞게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말을 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뿌린 말이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가 정죄하거나 저주하는 말들도 나의 삶과 나의 자녀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말의 변화를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인간은 본질적인 악으로 부터 스스로 변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능력으로 인간의 마음은 변화되며,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타락한 본성을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태우고 정결케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회개의 증거가 나타나고, 마음과 영혼, 우리의 입술을 정화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기도할 때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입술이 원수를 갚는 말이나 불평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시편 141편 3절을 보면,오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입술의 부정함을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순간 자신의 본성이 부정하다고 고백합니다. 이사야 6장 4절 5절입니다. 6:4 우렁차게 외치는 장엄한 그 소리로 인해 성전의 문지방 터가 흔들리고, 성전 안은 연기로 가득 찼다. 6:5 그때 내가 소리쳤다. “아, 나에게 재앙이 닥쳤구나! 이제 나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으로,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이렇게 전능하신 만군의 왕이신 주님을 나의 두 눈으로 직접 뵙다니!

성도는 그 날의 상을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고 난 뒤에 남의 티를 중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남의 티를 말하고 가르치는 일은 되도록 자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주의 자녀들은 감사의 언어, 격려와 칭찬, 남을 높이는 말을 즐겨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예배, 기도, 찬양을 통해 우리의 입술을 거룩하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과 입술은 이중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혀로 찬양하기도 하고,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9절로 12절을 보시겠습니다. 9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또한 바로 그 혀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이처럼 같은 혀,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그러나 나의 형제들이여, 참으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11 샘이 한 구멍에서 어떻게 단물과 쓴물을 동시에 낼 수 있겠습니까? 12 나의 형제들이여, 어찌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을 수 있겠으며,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물을 내는 샘이 단물을 낼 수는 없습니다. ‘무화과’라는 이름은 ‘꽃이 없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무화과 나무는 속으로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인하여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내재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던진 나뭇가지로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을 때에 인생의 쓴잔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한주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생명의 향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온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주님과 함께, 성령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