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첫번째 주일
Standing Before God
창세기 3:1-7
3:1 뱀은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어떠한 들짐승보다 가장 교활하고 약삭빨랐다. 뱀이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며?” 3:2 여자가 뱀에게 말했다. “아니야,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먹어도 돼. 3:3 하지만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먹으면 안 돼. 하나님께서 그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어. 그랬다가는 죽게 될 거라고 하셨어.” 3:4 뱀이 여자에게 말했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을걸. 3:5 너희가 그걸 먹으면, 그 날로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래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거야. 하나님은 그걸 아시고, 너희더러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거야.” 3:6 ○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쳐다보니 정말 먹음직스러웠고, 보기에도 탐스러웠다. 과연 사람을 지혜롭게 해주는 열매처럼 보였다. 여자는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먹고는, 자기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 열매를 먹었다. 3:7 그러자 두 사람 모두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서 치마처럼 몸에 둘렀다. (쉬운말 성경)
1 The serpent was the shrewdest of all the wild animals the Lord God had made. One day he asked the woman, “Did God really say you must not eat the fruit from any of the trees in the garden?” 2 “Of course we may eat fruit from the trees in the garden,” the woman replied. 3 “It’s only the fruit from the tree in the middle of the garden that we are not allowed to eat. God said, ‘You must not eat it or even touch it; if you do, you will die.’” 4 “You won’t die!” the serpent replied to the woman. 5 “God knows that your eyes will be opened as soon as you eat it,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both good and evil.”6 The woman was convinced. She saw that the tree was beautiful and its fruit looked delicious, and she wanted the wisdom it would give her. So she took some of the fruit and ate it. Then she gave some to her husband, who was with her, and he ate it, too. 7 At that moment their eyes were opened, and they suddenly felt shame at their nakedness. So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to cover themselves.(New Living Translation)
몇 해 전, 선배 목사님께서 쓰신 사순절 묵상집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책 첫 페이지에 잠언 6장 4절의 말씀을 써 주셨는데,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네 눈꺼풀로 졸지 않게 하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본문을 묵상하는데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잠들어서는 안 될 순간에 졸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보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하나님 없이 생각하고 결정하며 내가 보고 듣는 것이 기준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갑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도록 하나님 없이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몸이 조금만 피곤해도, 마음에 근심이 쌓여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어려운 시간 앞에 서면 그 고통이 오히려 우리를 깨워 기도의 자리로 이끌어 줍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심을 묵상하는 이 절기에, 우리를 거룩한 자녀로 불러 주신 은혜가 가슴 깊이 묵직하게 울립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더 많이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는 인간이 지닌 욕구를 피라미드로 설명했습니다. 생존과 안전, 인정을 넘어 자아실현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 이것이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열망입니다. 5단계로 분류한 피라미드로 되어 있는 꼭지점 끝이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원한 것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눈이 뜨였을 때 무엇을 보게 되었습니까?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벌거벗음과 수치의 자리였습니다.
1. 인간은 스스로 눈을 뜨려 했지만 그것은 영광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 앞에 서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뱀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며?”라고 물었습니다. 관계를 흔들고 의심하게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희가 그걸 먹으면, 그 날로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래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거야. 하나님은 그걸 아시고, 너희더러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거야.” 죄는 이렇듯 거짓으로 진실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 없이 판단하고 결정하게 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려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온갖 열매를 마음껏 누리라는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넘치는 은혜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게 됩니다.
다윗은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고 기록합니다. 죄는 우리를 파멸시킴에도 때로는 매우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비전을 주셨는데, 왕의 자리에서 자신의 권력을 의지하는 순간, 보아서는 안 될 것이 아름답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죄는 의로운 것처럼, 열심인 것처럼, 옳은것 처럼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없는 열심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리에 서게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게 했습니다. 죄는 더 큰 죄를 부르고 주변 사람들까지 쓰러트립니다. 그로부터1년이 지나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심히 많고, 한 가난한 자에게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었는데, 부자가 손님을 대접하면서 자기 양은 아끼고 가난한 자의 어린 양을 빼앗아 잡았습니다.”
다윗은 나단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했습니다. “그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다윗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순간 다윗은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보고 들을 때는 잘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정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과 실제 나의 삶의 모습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에게 있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울지도 모릅니다. 다윗도 그랬을것입니다. 말씀이 임할때 자신의 실체를 분명하게 보게 된 것입니다.
2. 말씀이 우리의 눈을 열게 합니다.
은혜에 붙들리는 것은 내가 높은 곳을 올라가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자리로 찾아 오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자신들의 몸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처럼 몸에 둘렀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살아냄의 자리에서 항상 실패하는것 같은 날이 늘어갑니다. 열심을 다하는데 내가 맞다고 여겨지지 않으면 그 열심도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나의 실수와 실패는 보이고 싶지 않아 무화과 잎으로 가리려 합니다.
바로 이 자리입니다. 모두가 올라가려 할 때 하나님은 내려오셨고 숨고 싶고 가리고 싶었던 그 자리로 찾아오셨습니다. 스스로 올라가서 성취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를 만나주시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오는 것은 가리워졌던 나의 죄를 안고 나아오는 자리입니다. 다 해결하고 서는 자리가 아니라 부족한 모습 그대로 서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모든 것이 풍족하게 있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둘째 아들은 종의 자격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에게는 여전히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이 불쌍한 마음이 들어 얼른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그 삶을 친히 도우십니다. 그런데 믿음과 삶의 자리는 다릅니다. 우리를 어렵게 하던 문제가 하루 아침에 해결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은 세상속에서 끊어야 할 것들을 끊고 선과 악을 분별하는 눈을 열어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악과가 보장해 준다고 믿었던 육신의 욕구, 보는 것의 욕구, 세상 자랑의 욕구를 말씀으로 충족시켜 줍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19:7 ○ 주의 법은 완전하여 사람의 영혼을 생생하게 되살려 주고, 주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사람을 깨우쳐 지혜롭게 하도다. 19:8 주의 가르침은 정직하여서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고, 주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게 하도다.
말씀은 우리를 다시 보게 합니다. 새롭게 합니다. 깨어나게 하고 회복하게 합니다. 십자가 앞에 선 사람은 고통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선물받은 책속에 쓰여진 말씀은 제 마음에서 그냥 지나쳐 갔지만 본문 말씀을 묵상하며 그 구절이 다시 기억난 것은 말씀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제가 서있는 자리에서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문득 말씀의 한구절과 익숙하게 들었던 찬송가를 통해서 눈물 흐르는 시간을 만난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특별한 그날의 시간이 아니라 살아온 삶의 무게가 말씀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눈을 열게 해주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같은 현실에서 서로 다른곳을 바라봅니다. “
흑인 인권 운동의 역사에서 말콤 엑스와 마틴루터킹은 억압과 차별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말콤 엑스는 구조적인 억압을 증오하며 억압한 자들을 보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억압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복음 위에서 사랑으로 정체성을 외쳤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고통을 겪었지만 전혀 다른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은 말콤 엑스를 틀렸다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고통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 선 사람은 고통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정죄가 아니라 긍휼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복음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 삶에서 매번 같은 자리에서 쓰러지는 나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 없고 감격스럽지 않은 익숙한 신앙 생활의 자리에, 외로움 속에서 씨름하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그 은혜의 자리에서 나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던 것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애쓰고 더 많이 보고 더 판단하고 더 지키려고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그 사실을 잊어버릴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서면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내 옆의 지체들이 보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고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우리가 함께 바라보는 십자가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단단한 사람도, 무뚝뚝한 사람도, 논리적인 사람도, 냉정한 사람도, 순하고 착한 사람도 죄 아래에서 무너지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왜 그랬는지 물으신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었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평안으로 이끄시고 자녀됨의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 서서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을 삶의 가장 높은 가치로 둘 때 비로소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사순절은 하나님 앞에 조용히 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