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강림 스물 두번째 주일)
네가 나를 믿느냐
Do You Believe This?
누가복음 20:27~38
27 ○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 몇 명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28 “선생님, 모세의 율법을 보면,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그 형수와 결혼하여, 죽은 사람의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29 그런데 어느 집에 일곱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맏형이 결혼을 했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그 형수와 결혼했지만, 그 역시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1 그래서 차례대로 일곱 형제가 다 그 여자와 결혼했지만, 아무도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32 그러다가 마침내 그 여자마저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합니까? 일곱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34 ○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오. 35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시집도 가지 않고, 장가도 가지 않소. 36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음을 경험하지도 않소.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새로운 생명을 얻은 부활의 자녀들이므로, 곧 하나님의 자녀들이오. 37 옛적의 모세도 불에 타면서도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 보여주지 않았소? 그때에 모세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소. 38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모든 자들이 다 살아 있소.” (쉬운말 성경)
27 Then Jesus was approached by some Sadducees—religious leaders who say there is no resurrection from the dead. 28 They posed this question: “Teacher, Moses gave us a law that if a man dies, leaving a wife but no children, his brother should marry the widow and have a child who will carry on the brother’s name.[c] 29 Well, suppose there were seven brothers. The oldest one married and then died without children. 30 So the second brother married the widow, but he also died. 31 Then the third brother married her. This continued with all seven of them, who died without children. 32 Finally, the woman also died. 33 So tell us, whose wife will she be in the resurrection? For all seven were married to her!” 34 Jesus replied, “Marriage is for people here on earth. 35 But in the age to come, those worthy of being raised from the dead will neither marry nor be given in marriage. 36 And they will never die again. In this respect they will be like angels. They are children of God and children of the resurrection. 37 “But now, as to whether the dead will be raised—even Moses proved this when he wrote about the burning bush. Long after Abraham, Isaac, and Jacob had died, he referred to the Lord[d] as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e] 38 So he is the God of the living, not the dead, for they are all alive to him.”(New Living Translation)
요즘처럼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은 더 큰 불안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은 내가 결정하고 관리하여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상황이 불안해 지면 믿음도 흔들리게 됩니다. 언제까지 버티고 견뎌야 하나’ 라는 불편이 현실을 버거워 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요약하면 한 여자가 결혼했으나 자녀를 낳지 못한 채 남편이 죽자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의 형제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일곱 형제에게까지 반복되고 결국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이제 부활이 있다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곤욕스런 질문을 합니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질문을 한 것이기도 하고, 가족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모세법을 이용해서 부활 교리의 모순을 지적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의심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부활의 진리 대해서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1.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방식과 다르다.
당시 사두개인들은 유대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사장 가문의 귀족층이었습니다. 그들은 풍족한 현실의 삶에 만족했기 때문에 부활을 바라보지도 믿지도 않고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믿음을 세상의 차원으로 끌어 내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늘 나라는 다른 차원이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의 때에는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일이 없다’, ‘더 이상 죽음을 경험하지도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비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죽음 이후 삶이 정말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죽음 이후에 영원한 죽음이 있고 죽음의 세력이 손댈 수 조차 없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이들의 삶과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의 삶의 목적은 같을 수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는 이 땅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갑니다.
팀켈러는 왕의 십자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약한 상태에서 시작된다. 포기에서 시작된다. 목숨을 버리면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하셨다. 먼저 약한 인간이 되셨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무기력하게 달리셨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려면 우리도 약하게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예수님이 돌아와 우리를 회복된 세상으로 데려가실 때 사랑이 미움을 완전히 이기고 생명이 죽음을 완전히 이길 것이다.”《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십자가는 주님 없이 살수 없는 믿는 자들을 위한 사랑입니다. 동시에 주님께서도 우리 없이는 살수 없기에 죽음의 고통을 견디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출생은 세상에 나와 출세하는 삶이 목적이라면 주안에서의 탄생은 하나님과 내가 끊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찬송 한 곡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믿음이 되어 다시 힘 있게 일어 서게도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사랑은 인생의 방황속에서도 방향이 되어 주시고,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기도 합니다. 부활은 논리로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면, 복음도 믿음도 헛되고 죄사함도 없으며 예수를 믿고 죽은 사람은 영원히 죽는 것이며, 영원한 희망이 없다면 크리스챤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말씀합니다. 사람들의 삶은 저마다 달라도 마지막 운명은 다 같습니다. 죽음 이후 우리는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생명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이 부활 진리를 믿는 것은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삶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한 삶이 무엇입니까?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논쟁으로 갖고 갔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답하셨습니다. 자녀는 해야 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신뢰하고 사랑하기에 그 관계에서 살아갑니다. 그 중심에는 사랑과 신뢰가 있기에 주어진 삶이 자유해집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하라, 하지말라’는 가르침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해주지만 구원을 완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꾸 세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지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함의 완성을 향해 걸어가게 됩니다. 현재는 주님을 따르며, 주의 형상으로 점점 변화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장차 부활의 때에 완전히 변화될 거룩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본질상 허물과 죄 가운데 죽었던 존재였지만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부러지는 경험을 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허벅지 관절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의 상징이고 삶의 기초였습니다. 평생 붙들고 살았던 야곱이 의지하던 힘을 하나님께서 꺾어지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일평생 절뚝거리는 다리로 살아야 했지만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흔적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몸에 새겨진 흔적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가는 삶을 잊지 않도록 하는 부활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 버리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근심과 걱정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 죽음 이후를 한번 걱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의 흔적으로 인해 근심하고 탄식해 본 사람은 죽음의 고통으로 죄를 이기신 주님 앞에 감사하게 됩니다. 근심과 걱정의 끝에서 철저하게 자신에게 절망하십시요. 근심과 걱정으로 인하여 주님께 소망을 둘 수 있다면 오히려 하나님께로 향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근심 중에 붙잡은 못 자국 난 주의 손이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십니다. 주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후회함이 없고, 모든 것이 협력하여 유익이 됩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불에 타면서도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를 언급하시며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 안에 그 어떤 착함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없어지지 않는 불꽃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인도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정체되어 있고, 막다른 길목에 있는 것 같을 때에도 하나님의 자녀는 변함없이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상처로 마음이 지치고, 답답하고 막막하여 잃어 버린 시간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받을 유업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3.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의 하나님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잘 알고 있는 모세오경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말씀을 트집 잡고자 했지만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익숙한 구절로 깨닫지 못하는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깨닫도록 감동을 주십니다. 감동(感動)은 문자 그대로 느끼고(感) 움직이게(動)하는 힘입니다. 믿음의 힘을 지닐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부활의 믿음은 절망 속에서도 도전하게 하고, 현실속에서 실패해도 또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입니다.
아브라함은 부활을 믿었기에 100세에 얻었던 이삭을 제단에 드리기 위한 순종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어린양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지금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이 땅의 일에만 관심을 지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나의 현재와 미래를 온전히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필립시먼스가 쓴 ‘소멸의 아름다움’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는 루게릭 병을 앓았지만 자신의 마지막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았습니다. 원제목을 직역하면 ‘’넘어짐을 배우다’ 입니다. 그가 자신의 마지막 삶을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던 것은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책의 일부분입니다. “나는 조언을 주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해결해야 할 문젯거리가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문제를 인지하고 자전거를 조립하는 지침서처럼 순서대로 질서정연하게 해결책을 늘어 놓고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다….우리의 잘못이 여기에 있다. 인생은 가장 깊은 단계에서는 문젯거리가 아니라 신비이기 때문이다.” 《필립시먼스의 소멸의 아름다움》
성도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하나님 곁으로 보내 드리며 하늘의 소망을 고백하는 간증들을 종종 듣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소망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전에 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모세 앞에서 지금도 교제하는 산자라로 부르셨습니다. 생전에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로 부르셨고, 현재 우리 눈 앞에 이삭과 야곱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살아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만났던 생생한 기록이 담긴 성경을 진리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살아 있는 자로 계셨습니다. 이 약속은 죽음 너머까지도 지속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나를 믿으냐?”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네가 믿느냐? ” “네가 너와 함께 영원토록 있음을 믿느냐?”
주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에겐 믿음의 자녀들이 필요합니다. 영생을 주신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삶의 어려움 앞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지 말아라.’ ‘나의 사랑으로 견뎌내라’ 말씀 하십니다. 이제 우리의 선택에서 부활의 삶을 드러내시면 됩니다. 믿음의 선택이 죽어 있던 사회를 깨우고 멈춰 있던 우리의 신앙을 살리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