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2022 주일설교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GOD Makes the seed grow

고린도전서 3:1-13

유민용 목사

1 <사람을 좇아가는 어리석음> 성도 여러분, 이전에 나는 성령에 속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여러분에게 할 수가 없어서 세상에 속한 사람을 대하듯,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를 대하듯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그 때, 나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우유를 먹였습니다.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먹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인데, 지금도 여전히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시기와 다툼이 여러분 안에 있으니 이것이 바로 세상에 속한 것이고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까? 4 어떤 사람이 “나는 바울파다”라고 말하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파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5 도대체 아볼로가 무엇이고 바울이 무엇입니까? 나나 아볼로나 여러분을 믿도록 하고,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셔서 일하는 일꾼에 불과합니다.  도대체 아볼로가 무엇이고 바울이 무엇입니까? 6 나는 씨앗을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7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인 하나님은 중요합니다. 8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의 목적 때문에 일을 합니다. 각 사람은 자기가 한 수고만큼 보수를 받을 것입니다.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10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대로 유능한 건축가처럼 기초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위에 건물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이 기초 위에 어떻게 건물을 세워야 할지 주의해야 합니다.11 아무도 이미 놓여 있는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12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또는 나무나 풀이나 짚 등을 이용하여 건물을 세울 것인데13 각 사람이 일한 성과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불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한 것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이 각 사람의 한 일을 검증할 것입니다. (쉬운성경)

1Dear brothers and sisters,[a] when I was with you I couldn’t talk to you as I would to spiritual people.[b] I had to talk as though you belonged to this world or as though you were infants in Christ. 2 I had to feed you with milk, not with solid food, because you weren’t ready for anything stronger. And you still aren’t ready, 3 for you are still controlled by your sinful nature. You are jealous of one another and quarrel with each other. Doesn’t that prove you are controlled by your sinful nature? Aren’t you living like people of the world? 4 When one of you says, “I am a follower of Paul,” and another says, “I follow Apollos,” aren’t you acting just like people of the world? 5 After all, who is Apollos? Who is Paul? We are only God’s servants through whom you believed the Good News. Each of us did the work the Lord gave us. 6 I planted the seed in your hearts, and Apollos watered it, but it was God who made it grow. 7 It’s not important who does the planting, or who does the watering. What’s important is that God makes the seed grow. 8 The one who plants and the one who waters work together with the same purpose. And both will be rewarded for their own hard work. 9 For we are both God’s workers. And you are God’s field. You are God’s building. 10 Because of God’s grace to me, I have laid the foundation like an expert builder. Now others are building on it. But whoever is building on this foundation must be very careful. 11 For no one can lay any foundation other than the one we already have—Jesus Christ. 12 Anyone who builds on that foundation may use a variety of materials—gold, silver, jewels, wood, hay, or straw. 13 But on the judgment day, fire will reveal what kind of work each builder has done. The fire will show if a person’s work has any value. 14 If the work survives, that builder will receive a reward. (New Living Translation)

  예일대학교 기독교 역사학자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 1923~2006) 교수는 세계 역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나라의 안정과 행복이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역사, 예수와 만나다’라는 그의 책을 보면, 예수라는 인물이 역사속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시대마다 예수가 어떻게 조명되었는지를 역사적 식견을 가지고 고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강한 빛과 예수의 음성을 듣고 이방인을 향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이방인을 향한 ‘환대의 복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사용하여 복음이 유대교에서 벗어나 모든 민족으로 뻗어 나가도록 하셨지요.

2천년 교회사를 보아도 많은 사람들의 피흘림을 통해서 교회가 성장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스스로 고난을 겪으며 교회를 지켜왔지요. 그래서 교회론의 핵심은 ‘고난’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 중에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세상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우리는 평화의 도구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변화 시키려다가 먼저 세속화되어지고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초대 기독교는 핍박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내며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정식 종교로 공인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후 교회는 가슴 아픈 분열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분열을 거듭합니다.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 분열,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 분열, 451년 칼케돈 공의회 분열, 11세기 필로오케 논쟁으로 인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열,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한 분열, 그 이후에도 수많은 교단과 교파로 분열이 되었습니다. 이면에는 여러 논쟁, 개혁, 다름과 불신으로 인한 갈라짐인데 그 역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흘림이 있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교회론은 Ecclesiology라고 하는데, 이는 Ecclesia 와 Logos 의 합성어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Ecclesia는 “시민들의 모임 혹은 총회”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 사귐을 얻고, 로고스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하나님께 받아 들여진 사람들을 에클레시아로 불렀습니다. 바울의 교회론은 유대교의 ‘예식’과 ‘할례’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는 부활후 승천하시기 전에 유대교에서 벗어나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령의 오심은 모든 민족이 한소망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그들의 다름이 분열의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헬라어로 민족을 의미하는 단어는 ‘에토스’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를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에 있어서 첫째가 좋은 성품이요, 둘째는 실천적 지혜이며, 셋째는 사심없는 마음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분열과 불신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수많은 거짓 뉴스와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은 서로를 두려움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지요. 우리는 ‘거룩한 에토스’를 형성하기 위해서 인격과 영성과 성품이 더 깊어져야 합니다. 뭐든지 자기 좋을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분열의 담장을 높이 쌓아 올리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분리의 담은 절대로 허물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담을 허무는 사람은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낮은자의 자리에서 섬기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 자신을 몸을 던졌습니다. 자신의 몸이 찢기며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욕망으로 돌아가던 역사의 수레바퀴에 자신을 몸을 던져 그 방향을 거꾸로 돌리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기독의 신앙의 신비입니다.

고린도 지역은 로마시대 4대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상업도시로 성장하며 각종 문화가 혼재해 있었고, 물질 문명이 발달했으며, 세속 문화가 도시의 발전과 함께 왕성해져 있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와 로마신들을 숭배하며 성도덕이 문란했고, 지식층들은 철학적 종교들을 신봉했습니다. 로마 도시의 슬로건(Slogan)이 “하나의 도시, 하나의 시민” (Cosmopolitan) 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추구하는 “하나의 공동체”와는 목적이 다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하나됨’(oneness) 안에서 모든 민족을 ‘받아들임’(openness) 으로 세상에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각종 우상숭배를 다 받아들이는 혼합주의와 우상숭배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본문 1절로 3절에서 바울은 ‘성령에 속한 사람’과 ‘세상에 속한 사람‘을 대조하며 말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교회 안에서 시기와 다툼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성령에 속해서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결혼한 두 사람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마 19:6) 라고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가정 뿐 아니라 교회인 공동체에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Augustinus,354~430) 인간의 연약한 본성을 알기에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른이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은 가는 곳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그 사랑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속에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사랑이 심기면 구원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육으로 사는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예수께서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은 새로운 자아가 자라나고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혈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이고 은혜가 넘치도록 하는 것이지요.

바울이 고린도 지역의 타락을 보고 절망하고 떠났다면,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중에 이 지역에 머물다가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바울이 교회를 개척하고 난 후에 고린도 교회에는 아볼로라는 사람이 교회를 맡아서 사역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바울은 개척한 목사이고, 아볼로는 2대 후임목사입니다. 목회자들도 어떤 분은 심방의 은사가 있고, 어떤 분은 찬양의 은사가 있고, 어떤 분은 행정의 은사가 있고, 어떤 분은 제자훈련을 잘하는 분도 계십니다. 한사람이 다 잘 할 수는 없지요. 문제는 고린도 교회가 이로 인해 여러 파가 생기고 분열이 생겼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4 어떤 사람이 “나는 바울파다”라고 말하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파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13에 보면 “도대체 그리스도가 나뉘었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여러분 누가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셨지요? 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끼? 우리가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만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교회를 세우라고 편지하는 것입니다.

5 도대체 아볼로가 무엇이고 바울이 무엇입니까? 나나 아볼로나 여러분을 믿도록 하고,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셔서 일하는 일꾼에 불과합니다. 6 나는 씨앗을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에 부름 받은 목회자는 받은 은사대로 충성하며 섬기는 사람입니다. 목회자들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들이 다 다릅니다. 이 모든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목회자는 오직 심고 물을 주기 위한 섬기는 자이며, 하나님만이 자라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할 일을 맡기셔서 일하는 일꾼일 뿐이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목회자도 임원도 직분자도 교사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꾼들일 뿐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낮아짐의 자리에서 복음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7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인 하나님은 중요합니다. 8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의 목적 때문에 일을 합니다. 각 사람은 자기가 한 수고만큼 보수를 받을 것입니다.

세상의 가장 위대한 일인 구원은 오직 주께만 있습니다. 구원만큼 더 크고 위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쓰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와 보람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면 되는 것이지요. 찬양과 존귀와 영광은 하나님만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신실한 예배자가 되어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상은 현재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이 있겠습니까? 실제적 삶의 능력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가 현실에서 보게 되는 것만큼 큰상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이 받아드려지는 것은 인생의 큰 기쁨이고 축제입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곳에서 누리게 되는 상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간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10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대로 유능한 건축가처럼 기초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위에 건물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이 기초 위에 어떻게 건물을 세워야 할지 주의해야 합니다.11 아무도 이미 놓여 있는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한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건물의 기초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년수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 생활에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예수 얻으면 다 얻은 것이고 모든 것을 다 얻어도 예수 잃어 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예수가 없는 곳이라면 내가 서있는 어디라도 선교지임을 기억하십시요.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자신의 일에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안에서 각 지체들에게  주신 은사를 인정하며 함께 예수의 몸을 이루며 성숙한 신앙을 향해 걸어갑시다. 교회의 기초가 되시는 주의 이름만을 높이며 그 안에 거하시기를 훈련합시다..

여기에 모인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주목한다면 하나됨은 가능하지 않을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됨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의 교회와 지체들을 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길때에 내 마음에 진실한 눈물도 주시고 뜨거운 마음도 주셔서 세상의 기쁨보다 주안에서 함께하는 기쁨을 느끼게 되는것입니다.

이사야는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의 전에 모여들 그 날이 장차 있을 것을 바라봅니다(사 2:2).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라 선포하지요. (사 56:7) 그리고 이사야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 이니라”(사 60:1) 외치며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게되는 비전을 60장 전체를 통해 전합니다.

여러분, 교회의 반석이며  요새가 되시는 구원자가 누구입니까? 교회의 방패가 되시고 힘과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주님께서는 슬픔 중에 부르게 될 노래가 되시고, 우리가 사는 이유와 목적이 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한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12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또는 나무나 풀이나 짚 등을 이용하여 건물을 세울 것인데 13 각 사람이 일한 성과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불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한 것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이 각 사람의 한 일을 검증할 것입니다.

케임브리지 교회에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면 좋겠습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고난의 불이 임하면 금방 무너지고 타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이나 보석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어떤 시험과  환란 가운데서도  버티고 지켜낼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모여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내 힘으로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런것입니다 . 나의 마음을 지켜낼 실력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내기 위해 진실하게 살아내야합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워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회의 역사를 써가는 일에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케임브리지  교회에 오직 주인이신 주님만이 존귀와 영광 받으시고, 우리는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와 어려운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 무너진 그 자리에 그저 묵묵히 함께 걸어감으로 힘이 되어줄수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세속의 물결이 틈타지 못하는 교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의 지체들을 찾아가 안부할수있는 교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지만 묵묵히 걷는 그 길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새신자들을 위한 메세지 the way only way 를 소개합니다.

인생은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때 갈등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는것 같습니다

첫째는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길을 가고 싶었는데 막상 가 보니까 그길이 아니었거나 또는 그 길에서 계속 방향을 찾지 못하고 맴맴 돌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길이 아닌길을 가려하고 길이 없는 길을 뚫어보려고 애쓰는것입니다.

두번째는 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진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거짓이었고 사랑인줄 알았는데 배신이었고 진실인 줄 알았는데 허위였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가짜를 붙들고 진짜처럼 목말라했던 것입니다.

셋째는 잃어버린 생명입니다. 모양은 있는데 생명은 없고 형태는 있는데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죽은 나무 붙들고 꽃이 피기를 바라는것이지요. 그런데 주님을 만날때 잃어버린 길에서 등대를 발견하는 것이고

거짓과 허위속에서 맴돌고 살았떤 자기 자신에게서 진실한 진리와 빛을 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저희 희망도 없고 도저히 갈 길도 없었던 죽음 앞에서 생명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없는 거짓말과 위선속에 살다가 진실한 사람 하나를 만나면 눈물이 나는것이지요. 우리는 수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억압 되어 있습니다. 소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눔이 중요합니다

그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안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새가 알을 까고 나오듯이 우리의 영혼은 모든 죄와 허물과 죽음의 세계를 깨고 생명으로 잉태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꽁꽁 얼어 붙었던 대지에 꽃이 피듯이 죽었던 나무에 새싹이 돗듯이 당신의 인생에 꽃이 피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마음에 모셔보십시오. 그분의 이름을 불러보십시오. 당신의 영혼은 그 순간 변하게 될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와 공동체가 이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더 깊은 교제 가운데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9.25.22 주일설교

물문 앞 광장에서

The place in front of the Water Gate

느헤미야 8: 1-12

유민용 목사

1 <에스라가 율법을 읽다> 일곱째 달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물 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책을 읽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2 그래서 제사장 에스라가 무리를 위해 율법책을 가져왔습니다. 그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듣고 깨달을 만한 사람은 다 모여들었습니다. 3 에스라는 ‘물 문’ 앞 광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율법책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에스라는 듣고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었고, 그들은 율법책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4 에스라는 높은 나무 단 위에 섰습니다. 그 나무 단은 이번 일을 위해 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에스라의 오른쪽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가 섰고, 왼쪽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 섰습니다. 5 에스라가 율법책을 폈습니다. 에스라가 높은 데에 서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다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책을 펴자, 모든 백성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말하면서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7 낭독을 듣기 위해 서 있는 백성들에게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가 율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8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설명해 주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들이 읽어 주는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9 그런 뒤에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 그리고 백성들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오. 울거나 슬퍼하지 마시오.” 그들이 이 말을 한 것은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기 때문입니다. 10 느헤미야가 말했습니다.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수를 드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오늘은 주의 거룩한 날이오. 슬퍼하지 마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곧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이오.” 11 레위 사람들이 백성을 달래며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마시오.” 12 그러자 모든 백성이 가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었고,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들은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쉬운성경)
1 all the people assembled with a unified purpose at the square just inside the Water Gate. They asked Ezra the scribe to bring out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which the Lord had given for Israel to obey.2 So on October 8[a] Ezra the priest brought the Book of the Law before the assembly, which included the men and women and all the children old enough to understand. 3 He faced the square just inside the Water Gate from early morning until noon and read aloud to everyone who could understand. All the people listened closely to the Book of the Law.4 Ezra the scribe stood on a high wooden platform that had been made for the occasion. To his right stood Mattithiah, Shema, Anaiah, Uriah, Hilkiah, and Maaseiah. To his left stood Pedaiah, Mishael, Malkijah, Hashum, Hashbaddanah, Zechariah, and Meshullam. 5 Ezra stood on the platform in full view of all the people. When they saw him open the book, they all rose to their feet.6 Then Ezra praised the Lord, the great God, and all the people chanted, “Amen! Amen!” as they lifted their hands. Then they bowed down and worshiped the Lord with their faces to the ground.7 The Levites—Jeshua, Bani, Sherebiah, Jamin, Akkub, Shabbethai, Hodiah, Maaseiah, Kelita, Azariah, Jozabad, Hanan, and Pelaiah—then instructed the people in the Law while everyone remained in their places. 8 They read from the Book of the Law of God and clearly explained the meaning of what was being read, helping the people understand each passage.9 Then Nehemiah the governor, Ezra the priest and scribe, and the Levites who were interpreting for the people said to them, “Don’t mourn or weep on such a day as this! For today is a sacred day before the Lord your God.” For the people had all been weeping as they listened to the words of the Law.10 And Nehemiah[b] continued, “Go and celebrate with a feast of rich foods and sweet drinks, and share gifts of food with people who have nothing prepared. This is a sacred day before our Lord. Don’t be dejected and sad, for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11 And the Levites, too, quieted the people, telling them, “Hush! Don’t weep! For this is a sacred day.” 12 So the people went away to eat and drink at a festive meal, to share gifts of food, and to celebrate with great joy because they had heard God’s words and understood them. (New Living Translation)

설교 본문을 묵상하며 제 마음이 머문 곳은 총독 느헤미야도 학사 에스라도 아닙니다. 물문 앞 광장에 나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복받쳐 울던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곳 보스턴에 와서 매주일 제단에 올라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제 마음 한켠에 울컥한 마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익숙한 지역과 환경을 떠나 낯선 곳에 있어서도 아니고,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도 아닙니다. 현재의 시간속에서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여’(스 1:1) 여호와의 손길을 증거하며 성전을 재건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후에도 아닥사스다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움직여 관대한 정책을 펼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 안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초대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 안에서 살아가지만 역사속에서 세상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우리를 도우심을 믿음으로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가 다르고 사람마다 각자의 처한 상황에 맞는 은혜가 다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늘 최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끝까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문을 통과한 사람들을 동문이라고 합니다. 같은 학교를 졸업 한 사람들, 한 스승에게서 배운 사람을 이르는 말이죠. 우리는 선생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통과한 문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가 되려면 주님의 DNA를 닮아가며 주의 바른 교훈을 듣고 실천하며 주님이 걸어가신 문을 함께 통과해야 합니다. 주님이 인생의 문을 여시지 않으면 내 앞에 닫혀진 문은 벽에 불과한 것이지요.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구원의 문으로 들어 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오는 여러분의 마음에 거룩한 갈망이 솟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황금문으로 불리는 동쪽문을 통하여 성전에 들어가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황금문에는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있는데,  하나는 ‘자비의 문’ 또 다른 하나는 ‘회개의 문’으로 불리는 문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동쪽 문(황금문)으로 들어간 뒤 문이 닫혀 다시는 열리지 않으며, 메시아가 올 때에야 문이 열린다고 생각했습니다.(에스겔, 44:1-3). 그래서 유대인과 무슬림은 지금도 메시아가 예루살렘 성전 동문을 통해 온다고 믿고 있었기에 AD 801년 이후 예루살렘을 점령한 무슬림은 성의 동쪽문을 폐쇄했습니다. 그러다가 1102년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의 승리로 다시 이 문을 열었지요. 그러나 무슬림에 의해 다시 폐쇄되었습니다. 현재는 무슬림들이 예루살렘 성 동문 앞을 공동묘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종교적 열심이 부른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잃어 버린 종교적 열심은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며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지요. 타자를 배려하는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성취해 나가는 케임브리지 교우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9. 20절을 보면,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휘장이 찢어졌습니다.(히 10:19,20) 하나님은 그 곳을 떠나 다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사도행전 17:24).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주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놓으셨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문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문은 닫을 자가 없고, 그 길은 막히지도 않는 길입니다. 그 문은 누군가를 짓밟고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잃은 양을 끝까지 찾아 헤매는 목자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부르심을 받는 청지기들이 사명을 완수하고 들어가는 문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10개가 있었습니다. 10개의 문들 가운데 물문은 예루살렘 성문 가운데 하나로 물을 실어 나르던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느 3:26) 이 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고, 이 광장은 성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느헤미야 3장에서는 10개의 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물문을 7번째 소개하고 있습니다. 7번째 언급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1 일곱째 달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물 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죄의 영향력 아래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경외감이 사라지면 가던 길에서 방향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경외감은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하는 친밀감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성밖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느헤미야를 통하여 다시 부르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자기 마을에 자리 잡고 살게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다른 선지자들 처럼 제사장의 가문도 아니었고 평민 출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와 개인적인 경건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던 인물입니다. 느헤미야 1장부터 7장에 보면 그는 기도로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8장부터는 영적 회복의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2 그래서 제사장 에스라가 무리를 위해 율법책을 가져왔습니다. 그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듣고 깨달을 만한 사람은 다 모여들었습니다. 3 에스라는 ‘물 문’ 앞 광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율법책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에스라는 듣고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었고, 그들은 율법책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이 모였습니다. 말씀은 삶으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한계상황에서도 말씀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살아납니다. 말씀은 ‘information'(지식전달)이 아니라 ‘formation'(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태양계에 점에 불과하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면 먼지 같은 존재인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Spiritual formation'(주의 성품으로 닮아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살아납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자도 말씀을 연구하다 보면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 이해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말씀을 갈망하다 보면 말씀의 신비 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읽었으니 대략 잡아도 한 6시간 이상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깨달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인 것입니다. 말씀을 향한 목마름과 하나님의 말씀이 만나게 되면 새 역사가 시작되지요. 목마른 예배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갈망하는 예배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 지는 것이고, 찬양은 부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표현이며, 기도는 생수의 강이 입술을 통해 넘쳐나는 것이지요.

인류역사에 있어서 물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인류의 기원에 있어서 물은 생존이며 생명입니다. 물에 담긴 성서적, 신학적 의미는 정화(Wash)시키는데 있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가 됩니다. 주의 보혈이 흐르는 곳에는 항상 깨끗함이 있지요. 그래서 세례수에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홍해의 사건인 ‘구원’과 노아의 방주때 40주야 비를 내리시며 물로 의인과 악인들을 가려 내시는 ‘심판’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으로 가득찬 세상을 정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으로 접속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물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생기가 넘치고 (Refreshment) 생명의 물을 마시는 자는 성령 안에서 새 삶을 발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비싸도 더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싶어 합니다. 과거에 물을 사 먹게 될꺼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은 웃었지요. 그러나 요즘은 좋은 물을 사서 마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것 뿐입니까? 누릴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없습니다. 더 편리함을 찾는 세상이지요. 채우고 가져도 우리의 마음은 다른 것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보게 되어 있지요. 그러나 채울수록 결핍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영적으로는 주님을 더 사랑하고 갈망하지만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지요.

4 에스라는 높은 나무 단 위에 섰습니다. 그 나무 단은 이번 일을 위해 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제사장 에스라는 임시로 만든 높은 단 위에서 말씀을 낭독합니다. 말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은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게 되고, 매일의 양식을 통하여 영적 굶주림과 배고픔이 채워집니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 중에 ‘프리츠 크라이슬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악기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한 악기 상에서 자기가 정말 원하는 악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돈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악기상 주인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악기를 팔지 말라고 내가 돈을 모아 오겠다고, 그런데 그 금액이 너무 커서 수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돈을 다 모아서 악기 상에 왔더니 그 악기가 바이올린 수집가에 팔리고 없는 겁니다. 수소문 하여 그 사람 집에 찾아가 악기를 자기에게 팔라고 하니 거절합니다. 그래서 한 번만 연주를 할 수 있겠느냐, 청을 하고 연주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부자의 얼굴이 점점 변하더니 마침내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바로 이 바이올린의 주인이셨군요. 제가 이 악기의 행복을 위해 주인에게 이 악기를 돌려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완벽한 연주자이십니다. 내 삶을 연주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신앙을 조율하십시요. 하나님은 인생을 통해 놀라운 음악을 연주하실 것입니다. 저는 매주 성가대의 찬양을 들을 때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의 전부를 드려 노력하고 공부한 것을 드리는 자리이기에, 믿음을 표현하는 자리이기에 기쁨과 은혜가 차오릅니다. 우리의 교회도 그렇게 걸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배경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이 같아서 그 마음으로 서로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나의 소리가 커지는 것을 줄이고 함께하는 ‘동행’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며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말하면서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아멘은 하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게 되면 경배의 모습, 예배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은 영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도록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초대하며, 지속적으로 동행하는 삶입니다. 

9 그런 뒤에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 그리고 백성들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오. 울거나 슬퍼하지 마시오.” 그들이 이 말을 한 것은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회복시키시니 백성들의 마음에 감정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눈물 속에서 그동안의 아픔도 상처도 흘러 나갑니다. 눈물을 통해 회개가 일어납니다. 그 눈물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로 결단하는 눈물이었습니다. 크리스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요. 주일은 하나님의 잔치에 초대받아 누리는 기쁜날 인것입니다. 기쁜날 사랑의 교제를 하실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더없는 기쁨의 자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슬픈 감정들은 내려놓고 기쁨으로 살아가라고 그 눈물을 자제 시킵니다. 말씀에 기초해 은혜를 받으면 감정의 변화가 찾아오고, 회개하고 은혜를 받으면 이제는 순종함으로 삶의 자리로 나아가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10 느헤미야가 말했습니다.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수를 드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오늘은 주의 거룩한 날이오. 슬퍼하지 마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곧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이오.” 11 레위 사람들이 백성을 달래며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마시오.” 12 그러자 모든 백성이 가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었고,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들은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  ‘힘’이란 단어의 원어는 ‘마우제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뜻이 ‘방파제’라는 뜻입니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아름답지요. 하지만 숲속 안으로 들어가 보면 곤충, 벌레들, 부러진 가지들, 버려진 쓰레기도 눈에 들어옵니다. 꽃들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땅속 밑은 거칠고 어둡습니다. 그런데 태풍과 비바람으로 부터 지켜주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속에 심긴 뿌리들입니다. 캐나다 산림 생태학 교수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는 20년 이상 연구해온 결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뿌리들이 어둡고 거친 땅 깊은 곳에서 균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양지에서 자란 큰 나무들의 뿌리들이 음지에 있는 작은 나무들에게 뿌리를 통해 탄소를 나눠주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땅속 밑에서 뿌리를 통해 물과 영양분을 교환하며 서로 소통하는 것이죠. 이 힘이 해충으로 부터 지켜내며, 숲을 보존해 주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땅을 디딛며 살아갑니다. 세상을 이길 진정한 방파제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리며, 서로가 돕고 베풀며 연약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생존에 밀려 낙오된 이들이 다시 일어 설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말씀의 권위에 깊이 뿌리 내리며 거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님의 신비속에서 서로 공생하는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비드가 시작되고 락다운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시간을 마주했습니다. 늘 가던 곳이 닫혀 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마음도 서로를 향한 관심도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지요. 저도 그 시간에 늘 걷던 길이 있었습니다 매일 그 길을 걸으며 자연속에서 주시는 은혜를 구했습니다. 추운 겨울 성탄절이 다가오던 즈음에 언제나 걷던 그 길가의 큰 나무에 누군가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기뻐합니다. 어제는 그냥 걷던 산책길이었는데 누군가의 사랑과 섬김으로 따뜻한 산책길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곳곳에 그런 사랑의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환경과 역경들 가운데 진정한 교제 가운데로 나와서 아픈 삶을 드러내시며 말씀으로 위로 받고 깊이 뿌리 내리십시요. 하나님의 집은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연결되어 유지되고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영혼이 기쁨을 누리시기 축복합니다. 서로를 바라보시며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케임브리지 교우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 기사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채교수는 시카고 노스웨스턴대 종양내과 의사입니다. 그는 말기암 희귀암 전문의인데, 실제 병실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Can I pray for you?)’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이 말이 책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는 환자의 손을 잡고 하는 기도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사랑이 없는 마음에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셔서 아프고 피곤한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진료하고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매달린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겸손, 이 가난한 마음이 없이는 나에게 소망이 없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까지는 나는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어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우쭐해 하고 잘난 사람을 보고는 우울해 했다. 배후에는 엘리트들이 놓 지 못하는 자기사랑, 자기연민이 있었다. 자아가 없어진 공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고, 비로소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들 옆에서 끝까지 옆에서 마라톤을 함께 뛰는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완주할 것을 다짐했다.”

나의 자아가 깨어진 곳에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사랑이 필요한곳에 나를 도구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우리가 만나는 지체들에게 많은 말보다 이 한마디로 마음을 전할수 있는 귀한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