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0.2023 주일 설교

(부활메시지 4)

마태가 전하는 복음

The Gospel of Matthew

마 1:1, 2:13-23

유민용 목사

1:1 <예수님의 족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2:13 <예수님의 가족이 이집트로 피난 감> 박사들이 떠난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가거라.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하니, 내가 지시할 때까지 이집트에 머물러 있어라.”14 그래서 요셉은 한밤중에 일어나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15 요셉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 내었다.” 16 <헤롯이 사내아이들을 죽임>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박사들로부터 알아 낸 때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17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슬피 울며 통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기 아이들을 위해 우는데,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으려 하지 않는다.” 19 <예수님의 가족이 이집트에서 돌아옴> 헤롯이 죽자, 주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의 꿈 속에 나타났습니다. 20 “일어나라!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사람들이 죽었다.” 21 그래서 요셉은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갔습니다.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아버지 헤롯의 뒤를 이어 유대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그 곳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꿈에서 지시를 받고 나서 요셉은 갈릴리 지방으로 갔습니다. 23 그는 나사렛이라는 마을로 가서,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통해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The Ancestors of Jesus the Messiah 1:1This is a record of the ancestors of Jesus the Messiah, a descendant of David and of Abraham The Escape to Egypt 2:13 After the wise men were gone,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Joseph in a dream. “Get up! Flee to Egypt with the child and his mother,” the angel said. “Stay there until I tell you to return, because Herod is going to search for the child to kill him.”14 That night Joseph left for Egypt with the child and Mary, his mother, 15 and they stayed there until Herod’s death. This fulfilled what the Lord had spoken through the prophet: “I called my Son out of Egypt.” 16 Herod was furious when he realized that the wise men had outwitted him. He sent soldiers to kill all the boys in and around Bethlehem who were two years old and under, based on the wise men’s report of the star’s first appearance. 17 Herod’s brutal action fulfilled what God had spoken through the prophet Jeremiah:18 “A cry was heard in Ramah weeping and great mourning. Rachel weeps for her children,refusing to be comforted, for they are dead.”The Return to Nazareth 19 When Herod died,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in a dream to Joseph in Egypt. 20 “Get up!” the angel said. “Take the child and his mother back to the land of Israel, because those who were trying to kill the child are dead.”21 So Joseph got up and returned to the land of Israel with Jesus and his mother. 22 But when he learned that the new ruler of Judea was Herod’s son Archelaus, he was afraid to go there. Then, after being warned in a dream, he left for the region of Galilee. 23 So the family went and lived in a town called Nazareth. This fulfilled what the prophets had said: “He will be called a Nazarene.” (New Living Translation)

언젠가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모여 있는 캐나다 현지교회에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 한쪽 벽에 크게 출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도(Genealogy of Jesus Christ) 가 눈에 띄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에서는 뿌리를 중요시 여기는 기록이 많습니다.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가정과 배경을 밝힘으로 성서의 신뢰성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배경이 없는 사람을 소외시키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인 믿음, 하나님께 받는 사명, 성실하게 감당하는 그 사람의 삶의 태도도 매우 중요하게 기록해 놓습니다. 마태는 예수의 족보를 통해 창세기로 시작하여 예수님까지 내려오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예수에게서 완성됨을 전합니다.

1:1 <예수님의 족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헬라어 번역본으로 1절은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로 시작합니다.  “비블로스”(βίβλος) 는 “책”을 가리킵니다.  “게네세오스”(γενέσεως) 는 “게네시스”(γένεσις) 의 소유격인데 즉, 창세기라는 뜻입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서를 시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된 새로운 시대 즉 신약의 창세기를 열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왜곡된 세상을 새롭게 하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 족보는 누구는 누구를 ‘낳고’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사람의 이어짐을 ‘죽고’에 강조점을 두지 않고, ‘낳고’에 둔 것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족보가 끊기려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낳고’라는 생명의 탄생에서 끈질기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발견됩니다. 예수의 족보는 사망의 족보가 아니라 생명의 족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의 기원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신비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예수의 계보도를 깊이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삶속에는 순탄치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낳고’와 ‘낳고’ 사이에는 오래 세월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2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비옥한 땅이고, 물질적으로 풍요롭던 지역입니다. 이후 가나안으로 향하는 여정은 쉽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약속을 포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땅에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 가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의 족보에 실린 여자들은 대부분이 이방 여인들입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자를 족보에 언급하는 예도 없지만 하나님은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여인들을 통해서 예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족보를 보면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룻이라는 이방 여인의 믿음을 도외시 하지 않으십니다. 나오미의 가문에 모든 남자들이 다 죽게 되어 대가 끊어졌을 때, 하나님은 룻과 베들레헴에 살던 보아스를 만나게 하십니다. 보아스와 룻이 낳은 아들에게 사람들이 오벳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윗 왕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이지요.

예수의 오심은 다윗 왕가를 통하여 계속 이어집니다.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의 면모를 더듬어 보면 부끄러운 일이 많습니다. 다윗이 범죄함으로 낳은 솔로몬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곧 우리의 모습이며, 인간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는 다윗의 가문으로부터 왔지만 예수님의 탄생은 특정한 나라,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 끌려가 나라가 완전히 멸망했던 절망적 상황속에서도 햇살은 비추고 있었고, 하나님 나라는 땅속 깊이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3차에 걸쳐 귀환 시키신 것은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하는 순간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쉬지 않으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이제 예수의 출생 이야기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 친척집에 갔다가 몇개월 후에 돌아왔을 때에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리아는 이 아이가 성령으로 임신하게 된 것이라 설명을 하지만 요셉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워 조용히 관계를 끊이려 했습니다. 이 사건을 덮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요셉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요셉의 선택에 의해서 수천년 동안 메시아의 오심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던 사건입니다. 주의 천사는 마리아 데리고 오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예수가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실제로는 성령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암시한 것입니다.

21 그래서 요셉은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갔습니다.

성경은 요셉에게 아기 아빠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기 엄마를 데리고’라고만 말씀합니다. 육신의 아버지로 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고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이지요. 당시 헤롯왕은 2살 이하 모든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과 마리아는 애굽으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을 보면 마리아는 가난한 집안이었을 거라 추측이 됩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후에 정결예식을 하러 예루살렘 올라가서 비둘기로 제사를 드렸습니다.(눅2:24) 출산 후 정해진 정결례 제물은 ‘1년 된 어린양’입니다. 당시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어린양 대신 비둘기를 제물로 드리게 하는 약자 보호법이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비둘기를 드린 것을 볼 때 당시 마리아의 경제 상황이 넉넉하지 않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별을 따라 온 동방의 지혜자들이 바친 황금은 애굽으로 피신해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손에 잡히듯 생생하게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실패가 없습니다. 실패로 보이는 것까지 구원을 이루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한세대가 아니라 모든 나라 그리고 오는 세대를 행한 하나님의 사역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믿음의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말씀의 성취는 출세가 아니라 출애굽을 통한 삶입니다.

2:13 <예수님의 가족이 이집트로 피난 감> 박사들이 떠난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가거라.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하니, 내가 지시할 때까지 이집트에 머물러 있어라.”14 그래서 요셉은 한밤중에 일어나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15 요셉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 내었다.”

출세는 숨어 살던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올라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 됩니다. 출애굽으로 부터 시작되는 ‘구원 이후의 삶’입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은 새사람이 세상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그 인생이 잘되고 망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지는 것입니다. 출세를 위한 스펙쌓기의 삶에서 ‘순종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그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것이지요. 목적과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로만 삶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내는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복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가십시오.

헤롯왕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해서 요셉은 아기와 아기 엄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헤롯왕이 죽을때까지 거기에서 살았습니다. 마태는 이 일이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인 “내가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는 말씀이 성취되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탄생 과정에서 출애굽으로 피신하게 된 말씀을 완성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마태는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도피했다가 나사렛으로의 귀환하는 사건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과 비교함으로 예수가 인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출애굽 이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의 자랑은 세상의 성공과 출세였는데 출애굽 이후의 삶은 인간의 욕망보다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깊어지고, 세상의 스펙보다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 (창 22:18) 이라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지금도 말씀은 간절함으로 믿는 자들을 통해 성취되고 있습니다. 마태는 복음서를 마치면서 열방에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열방이 복을 받게 될 것과 예수를 통한 온 인류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두번째 예언의 성취는 헤롯왕이 두살 이하 아이를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16 <헤롯이 사내아이들을 죽임>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박사들로부터 알아 낸 때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17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슬피 울며 통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기 아이들을 위해 우는데,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으려 하지 않는다.”

헤롯의 악함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슬픔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악함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악한 권세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가득한 슬픔 너머에 뜻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 기록합니다.(렘 31:15) 라헬이 자식이 없으므로 애통합니다. 라헬의 자식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지요. 라헬이 낳은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 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슬픔이 많은 세상에 새 언약의 성취자로 오셨습니다. 라헬이 라마에서 애곡하는 이야기를 유대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녀를 낳으면서 그 아이가 죽어 갈때에 라헬에게 어떤 위로가 되겠습니까? 헤롯에 의해서 당시에 살해된 사내아이들의 엄마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낼 수 있겠습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으로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의 소망입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으로만 듣던 하늘 소망을 삶으로 만날 때에 소중한 이를 떠나 보내는 그 아픔과 상실의 경험도 하나님의 일하심과 소망의 품안에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이 우리 삶에 실제가 되는 은혜의 경험들이 우리 안에 차곡 차곡 쌓이게 되면 두려움안에서도 이겨낼 힘이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는 조각상을 보면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아들로 인하여 그 마음이 칼로 찌르듯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로 인하여 영원한 위로를 받습니다. 그 아들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성령이 임함으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라마의 통곡과 애통은 성령을 부어 주실때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자가 바로 자신임을 깨닫게 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애통하고 통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에게 참된 위로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에게 작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아버지 헤롯의 뒤를 이어 유대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그 곳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꿈에서 지시를 받고 나서 요셉은 갈릴리 지방으로 갔습니다. 23 그는 나사렛이라는 마을로 가서,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통해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세번째로 성취된 말씀입니다. 예수의 시작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천한 장소였습니다. 나사렛은 전통이 없는 무명의 마을이며, 이방인들이 섞여 살던 작은 동네입니다. 나사렛 출신의 사람은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나사렛에서 메시아를 보았다고 말했을 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요1:46) 마태는 구약의 예언자를 통해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한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애굽으로 피신한 요셉 가족은 헤롯왕이 죽은 후에 당연히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 순간에 다시 꿈에 나타난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고 나사렛 동네로 들어가 살게 됩니다. 그렇게 나사렛 지역은  예수의 고향 땅이 되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나사렛’이라는 기원을 ‘네체르’라고 발음되는 ‘가지’, ‘싹’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1)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께서 연한 싹과 같은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죽어 보이는 가지에 작은 순이 돋아 나는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도와 주시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세대나 진리를 꺾고 바른 힘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무너 트릴수 없습니다. 믿는 자들을 이길 세상의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취되는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 안에 있으면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평안함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깨어 기도하며 주님과 더욱 친밀해 지십시오. 하나님은 문제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문제 안에 하나님을 가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그분과 동행하는 삶은 어려운 순간에 더 큰 열매로 드러나게 됩니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가십시오. 하나님에게 작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믿음의 지체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04.23.2023 주일설교

(부활메시지 3)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Living a new life in Christ

골로새서 3:1-11

유민용 목사

3:1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십시오. 그곳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3:2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3:3 옛 사람은 죽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3:4 여러분 모두는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 가운데 그분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3:5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죄악된 것은 다 버리십시오. 성적인 죄, 악한 행동, 나쁜 생각, 지나친 욕심 등은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입니다.
3:6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화를 내실 것입니다.
3:7 여러분이 예전에는 이런 일들을 했을지 모릅니다.
3:8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이런 것들을 몰아 내려고 힘쓰십시오.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9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3:10 여러분의 삶 속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새 생활 가운데 더욱더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그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점점 더 자라날 것입니다.
3:11 새로운 생명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할례를 받은 사람이든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야만인이든지 스구디아인 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믿는 자의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쉬운성경)

1 Since you have been raised to new life with Christ, set your sights on the realities of heaven, where Christ sits in the place of honor at God’s right hand. 2 Think about the things of heaven, not the things of earth. 3 For you died to this life, and your real life is hidden with Christ in God. 4 And when Christ, who is your life, is revealed to the whole world, you will share in all his glory. 5 So put to death the sinful, earthly things lurking within you. Have nothing to do with sexual immorality, impurity, lust, and evil desires. Don’t be greedy, for a greedy person is an idolater, worshiping the things of this world. 6 Because of these sins, the anger of God is coming.7 You used to do these things when your life was still part of this world. 8 But now is the time to get rid of anger, rage, malicious behavior, slander, and dirty language. 9 Don’t lie to each other, for you have stripped off your old sinful nature and all its wicked deeds. 10 Put on your new nature, and be renewed as you learn to know your Creator and become like him. 11 In this new life, it doesn’t matter if you are a Jew or a Gentile, circumcised or uncircumcised, barbaric, uncivilized, slave, or free. Christ is all that matters, and he lives in all of us. (New Living Translation)

지난주 월요일에 보스턴에서 국제적인 큰 행사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127년 동안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달렸을까요? 삶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기 위한 사람들,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위한 이들, 완주의 영광을 누리고 싶어서 달린 이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 달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염원을 담고 목적지를 향해 경주를 했을 것입니다. 가끔 새벽기도가 끝이 나고 저도 가볍게 동네 한바퀴를 뛰고 옵니다. 그때에 함께 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삶을 응원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른 마음으로 뛰는 그 자리의 끝에는 하나님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으면서 말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마라톤과 같은 믿음의 경주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에 비유합니다. 경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목표이지요. 1984년에 세상을 떠난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Francis A. Schaeffer, 1912- 1984) 말년에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암과 혹독하게 싸우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젊은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캠퍼스 사역에 나섰습니다. 쉐퍼는 ‘이 세상에는 확고한 가치와 기준이 없다. 그러니 젊음의 때에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될때에 향락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쉐퍼는 몸속에 암이 퍼져가고 있었지만 영원한 나라의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왜 뛰고 있는지, 왜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 목표가 흔들리면 길 위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부활주일을 지나 부활의 신앙을 마음에 품고 살아 가야 합니다. 십자가 사랑이 나를 살리셨으니 이제는 자기자랑과 세상의 가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합니다. 십자가가 진심으로 내 삶에 다가올때 옛자아가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 살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면서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한파가 찾아와도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지체들을 보면서 이들의 이 귀한 마음이 주님 앞에 올려 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지체들을 보면 그들의 삶의 자리에 주님이 친히 찾아가 주셔서 위로하여 주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는 사랑으로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새로운 삶’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경험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하시니,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 ‘새로운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천년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쓴 바울의 서신을 읽을 때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까? 성령의 깨달음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바울은 ‘새로운 삶’을 부여 받는 사람들은 하늘의 가치를 사랑하고(1절) 하늘의 가치를 생각하며(2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영광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4절) 제시합니다. 바울 자신도 오직 내가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간다고 표현했습니다.(빌3:12) 그렇다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삶의 방향입니다.

거룩함을 잃어가는 삶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삶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하늘에 목적지를 두기에 하늘에 속한 경주자가 됩니다. ‘믿음을 통한 칭의’는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달라졌기 때문에 ‘옛사람’의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옛사람에 대해서 죽었고, ‘새로운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고백하지요. ‘버린다는 것’은 삶의 우선 순위가 ‘달라진 것’입니다. 정글의 맹수들에게는 맹수들의 생활이 있고, 맹수의 위협을 받는 초식동물들도 그들만의 생활 방식이 있습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도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 사건을 통해 부활에 대해서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하나님의 타이밍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 라고 말씀하셨지요. 예수님은 온 천하와 생명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하를 얻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새생명’입니다. ‘새생명’은 현재를 살며 삶을 연장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주시는 ‘부활의 생명’이지요. 죽음에 의해서도 파멸되지 않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나사로는 살아났지만 다시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로 사건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 생명은 땅의 것을 끊어내는 능력이며,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믿을 때에 주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광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매일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완전’이지요. 바울은 율법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고 난 뒤에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삶의 목적지가 분명해 진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경주자는 옛사람을 벗어내야 합니다

3:5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죄악 된 것은 다 버리십시오. 성적인 죄, 악한 행동, 나쁜 생각, 지나친 욕심 등은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입니다.
3:6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화를 내실 것입니다.
3:7
여러분이 예전에는 이런 일들을 했을지 모릅니다.
3:8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이런 것들을 몰아 내려고 힘쓰십시오.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9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가볍게 하고 경주에 임하게 됩니다. 무거운 옷을 입고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를 달고 경주에 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경주자에게 있어서 무거운 옷은 ‘죄이며 땅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 몸 안에 안 좋은 세포가 자라고 있다면 그것을 도려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냥 두게 되면 생명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들이 버려할 할 것들 중에 성품적인 것과 행실적인 측면에서 10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적인 죄, 악한 행동, 나쁜 생각, 지나친 욕심, 하나님 외에 더 소중히 여기는 우상들 그리고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과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벗어 버리는데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벗어 버리라’는 말은 옛사람을 따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있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탄식하는 마음을 주시고, 옛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릴 새힘을 주십니다. 바울은 이 모든 과정들이 믿음의 여정의 한 부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직 완전해 진 것도 아니고 이미 이룬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고백한 것 같습니다.(빌3:12) 예수님은 우리가 넘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기다려 주시고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면죄부를 이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고백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며, 어제의 나와 모습과 오늘의 모습이 달라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일 자아가 죽는 경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가 마지막의 때를 향해 나아갑니다. 자아가 죽는 경험도 이처럼 실제적인 것입니다. 마지막이 없는 것처럼 오늘의 기쁨만을 추구하며 살아가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경험되어지는 수많은 감정들 역시 하나님께서 다루어 가실 것입니다. 과거에 묶이지 말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새생명이 되었으니 이미 우리 안의 완악함은 십자가에 함께 못박혔습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땅의 것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하는 반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의 심판이 아니라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바로 이곳, 바로 여기에 우리가 바라 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정체성이 변화되고, 삶의 존재가 변화 된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자녀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선이 향하고, 예수님이 걸어 가시는 방향으로 우리의 발걸음이 향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품’ 안에서 누리는 은혜입니다.

3:10 여러분의 삶 속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새 생활 가운데 더욱 더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그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점점 더 자라날 것입니다.

뱃속의 아이에게 뱃속 밖의 세상을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깥 세상에 나오게 된 후, 아이는 세상을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영적 세례를 받고 부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이 생명의 경험이 더 깊어 지고 생명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계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가게 되니까 세상속에서 살아가지만 죄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 (聖化)의 삶입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셋째로 ‘새사람’이 되는 변화는 모두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3:11 새로운 생명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할례를 받은 사람이든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야만인이든지 스구디아인 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믿는 자의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 지식을 모든 인류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인, 유대인, 할례를 받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야만인, 스구디아인, 종이든, 자유인이든 새롭게 되는 지식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차별이 존재하지요. 부모에 따른 차별, 신분에 따른 차별, 재물에 따른 차별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불과 100년전 만해도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이 사회적 합의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도 성경적 견해를 갖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인종문제를 성경의 기준대로 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감리교의 설립자 웨슬리와 같은 인물들입니다. 웨슬리는 상위계층으로 부터 내려와 옥외 설교를 하며 당시 부를 부당하게 축적하는 계급층들에게 정당하게 부를 사용하라고 설교했습니다. (1)“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라”. (2)“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 (3)“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주라” 이 설교는 물질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두고 청지기 신분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전히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매일 호흡하게 하시고, 매일 허락하시는 생명을 값없이 받고, 아침마다 허락하시는 태양으로 인해 새날을 맞이합니다. 문제는 이것을 당연하다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자신이 탕감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이 됩니다. 신앙의 년수나 성경적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부족한 나의 삶에 찾아 오신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지금 잡고 놓지 못하는 손을 펼쳐도 아무 것도 잃어 버리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잃을것  같은 두려운 우리의 마음에 내가 그 동안 쥐고 있었던  것이 별 것이 없었음을 느끼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사이에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모든 장벽들을 다 허무시고, 너와 나 우리의 공동체를 연결하는 삼겹줄이 되어 주십니다. 죄는 끊임없이 담을 세우려 하고, 벽을 쌓으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죄는 아무 효력이 없게 됩니다. 이 위대한 선물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금요찬양 예배의 결단 찬양이었습니다. 한주동안 이 찬양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내 안에 주님을 찾고 바라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늘을 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세상을 살다가 마음의 먹먹함이 내 삶을 짓누를때

그제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이 분주하게 세상을 살다가 인생의 허무함이 내 삶을 짓누를때 그제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돌보시는데

부족한 내 영혼은 아직도 갈 길을 모릅니다.

내게 믿음 주소서 내 연약한 마음 돌보소서 한없는 주님의 사랑 알게 하소서

영원까지 그의 백성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는 새사람이 얻게 된 새로운 지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의 기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믿는 자의 마음 속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울어도 하나님 앞에 울어 보십시오. 그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의 배를 띄우는 눈물이 되게 하십니다. 답답해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로 풀어 내보십시오.

사람 앞에 풀어 낼 때 그 말은 죄의 씨앗이 되고 내 몸과 마음이 죄의 지배를 받지만, 하나님 앞에 풀어내면 거룩한 믿음의 깊이를 갖게 하십니다. 화가 나고 불평할 일이 생길 때에 큰 숨을 쉬시며 주님의 이름을 세번 불러 보십시오. 처음 숨에 ‘나의 교만과 나의 분노’가 사라지고 두번 숨에 ‘주님이 사랑하시는 나’를 깨닫게 하시고, 세번 숨에 ‘내 삶에 주님의 은혜’밖에 없음을 느끼게 하실 것입니다. 믿는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의 눈물 찬양의 눈물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 눈물의 고백으로 옛자아와 본성이 하나님 앞에 죽어지고, 성령 안에서의 새 삶으로 살아내게 되는 은혜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