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22 주일설교

하나님 백성의 품격

The dignity of God’s people

스가랴 4:1~7

4:1 <다섯 번째 환상: 등잔대>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내게로 돌아와서 나를 깨웠는데, 나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 2 천사가 내게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대답했다. “순금으로 된 등잔대가 보입니다. 그 꼭대기에는 그릇이 있고 등잔이 일곱 개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 받침도 일곱 개 있습니다. 3 그 곁에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그릇 오른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그릇 왼쪽에 있습니다.” 4 내가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에게 물었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5 천사가 말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모르느냐?” 내가 대답했다. “내 주여, 모릅니다.” 6 그러자 천사가 내게 말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네 능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영으로만 된다’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7 어떤 산도 스룹바벨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 모든 산이 낮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가 꼭대기 돌을 가져올 것이며, ‘은혜, 은혜!’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쉬운성경)

1Then the angel who was speaking with me returned and roused me, as a man who is awakened from his sleep. 2 He said to me, “What do you see?” And I said, “I see, and behold, a lampstand all of gold with its bowl on the top of it, and its seven lamps on it with seven spouts belonging to each of the lamps which are on the top of it 3 also two olive trees by it, one on the right side of the bowl and the other on its left side.”4 Then I said to the angel who was speaking with me saying, “What are these, my lord?” 5 So the angel who was speaking with me answered and said to me, “Do you not know what these are?” And I said, “No, my lord.” 6 Then he said to me,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to Zerubbabel saying,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says the LORD of hosts. 7 ‘What are you, O great mountain? Before Zerubbabel you will become a plain and he will bring forth the top stone with shouts of “Grace, grace to it!”(NASB)

이번주는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책상에 앉아 설교를 준비하는데 마음안에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이 하나님 나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나님 나라’ ‘지금 여기에서부터 누려야 하는 나라’임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스가랴서는 성전 재건을 위한 하나님의 꿈을 보여주시는 서신입니다. 절망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을 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본문의 환상은 하나님이 스가랴에서 주시는 5번째 환상이지요. 순금으로 된 등잔대, 등대 곁에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 나무를 받치는 기름 그릇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되고 다시 세워짐을 상징하고 있는 환상입니다. 올리브 나무 좌우의 기름 그릇은 성전 예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였으며, 이스라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인데,  학개서는 무너진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현실적인 부분을 다르고 있는 반면에, 스가랴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전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1 <다섯 번째 환상: 등잔대>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내게로 돌아와서 나를 깨웠는데, 나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 2 천사가 내게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대답했다. “순금으로 된 등잔대가 보입니다. 그 꼭대기에는 그릇이 있고 등잔이 일곱 개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 받침도 일곱 개 있습니다.

등잔대(메노라:Menorah)는 가지가 일곱 등대인 성막시대부터 유대인들의 상징입니다. 히브리어로 촛대라는 뜻인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타지 않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회당안에 들어가면 제단 위에 일곱 등대의 모습을 한 메노라가 있습니다. 아치를 이루는 모습은 두 천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지성소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보고 계시는 메노라는 1956년 영국 통치하에 있던 이스라엘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의회가 이스라엘국가에 기증한 작품입니다.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성전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순금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상징하지요. 순금은 고난을 이겨낸 믿음입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깊은 고난을 이겨내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엡 2:20-21) “너희는 사도들과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계시록에 사도 요한의 환상을 보면 일곱촛대가 일곱교회를 상징하는데 (계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스가랴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스가랴서에 나오는 8개의 환상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들 찾아보시며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묵상하는데 큰 흥미가 있을 것입니다.

얼마전 우리 교회 곳곳을 둘러보며 교회의 역사를 느끼고 기도의 자리를 가슴 깊이 느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졌을 당시 보스턴 지역은 영적 부흥이 물결치던 시기였습니다. 부흥의 물결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지게 했고, 세계 곳곳으로 선교사로 파송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던 많은 이들은 뜨거움을 주체 못해 거리로 나와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지역 케임브리지 지역만 해도 메인 교단의 교회 건물들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부흥의 물결 가운데 함께했던 성령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의 교회들을 보십시요. 많은 교회들은 관광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여러 이름의 교회들도 화려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관광지가 되어버린 교회를 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과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팬데믹 이후 교회가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가 더 어려워지고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하지요. 현실에 보이는 것들,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면 더 절망하게 되고 답답해 집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 아니라 염려와 근심이지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를 다시 회복하고 세워 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꿔야 합니다. 팬대믹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많은 것이 변한 것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찌보면 이 변화의 물결속에 나의 마음이 가장 많이 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보기 전에 실패를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회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보고 절망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가랴의 말씀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고 하나님의 꿈을 다시 그려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스가랴 환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4: 7 어떤 산도 스룹바벨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 모든 산이 낮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가 꼭대기 돌을 가져올 것이며, ‘은혜, 은혜!’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주저앉아 있는 우리를 다시 살게 하고, 절망 가운데서 있는 자들을 일으키십니다. 내 사랑이 너희를 포기하지 않겠다. 나는 깨어지고 부서지고 낮아져도 내가 너를 포기치 않고 사랑하겠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 가운데 내버려 두셨습니다.

제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정돈 되지 않을때 기도하며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큰 꿈은 없습니다. 눈물로 뿌린 씨앗들 세상을 뒤덮지 않아도 여전히 충분합니다

큰 꿈은 없습니다 맡겨주신 영혼들 그들을 사랑하며 섬기면 그것만으로 난 충분합니다

그래도 한꿈은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안고 푸른 들판을 사는 이들 그 안에 꿈을 봅니다

하늘 보좌 버리고 낮아져 이땅에 오신 주님 주님만이 나의 꿈이십니다. 주님 만이 내 사랑입니다

세상을 내려놓고 엎드리오니 그런 나를 사용하시는 주님만이 나의 꿈이십니다”

이 찬양을 부를때마다 분주한 생각들이 멈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이 정말 하나님을 위한 일인가 나의 열심인가,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나의 만족을 위함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인가. 내가 하려는 말이 하나님의 뜻인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는 참 많은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찬양의 가사를 들을때 마다 하나님께 온전히 내 마음을 드리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우리의 예배 안에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꿈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4:3 그 곁에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그릇 오른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그릇 왼쪽에 있습니다.” 4 내가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에게 물었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5 천사가 말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모르느냐?” 내가 대답했다. “내 주여, 모릅니다.” 6 그러자 천사가 내게 말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네 능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영으로만 된다’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4:14 천사가 말했다. “그것들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섬기도록, 주께서 기름 부어 거룩히 구별하신 두 사람을 나타낸다.”

올리브 두 그루의 나무가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하는 스가랴에게 천사가 알려줍니다. 주께서 기름 부어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다. 성전을 재건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을 지어가는 거룩한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올리브는 지중해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요. 지중해 사람들의 필수 음식입니다. 하나님께는 거룩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품격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품격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등잔을 비추려면 기름이 필요한데요. 이 기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급되는 성령의 영입니다. 히브리어로 ‘루아흐’는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성전의 완공이 성령의 능력에 의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 주었으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고전 3:6) 농부는 거름을 주고 병충해로 부터 곡식을 보호하지만 자라게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우리 인격이 성품이 마음의 성전이 하나님의 품격으로 갖춰지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된다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맺는 성령의 열매가 우리 마음과 성품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거룩함 앞에 서는 일이고, 성령의 존재를 계속적으로 기도를 통해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숨을 쉬기 위해 공기가 필요하지요. 물고기는 헤엄을 치기 위해 물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기도의 호흡이 필요한 것이지요. 촛대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의 영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마음의 성전을 회복시키시고, 주저 앉아 있는 자들을 일으켜 주시는 분입니다. 절망의 입술을 희망의 입술로, 분쟁과 시기의 입술을 사랑의 입술로, 거짓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포로 생활하고 마치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포로로 학습된 습관으로 인해 당당함을 잃어 버리고 낙심과 절망의 마음이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 스가랴에게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복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길 원하십니다. 세상은 교회가 문제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합니다. 죄가 있다고 회개할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은혜를 주셔야 회개가 됩니다.

성경은 “너희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청년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행2:17)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로 부터 청년들 노인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교회를 다닌 년수에 있지 않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꿈을 꾸는 모든 세대는 하나님이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회복의 공동체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성전을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요 2:19) 이때 예수가 말씀하신 성전은 그리스도로 인해 세워지는 마음의 성전을 가르켜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일은 돈과 힘이 있으면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잘 해 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네 능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영으로만 된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배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참된 예배를 드릴수 있던가요? 마음의 성전을 짓는 일이 우리의 힘으로 능력로 되던가요? 주님의 겸손함을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데로 닮아지던가요?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고 싶다고 그 길을 걸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꿈을 보며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꿈의 사람하면 요셉이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의 꿈을 꾸며 살았던 요셉은 절망과 죽음에 직면해서도 꿈을 간직하며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꿈을 지닌 이에게 모든 만남은 축복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꿈을 품고 있는 자에게는 삶이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사람과 세상 사이에서 계속되는 만남 가운데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백성의 품격을 지닌 사람들은 일상의 작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욕망의 한복판에서 그분의 뜻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리는 어둔 세상에서 주의 뜻을 선택하며 갈라진 마음 틈새에서 그리스도의 꽃을 피워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크리스찬들은 세계의 여러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백성으로 부름을 받는 것이며, 시간을 거슬러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믿음의 사람들과 영적인 관계로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무엇보다 믿음이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믿음이 사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꿈을 잃어버리고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에게 그 품이 사라지면 얼마나 두렵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꿈이 사라지는 것은 정말로 두려운 일입니다.

지난 주일 청년 수련회 말씀을 인도하며 청년들이 흘리는 기도의 눈물을 보며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저들의 삶을 중보했습니다. 낯선땅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저들의 마음에 익숙한 것들로 부터의 단절, 고독, 외로움이 상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안에서 외로움과 삶의 문제들까지도 하나님의 값진 선물로 이해할 수 있는 믿음의 깊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추고 있는 두려움, 상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모두가 다른 환경과 처지에 살아가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이 예배안에 있을 때에 우리가 품었던 마음의 온도가 동일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믿음을 끝까지 붙드는 이들을 통해 유지되고 존재합니다. 스가랴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기억하신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저버린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시 부흥을 허락하실까? 내게 다시 은혜를 베풀어 주실까?

여러분, 하나님은 반드시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약속하셨고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인생의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곳에 흩어 뿌리셨습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품격이 다른것이지요. 우리가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걸음도 나아갈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은혜가 사라지면 마음 안에 늘 욕망이 꿈틀거립니다. 내 삶에 안전한 둥지를 마련하고 싶은 욕망, 나만을 위해 편하게 살고 싶은 안일함,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어쩌면 우리는 세상의 욕망과 하나님의 꿈을 선택하는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욕망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 사이에서 하나님의 위한 삶을 선택 보시기 바랍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 꿈을 보여주며 이 시간 우리에게도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시대 하나님이 성전을 다시 세우라는 것은 여러분의 일상생활과 몸과 마음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주변에 보면 부유하지만 가난한 이들도 있고, 가난하지만 부유한 이들도 있습니다. 누구나 부유하기를 바라지만, 결핍의 마음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의 인생에는 불행이 시작됩니다. 결핍에 눈길을 주며 사느라 이미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욕망과 결핍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마음의 성전을 끊임없이 무너뜨려 갈 것입니다. 무너진 성벽 틈으로 끊임없는 유혹과 욕망은 채우고 채워도 마음의 공허함과 우울감만 계속 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꿈을 채워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찮은 일을 통해 큰일을 행하시고 지극히 작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마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이 넘칠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조용히 묵상해보십시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보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빈센트 반고흐의 불꺼진 예배당 그림입니다. 그의 동료가 그에게 삶의 신조를 물었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불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을 건네 주는 것이라네.” 합니다. 신앙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나의 욕심과 자아가 주님 앞에서도 깨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요.

여러분 우리의 간절한 예배의 자리에서 아직도 흔들리는 나의 영적인 갈급함을 마주하고 계시다면 혹은 너무 많이 알고 들어서 영적인 배부름 때문에 주님을 보지 못한다면 이 시간 주님의 마음으로 나를 채워 달라고 결단하며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한주를 살아내야 할 우리의 삶의 일터와 현장에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경험되어지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헨리 나우엔의 ‘꼭 필요한 것 한가지 기도의 삶’의 기도문을 함께 나눕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소원도 많고 욕심도 많고 기대도 많습니다. 이루어 질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이루어 질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 모든 만족과 실망의 한복판에서 저는 주님을 소망합니다. 주님이 결코 저를 혼자 두지 않으실 것과 주님의 거룩한 약속을 이루실것을 저는 압니다.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을 때에도실은 주님 뜻대로 풀리고 있음과 결국 주님 뜻이 제게 최선의 길임을 압니다. 오 주님 제 소망을 굳게 하소서. 특히 제 많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때 그리하소서. 주님의 이름이 사랑임을 결코 잊지 않게 하소서.

8.28.22 주일설교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Jesus Is The Living Stones

베드로전서 2:1~6

유민용 목사

2:1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과 거짓을 버리십시오. 위선자가 되지 말고, 시기하며 험담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이 모든 것을 없애십시오. 2 갓난 아기가 젖을 찾듯이 순결한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나고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여러분은 이미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고 있지 않습니까? 4 우리 주 예수님은 ‘산 돌’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돌을 버렸지만, 그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머릿돌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귀한 존재로 그분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로 오십시오. 5 여러분도 산 돌처럼 거룩한 성전을 짓는 데 사용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적인 희생 제사를 올려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희생제사를 받으실 것입니다. 6 성경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고, 이 보배로운 돌 위에 모든 것을 세울 것이다. 누구든지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쉬운성경) 1So get rid of all evil behavior. Be done with all deceit, hypocrisy, jealousy, and all unkind speech. 2Like newborn babies, you must crave pure spiritual milk so that you will grow into a full experience of salvation. Cry out for this nourishment, 3now that you have had a taste of the Lord’s kindness. 4You are coming to Christ, who is the living cornerstone of God’s temple. He was rejected by people, but he was chosen by God for great honor. 5And you are living stones that God is building into his spiritual temple. What’s more, you are his holy priests. Through the mediation of Jesus Christ, you offer spiritual sacrifices that please God. 6As the Scriptures say,“I am placing a cornerstone in Jerusalem, chosen for great honor, and anyone who trusts in him will never be disgraced.” (New Living Translation)

한주간도 잘 지내셨지요?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밤낮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성령 강림절기를 보내고 있는 케임브리지 교우들 삶에 성령의 바람이 감싸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9월이면 새학기도 시작되고 새로운 낯선 환경을 마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반복되는 일들 속에 무심히 9월을 맞이하는 이들도 있겠지요. 이처럼 같은 시간을 살아도 서로의 마음의 온도는 저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마음의 온도차에 주목하며 실망하기도 하고 답답해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접속되는 순간 마음의 밭의 상태가 드러납니다. 누군가의 마음 밭은 싹을 내지도 못하는 땅이 드러나고, 혹은 싹은 내는데 곧 말라죽는 땅이 드러나고, 어느 정도 자라지만 곧 결실을 맺지 못하는 땅도 드러납니다. 케임브리지 교우들은 말씀에 반응하여 100배의 결실을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우리가 떠난 자리에 주님만이 드러날 수 있는 삶이면 좋겠습니다. 현실속에서 우리가 서 있는 자리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 주의 이름이 높여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난 가운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본래 우리는 죄가 가득한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악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악한 감정이 아니라 자연 상태의 악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순수해 보여도 죄를 지닌 채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0) 라고 하십니다. 본문에도 보면 죄를 먼저 열거 하는데 첫째는 악과 거짓이요, 둘째는 위선과 시기이며, 마지막으로는 험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서 없애라고 하십니다. 외식과 시기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죄이며, 험담하는 말은 언행에 관련된 것으로 성경에서 가장 많이 경계하고 있는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입니다.

왜 순전한 말씀을 사모하기 전에 이러한 내적인 죄를 자각하라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 어떤 불의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악과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버려야 한다’를 원어 성경에 보면 ‘아포떼메노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1.‘관계를 끊다’ 2. ‘벗어 버리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우리 안에 위선과 시기, 험담하는 자리를 끊어내지 않으면 사랑의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시기와 험담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 속에서 증폭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깊이 자각하게 되면 우리는 자기확신에 열광하거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두번째는 ‘벗어 버리다’ 입니다. 우리는 죄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옷은 단지 걸치고 있는 것일 뿐 몸의 일부는 아니지요. 악과 거짓, 위선과 시기, 험담하는 말은 옷일 뿐입니다. 이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거룩이 없는 사랑은 죄로 인해 반드시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악과 거짓이 없는 사랑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조건도 없고 제한도 없는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바울이 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말하고 있지요. 우리는 순수한 사랑에 가까이 나아갈수록 마음이 거룩해지고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시니 죄의 옷은 자연스레 벗게 됩니다.

생명의 탄생은 참 신비롭습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랑과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도 이와 같습니다. 성령충만은 컵에 물이 채워지듯이 일시적으로 채우고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리의 성품과 인격, 삶의 모든 부분에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게 될때에 생명의 말씀이 우리의 전인격적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벧전 2:2)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은 일시적인 감정의 확신이 아니며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의존하는 일입니다. 갓난아이에게는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 어미의 사랑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최고의 양식인 영적 예배는 필수적이어야 합니다. 영적예배를 통해 순전한 말씀을 사모하며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이 일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숙해집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다 알 수는 없지만 교만을 내려놓고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그리스도만이 가장 공평하시고, 가장 위대하시며, 모든 것에 으뜸 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작은 그릇에, 자기애로 가득한 옹졸한 그릇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끊임없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벧전 2:3)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사람은 이전에 알지 못하던 것에서 예수의 가르침과 그분의 성품으로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 거듭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말하는 것으로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자하심을 맛본 사람들은 그분의 성품과 행동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게 되고 주안에서 형제를 대하는 작은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AD 30년 경에 육신으로는 단 한번 활동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분을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하여 그분의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신 일을 지속하고 계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은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있게됩니다. 그러니 거룩함은 외적인 분리됨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 내면의 변화, 마음의 변화인 것입니다. 식당에 가보아도 느낄 수 있습니다. 친절한 직원을 만나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피곤에 찌들고 일의 불평이 있는 직원은 당연히 불친절 할 수 밖에 없지요. 우리는 어떠한 얼굴과 모습으로 교회의 지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이신 사랑을 생각할 때에 죄로 물든 마음에 일평생 수만가지의 감사가 솟아 오르고, 세상의 근심과 복잡한 현실속에 있는 우리에게 성령께서는 하늘의 기쁨을 마음에 퍼지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 가득 지속적으로 채워지도록 나의 손과 발이 나의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를 대하듯 형제를 사랑 하십시요.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사로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상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 하시 않으시고 너희는 소금이라 빛이라 하셨습니다. 이미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돌을 버렸지만, 그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머릿돌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귀한 존재로 그분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로 오십시오. (벧전 2:4)

길가에 버려진 돌들은 참 투박하고 평범합니다. 그러나 수석가들은 돌에 담겨진 자연을 본다고 합니다. 돌 속에 담긴 자연의 생명을 보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산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아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원 역사의 반석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아무리 투박한 돌이라 해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게 되면 그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면 보잘 것 없는 인생이 존귀한 인생이 되어지고, 욕망을 따라 살던 옷을 벗어 버리게 되니 새로운 삶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욕심과 이기심으로 형을 속이고 나서 불안과 두려움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집을 떠나 기나긴 나그네 길에 오릅니다. 도망치듯 빠져나온 고향집을 뒤로 하고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 286마일의 머나먼 여정길에 오르게 되지요. 얼마간을 걸어서 칠흑 같은 밤이 되었을 때 한 장소에 도착합니다. 이때 야곱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하지만 그곳은 야곱의 일생에 처음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였습니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가 없고 노숙을 하며 인간의 불안감이 극에 달해 있을 때,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베고 자던 투박한 돌 베개에 하늘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기둥으로 세운 그 돌은 하나님의 집이 되었습니다. 바로 벧엘이라는 장소입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에는 세계 최대의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제1호 보물은 그리스 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는 “로제타 스톤”이라는 돌이라고 합니다. 로제타 스톤에는 세 종류의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 문자는 인류의 숙제인 고대 이집트 문자를 풀게 해 주었답니다. 그래서 세상에 가장 값진 보물이 되었습니다. 1799년 나폴레옹 군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 발견하였을때는 누구도 그 돌이 큰 보물인 줄 몰랐다가 새겨진 문자에 의해서 값비싼 보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돌 같이 단단한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은 마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게 되면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아도 그것은 구원을 이뤄가는 삶이 아닙니다. 굳은 마음, 미워하는 마음, 시기와 험담하고 싶은 마음을 제거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마음을 갖어 보십시요.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그래서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오직 사랑의 권위가 그분에게만 있으니, 우리는 포도나무요, 사랑이신 주께 붙어 있을때,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지닌 산돌들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하며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잘 보살피라고 권면하지 않습니까? (행 20장 17절) 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부족해 지면 영적 빈혈이 생기고 본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집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세상에 증언 되어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먼저 그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에 있지요. ‘결국엔 하나님의 사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생각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에 우리는 모두 외로운 존재이며, 근원적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사랑에 목말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즉 사랑과 사람이 삶의 본질임을 말해줍니다. 주님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인생의 중심에 사랑이 중요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안에는 참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그 사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고 낮아져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퍼 주는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말씀이 되어 마음에 새겨지니 새 생명이 잉태되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되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 말고 다른 기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삶의 반석이 되지 않으면, 모든 삶은 결국 허물어집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와 명예를 얻을지라도 인생의 마지막은 허망함입니다. 예수님이 앞 서 가신 길을 알지 못하니 스스로 멸망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베드로도 처음에는 그 길을 알지도 못했고 걷지도 못했습니다. 참 사랑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돌이 되시는 예수를 체험하고 만나고 나서는 고난 속에서도 낮아지신 길, 섬기신 길, 자기 희생의 길로 나가셔서 하늘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따라가게 됩니다. 주님은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며,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되시오니, 지도에 없는 길을 걷는다 해도 주께서 걸으신 발자욱만 보고 따라가다 보면 주의 은총이 우리를 평강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벧전 2:6)

베드로는 네로 황제가 다스리는 불안정한 로마시대에 고난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반석이 되시며 산돌이 되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있는 사람들, 선한 목자가 내 이름을 알고 계신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하나님과 관계속에서 포도나무에 끝까지 붙어 있는 가지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결국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교회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보이는 교회를 남기지 않고 떠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건물을 더 중요시 하는 어리석음을 보였기에 예수는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다시 세울 것이라 하시고, 당신의 몸이 성전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주님은 목마른 자들의 생수가 되어 주시고, 낮은 곳 모퉁이에 세워진 사방을 연결하는 머릿돌이 되십니다.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산돌들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로 함께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은 개인적이지만, 구원받는 사람은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들 속에서 부르신 사명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아는 태도로 공동체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길이 닦여지고 많은 이들의 살아나면 좋겠습니다. 소금은 맛을 잃어 버리면 한낱 모래알에 불과해 길가에 버려 집니다. 내 손에 쥔 말씀의 등이 빛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집니다. 빛이 드러날때에 마음의 불편함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것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욕망은 모래 위에 성과 같아서 결국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사람의 감정은 어디로 불지 모르는 바람과 같습니다. 무엇을 기초로 하여 인생의 돌을 쌓아 올리시겠습니까? 산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기본과 기초로 삼고,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함께 지어져 갈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나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이들에게, 애썼다고, 고맙다고 토닥여 주며 격려해 주십시요. 그리고 스스로 격려하시고 서로를 격려해 주십시요. 나의 말투, 작은 습관, 행동과 눈빛, 태도 아주 작은것까지도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하여 주시는 사랑을 느껴보십시오. 선한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도 이 확신을 붙들고 나아가려합니다. 이 여정속에 함께 하는 여러분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줄 이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하고 걷는 길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어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기쁨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