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1. 2026 주일설교

(케임브리지한인교회 창립 48주년 기념예배)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The Church Gathered and The Church Scattered

사도행전 2:1-4

김태환 목사

1 오순절이 되어 제자들이 한 곳에 모두 모였습니다. 2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나더니, 사람들이 앉아 있던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3 그리고 혀처럼 생긴 불꽃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불꽃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그 곳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4 사람들은 다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자기들의 언어와 다른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1-4, 쉬운성경)

1 On the day of Pentecost, all the believers were meeting together in one place. 2 Suddenly, there was a sound from heaven like the roaring of a mighty windstorm, and it filled th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3 Then, what looked like flames or tongues of fire appeared and settled on each of them. 4 And everyone present was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speaking in other languages, as the Holy Spirit gave them this ability. (Acts2:1-4 NLT)

교회의 기원에 대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이 돌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약속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의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성령께서 임하셨고, 그 모임은 곧 교회의 탄생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기도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ἐκκλησία)’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됩니다(사도행전 5:11).

이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탄생시킨 힘이 성령이었고, 교회를 움직이고 이끄는 힘도 성령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 내려가면 이런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들이 평화를 되찾았으며, 터전을 든든하게 잡았습니다. 교회는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사도행전 9:31) 이 말씀은 초대 교회 공동체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성장하게 했던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이 바로 성령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가 곧 갈릴리와 사마리아 땅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성령은 교회를 한 곳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은 모이게도 하시지만, 때가 되면 흩어지게도 하십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 “성령의 불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각 사람(each of them)’에게 임했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다른 언어를 말하게 하셨다(3절)”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성령을 받은 ‘각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루살렘 밖으로 나아가 다른 사람, 다른 문화, 다른 지역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게 하려는 선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20세기의 교회론을 새롭게 제시한 두 신학자가 있습니다. 한스 큉(Hans Küng)과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입니다. 이 두 신학자는 교회를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성령으로부터 태어나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라고 보았습니다. 몰트만은 그의 책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creature of the Spirit)’이다. 따라서 교회가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인위적인 목적에 사로잡히는 것은 성령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다. 교회는 성령께서 자유롭게 일하시도록 자신을 개혁하고 미래를 향해 개방하는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성령이 이끄는 공동체는 모든 구성원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 상호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저는 최근에 성경공부 모임에서 자신이 받은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질문해 보았습니다. 참석자들 대부분이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고도 열심히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를 발견하고 그 은사에 따라 봉사한다면, 우리는 더욱 자유롭고 기쁘게 성령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사 사용의 장소를 꼭 교회 안으로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은사를 교회 안에만 가두는 것은 도리어 성령의 자유로운 사역을 제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세상 사이의 담을 허물고, 세상을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봉사해야 할 선교적 삶의 현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의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병원에서 환자들을 고치고, 교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사업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사업 현장에서, 음악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음악을 연주하거나 곡을 만드는 일로, 상담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로, 섬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자신이 받은 은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네델란드의 선교 신학자 호켄다이크(J.C. Hoekendijk)가 그의 저서 ‘The Church Inside Out (흩어지는 교회, 1966)’에서 처음으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라는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교회가 건물 안에만 갇혀 있으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교회 내부(Inside)에서 나와 세상 밖(Out)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섬기는 교회는 “나는 이 세상에 섬기러 왔다(마가복음 10:45)”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섬기는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이 기도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섬기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마가복음 16:1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전치사 ‘into’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에이스(εἰς)’는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의미하는 전치사입니다. 사람들의 기쁨이 있는 곳, 눈물이 있는 곳, 아픔이 있는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흩어짐’이야말로 성령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입니다.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들어가 삶과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을 너무 좁은 의미로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책임질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복음의 실천적 의미를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해서 복음에 대한 ‘통전적인 이해(holistic understanding)’를 해야 합니다. 단순히 “예수를 믿으라”는 말의 선포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인 섬김의 삶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제가 로마서 말씀을 읽다가 큰 은혜를 받은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방인들이 성령으로 거룩하여지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하였습니다.”(로마서 15:16)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섬김의 목적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단순히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섬김을 통해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영혼들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존재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호켄다이크가 강조했던 ‘흩어지는 교회’의 참된 의미입니다. ‘모이는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기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교회가 선포해야 할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교회가 가까이 왔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복음 4:17)”였습니다. 한스 큉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증언하며, 그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공동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한스 큉과 몰트만의 교회론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교회가 사람을 모으고, 예배를 드리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건물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공을 교인 수나 예산이나 건물의 크기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얼마나 자신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구원을 드러내셨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지난 48년 동안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얼마나, 어떻게 드러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여류 시인 중에 베시 앤더슨 스탠리(Bessie Anderson Stanley, 1879-1952)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1904년 보스턴의 한 출판사가 성공을 주제로 주최한 공모전을 열었는데, 스탠리는 이 공모전에 응모해 1등을 차지해 상금 250달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195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의 묘비에 그녀의 시 “성공(Success)”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동안 이 시가 에머슨의 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에머슨의 글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원작자가 누구인지 밝혀진 것입니다.

그녀의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자신이 세상에 왔을 때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어 놓고 떠난 사람, 이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그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영감(靈感)이 되었고, 그가 남긴 기억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저는 이 말을 우리 교회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는가?” 스탠리는 당신 때문에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다면, 당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면, 당신은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도 우리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으로 흩어져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답습해 왔던 제도와 구조에 머물러 변화되지 않았던 것이 교회가 신뢰를 잃어버린 중요한 원인입니다. 신뢰를 잃어버린 교회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미래는 우리가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어떻게 사용하시고, 이교회를 통해 무엇을 하실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게 주어진 과제는, 과거의 구조와 제도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하면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그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교회 안에 가두어 두지 않고 우리를 세상으로 내보내십니다. 부디 우리 교회가 성령의 사역에 민감하게 응답해서 우리 교회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