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21 2026 주일설교

성령강림절 제 4주

말씀이 나를 태울 때

When the Word Burns

예레미야 20:7-13

7 여호와여, 주께서 저를 속이셨고, 저는 속았습니다. 주께서 저보다 강하시므로 저를 이기셨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노리개가 되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비웃습니다. 8저는 말할 때마다 폭력과 멸망을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지만 그 때문에 저는 모욕만 당했습니다. 백성은 하루 종일 저를 비웃습니다. 9때로는 ‘여호와를 잊어 버리겠다.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여호와의 말씀이 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 같아서 그 말씀이 내 뼛속 깊은 곳까지 태우는 듯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제 안에 담느라고 지쳤습니다. 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10수많은 사람들이 저에 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방에 두려움뿐입니다. “예레미야를 고발하자! 예레미야를 고발하자!” 제 친구들도 모두 제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립니다. “어쩌면 우리가 예레미야를 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를 쳐서 우리 원수를 갚자”고 말합니다. 11하지만 여호와는 힘센 용사처럼 저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를 치려고 뒤쫓는 사람은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크게 실망하고 부끄러움을 당하여 모든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12만군의 여호와여, 주님은 의로운 사람을 시험하여 사람의 마음과 생각의 깊은 곳을 살피십니다. 제 사정을 여호와께 말씀드렸으니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주셔서 그 모습을 제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3여호와께 노래하여라!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여호와께서 가난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신다. 악한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 (쉬운 성경)

7 O Lord, you misled me, and I allowed myself to be misled.
You are stronger than I am, and you overpowered me.
Now I am mocked every day; everyone laughs at me.
8 When I speak, the words burst out. “Violence and destruction!” I shout.
So these messages from the Lord have made me a household joke.
9 But if I say I’ll never mention the Lord or speak in his name, his word burns in my heart like a fire.  It’s like a fire in my bones! I am worn out trying to hold it in!  I can’t do it!
10 I have heard the many rumors about me. They call me “The Man Who Lives in Terror.” They threaten, “If you say anything, we will report it.” Even my old friends are watching me, waiting for a fatal slip. “He will trap himself,” they say, “and then we will get our revenge on him.” 11 But the Lord stands beside me like a great warrior. Before him my persecutors will stumble. They cannot defeat me. They will fail and be thoroughly humiliated. Their dishonor will never be forgotten.
12 O Lord of Heaven’s Armies, you test those who are righteous, and you examine the deepest thoughts and secrets. Let me see your vengeance against them, for I have committed my cause to you.
13 Sing to the Lord! Praise the Lord! For though I was poor and needy, he rescued me from my oppressors.(New Living Translation)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꿀송이에 비유합니다. 시편에 보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편 119:103) 정통 유대인들은 자녀가 처음 토라를 배우는 날, 꿀을 발라 아이의 입술에 대어준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도록, 말씀이 기쁨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 속에서 예레미야가 경험한 말씀은 꿀처럼 달콤한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태우는 불이었습니다. 말씀은 그의 삶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흔들어 깨운 현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앞에 선 한 인간의 탄식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했던 예레미야 내면의 깊은 고통과 탄식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그의 삶을 붙들고 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1. 말씀은 우리를 흔들어 깨웁니다.

말씀을 내 취향에 맞게 골라 듣기 편한 말씀만 찾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결코 불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말씀은 항상 곁에 있지만, 내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그저 익숙한 위로로만 머물 뿐입니다. 듣기 좋은 말씀은 가까이 두고 부담되는 말씀은 멀어집니다. 그렇게 마음의 위로에만 멈추어 길들여진 말씀은 우리를 흔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말씀을 피해 서 있습니까? 예레미야의 삶에 말씀은 눈물이고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전하다가 현실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수록 고독은 더 깊어졌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멸시와 무시, 반박과 조롱, 핍박과 수치 등 온갖 인격적 모욕과 신체적인 고난뿐이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7 여호와여, 주께서 저를 속이셨고, 저는 속았습니다. 주께서 저보다 강하시므로 저를 이기셨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노리개가 되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비웃습니다.  8저는 말할 때마다 폭력과 멸망을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지만 그 때문에 저는 모욕만 당했습니다. 백성은 하루 종일 저를 비웃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속였다고, 자신은 하나님께 속았다고 탄식합니다. ‘속이다’라는 단어 핏티파니פִּתִּיתַנִי 의 원형 파타(פָּתָה)는 ‘속이다, 유혹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입니다. 당신이 나를 유혹해서 속이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표현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선지자의 표현으로는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이 길로 들어섰는데 결과가 이것입니까? 라고 하나님을 향한 강한 항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했는데 처한 상황은 캄캄한 어둠뿐이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음으로 뼈 아픈 탄식을 쏟아 놓습니다. 이제 여호와를 잊어버리겠다.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합니다. 부르심의 자리를 떠나고 싶은데 여호와의 말씀이 타오르는 불길 같아서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이제 그가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그를 놓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존재로 살아가게 합니다. 말씀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처럼 움직이고 불꽃처럼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강퍅한 마음의 유다 백성들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었고, 예레미야 안에 있던 고통과 흔들림도 부르심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말씀 안에 불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 계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불은 우리가 연약함을 마주하는 그 자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그 자리에서도 꺼지지 않습니다.

9때로는 ‘여호와를 잊어 버리겠다.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여호와의 말씀이 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 같아서 그 말씀이 내 뼛속 깊은 곳까지 태우는 듯합니다.

‘불길’은 אֵשׁ בֹּעֶרֶת(에쉬 보에렛) 활활 타오르는 불입니다. 말씀을 전하다가 겪었던 고통의 의미도 있겠지만 선지자의 마음안에 비록 지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심판받는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 고통도 있었을 것입니다. 선지자는 현실과 사명 사이에서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었고, 내려놓으려 해도 내려놓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바울도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전 9:16)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화'(οὐαί, 우아이)는 하나님의 형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고백의 무게 중심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에 있습니다. 사명의 길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삶 자체가 바울에게는 이미 죽음이라는 고백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에 붙들린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꽃처럼 사용하시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 1494 ~ 1536)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존 위클리프에게 영향을 받고, 라틴어 성경만 있던 시대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성경을 읽을수 있도록 독일로 가서 비밀리에 영어로 성경을 번역 했습니다. 당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큰 죄가 되는 시대였기에, 그는 1536년 10월 6일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틴데일 안에 타오르는 불은 성직자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내 뱉은 말을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살려 주신다면, 머지않아 나는 쟁기를 모는 농부 소년이 당신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만들 것입니다.” 그는 화형당하기 직전에 “주님,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라는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후 틴데일의 유업을 잇기 위해 많은 이들이 영어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되었는데, 훗날 틴데일의 번역이 킹제임스(KJV)영어성경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2. 하나님은 무너진 자리에서도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10 수많은 사람들이 저에 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방에 두려움뿐입니다. “예레미야를 고발하자! 예레미야를 고발하자!” 제 친구들도 모두 제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립니다. “어쩌면 우리가 예레미야를 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를 쳐서 우리 원수를 갚자”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친구들까지도 그를 고발하려는 시선으로 있었기에 말씀을 전하며 강한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사방에서 두려움만이 감도는 현실을 경험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레미야가 악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수록 깊은 어둠과 두려움을 직면할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적용해 보면 대적자들이 동일하게 고소하여 예레미야를 법의 심판대 앞에 세워 법적 맞대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친구들 마저 자신의 넘어짐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참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사람의 심판대가 아닌 하나님의 법정으로 나아갔습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고독한 싸움을 싸우고 있던 그 선지자의 자리는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에 계신 자리였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널려 있습니다. 내면의 욕망과 편견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만 만족하지 못하게 하는 유혹하는 일들이 즐비합니다. 이런 것들은 오랜 시간 내 믿음으로 세운 것들을 순식간에 흔들어 놓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싫어지고 하나님마저 원망스러웠을것입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자리에서 인간의 언어로는 여기가 끝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1하지만 여호와는 힘센 용사처럼 저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를 치려고 뒤쫓는 사람은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크게 실망하고 부끄러움을 당하여 모든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예레미야가 자신의 힘이 다한 그 자리에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힘쎈 용사처럼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열심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때에도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불과 같은 은혜는 사람을 살리고 움직이게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깊은 곳까지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의 고통은 자신만의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힘들고 외로운 시간만큼 하나님은 힘센 용사처럼 더 가까이 계시며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성실함으로 관계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님은 의로운 사람을 시험하여 사람의 마음과 생각의 깊은 곳을 살피십니다. 제 사정을 여호와께 말씀드렸으니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주셔서 그 모습을 제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3여호와께 노래하여라!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여호와께서 가난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신다. 악한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

살아가다 보면 말씀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다가도, 어느 날은 그 말씀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돌이켜야 하는 날보다 말씀 뒤에 숨고 싶은 날이 더 많습니다. 혼자 버티다가 포기하게 되는 날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던 날들도 있습니다. 말씀은 나를 살리고 있는데, 말씀대로 살아낼 힘이 없습니다. 예레미야가 서 있던 자리도 그랬습니다. 믿음은 아름다운 날에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말씀이 불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을 때, 그때도 말씀 앞에 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웠던 그 자리,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그 자리를 예수님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로 부터 버림 받은것 같았지만 그  자리가 구원이 완성된 자리였습니다. 예레미야의 탄식이 찬양으로 끝나는 것은 상황이 해결되어서가 아닙니다. 여전히 그의 현실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탄식이 찬양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강한 용사처럼 그 곁에 있었고 현실의 고통이 마지막이 아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10)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고통의 자리 내가 무너지고 낮아진 그 자리로 흘러들어와 가장 깊은 곳부터 가장 낮은 그 마음을 다시 채웁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붙들고 갑니다. 유다 백성은 비록 바벨론에 끌려갔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포로 된 땅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뤄가시는 방법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내 힘으로 버티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놓지 않으신다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마시고 도망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말씀이 꿀처럼 달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에 꺼지지 않는 불을 두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인생을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의 질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의 탄식이 찬양이 되었듯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의 증거가 되었듯, 말씀이 나를 태울 때 나의 탄식이 찬양이 되고 나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