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제 3주
칼을 내려놓고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라
Lay Down the Sword, Come to Grace
베드로전서 1:22-25
1:22 ○ 오늘날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 진심으로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변함없이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1:23 여러분이 거듭 태어난 것은, 이 세상의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언제까지나 영원토록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습니다. 1:24 기록되기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의 모든 영광은 들에 핀 풀의 꽃과 같도다. 풀은 이내 시들고 꽃은 쉬이 떨어지지만, 1: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에게 전파된 기쁜 소식입니다.(쉬운말 성경)
22 You were cleansed from your sins when you obeyed the truth, so now you must show sincere love to each other as brothers and sisters. Love each other deeply with all your heart. 23 For you have been born again, but not to a life that will quickly end. Your new life will last forever because it comes from the eternal, living word of God. 24 As the Scriptures say, “People are like grass their beauty is like a flower in the field.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 fades. 25 But the word of the Lord remains forever.” And that word is the Good News that was preached to you.(New Living Translation)
1940년,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거리에서 끌려가던 그 시절, 하를렘의 작은 시계점을 운영하던 텐 붐 가족은 집 안 벽장 뒤에 비밀 방을 만들어 유대인들을 숨겼습니다. 약 800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결국 밀고자의 배신으로 가족 전체가 체포되었고, 코리와 언니 벳시는 라벤스브룩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굶주림과 질병과 폭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벳시가 코리에게 말했습니다. “이곳을 예배당으로 만들자” 그들은 나치의 감시를 피해 숨겨 가지고 온 성경으로 기도 모임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벳시는 “어떤 어둠도 예수님의 빛을 꺼뜨릴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버티게 한 것은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도 바로 그 자리에서 쓰인 편지입니다. 로마 황제의 박해 아래 두려워 하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의 모든 영광은 들에 핀 풀의 꽃과 같도다. 풀은 이내 시들고 꽃은 쉬이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
칼을 든 베드로, 병사들 앞에서 두려움으로 무너졌던 베드로가 주를 경험한 깊은 고백입니다. 기록된 말씀의 은혜가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에 능력과 위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베드로는 칼을 들었고 주님은 잔을 드셨습니다.
깊은 밤 횃불을 든 무리가 몰려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칼을 뽑았습니다. 베드로가 정확히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손에 들린 것이 칼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고별설교에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한 베드로는 칼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잔을 드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칼이 있습니다. 나의 원칙과 가치라는 이름으로 드는 칼입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나를 보호하는 칼, 자신을 지키려하는 칼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칼의 뿌리에는 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내 마음, 내 힘과 내 기준으로 나를 증명하여 지키려고 하는 칼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잔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 주님이 지셔야 할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주님이 그 잔을 드신 것은 죄로 끊어졌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은 잔을 드시며 ‘너희들이 내 잔을 마실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걸으신 그 길에 동참하게 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제 거듭난 베드로가 쓴 편지를 보겠습니다. “1:22 오늘날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 진심으로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변함없이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뜨겁게’라는 단어는 헬라어 에크테노스(ἐκτενῶς)로, ‘끝까지, 지속적으로’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밖으로” 를 뜻하는 ‘ek’와 ‘뻗다’를 뜻하는 ‘teino’의 결합된 단어입니다. 문자적으로 연결해 보면 ‘줄기차게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보여주신 그 사랑이 지금도 줄기차게 확장되어 가는 하나님 나라의 나그네된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기대 없는 자리에서도, 상처 받은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먼저 사랑받는 우리가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날 밤 제자들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단 한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 수고했으나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 주님이 그 앞에 계셨지만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물을 물밖으로 끌어 올릴수 조차 없을 정도로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요한이 “주님이시다” 라고 말하자마자 베드로는 겉옷을 두른 후 바다로 뛰러 내립니다. 주님께 달려간 것입니다. 두려움 앞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지난 날의 후회와 예수님에 대한 기억들을 지닌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갈릴리로 돌아갔지만 베드로 안에는 지키지 못한 고백과 주님에 대한 마음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을것입니다. 그날 아침 베드로는 주님이시다 라는 요한의 외침에 주님을 더 가까이 보고 싶은 갈망으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아침식사를 마치신 후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한 번, 두 번, 세 번을 물으십니다. 그 질문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의 물음입니다. 그 주님의 사랑 앞에서 베드로는 다시 일어섰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기도해야 할 때 잠들어 있었고, 침묵하게 할 때 말했고, 고난의 잔을 마실때에는 칼을 들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베드로 같은 마음으로 서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기도해야 할 때 다른 것을 붙잡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두려워 더 움켜 쥡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이상 부인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대부분이 쉽게 타오르고 쉽게 식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쓴 1장 19절을 보십시오. “19 오직 한 점의 죄도 없고 흠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롭고 고귀한 피로 된 것입니다.” ‘보배로운’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티미오스(τίμιος)로, 사람이 그 가치를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의미합니다. 주님이 그 잔을 드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기준 앞에서 나를 증명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의 싸움은 나를 증명해 내고, 내 힘을 드러내는 싸움이 아닙니다. 은혜에 붙들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게 있는 칼이 없으면 내가 약해질까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내가 가진 칼을 갈고 닦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고난의 잔을 드셨기에 우리의 잔이 은혜로 채워졌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손에 쥔 칼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우리의 결심과 열심으로 오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 썩지 않는 씨,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심겨져야 합니다.
거듭난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편지합니다. “23 여러분이 거듭 태어난 것은, 이 세상의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언제까지나 영원토록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습니다.” 세상 속에 썩지 않는 씨,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심겨져야 합니다.
2. 세상 속에 심겨진 썩지 않는 씨
썩어질 씨는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1장 18절이 그 답을 줍니다. 금과 은이 넘쳐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목마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여전히 공허한 그 자리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무엇가 붙잡으려고 끊임없이 달려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를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지고 또 던졌지만 결국 빈 그물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도 그 빈 그물이 있지 않습니까? 최선을 다했는데도, 믿음으로 살려 했는데도,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어도 마음 한켠의 빈 공간이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빈 공간은 더 열심히 한다고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는 썩지 않는 씨가 되시는 주님이 들어오셔야 할 자리입니다.
썩지 않는 씨가 심기는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한순간의 감동도 아닙니다. 완전한 회복입니다. 밤새 빈 그물을 끌어올리며 낙심하던 그 자리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주께서 말씀하신 자리에 그물을 던졌을 때,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한 것들로 채워졌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자리에 우리의 삶을 드릴때, 우리 안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부르실 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안에 있는 사랑을 갈망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가운데로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입니다. 영원토록 함께하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주신 것이 사명입니다.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지만 주가 이끄시는 은혜가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살게합니다. 사명자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 약속을 모든 상황속에서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주를 위해 기꺼이 삶을 내어 드릴 자들을 지금도 찾으십니다. 말씀이 되신 주님께서 무덤을 깨고 나오셨습니다. 그 부활의 생명이 말씀을 통해 들어와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썩지 않는 씨가 심겨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되던 1세기, 성도들은 로마 황제의 박해 아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집도 없었고, 직업도 빼앗겼고, 가족도 흩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소망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동일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24 기록되기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의 모든 영광은 들에 핀 풀의 꽃과 같도다. 풀은 이내 시들고 꽃은 쉬이 떨어지지만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
여기서 베드로가 인용한 말씀은 이사야 40장입니다. 수천 년 전 바벨론 포로기, 절망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도 살아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힘보다 더 큰 힘에 의해 이끌리는 것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그 은혜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룩한 나그네 된 백성들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 말씀이 울려 옵니다. 우리는 이 땅을 밟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우리 손에는 자신을 지키려고 드는 칼이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마음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 상처 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서 날카로운 칼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다시 불러주십니다. 은혜의 삶은 하나님이 세상 안에 세우신 새로운 질서입니다. 그 질서의 중심에는 언제나 우릴 살리시는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 부르심은 거룩한 초대와 완전한 회복입니다. 그 은혜의 손이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이상 내가 붙잡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우리를 향해 먼저 다가오신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말씀하시는 그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미 식탁의 자리를 준비하셨습니다. 수치와 상처가 있는 자리, 돌아서고 싶은 자리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가장 소중하고 영광스러운 주님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드리길 원합니다. 결코 헛되지 않고 아깝지 않을 영광의 날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주를 위해 부어 드리길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손에 십자가를 쥐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며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 믿고 살아가는 자들을 성령에 이끌리도록 부활의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갈망과 열심이 하나님의 말씀앞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서 내 힘과 내 경험을 의지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세워집니다. 정죄가 아니라 회복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섭니다. 우리는 주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은혜 안으로 옮겨지고 십자가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