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강절 시리즈 – 하나님과 함께
1주 숨: 함께 호흡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2:1-4
42:1 주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붙들어 주는 내 종이 여기에 있다. 그는 내가 선택한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부어 주었으니, 그가 세상의 뭇 민족들에게 공의를 전하고 베풀 것이다.
42:2 그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것이고, 길거리에서 크게 떠들지도 않을 것이다.
42:3 그는 상한 갈대도 부러뜨리지 않을 것이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신실하게 공의를 실천할 터인데,
42:4 세상에 공의를 굳게 세울 때까지, 그는 머뭇거리거나 쇠약해지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멀리 있는 섬들까지도 그에게 가르침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쉬운말 성경)
1“Look at my servant, whom I strengthen. He is my chosen one, who pleases me. I have put my Spirit upon him. He will bring justice to the nations.
2 He will not shout or raise his voice in public.
3 He will not crush the weakest reed or put out a flickering candle. He will bring justice to all who have been wronged. 4 He will not falter or lose heart until justice prevails throughout the earth. Even distant lands beyond the sea will wait for his instruction.”(New Living Translation)
2025년 한해도 열심히 잘 달려오셨습니다. 삶의 자리를 돌아보니 참 많은 순간들이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믿음 지키며 사느라 애쓴 순간들도 떠오를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들로 우리 삶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주셨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번 대강절 설교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함께 호흡하시고 (숨), 함께 길을 걸어 주시며 (길), 우리가 걷는 인생의 길을 비추시는 (빛)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1. 상한 마음에도 함께 하시는 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그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 결과 말씀을 떠나 정의와 공의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자신들의 힘으로는 벗어날수 없는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포로기의 때가 찼을때 하나님은 다시 회복을 이루셨습니다. 인간은 약속을 어겼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이루기 위해 직접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생길에는 뜨거운 광야처럼 숨이 턱 막히는 순간도 있고, 열심을 다해 걷다 보면 숨이 차오르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내리면 메마르고 건조했던 우리의 마음도 옥토처럼 부드러워 집니다. 새 마음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계셨고,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도 여전히 함께하고 계시고, 지치고 힘들 때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시고 회복해 주시는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종을 통해 이루신 일을 바라볼 때, 우리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보라’라고 하는 BEHOLD 라는 단어는 ‘보다’라는 동사의 의미도 있지만 원문상 ‘헨’이라는 단어는 동사가 아니라 감탄사입니다. 감탄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이사야는 강조합니다. 연약한 인간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 상한 갈대처럼 흔들리고, 꺼져가는 등불처럼 힘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믿음의 눈을 돌리면,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과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 중심에 놓게 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메시지 성경은 이사야 42장 1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나의 종을 유심히 보아라. 내가 전적으로 지지하는 종이다. 그는 내가 택한 사람이며, 나는 그가 더없이 마음에 든다. 나는 그를 온통 내 영으로, 내 생명으로 감싸 주었다. 그가 민족들 사이에서 모든 일을 바로 잡을 것이다”
이 종은 단순한 ‘종’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하셔서 우리에게 회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로 세우시고 공의를 이루실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로 살다가 고레스 왕을 통하여 다시 돌아왔듯이 이 종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는 이사야가 예언한 이 메시아가 예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9절에서 예수님은 안식일날 유대 회당으로 들어가시다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것은 그분에 관한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라고 이사야가 했던 말씀을 인용해서 자신을 말씀하셨습니다. 깨어지고 흩어진 마음을 바로 잡아 주실 그 분, 상한 갈대도 부러뜨리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종을 통하여 바른 정의를 회복해 나가시며 교회를 세워 나가십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상한 갈대는 이미 부러진 가지입니다. ‘가지가 부러졌다’라는 것은 그대로 놔 두어도 살아날 가망이 없습니다. 죄는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고 강팍하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의 병을 죄의 결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자비로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준다고 비판하던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오그라진 손을 펴 주시고 죄로 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의 이름은 우리가 전해야 할 교회의 사명이요. 세상 끝날까지, 심판의 날까지 성도들이 지녀야 할 믿음의 본질입니다. 그날에는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다 주 앞에 서게 됩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환경이 당장 바뀌지 않아도 마음과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릴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조금씩 선명해 집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깊은 바다와 같아서 그 속에서 모든 악은 깊이 가라앉고 수면은 고요해 집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틈속에서도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풍성하게 부어 주십니다.
마지막 날에 심판의 절차는 누구나 통과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다고 모두가 주님의 변호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때 믿음이 없음으로 드러나면 예수님은 변호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주님을 진정으로 믿을때 주님은 부러지고 꺾어진 나약한 가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다시 타오르도록 회복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2.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숨
이 생기는 단순히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호흡이 되고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은 물위의 길을 알고, 하늘을 나는 기장은 하늘의 길을 따라 비행합니다. 땅에도, 바다에도, 하늘에도 길이 있듯 우리가 믿는 믿음에도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입니다. 때로는 인생의 길이 보이지 않아 고통의 광야를 걸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걸을 때 우리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가장 분명한 길이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가장 바른 길입니다.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새 생명의 호흡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한해도 우리는 참 많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삶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 드린 기도의 시간과 감사의 시간이 충분했는지를 돌아봅니다. 아직 채우지 못한 기도와 감사의 시간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지친 숨과 무거운 마음 속에도 하나님의 숨결이 우리를 새롭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은 공의를 전하고 베푸시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시고 크게 떠들지도 않으시며 신실하게 공의를 실천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자신의 죽음과 바꾸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알면, 우리의 눈이 밝아져 교만한 마음을 보게 하시고, 우리 안에 있는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며, 죄를 이길 능력이 되십니다. 여전히 악의 저항으로 믿음으로 싸워 나가야 할 영역들이 존재하지만 예수가 걸어가신 길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소명입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긴 포로 생활 속에서 바벨론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다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내 힘으로 살아가던 그 자아를 내려놓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주를 따르는 길이 낯설고 불편함을 마주하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낙심하지 않도록 새 영을 부어 주시고, 주를 위해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통해 참된 생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일상에서의 작은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속에서 잃어 버렸던 감사와 기쁨, 내 환경이 어떠하던지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할 호흡을 허락하십니다.
랄프 턴불 목사의 저서 ‘하나뿐인 교회‘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턴불 목사가 심한 신경통으로 고통 중에 누워있는 할머니 교우를 심방했습니다. “얼마나 고생하십니까?” 하고 문안하자 할머니는 손바닥을 펴 보이며 말했습니다. “이 손에 못이 박힌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은 평안합니다.” 또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머리에 가시가 박히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시 옆구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내 옆구리는 창에 찔리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목사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삶의 증거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상처받는 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손으로 많은 일들을 해내야 하고, 머리에는 염려와 걱정이 가득하며, 마음의 옆구리에는 삶의 아픔들이 쌓여만 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처와 깨어짐 속에서도 다시 살아가게 하시고 회복하게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손에 들려진 것들을 주님께 맡기고 내 마음속의 깊은 곳에서 멈추지 않았던 생각과 흔들림을 주님께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대강절의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굳은 마음과 아픈 상처와 가시가 치유되고 숨이 막혀 있던 자리에도 하나님의 숨결이 불어 넣어지는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상하고 지친 자리, 숨이 차 멈추어 있던 그 자리에서 함께 호흡하시는 주님의 숨결과 임재가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약속을 믿고 삶의 자리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Come, Thou Long Expected Jesus)
Words by Charles Wesley / Music by Rowland H. Prichard, Arranged by 김선민
Violin 1 김지수 Violin 2 최주하 Cello 1 김유림 Cello 2 공수빈 Piano 김선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