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16 2026 주일설교

(신약성경의 핵심 말씀 시리즈 설교 50)

산상설교 (12) 견고한 크리스천의 삶

A Solid Christian Life

마태복음 7:24-29

김태환 목사

24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25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집은 바위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26 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쳤을 때, 그 집은 쉽게 무너졌는데, 그 무너진 정도가 심하였다.” 28 예수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29 그것은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권위를 지닌 분처럼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쉬운성경)

24 “Therefore whoever hears these sayings of Mine, and does them, I will liken him to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on the rock: 25 and the rain descended, the floods came, and the winds blew and beat on that house; and it did not fall, for it was founded on the rock.26 “But everyone who hears these sayings of Mine, and does not do them, will be like a foolish man who built his house on the sand: 27 and the rain descended, the floods came, and the winds blew and beat on that house; and it fell. And great was its fall.” 28 And so it was, when Jesus had ended these sayings, that the people were astonished at His teaching, 29 for He taught them as one having authority, and not as the scribes.(New King James Version)

여러분, 이 슬라이드를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입니다. 높이 443.2m, 102층 건물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을 1년 45일만에 완공을 했다고 하는데, 믿어지시나요? 이 건물을 지었을 때는, 미국이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겪고 있던 때였습니다. 물가가 치솟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실의(失意)에 빠져 있을 때,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건축해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보여 준 상징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욕을 미국의 3대 도시라고 하지 않습니까?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뉴욕 맨해튼에만 고층 빌딩들이 몰려 있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그 이유는, 맨해튼은 지표면 가까이 단단한 암석층이 있어서, 고층 건물을 짓는 데 천혜(天惠)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맨해튼의 건물들은 세월이 지나도 기울지 않고 견고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도 이렇게 견고하게 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합니까? 어느 것 하나 안정된 것이 없습니다. 건강도, 직장도, 경제적인 문제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자녀들의 장래도 확실하게 보장된 것이 없어 늘 불안합니다.

이런 때에,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24절) 예수님의 말씀은 “비록 너희가 흔들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너희의 인생을 반석 위에 세울 수 있는 길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고, 많은 돈을 들여야 들어갈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그 길이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면 됩니다. 이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쉬운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福音)’이라고, ‘복된 소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코우에이(ἀκούει)’이고, 히브리어로는 ‘쉐마(שמע)’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듣는다’는 말을 ‘hear’ 혹은 ‘listen’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아코우에이’라는 말 속에는 단순히 듣는다는 뜻을 넘어 그 말씀대로 실천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쉐마’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되풀이해서 말씀하셨을까요? 그 당시 사람들이,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말씀을 지키지 않는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두 분의 학자가 있습니다. 손봉호 교수님과 이만열 교수님이십니다. 두 분이 모두 89세로 동갑이십니다. 그분들이 우리 곁에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하게 다가오는 시점입니다. 손봉호 교수님께서 얼마 전 미국 강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재 한국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는 고작 19%에 불과합니다. 천주교나 불교보다도 눈에 띄게 낮은 수준입니다. 교회가 이토록 신뢰를 잃어버린 가장 큰 원인은 ‘그리스도인들의 언행불일치’ 때문입니다. 말과 삶이 따로 노는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제 우리의 신앙이 귀로 듣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으로 증명되는 진짜 윤리 운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말씀이,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말씀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많은 교회들이 성경을 배우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배운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오늘날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비단 오늘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것이 심각한 문제였고, 구약 시대에도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에스겔 33:31-32을 보십시오. “내 백성이 내게 와서, 나의 말을 듣고 있으나, 그들은 들은 것을 실천하지는 않는다. 입으로는 헌신을 표현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부정한 이익들을 탐하고 있다……그들이 나의 말을 들으나, 그것들을 실천하지는 않는다.” 에스겔은 유다가 멸망했을 때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포로생활 중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다의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받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지키지 않는 것이 우리의 고난과 불행과, 심지어 우리 인생의 파멸과도 관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제일 큰 원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이라고 말하는 사람 모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마태복음 7:21) 예수님은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격은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말만 하고 지키지 않는다(마태복음 23:3)”고 비판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언행일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미국의 전설적인 부흥사 디엘 무디(D. L. Moody, 1837-1899)는 실천적인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무디는, 성경 지식에 머물지 않고, 그 지식이 실제 삶을 통해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무디는 자기 성경 책에 알파벳 기호를 표시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옆에 ‘T’자와 ‘P’자를 적어 표시해 두었습니다. ‘T’자는 Tried라는 말의 약어인데, “내가 이 말씀을 붙잡고 치열하게 살아 보았다”라는 뜻이고, ‘P’자는 Proved라는 말의 약어인데, “하나님의 약속이 내 삶에서 진짜로 증명되었다”라는 고백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번 주에 한 가지 말씀을 정해서 ‘T’자를 쓰고, 응답을 경험하면 그 옆에 ‘P’자를 쓰는 것입니다. 즉시 응답이 없을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진실하게 살아간다면, 무디에게 응답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응답하실 것입니다.

제임스 패커(J.I. Packer, 1926-2020)라는,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가 있습니다. 존 스토트, 마틴 로이드 존스와 함께 현대 복음주의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 존경받는 분입니다. 그가 ‘견고한 크리스천(Growing in Christ, 1994)’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의 한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믿음과 삶을 전적으로 오직 그 말씀 위에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외향적이고 활기 넘치는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를 영혼 깊숙이 느끼고, 그 말씀을 끊임없이 묵상하며, 그 말씀이 자신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고, 그 말씀에 따라 날마다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고쳐 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견고한 크리스천은, 겉모습만 화려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영적인 뿌리를 깊이 내린 사람입니다. 머릿속에 성경 지식만 가득 채우는 율법학자 같은 신앙이 아니라, 내가 배운 성경 말씀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율법학자들에게서 보았던 권위는, 율법의 조항과 전통, 형식적인 규칙을 엄격히 지키도록 강요하는 데서 오는 권위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권위는 율법의 문구에 얽매이지 않는 권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위는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데서 오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권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위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권위였습니다. 사람들은 여태껏 이런 권위 있는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놀라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엑세플레-쏜토(ἐξεπλήσσοντο)’라는 말인데요. 영어로 ‘astonished’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단순히 놀라움을 넘어, 믿을 수 없는 일이나 엄청난 충격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랐을 때 쓰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거절할 수 없는 권위있는 말씀으로 들려서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에게도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붑니다. 중요한 것은, 폭풍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세운 집의 기초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폭풍을 만나도 반석 위에 견고하게 세워진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말씀만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말씀을 실천하는 습관을 만들어 나가십시오. 아리스토텔레스(384-322 B.C.)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행하는 행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탁월함이란 일회성 행동이 아니라 일종의 습관이다.” –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은 탁월함은 앎(knowing)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알면 행동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탁월함은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반복적인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한번의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반복적인 습관이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한다고 본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크리스천의 탁월함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크리스천의 탁월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날씨가 좋고 평안할 때는 내 인생의 기초가 반석인지 모래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겨울이 오고, 매서운 환난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비로소 우리가 세운 집의 진짜 기초가 드러납니다. 단순히 말씀을 배우는 지식에 머물지 마십시오. 오늘 당장, 작은 말씀 하나라도 실천하는 ‘거룩한 습관’을 시작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견고한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0809 2026 주일설교

성령강림절 제 11주

다시 걷게 하시는 은혜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Grace That Makes Us Walk Again (Why Are You Here?)

열왕기상 19:9~18

9 시내 산에 도착한 엘리야는 한 동굴 속에 들어가 밤을 지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야,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10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저는 언제나 제 힘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제단을 부수고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살아 남은 예언자는 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저까지 죽이려 합니다.” 11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거라. 산 위에서 내 앞에 서 있어라. 내가 네 앞으로 지나가겠다.” 그러더니 매우 센 바람이 불어와 여호와 앞에서 산을 가르고 큰 바위를 쪼갰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바람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불고 난 뒤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지진 속에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12 지진이 일어난 뒤에 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불이 난 뒤에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동굴 입구에 섰습니다. 그 때에 어떤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엘리야야!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14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저는 언제나 제 힘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제단을 부수고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살아 남은 예언자는 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저까지 죽이려 합니다.” 15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왔던 광야 길로 돌아가 다마스커스로 가거라. 그 성에 들어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으로 세워라. 16 그런 다음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므홀라 사람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라. 그는 너의 뒤를 이을 예언자가 될 것이다. 17 하사엘의 칼을 피해서 도망치는 사람은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해서 도망치는 사람은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18 또한 내가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는데, 그들은 한 번도 바알에게 절한 적이 없고 바알의 우상에게 입을 맞춘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쉬운성경)

9 There he came to a cave, where he spent the night. But the Lord said to him,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10 Elijah replied, “I have zealously served the Lord God Almighty. But the people of Israel have broken their covenant with you, torn down your altars, and killed every one of your prophets. I am the only one left, and now they are trying to kill me, too.” 11 “Go out and stand before me on the mountain,” the Lord told him. And as Elijah stood there, the Lord passed by, and a mighty windstorm hit the mountain. It was such a terrible blast that the rocks were torn loos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wind. After the wind there was an earthquak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earthquake. 12 And after the earthquake there was a fir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fire. And after the fire there was the sound of a gentle whisper. 13 When Elijah heard it, he wrapped his face in his cloak and went out and stood at the entrance of the cave. And a voice said,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14 He replied again, “I have zealously served the Lord God Almighty. But the people of Israel have broken their covenant with you, torn down your altars, and killed every one of your prophets. I am the only one left, and now they are trying to kill me, too.” 15 Then the Lord told him, “Go back the same way you came, and travel to the wilderness of Damascus. When you arrive there, anoint Hazael to be king of Aram. 16 Then anoint Jehu grandson of Nimshi to be king of Israel, and anoint Elisha son of Shaphat from the town of Abel-meholah to replace you as my prophet. 17 Anyone who escapes from Hazael will be killed by Jehu, and those who escape Jehu will be killed by Elisha! 18 Yet I will preserve 7,000 others in Israel who have never bowed down to Baal or kissed him!”(New Living Translation)

지난 주 우리는 얍복강가에서 홀로 씨름하던 야곱을 만났습니다. 그는 밤새 하나님을 붙잡았고, 엉덩관절이 어긋나는 아픔 속에서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는 그 당시 영적인 거장이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던 바알 선지자들 450명과 홀로 대결합니다. 450대 1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바알신을 부르짖던 선지자들 앞에서 불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을 보며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보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땅은 3년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자 하늘이 캄캄해지고,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큰 비가 내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강한 능력을 경험하고도 무너진 엘리야를 다시 순종의 걸음을 걷게 하시는 은혜를 보게 합니다.

1.무너진 자를 먹이시는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는 승리를 경험한 후 이세벨이 보낸 사신의 말로 인해, 두려워 하여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 도피한 엘리야는 광야 길로 다시 하루를 더 걸어 들어가 한 로뎀나무 아래 몸을 눕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죽기를 구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을까요? 갈멜산에서의 선지자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거룩한 길을 애쓰며 걷는 성도의 삶에도 수많은 유혹과 씨름해야 할 문제들이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로뎀나무 밑에 있던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회복시켜 주셨던 하나님께 힘을 얻어야 합니다. 죽기를 청하는 그 두려움에서 누가 살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엘리야를 책망하시지 않으시며 주의 천사를 통해 어루만져 주시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뜨겁게 달군 돌에 구워 낸 빵과 물로 엘리야의 육신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엘리야의 육신은 하나님의 이러한 자상한 보살핌으로 인하여 음식을 먹고 사십을 밤낮을 걸으며, 하나님의 산 호렙에까지 이를 수 있는 힘을 비축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의 이러한 영적침체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보다 두려움을 주는 이세벨의 말이 마음 안에 더 크게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가장 뜨겁게 은혜 받고도, 눈물의 승리를 거두고도, 이유 없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번아웃의 자리가 찾아옵니다. 도망가고 싶고, 돌아가고 싶은 자리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열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마음이 허해지는 그런 때입니다. 마치  3년 6개월 비가 오지 않았던 땅처럼 마음이 굳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고 회복시키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성도는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거룩한 삶을 배워 나가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변화된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평생 이방인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며 살수 있던 힘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을 덜어 내시는 분입니다. 삶을 살아가노라면 항상 희망과 생기가 넘치는 시절만 있지는 않습니다. 영적인 어려움에 빠져서 낙심하여 지낼 때도 있습니다.

얼마전 찬양을 들으며 무심코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을 읽어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한참을 읽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성도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남긴 마지막 신앙의 고백, 하나님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교우의 눈물의 간증, 돌아가고 싶지만 여전히 상처안에서 숨어있는 고통, 자신의 삶 속에서 씨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누군가의 짧은 고백도 있었습니다. 간절한 고백들이 로뎀나무 아래로 찾아온 엘리야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신음하던 엘리야를 먼저 먹이시고 회복시키신후 사명을 주셨다면,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동일합니다. 

2.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은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기쁨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부르심까지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소명은 분명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게 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한때는 기쁨으로 감당했던 그 일이, 지금은 버거운 짐처럼 느껴지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명은 우리를 영적 침체 속에 그냥 머물러 있게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서 우리를 먹이시고 다시 걷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에서 엘리야를 먹이신 후에 호렙산 굴 앞에서 다시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그의 몸은 회복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엘리야야,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엘리야였지만 엘리야는 “저밖에 없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혼자라고 느낀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립감과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생활하며 우리는 홀로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때가 있을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혼자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 감정 안에 갇히면 두려움은 더 커지고 시야는 좁아져 불안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질과 감정이 우리의 믿음을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삶의 기반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한없이 연약해지고 하나님의 마음과 점점 멀어져 갑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이 느껴집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여호와께서 그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고,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 지진 가운데도,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개역개정은 이 소리를 세미한 소리라고 번역합니다. 히브리어로 콜 데마마 다카 (קוֹל דְּמָמָה דַקָּה )입니다. 고요하고 미세한 침묵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이 침묵 뒤에 다시 네가 왔던 광야 길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도 삶의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인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자책하고, 내 안의 상처로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그 상처의 이유를 하나님께 돌리며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오래 묵혀둔 그 상처가, 잘 살아내고 싶어 발버둥 쳤던 그 시간들이 예배의 자리, 은혜의 자리에 서지 못하도록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 명령을 주셨습니다. 광야 길로 돌아가 다마스커스로 가서 하사엘을 아람 왕으로,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그리고 엘리사를 그의 후계자 선지자로 세우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달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하사엘과 예후에게 가서 그들을 왕으로 세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7 하사엘의 칼을 피해서 도망치는 사람은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해서 도망치는 사람은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하사엘의 군대는 이스라엘을 침공했고 예후는 아합의 왕가를 심판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의 군대는 피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재능은 자격이 아니라 은혜로 맡겨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엘리야는 두려움이 사라진 후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다시 걸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자를 먹이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게 하십니다.

히즈윌의 날개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매일 성전 뜰만 밟고 서성이다 / 늘 그만큼만 주님을 의지하다/ 내 것인 줄 알았던 내 삶이 /  이리저리 흔들리고 무너질 때/ 주님, 나는 주님 없이는 /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 주님, 나는 주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 주님과 함께 날아오를 때/ 높은 산은 점점 더 낮아지고/ 삶의 골짜기마다 흘러넘치는 / 주님의 은혜/ 이제껏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가 / 이후의 삶도 지켜주시리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날개로 /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날개로 날아오르리

주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우리가 그 은혜로 오늘도 사명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명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간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네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엘리야가 있어야 할 자리는 떨어져 나간 로뎀나무 아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고, 칠천 명의 남은 자 가운데, 엘리야는 다시 자기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이처럼 은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낙심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있던 주어진 사명을 인식하게 합니다.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은 절망이 막을 수 없습니다. 폭풍이 다 지나간 다음이 아니라, 폭풍이 여전히 그대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도 순종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멈춰 섰던 그 자리가 다시 걷는 자리가 되는 것은, 우리를 붙드시고 끝까지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며, 두려워 멈추었던 자리, 혼자라 생각하여 포기하려고 했던 자리에서 우리를 먹이시고 재우시고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두려움과 염려 앞에, 이미 다 이루신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합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서 도망쳤던 내 삶의 로뎀나무는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먹이고 재우시며 다시 일어나 가라고 하시는 그 자리는 어디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로뎀나무 아래에서 주시는 위로는 우리를 다시 일어나 걷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말씀을 살아내는 힘은 내 삶의 바람과 지진과 불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걸음을 내딛는 데서 시작됩니다. “저밖에 없습니다” 라고 주저 앉아 있는 마음을 주님이 먹이시고 재우십니다. 그리고 “일어나 걸어라.” 말씀하시며 찾아오십니다. 혼자 걷는 것 같아도 함께 걷고 있는 길입니다. 로뎀나무의 위로에만 멈추어 있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의 길을 향해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위로하시며 다시 사명을 허락하시고 생명을 살리십니다. 무너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은혜 붙들고 순종의 자리에서 걷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