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20 2026 주일 설교

성령강림절 제 17주

내 마음의 애굽

Egypt in my heart

출애굽기 16: 2-3,11-15

2그 때에 모든 이스라엘 무리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3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죽이시는 것이 차라리 더 좋을 뻔했소. 이집트에서는 고기 삶는 솥도 곁에 있었고, 빵도 배부르게 먹었소.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끌어 내서 우리를 굶어 죽게 하고 있소.” … …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2 “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전하여라. ‘저녁이 되면, 너희는 고기를 먹게 되리라. 그리고 매일 아침 너희는 배부를 만큼 빵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3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천막들을 덮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이번에는 이슬이 천막 주위를 덮었습니다. 14이슬이 걷히자, 서리와 같은 얇은 조각이 땅 위에 있었습니다. 15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서로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오. (쉬운성경)

사이언스 타임즈에 수록된 글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기억을 저장한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과 감정 속에서 과거를 다시 떠올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 과거의 어려움은 희미해지고 오히려 “그때가 그래도 좋았지”라고 기억하기도 합니다. 본문속의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합니다. 출애굽기 16장 1절은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한 날짜를 적어 둡니다. “애굽에서 나온 지 둘째 달 십오일.”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신 사건이 아직 먼 과거가 아니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도,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면한 유월절도, 홍해를 건넌 사건도 아직 생생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이 지나자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사건보다 지금의 배고픔을 더 크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길 앞에 있으니 두렵고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나자 백성은 모세에게 원망을 쏟아 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죽이시는 것이 차라리 더 좋을 뻔했소. 이집트에서는 고기 삶는 솥도 곁에 있었고, 빵도 배부르게 먹었소.”

2 There, too, the whole community of Israel complained about Moses and Aaron.3 “If only the LORD had killed us back in Egypt,” they moaned. “There we sat around pots filled with meat and ate all the bread we wanted. But now you have brought us into this wilderness to starve us all to death.”…11 Then the LORD said to Moses,12 “I have heard the Israelites’ complaints. Now tell them, ‘In the evening you will have meat to eat, and in the morning you will have all the bread you want. Then you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your God.'”13 That evening vast numbers of quail flew in and covered the camp. And the next morning the area around the camp was wet with dew.14 When the dew evaporated, a flaky substance as fine as frost blanketed the ground.15 The Israelites were puzzled when they saw it. “What is it?” they asked each other. They had no idea what it was.And Moses told them, “It is the food the LORD has given you to eat. [Exodus 16:2-3,11-15, NLT]

첫째, 광야는 우리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사실 애굽이 어떤 곳이었습니까? 강제 노동과 채찍질, 갓 태어난 남자아이를 나일강에 던지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살던 그때를 “고기 삶는 솥 곁”으로 기억합니다. 현재의 고통이 과거의 고통을 희미하게 만든 기억의 재구성입니다. 인간은 단 몇 분 만에도 삶의 고통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원망을 쏟아낼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광야는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고픔과 두려움이 찾아오면 내가 실제로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문제는 배고픔 자체가 아닙니다. 배고픔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 그것이 원망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8-9절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8 모세가 또 말했습니다. “매일 저녁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고기를 양식으로 주실 것이오. 그리고 매일 아침 여러분이 배부를 만큼 빵을 주실 것이오. 여호와께서 이 일을 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를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이오. 우리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아론과 나를 원망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원망한 것이오.” 원망의 궁극적인 대상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원망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룬(לוּן, lun)입니다. 이 단어는 반복적으로 불평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그 원망의 방향입니다. 백성은 겉으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지만, 모세는 그들의 원망이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원망을 들으셨으니, 여호와를 만나러 나아오시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예배하게 하라.” 열 가지 재앙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사건만이 아니라, 누가 참된 하나님이시며 누가 자기 백성의 주인이신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예배와 찬양은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함께 나올 수 없듯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에서 형제를 저주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마음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어디로 가져가느냐입니다. 사람에게 쏟아내는 원망은 바람처럼 번져 서로를 병들게 하지만, 하나님께 가져간 탄식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연결합니다. 주안에서 탄식이 깊은 기도가 되고, 우리의 마음을 회복하는 진심의 예배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믿음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만나를 주시며 가르치십니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내려진 만나는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광야에서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비를 내리듯 양식을 내려 줄 터이니, 백성들이 날마다 나가서 그 날에 필요한 양식을 거두도록 하여라. 내가 이 일로 백성들이 내가 가르친 대로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시험하여 볼 것이다. 5매주 육 일째 되는 날에는 다른 날에 거두는 양보다 두 배 더 많게 거두어라. 다음 날 거둘 분량을 저장해 두어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믿음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 주시며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내일 것을 미리 쌓아두지 말라는 것, 오늘 필요한 만큼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침까지 남겨두어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 광야에서의 시간은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하루하루 몸으로 확인시키시는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지금 내 상황의 문제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내 힘으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지만, 우리의 본성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편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주인이 아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도, 내 삶의 주인도, 교회의 주인도 내가 아닙니다.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만, 자녀의 삶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우리는 맡겨진 자리에서 사랑으로 돌보지만 그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교회 옆에 넓은 주차장을 소유하고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주일에는 주차장을 사용하지 않으니 교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1년 52주 가운데 딱 한 주일은 주차장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왜 1년에 한 주는 빌려주지 않으십니까?” 주인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야 누가 주인인지 알지요.”

15절을 보십시오. 15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서로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오.”

우리도 같은 질문 앞에 섭니다. “하나님 왜 이 길을 가야 합니까? 언제까지 저를 이렇게 내버려 두실 것입니까?” 만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급을 눈앞에서 경험하게 하는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그날 필요한 양식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믿음생활의 긴장 속에서 말씀을 신뢰하며 인생의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은 내일의 곳간을 미리 열어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대신 오늘의 만나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에게 말합니다. “저녁이 되면, 여러분은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그날 밤 그들을 먹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홍해에서 건지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만나를 먹은 사람들도 결국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이것이니, 사람이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이 떡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만나는 이스라엘의 육체를 하루하루 살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더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죄인이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로 나아가, 삶에 지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주님의 눈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아래 설 때, 주님은 각자의 마음에 주시는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대개, 우리가 이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 온 자리를 다시 짚으십니다.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처음부터 그들의 계산과 이해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 내신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광야에서도, 우리 마음의 애굽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나고 돌아보면 내가 하나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사십 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소산을 먹기 시작하자 만나가 그쳤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부족할 때에도 풍족할 때에도 누가 나의 주인이며 공급자인지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인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 마음의 애굽일 수 있습니다. 황무지에도 꽃을 피우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광야에도 믿음의 꽃을 피우십니다. 내일을 다 알지 못해도, 우리의 믿음이 완전하지 않아도, 힘겹고 외로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내 마음의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도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