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25 2026 주일설교

예배로 살아가게 하는 힘 (POWER) 시리즈

4주: ‘올려드림’ 보좌의 예배

Week 4: “Exaltation” — Worship at the Throne

요한계시록 4:1-2, 10-11

1Then as I looked, I saw 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and the same voice I had heard before spoke to me like a trumpet blast. The voice said, “Come up here, and I will show you what must happen after this.” 2 And instantly I was in the Spirit,[a] and I saw a throne in heaven and someone sitting on it. 

10 the twenty-four elders fall down and worship the one sitting on the throne (the one who lives forever and ever). And they lay their crowns before the throne and say, 11 “You are worthy, O Lord our God, to receive glory and honor and power. For you created all things, and they exist because you created what you pleased.”(New Living Translation)

요한계시록은 1세기 소아시아 교회, 로마 황제의 폭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했던 성도들을 향해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은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를 보여줍니다. 당시 성도들은 세상의 권력 앞에서 생명을 걸고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 요한은 성령에 사로잡혀 하늘로 인도되었고 하늘의 예배를 관찰하고 본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4:1 그 후에 내가 보니, 내 앞에 하늘로 통하는 문이 하나 열려 있는데, 전에 내가 들었던 그 음성, 곧 나팔 소리처럼 우렁찬 그 음성이 내게 말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너라. 내가 네게 장차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보여 주겠다.” 4:2 그러자 나는 순식간에 성령에 사로잡혀 하늘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내 앞에는 하늘나라의 보좌가 있었고, 그 보좌에 어떤 분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사도요한이 본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보좌는 통치를 상징합니다. 요한은 세상을 실제로 통치하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의 눈에 보이는 권력은 로마 황제였지만, 참된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믿음을 지닌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예배의 방향과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속에서 순종할 힘이 약해 질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힘을 얻기 위해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의 고단함과 눈물까지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보좌를 바라볼때 우리는 말씀에 순종할 힘을 얻게 됩니다.

예배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보좌로 옮기는 것입니다.

성도가 드리는 예배는 단 한번의 은혜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를 의지하는 성도는 매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지속적인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의 어떤 상황도 하나님의 발 아래,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새로운 눈과 귀를 통해 보고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인정받는 나, 잘 살고 있는 나, 이 정도면 신앙도, 내 인생도 괜찮아 보이는 나를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진솔한 나를 드러내기 보다는 괜찮아 보이는 나로 포장하며 서 있으려 합니다. 기도를 드릴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힘을 구하기 보다 하나님께서 내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문자 그대로 목이 뻣뻣해서 하늘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개가 움직이지 않으니 늘 자신만 바라보며 자신의 힘만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그 자체가 불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살아갈 힘을 주실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청년부 수련회에서 다윗처럼 기뻐 뛰며 찬양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우리는 눈물로 기도하며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나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려놓았습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십자가에서 우리를 고아에서 자녀로, 거절에서 응답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꾸어 주신 은혜를 확인하며 하나님께서 초대하시고 열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의 자리를 사순절 새벽기도로 이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2월 18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어 토요일에는 현장 새벽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이제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걸음으로 살아 갈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기도의 자리가 반복되는 습관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삶을 내어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제직들, 교회의 모든 리더들이 먼저 이 길을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맡겨진 이들을 위해 먼저 기도로 엎드릴 때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리더의 사명을 감당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A.W.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는 『습관적 신앙에서 벗어나라(Rut, Rot, or Revival)』라는 책에서 오늘날 신앙의 상태를 ‘잠들어 있다’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생각을 알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을 많이 읽어도, 경외심을 가지고 읽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문 제목 그래로 풀어보면, 신앙은 같은 길, 익숙한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문제없이 걸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바로 신앙의 덫이며 독과 같습니다. 토저는 종교가 부패해 가는 점진적 삼단계를 기계적 상태, 습관적 상태, 부패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우리 삶에는 잠들어 있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매달릴 수 있다면, 그것은 습관적 신앙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은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요한은 성령에 사로잡혀 하늘의 인도되었고 하나님의 보좌를 목격했습니다. 그 보좌에는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앉아 계셨고 그 앞에는 네 생물들과24장로들이 엎드려 자신들의 면류관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실 분이시여!” (계 4:8)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살아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외국에서 살아가며 본향 땅을 그리워할 때마다, 하늘 소망을 바라보며 순례자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예배하는 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집이지만 우리는 주 안에서 하늘 예배를 분명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때 독수리가 날개치는 것과 같이 올라갈 새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릴 때 살아납니다.

4:10 24장로들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경배를 드리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그 보좌 앞에 내려놓으며 외치고 있었습니다. 4:11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주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진실로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온 세상 만물이 생겨났고,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4장로들은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제자들을 구약과 신약의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로 이해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쓰고 있던 면류관을 모두 벗고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자신들이 피조물임을 인식하고, 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늘의 예배는 자기중심적 교만을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며 서로를 세우고 존중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예배의 능력은 하나님 외에는 붙들것이 없음을 고백할때에 나타납니다. 성도가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죽음에서 건짐 받은 인생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심판에서 면제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진리를 믿기 때문에 성도의 삶의 결말은 죽임 당하신 어린양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훼퍼 목사는 ‘나를 따르라’라는 책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이렇게 언급합니다. “가난한 자중에 가장 가난하고 시험당한자 중에 가장 시험당하며 굶주린 자 중에 가장 굶주린 자이다. 그들에게는 주님밖에 없다. 그렇다. 그분과 함께라서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분과 함께이기에 모든 것을 가진다.”아무것도 붙들 것이 없는 절망이라도, 주님이 계시면 모든 것을 가진자인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삶의 어려움 앞에서 스스로 이길 힘이 없어서 주님 밖에 없다고 고백한다면 절망이 아니라 은혜인 것입니다.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서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승리 안에 거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승리하신 자리로 우리도 그분과 나란히 앉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다 이긴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 곁에 나란히 앉은 것같이, 그도 나와 함께 내 보좌 곁에 나란히 앉게 해 주겠다.” (계 3:21)

우리는 입으로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현실 앞에서는 나를 먼저 구하고 싶어 “주님, 제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아니라 이미 역사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현실의 무게가 하나님 뜻보다 커 보일 때도 있지만 이미 승리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흔들리는 현실 앞에서도 이미 승리하신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결핍과 두려움을 넘어 이미 승리하신 기쁨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죽음의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로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는 오랜 도피 생활과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고, 이후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잘려 나간 것처럼 보이는 절망의 상태에서도,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보시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가지가 나서 결실 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이사야 11:1-2)

이새는 다윗왕의 아버지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도 다윗은 지극히 작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마음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잘려진 것처럼 보이는 문제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전심으로 예배하는 순종을 통해 여전히 우리를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사도 요한은 캄캄한 절망 속에서 하늘로 통하는 열린 문으로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생각의 관점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에게 촛점이 맞춰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예수님 자신께 대하는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네가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고 자랑하지만, 성도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 속에서도 자기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를 위해 섬기는 성도를 통해 높임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삶은 마치 새로운 싹이 돋아나듯,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자라나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움켜쥐고 있던 나의 세상을 내려놓고,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맡길 때, 이미 승리하신 능력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심으로 하늘의 뜻을 이루셨고, 우리에게도 그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길은 매일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땅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된 자로서 하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구할수록,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은 결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견디는 가운데,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죄와 처절하게 싸워본 사람은,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을 감사하며, 약속을 믿고 끝까지 따르게 됩니다.

성경을 펼치면, 구절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지고,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갈증이 생깁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뿐 아니라,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통치 안에서 삶의 쓴뿌리가 뽑히고 새로운 씨앗이 심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다는 믿음이 우리의 삶을 움직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완전하지 않아도, 우리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최후 승리를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습니까? 여전히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찰스 스펄전이 말했듯, “하나님을 정말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생활의 침묵 속에서든, 폭풍 속에서든 그분을 예배하는 기쁨을 압니다.” 예배는 단지 교회에서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순간, 숨 쉬는 모든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매 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비로소 우리는 삶과 신앙이 하나로 이어지는 참된 예배의 길을 걷게 됩니다.

01 18 2026 주일설교

예배로 살아가게 하는 힘 (POWER) 시리즈

3주: ‘온전함’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나는 능력

Week 3: Wholeness — Power Revived Through Relationship with God

빌립보서 4:4-7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한 번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4:5 여러분은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너그러움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십시오. 주께서 가까이에 계십니다.
4:6 어떤 일이든,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을 당할지라도, 오직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뢰도록 하십시오.
4:7 그렇게 하면, 모든 인간적인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쉬운말 성경)

4 Always be full of joy in the Lord. I say it again—rejoice! 5 Let everyone see that you are considerate in all you do. Remember, the Lord is coming soon. 6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7 Then you will experience God’s peace, which exceeds anything we can understand. His peace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as you live in Christ Jesus.( New Living Translation)

“존 캐버너(John Kavanaugh, 1941-2012)가 인도 콜카타 ‘죽어가는 자들의 집’에 3개월간 봉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봉사를 하며 마더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에게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테레사가 물었습니다. “뭐라고 기도해 드릴까요?” “예, 확실한 답을 얻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때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확실한 답이야말로 우리가 붙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놓아야 합니다. 확실한 답이 내게는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늘 내게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뢰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하나님을 끝없이 신뢰하도록 기도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끝없이 신뢰하라’는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성과 중심의 사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확신의 목적과 방향입니다. 그 확신이 하나님이 아니라 내 자신이 될 때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고백이 내가 원하는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주를 향한 우리의 믿음은 은혜 안에서 날마다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다 이룬 사람들이 아니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께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캐버너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그분 앞에 설때, 비로소 사랑이라는 선물을 거저 주시는 이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라고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깊어지고 온전해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영적 감각이 생겨나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내 안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를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며 변화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삶을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셨고 그 뜻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도 나를 향한 계획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인생의 곤고함과 궁핍함 속에서도 평안과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으로 부터 얻게 되는 열매이며 상황과 상관없이 누리게 되는 참된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4장 2절을 보면, 바울의 동역자들 가운데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인이 언급됩니다. 이 두사람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힘써서 수고했던 동역자들입니다. 그러나 사역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생각 앞에서도 주님의 마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쁨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항상이라는 단어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감정이나 환경적인 어려움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별설교를 하시면서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어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라”(요 15:11)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별설교를 하시고 예수님은 곧 제자들을 육신으로는 떠나실 것입니다. 기쁨이 줄어 들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너희를 육신으로는 떠나도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머물고 충만하게 할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겪어야 할 것은 고난과 핍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라, 너희가 내 안에 믿음으로 거하고 있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말씀을 따른다면 주 안에서 기쁨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권면은 우리 안에 감정을 배제하고 살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의 중심에서 드러나는 복음의 능력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는 그 어떤 자격과 조건이 아닙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신뢰하기에 조건없이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탁월한 심리학자가 아닙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께서 바울의 마음 중심을 아시고 삶을 움직이는 연료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사고와 결정을 지배한 것은 오직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당시 빌립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로마 시민권이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바울에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은 자랑이자 기쁨의 원천이었습니다.

바울은 남을 먼저 생각하고 너그러움을 베풀라고 말합니다.

기쁨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세상의 것들을 많이 소유해서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내것을 나누고 너그러움을 베푸는 가운데 얻는 기쁨입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관계를 보면 신앙 공동체가 주는 힘을 볼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동참해 준 공동체였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여러분은 나의 기쁨” 이라고 편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서도 “여러분을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사랑의 격려를 받을 때, 불안과 두려운 상황에서도 기쁨과 위로를 경험합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있을 때 그 기쁨과 격려는 단순한 개인적 위로를 넘어 공동체안으로 흘러 서로를 지탱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인간의 본성은 연약하여, 남의 결점은 쉽게 눈에 띄고 자신이 받은 상처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질 때, 넘치는 은혜가 죄로 물든 마음을 씻어내고, 무거운 율법의 짐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가벼워집니다. 이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른이들을 사랑하며 너그러운 배려를 나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게 될것이다”(요:13:35)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에 사랑할 힘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이미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될 때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사랑할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우리 교회가 잠시 들렀다 가는 듯 느껴지더라도 그 짧은 시간 안에서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말씀을 배우고 삶을 나누며 각자의 삶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록 삶에서 잠시 머무는 시간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삶의 좋은 것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불평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반응하며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마음과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처음 만났던 때가 있습니다.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알 수 없는 현실 속에 서 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셨습니다. 내 안에 없었던 사랑이 들어왔고 은혜가 찾아왔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찾아온 선물입니다. 우리중에 누구도 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겸손히 사랑하며 너그러움을 베풀어야 할 이유는 그리스도의 신비가 이를 통해 우리의 삶 속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교회에게 너그러움을 베풀라고 한것은 주께서 이미 우리곁에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엥귀스(ἐγγύς)라는 단어는 시간에 대해서는 ‘임박한’이란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주님의 오심이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오심이 임박했으니 너그러움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로마서에서도 사용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고 올바르게 살아가십시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욱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롬 13:11)  이 구절은 방탕한 삶을 살던 성자 어거스틴이 회개하게 된 말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 말씀앞에서 스스로를 죄인이라 고백했습니다. 어거스틴이 변화된 데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끊임없는 기도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거스틴이 깨닫지 못할 때에도,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 오랜 세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어거스틴의 삶 가까이 계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깨달았을 때, 어거스틴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을 깨닫는 순간 방탕했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바울은 어떤 일이든, 무슨일을 당할지라도 오직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뢰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에게 이 편지를 쓰며 고민하며 신중하게 써 내려 갔을것입니다. 바울이 내 놓은 대책이 기도, 간구, 감사입니다.

기도는 기쁨의 첫 단계입니다. 기도는 삶의 걱정과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만남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마음의 염려와 상함을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겼을 때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내가 나약한 것은 아닌지 자책도 하게 되고, 현실 앞에 무너질 때면 불안이 찾아오기도 하고, 삶이 엉키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쌓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구는 연약함 때문에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드리는 간절함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연약함 그대로, 하나님 앞에 쏟아 놓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곁에 함께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세번째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바울은 사역의 현장에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평탄했던 일 보다 위협하고 핍박받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바울은 무슨 일이라도 그 속에서 감사를 찾았습니다. 바울에게는 문제와 고민거리 조차 감사로 고백하는 제목들이 되었습니다. 감사의 기도는 환경을 바라보는 해석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모든 상황속에서 감사하라고 적극적인 기도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적인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

성도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어렵게 하는 생각들, 잠 못들게 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마음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평강으로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여전히 우리의 문제로 인해 무거운 마음으로 서있다면 하나님께 모두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때 인간적인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늘 함께 동행하여 주십니다. “너의 가는 길에 주의 평강 있으리 평강의 왕 함께 가시니/ 너의 걸음 걸음 주 인도하시리 주의 강한 손 널 이끄시리/ 주님 나라 위하여 길 떠나는 나의 형제여/ 주께서 가라시니 너는 가라 주의 이름으로/ 거칠은 광야 위에 꽃은 피어나고/ 세상은 네 안에서 주님의 영광 보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세상 이기신 주 늘 함께 너와 동행하시며 네게 새 힘 늘 주시리”

이 찬양이 광야같은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느끼는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걸어가는 길이 외롭고 힘들어도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 나라 위하여 길 떠나는 나의 형제여” 라는 찬양의 가사 속에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 모두를 향한 길입니다. 청년부 수련회는 주일 예배와 함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정해진 스케쥴 대로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조금 더 피곤할 수도 있고, 서로 불편해지는 순간들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은혜를 기대하며 왔지만 나에게 주시는 은혜가 부족하다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수련회는 삶의 자리를 떠나 특별한 장소에서 함께 기도하며 세상속에서 주를 향한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주저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란 주제는 인생의 광야에서, 우리가 주저하는 영역에서 믿음의 용기를 지니고 걸어가 보라는 도전의 시간입니다. 교회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잘하는 것을 드러내라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그릇이 커질수록 과시하게 만들지만 복음은 우리를 더 겸손해지게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잘못하면 실패했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을 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혹여라도 믿음의 길을 가는 걸음에서 누군가 상처받지는 않았는지, 주님 나라 위하여 길 떠나는 나의 형제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주님 앞에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하게 됩니다. 정해진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고 주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삶의 자리를 살피시고 진정한 기쁨의 근원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수련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청년들도, 기도로 함께 할 모든 교우들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한주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진정한 기쁨의 토대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있습니다. 복음의 생명력은 어떤 상황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할때 복음의 능력은 세상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교회는 나의 평안을 위해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나아가도록 제자 삼은 공동체입니다. 기쁨으로 제자를 만드는 곳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나는 힘을 지니고 주저하지 말고 세상속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