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로 살아가게 하는 힘 (POWER) 시리즈
4주: ‘올려드림’ 보좌의 예배
Week 4: “Exaltation” — Worship at the Throne
요한계시록 4:1-2, 10-11
4:1 그 후에 내가 보니, 내 앞에 하늘로 통하는 문이 하나 열려 있는데, 전에 내가 들었던 그 음성, 곧 나팔 소리처럼 우렁찬 그 음성이 내게 말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너라. 내가 네게 장차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보여 주겠다.” 4:2 그러자 나는 순식간에 성령에 사로잡혀 하늘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내 앞에는 하늘나라의 보좌가 있었고, 그 보좌에 어떤 분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4:10 24장로들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경배를 드리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그 보좌 앞에 내려놓으며 외치고 있었습니다. 4:11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주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진실로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온 세상 만물이 생겨났고,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쉬운말 성경)
1Then as I looked, I saw 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and the same voice I had heard before spoke to me like a trumpet blast. The voice said, “Come up here, and I will show you what must happen after this.” 2 And instantly I was in the Spirit,[a] and I saw a throne in heaven and someone sitting on it.
10 the twenty-four elders fall down and worship the one sitting on the throne (the one who lives forever and ever). And they lay their crowns before the throne and say, 11 “You are worthy, O Lord our God, to receive glory and honor and power. For you created all things, and they exist because you created what you pleased.”(New Living Translation)
요한계시록은 1세기 소아시아 교회, 로마 황제의 폭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했던 성도들을 향해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은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를 보여줍니다. 당시 성도들은 세상의 권력 앞에서 생명을 걸고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 요한은 성령에 사로잡혀 하늘로 인도되었고 하늘의 예배를 관찰하고 본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4:1 그 후에 내가 보니, 내 앞에 하늘로 통하는 문이 하나 열려 있는데, 전에 내가 들었던 그 음성, 곧 나팔 소리처럼 우렁찬 그 음성이 내게 말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너라. 내가 네게 장차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보여 주겠다.” 4:2 그러자 나는 순식간에 성령에 사로잡혀 하늘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내 앞에는 하늘나라의 보좌가 있었고, 그 보좌에 어떤 분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사도요한이 본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보좌는 통치를 상징합니다. 요한은 세상을 실제로 통치하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의 눈에 보이는 권력은 로마 황제였지만, 참된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믿음을 지닌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예배의 방향과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속에서 순종할 힘이 약해 질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힘을 얻기 위해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의 고단함과 눈물까지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보좌를 바라볼때 우리는 말씀에 순종할 힘을 얻게 됩니다.
예배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보좌로 옮기는 것입니다.
성도가 드리는 예배는 단 한번의 은혜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를 의지하는 성도는 매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지속적인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의 어떤 상황도 하나님의 발 아래,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새로운 눈과 귀를 통해 보고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인정받는 나, 잘 살고 있는 나, 이 정도면 신앙도, 내 인생도 괜찮아 보이는 나를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진솔한 나를 드러내기 보다는 괜찮아 보이는 나로 포장하며 서 있으려 합니다. 기도를 드릴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힘을 구하기 보다 하나님께서 내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문자 그대로 목이 뻣뻣해서 하늘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개가 움직이지 않으니 늘 자신만 바라보며 자신의 힘만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그 자체가 불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살아갈 힘을 주실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청년부 수련회에서 다윗처럼 기뻐 뛰며 찬양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우리는 눈물로 기도하며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나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려놓았습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십자가에서 우리를 고아에서 자녀로, 거절에서 응답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꾸어 주신 은혜를 확인하며 하나님께서 초대하시고 열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의 자리를 사순절 새벽기도로 이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2월 18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어 토요일에는 현장 새벽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이제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걸음으로 살아 갈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기도의 자리가 반복되는 습관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삶을 내어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제직들, 교회의 모든 리더들이 먼저 이 길을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맡겨진 이들을 위해 먼저 기도로 엎드릴 때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리더의 사명을 감당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A.W.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는 『습관적 신앙에서 벗어나라(Rut, Rot, or Revival)』라는 책에서 오늘날 신앙의 상태를 ‘잠들어 있다’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생각을 알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을 많이 읽어도, 경외심을 가지고 읽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문 제목 그래로 풀어보면, 신앙은 같은 길, 익숙한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문제없이 걸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바로 신앙의 덫이며 독과 같습니다. 토저는 종교가 부패해 가는 점진적 삼단계를 기계적 상태, 습관적 상태, 부패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우리 삶에는 잠들어 있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매달릴 수 있다면, 그것은 습관적 신앙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은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요한은 성령에 사로잡혀 하늘의 인도되었고 하나님의 보좌를 목격했습니다. 그 보좌에는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앉아 계셨고 그 앞에는 네 생물들과24장로들이 엎드려 자신들의 면류관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실 분이시여!” (계 4:8)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살아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외국에서 살아가며 본향 땅을 그리워할 때마다, 하늘 소망을 바라보며 순례자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예배하는 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집이지만 우리는 주 안에서 하늘 예배를 분명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때 독수리가 날개치는 것과 같이 올라갈 새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릴 때 살아납니다.
4:10 24장로들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경배를 드리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그 보좌 앞에 내려놓으며 외치고 있었습니다. 4:11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주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진실로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온 세상 만물이 생겨났고,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4장로들은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제자들을 구약과 신약의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로 이해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쓰고 있던 면류관을 모두 벗고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자신들이 피조물임을 인식하고, 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늘의 예배는 자기중심적 교만을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며 서로를 세우고 존중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예배의 능력은 하나님 외에는 붙들것이 없음을 고백할때에 나타납니다. 성도가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죽음에서 건짐 받은 인생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심판에서 면제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진리를 믿기 때문에 성도의 삶의 결말은 죽임 당하신 어린양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훼퍼 목사는 ‘나를 따르라’라는 책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이렇게 언급합니다. “가난한 자중에 가장 가난하고 시험당한자 중에 가장 시험당하며 굶주린 자 중에 가장 굶주린 자이다. 그들에게는 주님밖에 없다. 그렇다. 그분과 함께라서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분과 함께이기에 모든 것을 가진다.”아무것도 붙들 것이 없는 절망이라도, 주님이 계시면 모든 것을 가진자인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삶의 어려움 앞에서 스스로 이길 힘이 없어서 주님 밖에 없다고 고백한다면 절망이 아니라 은혜인 것입니다.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서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승리 안에 거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승리하신 자리로 우리도 그분과 나란히 앉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다 이긴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 곁에 나란히 앉은 것같이, 그도 나와 함께 내 보좌 곁에 나란히 앉게 해 주겠다.” (계 3:21)
우리는 입으로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현실 앞에서는 나를 먼저 구하고 싶어 “주님, 제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아니라 이미 역사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현실의 무게가 하나님 뜻보다 커 보일 때도 있지만 이미 승리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흔들리는 현실 앞에서도 이미 승리하신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결핍과 두려움을 넘어 이미 승리하신 기쁨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죽음의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로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는 오랜 도피 생활과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고, 이후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잘려 나간 것처럼 보이는 절망의 상태에서도,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보시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가지가 나서 결실 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이사야 11:1-2)
이새는 다윗왕의 아버지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도 다윗은 지극히 작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마음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잘려진 것처럼 보이는 문제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전심으로 예배하는 순종을 통해 여전히 우리를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사도 요한은 캄캄한 절망 속에서 하늘로 통하는 열린 문으로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생각의 관점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에게 촛점이 맞춰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예수님 자신께 대하는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네가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고 자랑하지만, 성도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 속에서도 자기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를 위해 섬기는 성도를 통해 높임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삶은 마치 새로운 싹이 돋아나듯,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자라나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움켜쥐고 있던 나의 세상을 내려놓고,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맡길 때, 이미 승리하신 능력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심으로 하늘의 뜻을 이루셨고, 우리에게도 그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길은 매일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땅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된 자로서 하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구할수록,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은 결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견디는 가운데,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죄와 처절하게 싸워본 사람은,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을 감사하며, 약속을 믿고 끝까지 따르게 됩니다.
성경을 펼치면, 구절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지고,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갈증이 생깁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뿐 아니라,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통치 안에서 삶의 쓴뿌리가 뽑히고 새로운 씨앗이 심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다는 믿음이 우리의 삶을 움직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완전하지 않아도, 우리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최후 승리를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습니까? 여전히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찰스 스펄전이 말했듯, “하나님을 정말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생활의 침묵 속에서든, 폭풍 속에서든 그분을 예배하는 기쁨을 압니다.” 예배는 단지 교회에서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순간, 숨 쉬는 모든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매 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비로소 우리는 삶과 신앙이 하나로 이어지는 참된 예배의 길을 걷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