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Jesus
(칸타타 ‘엎드려 경배하세’ 중에서)
김기영 편곡
Soprano Solo 조소현
FKCC Choir & Orchestra, Conductor 김기영
(칸타타 ‘엎드려 경배하세’ 중에서)
김기영 편곡
Soprano Solo 조소현
FKCC Choir & Orchestra, Conductor 김기영
대강절 시리즈 – 하나님과 함께
빛 : 인생을 비추시는 그 빛으로
The Light: Into the Light That Illuminates Our Lives
요한복음 3:16-21
3:16 ○ 진실로 그렇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소. 그것은, 누구든지 그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오. 17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려고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고 보내셨소. 18 누구든지 그 아들을 믿는 사람은 정죄를 당하지 않소. 그러나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은 것이오. 19 그런 자들이 죄인으로 판결을 받는 까닭은, 참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그들의 행위가 악하여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오. 20 악을 행하는 자들은 모두가 빛을 싫어하는 법이오. 악인들은 자기들의 악한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 빛 가운데로 나오지 않소. 21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꺼이 빛 가운데로 나오는 법이오. 그것은, 자신의 행위가 모두 하나님을 통해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오.”(쉬운말 성경)
16 “For this is how God loved the world: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wi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17 God sent his Son into the world not to judge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18 “There is no judgment against anyone who believes in him. But anyone who does not believe in him has already been judged for not believing in God’s one and only Son. 19 And the judgment is based on this fact: God’s light came into the world, but people loved the darkness more than the light, for their actions were evil. 20 All who do evil hate the light and refuse to go near it for fear their sins will be exposed. 21 But those who do what is right come to the light so others can see that they are doing what God wants.”(New Living Translation)
팬데믹 시절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서로에게 전해질 수 있는 바이러스를 끊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감염을 막고 서로를 지키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안에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림자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다 상처받고, 기대가 무너지면 그 틈 사이로 어둠이 찾아옵니다. 그 어둠은 불평으로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어 마음을 짓누르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의 마음과는 멀어져 살아가게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탄생할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이사야 60:1)
빛으로 세우신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를 회복시키고 일으키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함께 걷는다는 것은 어둠을 지나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어둠을 밝혀 주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며 삶 속에서 일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현재 인생의 어두운 시간을 걷고 계신분이 계신가요? 예수님도 그 어둠속을 지나가셨고, 이 땅에서 겪으신 어둠과 고통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 아니라 저녁입니다. 인생에도 저녁을 거쳐 어둠의 시간을 잘 견뎌 낼때,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내가 세상의 빛이다’(요 8:12)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어둠속 작은 틈 사이에도 들어와 공간을 밝혀줍니다. 우리의 마음이 고통 가운데 완고해지고 단단해질지라도, 말씀이 스며들 틈만 있다면 하나님은 그 어둠 속에서도 빛으로 역사하십니다
1.빛으로 나아오라.
예수께서 빛이라고 하신 자기고백을 오늘 본문 3장 16절의 말씀과 연관해서 보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이 빛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으로 번역된 코스모스(κόσμος)는 ‘질서, 조화’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세상(κόσμος)을 극진히 사랑하셔서’라는 것은 죄로 인하여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수 있습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노력과 열심의 차원이 아닙니다. 구원 받기 위한 어떤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사랑입니다.
죄로 물든 세상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지극히 작은 어린아이 같을지라도 성령께서는 빛의 자녀들을 강하게 세우셔서 거룩함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합니다. 빛으로 가까이 나아올때 빛의 열기가 성도의 거룩함을 유지하고 살아나게 합니다. 예배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예배는 마음 중심에 있는 어둠을 밀어내고,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사랑을 마음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어둠이 왕이 될수 없음을 선언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됩니다. 인간의 사랑도 국경을 넘어 갈 정도로 힘이 있는데,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연결되면 우리의 삶에 놀라운 축복과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은 이 사랑을 막을 어둠은 없습니다. 이 사랑은 죽음의 권세를 뚫고 세상에 들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빛 가운데로 나아온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2.빛 앞에서 드러난다.
오늘날 세상과 교회에는 이 빛을 가리려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복음을 세상적 관점으로 포장하거나 형식에 머물게 하여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만을 원하고 훈계와 책망을 거부하는 시대가 되어갑니다. 우리의 마음은 점점 편하고 쉬운 길로 향하려고 하고, 내 뜻과 다르면 사랑하고 함께하는 일도 불편한 일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진리의 빛은 우리의 자랑속에 담긴 교만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내 삶이 충분하다고 여기는 자만한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을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고, 나보다 더 탁월한 사람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전 영역에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곳이 없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숨길 수 있는 영역은 단 한곳도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은 “죄의 권세로 부터 자유로워진 택함을 입은 신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재하는 죄의 능력을 죽이는 일을 그들 평생의 임무로 삼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죄란 태양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유지되는 행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궤도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죄와의 싸움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알지만 여전히 현재의 세상에 더 끌리고, 어둠 가운데서 만족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이런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구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우리의 성과와 실력으로 살았더라도 먼저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그런 깨달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눈물로 함께 기도하고 감사와 사랑을 선택하며 서로의 기도 제목을 품고 삶 속에서 힘이 되어주는 지체들을 만나는 곳, 서로가 약함을 자랑하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경험하게 됩니다.
3.빛은 삶으로 나타난다.
마태는 이 빛을 ‘착한 행실’로 표현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그 빛을 그 사람들 앞에서 비취게 하라.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그 착한 행실들 보게 하라. 그래서 그들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그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우리는 이 구절을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문의 성경은 순서가 반대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빛을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비추게 하여, 이 빛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착한 행실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윤리적 도덕적 착한 행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 보다 앞설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착한’이라는 헬라어 ‘칼로스’는 본질적으로 선함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나는 선한(καλός) 목자라”(요 10:11)하실때도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70인역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실때 ‘좋았다’라는 의미를 이 단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착한 행실은 창조의 선함이 드러나는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를 믿는 이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과 연관 지어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광야에서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놋뱀을 들어 올리게 하시고, 쳐다 보는 사람은 치유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빛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성경에서 뱀은 죄를 짓게 하는 기원으로 봅니다. 죽어가는 백성은 죄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백성들은 모세의 말씀을 믿고 장대에 올린 놋뱀을 바라보았을때 살아났습니다. 놋뱀은 죄의 심판으로 십자가에서 죽어진 예수님의 모습을 예표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절규하시며, 거절당하고 버림받으셨는데, 그 주님을 믿을때 인간의 삶의 목적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삶의 익숙치 않는 경험들 속에서 정신없이 가던 삶을 멈추고 은혜로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은 은혜로 살아가도록 주신 시간들입니다. 주님께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향할 때 우리의 예배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믿음을 성장하게 하는 힘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14절로 16절을 잊고 세상을 판단하고 정죄 받을 대상으로 여기며 복음을 전하다 보니 그 시각은 점점 어두워지고, 밝은 면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는 것은 성령에 매여 지속적인 거룩함의 과정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오늘날 시대는 진리의 눈이 열렸는데, 깨어진 세상을 보고 나니까 오히려 사명자로 살아가기 보다는 눈 뜨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기도를 드린다거나,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3:21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꺼이 빛 가운데로 나오는 법이오. 그것은, 자신의 행위가 모두 하나님을 통해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오.”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62년전 1953년 링컨 기념관 앞에 모인 25만명 앞에서 루터 킹은 자신의 소박한 꿈을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그 일부분입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골짜기 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는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그는 빛이 어둠을 이기듯 사랑이 미움을 이기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보았습니다. 거룩한 부르심을 외치는 연설과도 같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주신 부르심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꿈을 꾸며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걷는 분들의 삶을 깊이 들어가 보면, 삶의 현실 앞에서 연약한 양과 같습니다. 캄캄한 터널 가운데 있으니 믿음의 발걸음은 느려집니다. 그런데 사단은 인간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영적으로 침체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진리와 사랑의 빛을 없앨 수 없으니 이 빛에 익숙해 지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말씀을 들어도 감격을 사라지게 하고, 복음의 형식은 있는데 능력이 사라져 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물이 닿는 그 곳에, 조용히 멈추어 있는 기도의 자리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한숨 속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같은 현실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누구든지 그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 사랑의 일방적인 선언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대강절 세번째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 빛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빛은 이미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빛을 발견하는데 멈추지 않고, 그 빛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이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추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고백이, 우리의 작은 마음이 사람을 살리는 빛이 되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깨어지고 부서진 깊은 고독의 자리에서도 이 빛은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빛을 지닌 자녀들입니다. 넉넉한 사랑의 품으로 가정과 일터, 학업의 현장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받은 빛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흔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반석처럼,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믿는 성도들의 삶을 통해 살아 역사하시는 진리의 빛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찬양하라)
Music by John Leavitt / Arr. by Keeyoung Kim
Violin 1 황예지, Violin 2 최주하, Cello 최지혁, Piano 김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