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13 2026 주일설교

성령강림절 제 16주

여전히 두려워 하는 이에게

Still Trembling Before Grace

창세기 50:15-21

15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이렇게 말하였다. “요셉이 아직도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서 우리가 전에 그에게 잘못한 모든 일에 대해 앙갚음을 하면 어쩌나?” 16그리하여 그들은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짓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네가 형들이 저지른 죄와 잘못을 다 용서해 주기 바란다.” 그러니 이제 우리 아버지께서 섬기시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울었다. 18그런 다음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찾아와 그 앞에 몸을 던져 엎드리며 말하였다. “우리는 아우님의 종입니다.” 19그러나 요셉은 이렇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형님들에게 벌을 주겠습니까? 20형님들은 저를 해칠 생각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처럼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게 하려고 하신 일입니다. 21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형님들과 아이들을 잘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그는 형들을 안심시키고 다정한 말로 그들을 대하였다. (읽기쉬운성경)

15 But now that their father was dead, Joseph’s brothers became fearful. “Now Joseph will show his anger and pay us back for all the wrong we did to him,” they said.16 So they sent this message to Joseph: “Before your father died, he instructed us17 to say to you: ‘Please forgive your brothers for the great wrong they did to you—for their sin in treating you so cruelly.’ So we, the servants of the God of your father, beg you to forgive our sin.” When Joseph received the message, he broke down and wept.18 Then his brothers came and threw themselves down before Joseph. “Look, we are your slaves!” they said.19 But Joseph replied, “Don’t be afraid of me. Am I God, that I can punish you?20 You intended to harm me, but God intended it all for good. He brought me to this position so I could save the lives of many people.21 No, don’t be afraid. I will continue to take care of you and your children.” So he reassured them by speaking kindly to them. [Ge 50:15-21, NLT]

어릴 적 처음으로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입체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정작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없어 불로장생의 약을 찾아 온 나라를 뒤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영생을 향한 황제의 갈망과 무덤의 한 장면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자신의 생명은 스스로 지킬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고 가져도 자기 인생을 뜻대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자, 또다시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을 살려준 요셉의 은혜보다 과거의 죄가 더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책감은 받은 은혜를 의심하게 하며 죄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합니다. 

첫째, 과거의 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십시오.

요셉은 열두 아들 가운데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아들입니다. 형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열일곱 살 요셉이 자신의 꿈 이야기까지 형들에게 전하자, 그 미움은 더 깊어 졌습니다. 결국 형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은 이십에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노예가 되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이 흘러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고, 기근 중에 양식을 구하러 내려온 형들을 다시 만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끌어안고 울며, 자신이 팔려온 일조차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고백했습니다. 형들이 한 일은 분명 악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넘어 일하시며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이후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온 가족을 애굽으로 불러들입니다. 가족은 다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들은 다시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이 자신들의 과거의 죄를 기억하고 앙갚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죄가 우리 안에 남긴 두려움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후에도 다시 불쑥불쑥 우리의 마음에 찾아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온 사람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위기의 순간에는 과거의 죄를 더 크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붙들어 주던 안전한 울타리가 흔들리는 순간,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두려움이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15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이렇게 말하였다. “요셉이 아직도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서 우리가 전에 그에게 잘못한 모든 일에 대해 앙갚음을 하면 어쩌나?” 16그리하여 그들은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여전히 죄가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은 요셉의 인생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20 형님들은 저를 해칠 생각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처럼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게 하려고 하신 일입니다.

20절 원어를 보면, ‘형님들은 저를 해칠 생각으로’에서 ‘생각으로’와,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에서 ‘이루시려고’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같은 동사, 같은 어근입니다. ‘하샤브'(חשׁב)는 ‘계획하다, 궁리하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해치려 ‘궁리한’ 그 계획과, 하나님이 많은 생명을 살리시려 ‘계획하신’ 그 계획이, 원어에서는 동일한 단어로 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들의 악한 의도를 선한 것으로 바꾸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악은 여전히 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죄라고 부르시면서도 회복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 정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형들의 악한 계획을 넘어 생명을 살리신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생명을 살리십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우리가 그 은혜를 다시 삶으로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그 가슴앓이를 알아갈수록, 우리 안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조금씩 더 깊어져 갑니다.

헨리 나우웬은 『헨리 나우웬의 공동체』에서 용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용서란 상대를 하나님이 아닌 존재로 그냥 두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사람들에게 매달려, 그들이 줄 수 없는 애정과 사랑을 기대한다. ‘나를 사랑해 달라’ 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폭력과 요구와 조종을 일삼게 된다. 그래서 서로 용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용서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답게 생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든지 죄 지은 사람이 있거든, 신령함을 지닌 여러분이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바울은 지금의 죄를, 오늘 본문은 지나간 죄를 다룹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은혜라는 이름으로 덮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죄 지은 사람을 정죄하여 밀어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죄는 분명하게 다루되 온유함으로 회복을 돕고, 동시에 나 자신도 살피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용서받는 확신으로 평생 정결한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자녀 안에서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강력하게 이끄시는 복음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미움이 참 많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가 오해가 되기도 하고, 서로의 실수와 부족함이 관계의 깨어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동체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지만 과거의 죄 안에 가두어서도 안됩니다. 잘못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회복과 화해의 길을 선택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삶으로 나타내는 모습이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정체성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짓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네가 형들이 저지른 죄와 잘못을 다 용서해 주기 바란다.” 그러니 이제 우리 아버지께서 섬기시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울었다.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했지만, 창세기 49장의 야곱의 유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형들이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용서를 구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이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저는 요셉의 눈물을 안타까움의 눈물로 이해합니다. 그것은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하는 형들을 향한 긍휼의 눈물이었을 것이고, 아버지를 잃은 후의 고독한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형들은 이미 용서받았고 이집트에 와서 함께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전 것들은 지나갔고, 보십시오. 새 것들이 와 있습니다.” (고후 5:16-17)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삶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화해의 사명을 따라 살아갑니다. 삶에 고난과 두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께서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상처는 우리를 상황과 사람에게 집중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쉽게 용서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품을 만큼 우리의 마음이 넓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에서 먼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을 때, 우리는 과거의 죄가 우리 안에 남긴 두려움에 더 이상 매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상처의 깊이와 삶의 상황에 따라 회복의 과정과 시간이 다를 수 있겠지만 죄와 죽음을 이기신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밝히며 했던 고백이 바로 이것을 보여줍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악을 행했다고 생각했지만, 요셉은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그리고 또 다시 형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때의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9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형님들에게 벌을 주겠습니까?” 요셉은 자신이 심판자의 자리에 설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다시 한번 말합니다. 2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형님들과 아이들을 잘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준 것은 배신과 시기였지만, 요셉은 형들의 두려움을 안심시키고, 한걸음 더 나아가 형들의 아이들을 보살펴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형들과 함께 살아갈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선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더 큰 품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먼저 사랑과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받았다면, 그 은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조금씩 열매를 맺어 가야 합니다. 여전히 상처가 있고 용서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미움과 갈등에만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내어 드리며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처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관계의 회복도 한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 가실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두려움이 하나님의 뜻보다 크지 않고, 우리의 아픔과 상처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만 바라보며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받은 상처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개역개정) 심판은 우리의 자리가 아닙니다. 여전히 두려워 하고 있습니까? 과거의 죄와 상처안에 붙들려 있습니까?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현실이 고단하고 마음이 연약할 때에도, 은혜로 생명을 살리고 화해의 길을 걸으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09 06 2026 주일설교

성령강림절 제 15주

경계에서 드리는 예배

Worship at the Watchtower

에스겔 33:7~11

7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경계병으로 세웠다. 그러니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 내가 주는 경고를 전하여라. 8내가 악한 사람들에게, ‘오 악한 자여,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 너는 그에게 악한 길을 단념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악한 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을 것이나, 나는 그의 피를 네 탓으로 돌릴 것이다. 9그러나 만약 네가 그 악한 사람에게 그의 길에서 돌이키도록 경고했으나, 그가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을 것이며 너는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10사람아, 이스라엘의 집에 말하여라. 그들은 ‘우리의 잘못과 죄악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고, 이것들 때문에 우리가 야위어 가고 있다. 그러하니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라고 말하고 있다. 11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맹세코, 나는 악한 사람이 죽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살기를 바란다. 돌아오너라! 너의 악한 길에서 돌아오너라! 오 이스라엘의 집이여, 왜 네가 죽으려 하느냐?’ (쉬운성경)

[Eze 33:7-11, NLT]

7 “Now, son of man, I am making you a watchman for the people of Israel. Therefore, listen to what I say and warn them for me.
8 If I announce that some wicked people are sure to die and you fail to tell them to change their ways, then they will die in their sins, and I will hold you responsible for their deaths.
9 But if you warn them to repent and they don’t repent, they will die in their sins, but you will have saved yourself.
10 “Son of man, give the people of Israel this message: You are saying, ‘Our sins are heavy upon us; we are wasting away! How can we survive?’
11 As surely as I live, says the Sovereign LORD, I take no pleasure in the death of wicked people. I only want them to turn from their wicked ways so they can live. Turn! Turn from your wickedness, O people of Israel! Why should you die?

새학기가 되면Allston에서는 ‘9월의 크리스마스’ 가 시작됩니다. 거리 곳곳에 쌓인 물건들, 서로 나누고 물려주는 이삿짐들 속에서 그 말의 뜻을 실감하게 됩니다. 새 학기는 늘 분주하고 설레지만, 동시에 낯설고 불안한 걸음들이 찾아오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새로움을 향한 설렘으로, 어떤 이는 낯선 도시로 향하는 불안함으로 이 계절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도시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은 보스턴을 차갑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말이 나올까요. 이 도시는 실력으로 증명해야만 자리를 내어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그것을 향해 전 세계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런데 모여드는 만큼 그만큼 떠나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도시는 깊이 뿌리내리기보다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는 지점에서 누구나 달라집니다. 실력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품어 주는 사랑 앞에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앞에서, 차가워진 우리 신앙생활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이 서 있어야 할 자리의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경계병으로 세웠다”

GP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습니까? 감시초소라는 뜻의 Guard Post, 그 앞글자를 딴 것입니다. 전방의 각 부대에는 비무장 지대 안에 정해진 초소들이 있습니다. 민간인은 들어갈 수 없는 지대입니다. 그 안에 비밀 초소를 세우고 무장 군인들을 주둔시킵니다. GP 초소의 번호는 국가 기밀이지만, 사단 정보 상황병은 매일, 매 순간의 상황을 벙커에서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다시 상위 부대에 보고합니다. 제가 사단 정보병으로 근무할 때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심리전 방송만이 아니었습니다. 남북 경계선에서는 교전 직전의 대치 상황이 수시로 벌어졌습니다. 그 어떤 훈련보다 긴급한 실전의 무게를 지고, 24시간 내내 교대로 최전방 수색병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위기는 늘 뒤늦게 발견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족속의 경계병이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절망 가운데 있던 백성들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잘못과 죄악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고, 이것들 때문에 우리가 야위어 가고 있다. 그러하니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맹세코, 나는 악한 사람이 죽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살기를 바란다. 돌아오너라! 너의 악한 길에서 돌아오너라!” 이것이 에스겔이 선 자리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경계병에게 무엇을 듣고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지, 어떤 용기로 서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경계병에게 필요한 것은 듣는 귀와 보는 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때 보아야 할 것과 전해야 할 것이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 곧 영혼의 상태와 시대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눈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 눈은 오직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삶의 기준 삼을 때 열립니다. 말씀을 알고 있으나 믿지 않고 지키지 않는 것은 초소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야 합니다. 복음을 아직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소망이 되신다는 것을 전해야 하고, 거룩하게 살아갈 힘을 주어야 합니다. 이미 믿는 이들에게는 그 은혜를 지켜 정결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자기 죄에 대하여 핑계를 댈 수 없다.” (요 15:22)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지만 핑계될수 없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들었다면 말씀 앞에서 응답해야 합니다. 경계병이 반드시 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고 오래 참으며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심판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심판을 보류하시고 오래 참으시지만 마지막 날에는 심판하실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새로운 일이 시작되었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땅의 문제 너머의 참된 회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유일한 생명의 길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은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경계에 세우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은 하시기로 약속하신 것을 뒤로 미루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멸망치 않고 모두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벧후 3:9) 좋은 의사는 환자가 아파한다고 해서 마음을 위로만 하지 않습니다. 의사의 책임은 몸안에 병을 정확히 찾아내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는 것, 그것이 환자를 살리는 길입니다. 친절한 것과 무책임한 것은 다릅니다. 병을 발견하고도 말하지 않는 것,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편할까 봐 말하지 않는 것은 친절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C. S. 루이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실제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보다 ‘하늘에 계신 인자한 할아버지’를 원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안에는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은 지고 싶지 않고, 그저 편안하게 받아 주시기만 하는 은혜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된 습관을 끊어내고 버려라. 세상에 취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라,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라. 이것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둘째, 경계병은 고독한 자리에서도 담대한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8내가 악한 사람들에게, ‘오 악한 자여,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면, 너는 그에게 악한 길을 단념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악한 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을 것이나, 나는 그의 피를 네 탓으로 돌릴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상대주의 시대라고 불립니다. 하나의 진리만을 말할 때 편협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악한 길을 단념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이 길로 가면 죽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계병이 진리를 전하다가 자신의 것을 잃을 각오가 없다면, 결국 상황 앞에서 타협하게 됩니다. 경계병이 선 자리는 사람들의 지지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더 의지해야 하는 곳입니다. 삶 속에 겪게 되는 불안과 고통이 하나님을 보는 눈을 가리지 않도록, 세상의 성공과 만족이 우리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지 않도록 영적 온도를 높여야 합니다. 시대는 점점 우리의 영적 온도를 차갑게 합니다. 우리는 영적 온도를 낮추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서 믿는 이들의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담대함으로 세상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붙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여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요 16:33)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담대함은 세상과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설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믿음을 매일 새롭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담대함은 자칫 위험한 자리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계병의 고독이 넘어갈 수 있는 위험한 지점을 봅니다. 나만 홀로 남았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처럼 여겨진다면, 고독이 자기의로 넘어가는 믿음의 적신호입니다. 엘리야는 자신만이 홀로 남았다고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답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는데, 그들은 한 번도 바알에게 절한 적이 없고 바알의 우상에게 입을 맞춘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왕상 19:18)  경계병에게 주어진 소명은 경계선에서 고독해도 거룩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그 곁을 지켜 주십니다. 우리 곁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을 남겨 두시고, 함께 거룩한 경계를 지켜가게 하십니다.

셋째, 경계병은 하나님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은 실패 앞에서 쉽게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대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 백성이 돌이켜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도 바로 그것입니다.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라는 백성의 탄식에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맹세코, 나는 악한 사람이 죽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살기를 바란다. 돌아오너라! 너의 악한 길에서 돌아오너라! 오 이스라엘의 집이여, 왜 네가 죽으려 하느냐?’ 메세지 성경으로 보시면, “너희 삶의 방향을 바꾸어라. 악한 길을 떠나 그 반대 길로 가거라!” (메시지성경) 창세기 4장 7절에서 하나님은 예배 드렸던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좋은 마음을 품지 않으면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를 삼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그가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겔 33:14-16,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죄를 깨닫고 삶의 방향을 실제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돌이킴의 마음으로 서면 내 환경을 넘어서는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보여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찬양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그들을 보게 하소서/예수님의 손으로 그들을 섬기도록 예수님의 입으로 진리만을 말하도록/예수님의 발로써 땅끝까지 달려가도록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거짓이 되지 않도록,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진실이 되게 하소서. 세상 끝까지 주 전하리란 고백이 거짓이 되지 않도록, 내 눈에 주의 사랑 채우사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의 고백과 삶 사이에도 여전히 경계가 있습니다. 가정 안에도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습니다. 성공과 실력을 요구하는 이 도시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의 길과 죄가 이끄는 죽음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힘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 속에서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빛이고 진리임을 전해야 합니다. 가장 넘기 어려운 경계는 바로 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면서도,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나와 다른 사람을 품지 못하는 마음. 내 마음의 경계가 가장 지키기 어렵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 그들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진실이 되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고 있는 저도 매일의 삶 앞에 서면 내 마음을 먼저 돌보게 되고 문제 앞에서 흔들리고 다시 일어섬을 반복합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러분의 자리에도 막막한 순간들이 왜 없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흔들리는 자리에서 주님을 더 가까이 만나게 됩니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던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시고, 주님은 그를 찾아오셔서 먹이시고 다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달리신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흔들리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경계병의 예배는 완벽함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함보다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깨어 있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이 도시를 품고, 우리의 가정을 품고, 여전히 흔들리는 나 자신까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어드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십시오. 내 안에 세워 놓은 두려움과 편견, 자기중심의 경계를 하나님 앞에서 허물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를 위해 먼저 십자가에 서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경계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배입니다. 이 예배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가정, 공동체와 학교의 현장에 하나님의 온기를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