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11 2026 주일설교

예배로 살아가게 하는 힘 (POWER) 시리즈

2주: ‘순종’ 예배를 살아내는 힘

Week 2: ‘Obedience’ Living Out Worship Through Obedience

창세기 4:1-7

4:1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가지니,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가인을 낳고 말했다. “주께서 돌봐주셔서 내가 남자아이를 얻었구나.” 4:2 하와는 또 가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치는 목자가 되었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사꾼이 되었다. 4:3 세월이 흘렀다.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께 제물로 바쳤다. 4:4 아벨도 자기 양의 첫 새끼를 잡아, 그중 가장 기름진 부분을 주께 제물로 바쳤다. 주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다. 4:5 그러나 주께서는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가인은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4:6 ○ 주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 어째서 네 얼굴빛이 달라졌느냐? 4:7 네 행실이 바르다면,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다가 너를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그러면 죄가 너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쉬운말 성경)

1 Now Adam[a] had sexual relations with his wife, Eve, and she became pregnant. When she gave birth to Cain, she said, “With the Lord’s help, I have produced[b] a man!” 2 Later she gave birth to his brother and named him Abel. When they grew up, Abel became a shepherd, while Cain cultivated the ground. 3 When it was time for the harvest, Cain presented some of his crops as a gift to the Lord. 4 Abel also brought a gift—the best portions of the firstborn lambs from his flock. The Lord accepted Abel and his gift, 5 but he did not accept Cain and his gift. This made Cain very angry, and he looked dejected. 6 “Why are you so angry?” the Lord asked Cain. “Why do you look so dejected? 7 You will be accepted if you do what is right. But if you refuse to do what is right, then watch out! Sin is crouching at the door, eager to control you. But you must subdue it and be its master.”(New Living Translation)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낙원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진정한 낙원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나기 위해 한 길을 여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배였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자리에서도 인간은 다시 갈라집니다. 가인은 제물을 드렸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죄의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7절에 보시면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다가 너를 집어 삼키려 할 것이다.”라고 기록합니다. 죄가 ‘도사리다’라는 로베츠(רוֹבֵץ)라는 단어는 맹수가 상대를 공격하여 일격에 쓰러뜨리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죄가 문 앞에 도사리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는 기다리고 있다가 인생을 통째로 삼키는 것입니다. 매주일 일손을 내려놓고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도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힘을 얻기 위함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의 차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둡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11:4 믿음으로 아벨은 형 가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바친 믿음의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면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벨은 믿음으로 제물을 바침으로써, 그 제물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권세를 누리던 사울 왕에게 하나님은 ‘너는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명령의 일부만 따르고, 일부는 남겼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묻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켰습니까?’ 사울은 대답합니다. ‘예, 제가 살려서 갖고온 좋은 가축들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남겼다’라고 변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전히 순종하지 않은 그의 제사와 고백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은 간밤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울왕에게 전합니다.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소? 번제물과 화목제물이겠소, 아니면 주께 순종하는 것이겠소? 주께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고, 주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윌터 부르그만은 복음의 공공선이라는 책에서 안식일의 핵심은 일을 멈추는 것이고  개인적인 행복만 끝없이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그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개인적인 만족과 개인의 구원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 가정과 사회속에서 선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순종이라는 단어가 수동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역동적인 행동이며,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힘을 얻는 비결입니다. 2026년 예배에 전심을 다하는 성도들의 순종의 삶에 하나님이 주신 복과 능력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없는 예배

우리는 예배를 통해 죄를 대적할수 있는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말씀에 순종할 힘을 기르는 훈련과 같습니다. 입대한 군인들은 이제 사회인이 아닌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군인은 제식훈련을 하며 기본 자세부터 배우고 몸과 마음을 훈련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세워 나가기 위한 시간입니다. 유혹은 때때로 그럴듯한 모양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데, 베드로가 “주님, 그런 일은 절대 안 됩니다!”라며 예수님을 만류합니다.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말이 사람의 생각임을 아시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 뒤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생각을 따르느냐?”라고 하시며 뜻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분주한 일상 탓도 있지만 내 마음이 건조해지고 하나님을 만난 그 기쁨이 삶에 가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듯, 우리도 순종의 길이 외롭고 힘들더라도 바르게 걸어야 합니다. 선한 길을 따라 순종할수록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참된 순종은 나의 한계를 깨닫고 내 삶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결단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 우리 안에 부어집니다. 구원의 능력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순종할 때 그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삶의 주권을 내어 드릴 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고, 우리의 삶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 자체가 죄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행동으로만 생각하지만, 죄의 시작은 마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혹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내 욕심, 살아가면서 만나는 관계와 일 속에서 하나님보다 내 마음과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장 28-29절 보시겠습니다.

1:28 더욱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아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그런 타락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셔서, 그들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들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 1:29 그 결과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또한 질투와 살인과 분쟁과 사기와 악독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험담을 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우리의 욕심과 생각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그대로 두시고 그 선택의 결과는 우리의 현실로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편안함 때문에 전심을 다해 예배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순종은 죄를 이기신 승리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삶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삶으로 자라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의 쟁기가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손에 쥐어진 쟁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손에 쥐고만 있다면, 말씀을 듣고도 자녀됨의 은혜를 받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사명의 쟁기를 쥔채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있으면 때가 되면 주가 주시는 힘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도 능동적인 믿음입니다. 말씀 안에 우리의 마음과 삶을 고정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힘이 우리 안에 부어질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에는 몸을 성결케 하는 물을 담아 두었던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지름이 4.56m, 높이 2.28m, 둘레가 13.68m에 달하는 꽤나 큰 크기입니다. 재료는 금속을 녹인 물을 부음으로 주조해서 만들었습니다. 이 물두멍을 바치고 있는 것이 12마리의 소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 소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순종과 희생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12마리의 소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예수님의 12제자들을 상징합니다. 즉 교회는 거룩한 백성들의 순종과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왕상 7:25) 누군가의 헌신으로 사람을 살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순종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순종의 예배는 우리의 삶 전체를 드리는 것입니다.

타락 이후 인간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습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드렸고, 아벨은 자기 양의 첫 새끼를 잡아, 그중 가장 기름진 부분을 주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벨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지만, 가인은 일부만 취해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신데, 두 형제가 제사를 드리는 태도가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지 가인과 아벨의 예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제사를 드리는 규례도 보면, 흠없는 것을 드리라는 것과, 살과 기름을 분리하여 제단 불 위에 태우고, “기름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레 3:16) 이 원리도 흠 없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말하면서도 정작 삶속에서는 관계의 서운함, 욕심, 불평과 불편함의 마음을 채우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흠없는 삶이 우리의 노력만으로 다 해결할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죄는 영원히 패배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얻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예배를 받지 않는 하나님께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지만, 하나님은 가인에게 두번이나 질문하십니다. ‘너는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 어째서 네 얼굴빛이 달라졌느냐?’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그의 마음을 회복시키고, 순종과 마음 중심의 예배로 돌아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할때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는 회복의 자리입니다. 마음의 불안, 상처, 미움을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다 내어 드리고, 성령의 불로 태우는 것입니다. 순종의 예배는 내가 먼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 안에서 먼저 실천하는 삶인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깊은 고통을 겪으며 죄의 형벌이 너무 무거워 감당할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자신의 표를 주셔서 누구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보호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는 육체적 가시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함 속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은 율법과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 때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 갈수록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삶 전체를 예배로 드리기를 요청하십니다. 삶에서 많은 일에 정성을 다해 살지만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삶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길입니다.

0104 2026 주일설교

신년주일

예배로 살아가게 하는 힘 (POWER) 시리즈

1주: 삶 속에서 말씀을 붙드는 힘

Week 1 : The Power of Holding Fast to God’s Word

신명기 6:1-5

6:1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라고 하신 명령과 계명과 규정들을 내가 이제 전하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차지하고 살 그 땅에서 지키고 행해야 할 법입니다. 6:2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모두 지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길이 복을 누리며 잘 살게 될 것입니다.  6:3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주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고 그대로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6:4 ○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주목해서 잘 들으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주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6:5 그러므로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쉬운말 성경)

6:1 “These are the commands, decrees, and regulations that the Lord your God commanded me to teach you. You must obey them in the land you are about to enter and occupy, 2 and you and your children and grandchildren must fear the Lord your God as long as you live. If you obey all his decrees and commands, you will enjoy a long life. 3 Listen closely, Israel, and be careful to obey. Then all will go well with you, and you will have many children in the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just as the Lord, the God of your ancestors, promised you. 4 “Listen, O Israel! The Lord is our God, the Lord alone. 5 And you must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ll your soul, and all your strength. (New Living Translation)

2026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예배에 전심을 다하는 교회’라는 비전을 선포하며 한해를 시작합니다. 여러분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마음 중심에 두라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중심에 둘 때, 말씀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갑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태어나서 모세 오경의 말씀을 듣고 암송하면서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두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의 ‘주목해서 잘 들으십시오’. 라는 구절이 히브리어로 ‘쉐마’인데요. 말씀을 잘 듣는 훈련을 강조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나라 없이 떠돌면서도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고 생존하며 번성할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삶의 예배가 잘 세워지려면 내 생각과 내 뜻이 기준이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1. 삶의 중심이 세워지는 예배

시내산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며 성막을 이동시키고 가는 곳마다 예배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보여 주신대로 성막이 설계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배는 내 생각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마음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는 내게는 능력이 부족하고 바로 왕 앞에 서는 것도 두렵다고 호소합니다. 사명을 감당을 능력이 부족하다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적을 통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40년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며 하나님의 표적과 기적을 경험한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가졌던 권세와 신분이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힘임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본문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6:2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모두 지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길이 복을 누리며 잘 살게 될 것입니다. 6:3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주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고 그대로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6:4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주목해서 잘 들으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주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6:5 그러므로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가정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싶어 결단하셨던 분들이라면 가정 예배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마음 다해 하나님을 예배할 때 그 작은 기도의 씨앗이 가정을 세우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가 속한 자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삶을 세워 나갈 때, 인생의 고단함 속에서도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사랑의 힘에 붙들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의지하며 나를 이끌고 가던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내 마음과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모세의 기도에는 “1 주여, 주께서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2 산들이 생기기도 전에, 땅과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노년에 드린 시편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 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것들이 기원이 있어요. 성경에는 밤낮의 기원, 공간의 기원, 가정의 기원, 결혼의 기원, 죄의 기원, 인류의 기원을 말씀하는데, 하나님만은 기원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시작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때 약속하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동시에 환경과 사람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지 않고, 관계에서 느끼는 상처와 실망은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하고 믿음의 힘을 잃어 버리게 합니다. 하지만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사랑 안에 붙들릴 때 현실의 불안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쉼을 누리게 되고 걸어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주 모여 예배드리며 힘을 주시는 분이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필요를 채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때 성령은 우리를 보호해 주시며 살아갈 능력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고,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내 안에 약함을 초월하는 힘이 생기는 것처럼 성도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연결되는 힘을 경험해야 합니다. 모세는 삶의 가치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마지막 호흡을 다하여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라고 외칠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가치는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조급함으로 서두르고 세상과 비교하며 예배로 살아내는 힘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연약함속에서 정체성이 흔들리면 예배하는 것 조차 포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고 초대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붙들리는 힘을 경험하게 됩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장이라는 시의 몇 구절을 보면,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나는

사랑하고 싶지만 상처받을까 망설이고 전부다 내어드리고 싶지만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자신의 온 몸을 태워 주신 분이 계십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모든 삶을 내어 주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모세의 간절한 외침이 보다 더 가깝게 들려옵니다.

비록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예배가 학교나 직장에서 감당해야 하는 일에 비하면 삶의 작은 부분처럼 느껴지겠지만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길 때 삶의 중심이 하나님을 붙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과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늘 예배하고 있는데 왜 다시 예배인가? 라는 질문이 우리 마음에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이 너무도 커버린 지금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붙들리겠다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쁨의 힘에 붙들리라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개역개정)

예배를 드리기 전, 예배의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대로 지키는 것이, 예배를 위한 전 단계의 예배입니다. 성경에서 “복을 받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יָטַב (야타브)는 “좋아지다, 기쁨이 되다, 유익이 되다”라는 뜻을 지니며, 이는 형용사 טוֹב (토브)에서 파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고 하신 것처럼, 말씀을 듣고 삶으로 실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온전한 모습에 가까워지며, 우리의 삶 속에 기쁨과 유익이 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복입니다. 기쁨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주시는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주시는 기쁨의 복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내가 가장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고 있는 자리, 예배보다 더 나를 흔드는 그 자리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일 수도 있고,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불안에 더 집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기쁨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성취해도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불행한 삶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인 우리가 기쁨과 사랑을 놓쳐 버린다면 신랑 되시는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습니까? 새해에는 더 거룩하고 깨끗한 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어떤 죄 가운데서도 회복과 새 삶의 기회를 주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세상 즐거움과  슬픔을 내려 놓을 때 임합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세상이 주는 슬픔에 마음이 묶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이것만 해결되면 이라는 조건을 세웁니다. “주님, 상처와 아픔은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죄책감이 아닌 하늘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세번씩이나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한 가운데 빛이 되고, 산 위에 세운 동네가 되는 이유도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새해에 주어진 시간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옷을 입혀 주시는 기회입니다. 이 자리를 떠나는 걸음에서 우리의 예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 주시고 우리가 그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며 사는 우리의 예배, 삶 전체에서 말씀에 붙들릴 때 하나님의 파워를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초대된 많은 예배들 중에 주일의 한번의 예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붙들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예배가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삶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고 함께 살아내며 함께 울고 웃으며 매일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바로 삶으로 살아내는 우리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로 살아나는 우리의 한주를 위해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여러 선택들이 있습니다. 매일 저녁 성경을 한 구절 읽고 그 말씀으로 기도하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해 주기, 일터와 학업의 현장에서 축복의 언어로 삶을 바꾸어 보기, 아침의 첫 시간을 말씀을 묵상하며 시작하기 등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영혼으로 사랑하는 것 만큼은 결코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매주 우리의 작은 선택과 실천들이 모여 우리 삶 전체가 예배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힘으로 예배에 전심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 가시길 축복합니다.

12. 28. 2025 주일 설교

송년주일

예수는 우리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신다

Jesus is not ashamed of us

히브리서 2:10-11, 17-18

10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만물을 보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많은 자녀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해 완전케 하셨는데,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또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

17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서 자기 형제인 우리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기 형제인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18 결국 예수께서는 몸소 시험을 받으시고 또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시험당하는 사람들을 넉넉히 도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쉬운말 성경)

10 God, for whom and through whom everything was made, chose to bring many children into glory. And it was only right that he should make Jesus, through his suffering, a perfect leader, fit to bring them into their salvation. 11 So now Jesus and the ones he makes holy have the same Father. That is why Jesus is not ashamed to call them his brothers and sisters… …

17 Therefore, it was necessary for him to be made in every respect like us, his brothers and sisters,[h] so that he could be our merciful and faithful High Priest before God. Then he could offer a sacrifice that would take away the sins of the people. 18 Since he himself has gone through suffering and testing, he is able to help us when we are being tested.(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 송년(送年)주일입니다. 지난 한해도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서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매일 드렸던 새벽기도회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기도의 등불이 되었고 주님을 바라보는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2025년 사순절 새벽 기도회는 ‘섬김의 십자가’란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코비드로 인해 우리의 신앙생활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듯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주의 뜻을 따라 함께 걸으며 인도되는 길이었기에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금요찬양 예배를 통해서는 봄 학기에 데살로니가전서 강해를, 가을 학기에는 야고보서 강해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연약한 우리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God’s Not Dead)에서 무신론자 철학 교수는 수업 시작전 80명의 수강생들에게 종이 위에 ‘신은 죽었다’라고 쓰라고 강요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불평하지만 학점을 받기 위해 ‘신은 죽었다’라고 적었지만 조시라는 주인공은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습니다. 화가 난 교수는  3주 동안 조시에게 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을 과제를 주고 증명하지 못하면 낙제 시킬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의 인내로 복음을 전하고 결국 무신론자 교수는 논쟁에서 패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조시는 과제를 풀어낸 것이 아니라 진리의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히브리서 2장 18절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몸소 시험을 받으시고 또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시험당하는 사람들을 넉넉히 도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2:18)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진리 보다는 거짓을, 사랑과 용서보다는 권위와 압박의 시험에 부딪히게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속에서 우리가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 길을 먼저 걸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와 시험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는 위축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죽음의 위협에서 풀려지도록 자신이 온 몸으로 죽음을 껴안고 자기 안에 받아 들이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예수께서 거룩하게 된 우리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가 주는 고통을 잘 압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 안에 죄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죄의 즐거움이 우리를 여전히 유혹하지만 성령께서는 죄의 쾌락과 영적 싸움을 하게 하십니다. 죄는 지금도 기회만 나면 틈을 타고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하지만 성령은 죄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게 이끌어 가십니다. 말씀의 빛으로 우리 안에 죄를 드러내셔서 죄의 열매를 제거해 나가는 일이 어렵거나 두렵지 않도록 한없는 사랑으로 치유하시고 덮어 주십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담대히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이 율법과 형식의 경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을 하나의 형제로 묶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기도해도 여전히 응답이 보이지 않을때가 있고, 선하게 살려고 애써도 고난과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도의 거절감이나 마음에 남은 상처들로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죄성은 우리를 십자가 없는 신앙으로 살아가게도 합니다. 한 해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 속에 살았습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섬김의 자리에 서고, 오래 교회에 다녔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괜찮은 신앙인으로 인식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인간의 신념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자기신념 위에 세운 신앙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결핍을 느끼게 되고 복음이 아닌 판단과 기준으로 불평하게 합니다. 그 불평이 기쁨보다 커지니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진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스스로의 신념으로 변화가 될수 있다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확신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굴곡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우리를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을 지니고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는 복음 안에서 회복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 능력이 우리를 다시 은혜의 자리로 데려다 놓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현실속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모른채 살아가는 우리를 부끄럽다 여기지 않으시며 형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진리는 우리의 결핍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음이 끝이 아님을 세상에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걸음을 걷다 보면,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 나라로 이끌고 계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또 생겨납니다. 예수께서 세상오시던 역사적 상황도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로마제국은 칼과 창으로 주변 민족들을 다스렸습니다. 헤롯 왕의 위협속에서도 동박박사들은 특별한 한 별을 보고, 그곳이 어딘지 알지 못하는 두려움 가운데서도 별을 따라 믿음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박사들의 순종과 믿음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도전을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이 신뢰가 무엇인지, 성경은 마리아와 요셉의 삶을 통해 보여줍니다. 예수를 뱃속에 품고 수태해야 했던 마리아는 사회적인 수치와 오해와 말없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요셉도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주의 천사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라는 말씀을 듣고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마리아를 보호해 주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요셉에게는 마리아 데려오는 일이 부끄러움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도 성령으로 수태된 아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세상이 알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께서 이렇게 오셨습니다. 혼란스런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오해 한가운데로, 부끄러움이 아닌 사랑을 안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연약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거룩하게 된 우리를 조금도 주저함없이 가족으로 대하시며 “너는 나의 형제요 나의 친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는 신약의 감추어진 보석 중 하나라고 불립니다. 말씀 앞에서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서 지쳐 있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나의 일이 되어 버려 순종이 아니라 나의 열심으로 하다가 기쁨이 사라지고 마음이 사라지면 섬김의 자리를 떠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시기보다,  이 자리에 나를 두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왜 이 자리에 있게 하시는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 뿐입니다.

함께 회복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삶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또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된 사람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 모두가 한 분이신 하나님께 속한 한 가족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속에도 주님의 모습이 조금씩 배어 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문제와 우리의 신앙의 길을 정직하게 주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주님이 먼저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형제 된 우리를 회복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때, 앞으로 이루어질 몸의 부활을 미리 맛보게 됩니다.

시편34편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바라보고 그 삶을 닮아가려고 할 때,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세상과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정이 들고 익숙해지듯 우리 삶에도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의 삶을 닮아가고 따르게 됩니다. 세상과 교회는 다른 가치와 방식으로 움직이기에 외롭고 힘들때가 많지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함께 걸으며 함께 회복하고 격려하며 예수님처럼 살아가도록 함께 도와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믿음 생활이 종교적 열심으로 멈추어 있거나 주님의 마음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될 때마다 이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러게 살순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 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 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알지만 여전히 욕심과 이기적인 마음이 우리를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형제로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바울은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진정한 새해의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많은 자녀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비록 우리는 넘어지고 현실에 매여 세상의 유혹에도 흔들리며, 작은 일에도 마음이 조급하여 요동칠 때가 많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일어서도록 기다려주십니다. 믿음이 연약하여 주저하고 버틸 힘이 없어 낙심했습니다. 삶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고 가장 두려운 것은 주님 없이도 예배없이도 너무 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고 자녀삼아 주신 그 은혜를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함께 회복하며 걸을 때 세상과 다른 가치속에서도 우리의 교회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많이 아파하고 눈물 흘려야 했던 순간 조차 하나님과 함께 걷는 믿음의 거룩한 여정은 참 감사한 길이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복이고 주님의 마음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삶의 다른 조건들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이 진리를 깨닫는 귀한 은혜의 삶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2.21. 2025 주일설교

성탄 :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Christmas — God Has Come to Us

누가복음 2:10–14, 마태복음 2:10-11

눅 2:10 그러자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이 소식은 모든 백성에게 아주 큰 기쁨이 될 것이다.” 11 오늘 밤,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의 구주가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2 너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뵙게 되면, 그분이 바로 주님이신 줄 알아라.” 13 그때 갑자기 수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쉬운말 성경)

마2:10 박사들은 그 별이 멈추어 선 것을 보자, 뛸 듯이 무척 기뻐하였다. 2:11 박사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었다. 박사들은 아기에게 엎드려 절한 후,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쉬운말 성경)

하나님은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셔서 세상의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구주의 탄생을 전하셨습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역사적인 사건이며 예언의 성취입니다. 로마 황제의 인구조사 칙령으로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호적 등록을 위해 이동했고 이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예수의 탄생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 황제의 칙령까지 사용하셔서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의 탄생을 찬송하며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눅 2:14)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의 삶에도 참 많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산다고 생각했지만 힘든 순간 앞에 서보니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와 주심을 알게 되었고, 믿음이 단단하다 여겼지만 속사람은 참 많이 흔들렸고, 기도하기보다는 내 경험을 의지했으며, 예배보다는 내 삶이 더 중요하여 분주한 날이 더 많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나의 삶만이 너무 고단하고 외롭다 생각했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여전히 홀로 버티며 눈물 흘리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자리까지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성탄의 참된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당시 예수님의 탄생이 헤롯왕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목자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헤롯 왕에게 찾아가 유대인의 새로 태어난 왕에게 예를 갖추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헤롯왕의 마음은 불안해 졌습니다. 그에게 아기 예수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경쟁자일뿐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를 찾으면 나도 함께 경배하려고 하니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예배하려는 마음이 아닌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동쪽의 한 별이 나타나 동방의 박사들을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을 인도합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나아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며 경배했습니다.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개인의 삶의 안정과 성공을 위해 바쁘게 살아갑니다. 세상은 개인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소유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치열한 구조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의 빛을 남겨 두셨습니다. 치열한 세상속에서 죄로 인해 메마를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마음에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위대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합니다.

바울은 권면합니다.”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며 받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릴 합당한 영적 예배입니다.” 왕권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내면은 고단하고 비참한 현실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치열한 현실속에서도 마음을 새롭게 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라고 강조합니다. 세상 풍조를 본받지 말고 물질이 왕이 되버린 사회속에서도 거룩한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헤롯왕은 예수를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마음안에는 자기의 권력을 지키려는 욕심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심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내려 주십니다. 우리도 매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세상의 유혹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서,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유향은 고대시대 신께 드리는 제사의 용도에 쓰이는 향수입니다.

이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목자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구약의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인간을 압도하는 경험일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도 그렇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닫혀 있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슬픔과 인생의 불확실함을 기쁨과 평안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임재의 목마름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 안에 거룩함이 살아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몰약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몰약을 시체에 발라 방부제로 썼습니다. 수천년 전에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나의 것으로 경험되어질때에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더 진하게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건강을 잃고 난 후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고, 늘 곁에 있던 소중한 이들이 떠나고 난후에 그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주의 죽으심은 우리의 믿음을 다시 살리는 힘이 되고 사랑할 수 없는 본성을 지닌 우리를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외침은 우리가 믿음의 길에서 겪는 수많은 갈증과 마음의 상함, 불과 같은 시련속에서도 우리의 상황을 압도하는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전에는 후회하고 완고한 의지로 이겨내려고 했다면 주의 십자가는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주의 손에 붙잡힌 인생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성탄의 기쁨, 그리고 우리의 예배(προσκυνέω)

예배라는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온 몸으로 전해져 손에 입 맞추다, 무릎을 꿇다’라는 뜻입니다. 프로스퀴네오는 엎드려 경외를 표현하는 행위로, 나의 존재를 낮추는 예배를 뜻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세리는 예배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감히 서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스스로 높아진 예배는 현실속에서 금방 무너지지만,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느헤미야 시대, 40일 동안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문 앞 광장 앞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듣다가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을때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지만 느헤미야는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예배는 거룩한 잔치입니다. 슬픔을 지나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물질을 나누고 베풀며 모인 백성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시는 은혜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삶의 자리, 교회와 가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은혜의 예배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매년 우리교회는 성탄 예배를 드리며 세례식과 입교식을 거행합니다. 유아세례를 받는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역사적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기 전 부모에게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 세상속으로 나아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가정에 맡기신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 주고, 가정에서 부터 삶을 통해 기도와 예배의 본을 보이겠다는 결단의 자리입니다. 세례받는 아이들이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가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깊이가 더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함께 하는 믿음의 지체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기도와 사랑으로 동행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시간입니다.

성인 세례를 받는 이들과 입교하는 이들은 주님을 따르겠다는 믿음의 고백과 결단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신앙 공동체안에서 거룩한 길을 시작하며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믿음을 공동체 앞에서 확인하고, 초대받는 시간입니다. 부서별 성탄 발표회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행하신 성탄의 기쁨과 사랑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드리며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느끼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주를 기뻐하는 사람들 곁에 머무시며 그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함께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치셨고 떡을 떼어 나누셨고 사람들을 사랑으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쁨의 고백과 감사의 모양은 다 다르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간절한 믿음의 고백은 하나로 흘러갈 것입니다. 성탄은 단순히 연말에 찾아오는 이벤트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온 기쁨의 소식이며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평화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이 기쁨을 누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이 기쁨의 누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지만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생명의 빛을 따라 걸으며 흔들리는 길 위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한주간 들판의 목자들 처럼 깨어서 주님의 성탄의 소식을 듣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깊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주시는 성탄의 은혜가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고 작은 나눔과 격려, 기도의 손길을 통해 홀로 있는 외로운 이웃들의 삶 속에 전해지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 움직이는 증거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