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현 후 제3주)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 시리즈 3
섬김의 공동체
The community that serves
마가복음 10:35-45
유민용 목사
35 ○ 그때에 세베대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 곁으로 와서 말했다. “주님, 저희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36 예수께서 물으셨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37 그들이 말하였다. “주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 가운데 한 명은 주님의 오른편에, 또 한 명은 주님의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3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가 지금 내게 요청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나 알고 하는 말이냐? 너희는 내가 마셔야 할 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39 그들이 대답했다. “예, 저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게 될 것이고, 내가 받는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40 하지만 너희를 내 오른편이나 왼편에 앉게 할 권한은 내게 없다.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41 ○ 다른 열 제자들이 이 일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노하자,42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의 왕이나 위정자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권력을 휘두른다.43 그러나 너희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44 또, 너희 중에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모든 이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주려고 온 것이다.”(쉬운말 성경)
35 Then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came over and spoke to him. “Teacher,” they said, “we want you to do us a favor.”36 “What is your request?” he asked.37 They replied, “When you sit on your glorious throne, we want to sit in places of honor next to you, one on your right and the other on your left.”38 But Jesus said to them, “You don’t know what you are asking! Are you able to drink from the bitter cup of suffering I am about to drink? Are you able to be baptized with the baptism of suffering I must be baptized with?”39 “Oh yes,” they replied, “we are able!”Then Jesus told them, “You will indeed drink from my bitter cup and be baptized with my baptism of suffering. 40 But I have no right to say who will sit on my right or my left. God has prepared those places for the ones he has chosen.”41 When the ten other disciples heard what James and John had asked, they were indignant. 42 So Jesus called them together and said, “You know that the rulers in this world lord it over their people, and officials flaunt their authority over those under them. 43 But among you it will be different. Whoever wants to be a leader among you must be your servant, 44 and whoever wants to be first among you must be the slave of everyone else. 45 For even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served but to serve others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New Living Translation)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 세번째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섬김이라는 헬라어는 ‘디아코니아: Diakonia’입니다. 디아: Dia는 ‘~통하여’란 뜻이고, 코니아: konia는 ‘먼지’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두개의 단어를 합성해 보면 ‘먼지를 통하여’라는 뜻이 됩니다. 섬김이라는 것은 Diakonia라는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서 먼지처럼 낮추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Diakonia어원에서 디아코노스: διάκονος 라는 ‘집사’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는데, 집사는 섬기는 직무, 섬기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죽으심으로 세상의 불의와 폭력, 인간의 자기중심적 욕망을 해체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셨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교실 칠판 위에 ‘공부해서 남주자’라는 학급 교훈이 걸려 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되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라는 뜻에서 걸어 두셨을 것입니다. 공부해서 남주는 것이 어떤 삶일까요? 잘 배워서 잘 쓰임 받고 잘 벌어서 잘 베풀고 나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자신들의 소원을 아룁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대왕국의 새지도자로 앉으실 것이라 생각했고, 주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시면 자신들을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을 합니다. 세상은 더 많은 물질, 권력과 힘을 소유할수록 더 편리하고 섬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소유의 끝이 나에게서 멈춘다면 그 길의 끝에는 허무함과 공허함만이 남게 됩니다.
주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드러내고 있는데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어 주려고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너희도 으뜸이 되기를 원하면 모든 이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섬김의 방향이 되시는 주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주님을 닮아가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널리 퍼트리는 사람들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부모의 전적인 섬김을 받으며 성장하다가 때가 되면 본인도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는 책임 있는 사람으로 성숙해져 가는 것처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직분의 무게가 더해 질수록 그리스도인로서의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때를 향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장면입니다. 예루살렘에 가시며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33절 34절입니다.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인자는 배신을 당하여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들은 인자를 죽이기로 결정한 후 이방인들에게 넘길 것이다. 34 그러면 이방인들은 인자를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으로 때린 뒤, 마침내 죽일 것이다. 그러나 인자는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로마제국이 상징하는 불의와 폭력의 해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섬김으로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첫째,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며 서로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경쟁하고 자리 다툼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열명의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에 분노한 것을 보면 다른 제자들도 야고보나 요한과 같은 생각이었음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교만과 이기심은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섬김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섬김이라는 마음의 바탕에서 진리를 지켜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주인되어 나의 이익을 드러내기 위한 섬김이라면 하나님의 뜻은 희석되어 갈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권위가 사라진 섬김은 절대적 진리가 사라지고 탈기독교(post-christian))로 전락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너희가 지금 내게 요청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나 알고 하는 말이냐? 너희는 내가 마셔야 할 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고, 실패하셨으며, 옥에 갇히셨고 배신당하셨습니다. 오늘날 시대정신은 교회 안에도 절대적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주의, 모든 권위를 해체해 버리자는 해체주의, 돈을 가장 믿을 만한 힘으로 여기는 물질만능주의,자신들의 틀을 가지고 그 틀에 갇혀 살아가는 율법주의 신앙이 침투해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가신 길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죽음 가운데서 부활로 나타나셨고,핍박속에서 진리를 수호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세상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죄의 대가를 치르기 보다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기 목숨을 모든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며, 삶의 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걸어야 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바꿔 놓으셨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자들에게 몸소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 안에 섬길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세족식은 단순히 발을 씻겨주는 차원을 넘어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제자들의 죄를 씻기신 것입니다. 죄의 문제는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발은 절대로 씻을 수 없다고 거절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의 발을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어떤 선생도 제자들의 발까지 씻기는 경우는 없었지만 예수님의 씻김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죄로 인한 수치를 다 씻겨 주셨던 세족식의 일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교회된 우리는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십자가의 사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세워지고 난 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영성이 바로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이 힘은 주의 말씀을 실천하는 순종에서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주께서 마음 안에 계시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합니다.
둘째, 십자가의 사랑에 섬김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의 경험이 왜 중요합니까? 세상과 다른 원리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개인의 만족함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공동체입니다.
요한 힌리히 비헤른(1808-1881)이라는 사람은 독일 섬김 운동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1820년경 독일에서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사회안에 심각한 문제들을 직면하게 될 때 방치된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공동체를 세우고, 국가 기관과 연결해서 새로 생겨지는 감옥안에 형제들을 섬김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고 중세 카톨릭에 95개조 반박문을 내세울 때 비헤른은 “사랑은 교회에 있어 신앙에 속합니다” 라고 연설문을 남겼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에 디아코니아 운동의 거대한 불쏘시개가 되었고, 독일의 디아코니아 운동은 당시 화석화 된 교회에 환멸을 느끼고 떠났던 평신도들이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물론 섬김 사역을 하는 비헤른에게 비복음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로마서 8:17 ) 그는 비난과 핍박속에서도 당시 이성적 자유주의에 물든 시민들이 반교회적으로 변해 있다고 보고, 예수의 삶을 구현하기 위해서 산업도시를 방문하여 선교회를 구체화 시키는데 공헌을 합니다. 그는 위대한 신학자를 길러 내기 보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 섬기는 자들을 배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사랑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지체들을 미워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을 얻고 십자가의 피로 씻김 받는 하늘의 상속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김을 더욱더 실천하며 예수의 삶이 더욱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 라는 뜻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걸 보면서도 서로 달리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래서 섬김의 본이 되신 주님만이 섬김의 방향입니다. 방향이 같으면 속도는 달라도 하나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결혼은 관계속에서 배우자의 시선을 통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다듬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주안에 있는 성도는 서로가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게 되고, 서로의 모난 부분이 다듬어져 가는 과정 안에서 화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 위주로 살던 삶에서 서로의 삶을 이해해 가며 온전한 모습이 되어 갑니다.
42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의 왕이나 위정자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권력을 휘두른다.43 그러나 너희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44 또, 너희 중에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모든 이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언제나 십자가 사랑의 섬김에는 주님이 거하십니다. 바울은 복음을 접하고 율법의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에서 복음으로 인한 획기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주님은 새로운 차원에서 섬김을 완성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하나님 나라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후 제자들은 세상의 인본주의 가치와 원리와는 상반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십자가를 통과하는 부활의 삶을 살아낸 것입니다
셋째, 섬김은 지속적인 사명입니다.
현대인들은 협착하고 좁은 길보다 넓은 문 넓은 길을 더 선호합니다. 많고 크면 뜻을 펼치기가 좋고, 부와 명예와 권세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은 단회적인 선택이지만, 좁은 길은 지속적인 결단으로 걷는 길입니다. 그 길은 금욕주의, 고행, 율법주의, 종교적 형식과 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을 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가치와 다르게 살아가는 길이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회개함을 통하여 합당한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는 넓은 길에 비하여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의 배만 채우는 삶의 끝은 멸망이라고 합니다. 그 끝이 허무함이고 멸망이라고 한다면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섬기는 삶에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는 날이 저물 때에 어린아이의 나눔으로 2만여명을 먹이는 엄청난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주안에서 행하는 섬김은 섬길수록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씻김 받는 일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길에서 접촉되는 죄를 지속적으로 정화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 안에는 이미 마귀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 제자들이 지속적으로 서로 사랑하는 뜻을 깨달았다면 가룟 유다의 선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모든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진리를 만난 사람은 주인을 잃어버린 시대속에서 인생의 본래의 집을 향하여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섬김이 외적인 행동의 표현이라면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서 날마다 내적으로 거룩해져 갑니다.
너희는 내가 마셔야 할 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가시를 품고 살아갑니다. 나도 제자모르게 내가 품고 있는 가시가 나를 아프게 하지요. 그러나 이 가시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붙들고 계신 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아픈 가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상처가 변해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지고, 심령의 애통함이 변하여 위로자가 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실천하는 이들을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개속의 진주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 물질이나 기생 생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주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가치 있는 보석이 되고, 거센 폭풍과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나무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좋은 악기가 되듯 눈물과 아픔을 끌어 안은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섬김은 이처럼 작은 가시를 품고 있는 부족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고 소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세상에 들어왔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힘차게 다가 오고 있고 성도는 그 나라를 향해서 가는 중입니다. 세상의 욕망과 질서, 힘에 의한 통치는 하나님의 나라에 의해서 언젠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자녀의 영을 받은 사람은 인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아무리 훌륭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로 인해 뗄 수 없는 관계속에서 자녀됨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섬김은 단순히 봉사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쓴 뿌리를 뽑아내고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 진정한 섬김의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모두가 함께 서로의 것을 나누며 한 형제, 한 가족이 되는 진심을 느끼고 모두가 차별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진정한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값비싼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 가치를 따진다고 하면 삼백 데나리온이 지금으로는 3만불이 넘는 가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에 더 큰 가치를 둔 사랑과 겸손, 섬김의 모습으로 향유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 앞에 진정한 예배의 기쁨을 올려 드렸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맡겨 주신 삶의 자리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명예 지켜가는 것입니다.
(주현 후 제 2주)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 시리즈 2
기도 공동체
The pray community
유민용 목사
딤전 2:1-7
1 그러므로 이제 나는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와 기도와 중보기도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2 왕들과 높은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처럼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사회 질서가 안정되고 평화로운 가운데,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한 신앙생활을 잘 영위해 나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3 이 같은 기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또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5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또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이신데, 그분은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6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자신의 약속을 이루신 증거입니다. 7 나는 이러한 증거를 널리 전하도록 전도자와 사도로 임명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참된 믿음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 점 거짓 없는 진실입니다.(쉬운말 성경)
1 I urge you, first of all, to pray for all people. Ask God to help them; intercede on their behalf, and give thanks for them. 2 Pray this way for kings and all who are in authority so that we can live peaceful and quiet lives marked by godliness and dignity. 3 This is good and pleases God our Savior, 4 who wants everyone to be saved and to understand the truth. 5 For,There is one God and one Mediator who can reconcile God and humanity—the man Christ Jesus. 6 He gave his life to purchase freedom for everyone.This is the message God gave to the world at just the right time. 7 And I have been chosen as a preacher and apostle to teach the Gentiles this message about faith and truth. I’m not exaggerating—just telling the truth.(New Living Translation)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 시리즈 두번째는 기도입니다. 디모데 전서는 영적 멘토인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보내는 목회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목회를 마치며 자신의 뒤를 잇는 디모데에게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 침투해 있던 거짓 교사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교회 안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알려 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당부하는 것이 기도였습니다. 기도의 자리는 깊어질수록 겸손하게 되고 고요함의 자리로 안내합니다. 지금처럼 소통이 빠른 세상에서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고요함을 가져다줍니다.
바울은 목회의 영역에서 직분자를 세우는데 있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며 믿음을 지켜 나가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기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살아 있는 교회는 말씀의 능력이 있게 됩니다. 신학교 다닐 때 학교 근처에 기도를 참 많이 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청년들이 기도하다가 영적인 생명이 들어가니까 성경을 한번도 읽어 본적이 없는 학생들도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성경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하는 그 교회를 탐방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글로 증명해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하고 힘 주셔야 합니다. 우리 각사람이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삶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권면하고 전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1 그러므로 이제 나는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와 기도와 중보기도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바울은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라고 합니다. 목회의 인생을 돌아보며 아들처럼 여겼던 디도데에게 기도의 우선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바울에게 기도는 우선적 삶이었습니다. 사명의 길을 가며 기도의 영적습관은 매순간 주님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습관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일상 생활이 분주합니다. 날마다 긴장하며 살아야 하고 치열한 경쟁의 삶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데 에너지를 소진하다 보니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힘은 거의 남지 않게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늘 지쳐있고 헌신을 요구하는 자리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기도는 특별한 가치 보다는 평범한 것인데 기도의 가치가 사라지는 시대인듯 싶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는 건강한 신앙을 유지시켜 주는 필수 요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 보시고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씨름은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으시며 그 말씀을 기도의 언어로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훈련이 우리의 시간을 거룩하게 하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유혹하게 하는 세상속에서 거룩한 시선과 거룩한 마음을 품게 해줍니다. 기도는 분주하게 하는 환경들로 부터 마음을 가라 앉히고 홀로 있는 공간이 외로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는 시간이 됩니다. 영혼이 순수해 지고 정화되는 길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관심이 있고 편안한 사람에게는 더 가까이 가고 싶고 친밀해지고 싶어합니다. 기도가 살아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 집니다. 기도하고 싶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제목을 발견하고 싶어 지니까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어느덧 이민생활도 안정이 되고, 신앙 생활도 오래 하다 보니까 기도의 필요성이 줄어 들어 계시지는 않습니까? 기도의 기쁨은 사라지고 의무적이고 형식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으신가요? 기도는 호흡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숨을 쉬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힘든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나 인생의 주체성이 약한 사람이기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바쁠수록 기도해야 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기도생활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우리의 삶에 기도의 삶이 살아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엇보다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와 기도와 중보기도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이후 4가지의 기도를 소개하는데, 모든 사람을 위해 중보자의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간청에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간구의 기도를 통하여 기도의 반경이 넓어지고 삶이 영적으로 깊어지게 됩니다. 기도의 반경이 넓어지다 보면 다른 이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게 됩니다. 말씀을 붙들고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에 말씀이 삶을 형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시대의 언어로 번역된 메시지 성경의 집필자 유진 피터슨은 ‘말씀을 먹으라, Eat this book’이라는 그의 책에서 그가 키우던 개가 홀로 뼈다귀를 뜯으며 기쁨을 만끽하는 이미지속에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영적인 힘을 느꼈습니다. 기도의 즐거움은 우리를 말씀의 세계로 이르도록 인도합니다.
왜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디모데가 목회하던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과 사회적 지위가 다른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차별없이 기도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서로가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게 됩니다. 힘이 존재하는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서로가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서로를 평가하는 시선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연약한 마음이 앞서지 않도록 입술의 말은 줄이고 기도의 자리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디모데에게만 보낸 편지는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디모데 전서의 마지막 구절인 6장 21절은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 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너희라는 ‘휘몬’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you인데, 주어가 복수로 사용되면 you도 복수로 사용되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운명을 달리 하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경주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 하나님과 더욱 깊은 삶을 위해 에베소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왕들과 높은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처럼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사회 질서가 안정되고 평화로운 가운데,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한 신앙생활을 잘 영위해 나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3 이 같은 기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또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입니다.
바울은 왕들과 높은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합니다. 지도자는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도 기도로 풀어내야 합니다. 이 기도의 핵심은 중보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데 있습니다. 기도는 나만을 위한 간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처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나만을 위한 기도에서 기도의 반경이 넓어지게 됩니다. 중보(Intercession)란 ‘사이, 간격’이란 뜻이며 이쪽과 저쪽을 연결시켜 주는 기도입니다. 세상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중보자는 예수 외에는 없습니다. Inter 는 between을 의미하고 Cession은 ‘간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cedere(체데레)에서 파생한 말입니다.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갈라진 틈에 거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때로는 아픈 마음과 상처의 마음의 틈에 다른것을 채우지 마시고 오직 기도로 그 틈을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조선후기 우리나라는 암흑기였습니다. 국민과 국가의 이익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정치로 인해 조선에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위정자들과 임금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당시 흑암의 통치가 미치는 조선땅은 암울했지만 선교사들은 낯선 땅에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어느 나라를 가도 교회부터 세우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기도의 힘인 것입니다. 현대사회에 여전히 일어나는 전쟁의 문제들도 지도자의 바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합니다. 전쟁으로 인한 폐해는 오랜 시간에 걸친 갈등, 국가 지도자들의 민족적 이기주의가 만들어 내는 결과들입니다. 바울이 국가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한 이유는 사회 질서의 안정과 평화롭게 살기 위함이고, 거룩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선교를 책임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2024년에 세계 4차 로잔대회가 서울에서 개최가 됩니다. 1970년대, 빌리 그래함은 정치적, 경제적, 지성적, 그리고 종교적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 속에서 기독교 선교의 의미를 다시금 정립하는 국제 대회의 필요성을 느꼈고, 1974년 7월 150개국, 2,4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스위스 로잔에 모여 세계복음화를 위한 국제대회를 개최했습니다. 1974년에 시작된 로잔운동은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 2차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평신도 리더와 여성들의 참여가 있었습니다. 이후 2010년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3차 대회가 열렸습니다. 사도행전에 빌립집사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준 기록이 있는데 당시 1세기에 아프리카에 전파된 기독교는 21세기 아프리카 지역이 비서구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복음화율을 보여줍니다. 케이프타운 로잔대회에는 수많은 청년리더들을 국제 리더들과 연결해 주면서 그들의 지도력의 발전을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세계 선교의 영향력을 보여 주듯 서울에서 열리는 4차 로잔대회의 소식은 세계선교 역사에 초석으로 삼으시고 지금까지 놀라운 국가로 사용하셨음을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5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또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이신데, 그분은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6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자신의 약속을 이루신 증거입니다. 7 나는 이러한 증거를 널리 전하도록 전도자와 사도로 임명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참된 믿음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 점 거짓 없는 진실입니다.
기도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깨닫기 위함입니다. 선택받은 성도들은 기도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간극이 있는데 성경은 이를 죄라고 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한데,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는 오직 한분입니다. 하나님도 한분이시고 중재자 예수도 한분이신데 주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세상은 그 길이 왜 예수여만 하는지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기도를 생각해 보세요.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밤새도록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피하고 싶은 십자가 쓴잔을 두려워 떨며 하나님께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두려웠고 피하고 싶었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달리신 십자가를 생각하면 그저 눈물만 납니다. 아무리 그 길을 따른다고 하지만 기도 없이는 흉내 조차 낼 수 없는 그 길을 주님께서 걸어 가셨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통해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26절 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8:26 ○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적극 도와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절실함으로 우리를 위해 아주 적절하게 기도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 증거자와 사도로 세움을 받은 것이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도임을 강조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의 거짓 교사들이나 그들의 영향을 받은 자들로 인해 사도성이 의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보면서 사도 바울의 아픔을 함께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직분자로 전도자로 교회의 위해 살아가는 길은 때로는 눈물로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눈물이 앞을 가릴 때마다 이 길을 먼저 걸어가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사명을 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받고 있는 아픔 가운데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서신은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새해에는 직분자들이 세워지게 될텐데, 믿음으로 결단한 분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직분 앞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의 질문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순종하시며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디모데 서신을 많이 묵상하시며 교회를 위해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프고 고통받는 지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다면 그 기도의 자리에 먼저 서는 직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 하실것입니다. 귀한 직분을 받기 전에 기도하며 믿음의 직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전에 하던대로 하루에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자기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드리더라’ (단6:10)
새호흡으로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번의 기도로 한결같은 기도의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자로 겸손한 자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무릎으로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우리의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는 걸음을 걷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메시야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온갖 의심과 수모를 받으셨던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의 긴 호흡으로 믿는 자들의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습이 부족할지라도 주께서 보이신 생명의 길을 향하여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 땅에서 가장 연약한 성도의 기도라도 그가 영적으로 살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면 그의 기도가 사탄에게는 강력한 응징이 된다. 어둠의 세력은 기도에 의해 무력해진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공동체를 불평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강한자와 약한자를 구분하여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기도의 자리가 깊어지면 연약함도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는 자리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마음의 감사와 쉼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도 사랑으로 십자가를 참아내셨습니다. 생애의 전부가 기도하는 길이셨습니다. 말씀위에 진실한 기도를 더하는 목회, 말씀과 기도로 깊어지는 공동체, 다시 오실 그날에 밝히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일상의 골방에서 열방을 품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