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07 2024 주일설교

(부활절 두번째 주일)

건강한 교회 시리즈 8

부활의 공동체 2

Community of Resurrection 2

고린도 전서 15:20-28

유민용 목사

20 ○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듯이, 이제 죽은 자의 부활도 다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들어옵니다. 22 곧 한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이제 다른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23 하지만 죽은 자의 부활은 각각 순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장 먼저는, 모든 죽은 자들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24 그 후에 세상 종말이 임할 것인데,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모든 권력과 권세와 권능을 다 멸하신 후, 그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실 것입니다. 25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완전히 굴복시킬 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왕으로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굴복시킬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켰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굴복시키신 모든 것에는 그 ‘모든 것’을 굴복시키신 하나님 자신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28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굴복시킨 그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것을 자기 발아래 굴복시키신 하나님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정녕 ‘모든 것의 주님’이 되실 것입니다. (쉬운말 성경)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누리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 인간은 죽음 앞에 무력한 존재이지요. 죽음은 참으로 강력한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의 능력을 말하며 죽음을 빼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힘이 죽음을 삼켜 버릴 정도로 강력하기에 부활의 빛은 죽음까지도 소멸시킵니다.

바울은 12절로 19절에서 가정문을 사용하여 부정을 다시 강하게 부정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에 대해서 진리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했는데도,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13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리심을 받지 못한 채 아직도 죽은 상태로 계셔야 할 것입니다. 14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리심을 받지 못한 채 아직도 죽은 자들 가운데 그대로 계신다면, 우리가 전한 것은 아무 쓸모없는 헛된 것이며, 여러분의 믿음 또한 헛됩니다. 15 더 나아가, 우리 모두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못하셨는데도, 우리가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해왔기 때문입니다.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리심을 받지 못하고 아직 죽은 상태로 계셔야 합니다.


17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리심을 받지 못하셨다면, 여러분의 믿음도 몽땅 헛된 것이고, 여러분은 여전히 죄 가운데에 있게 됩니다. 18 그렇게 되면, 이미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들도 다 멸망해 버렸을 것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우리의 소망이 단지 이 세상의 삶만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다른 모든 세상 사람들보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걷는 길이 진리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과 진리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추상적인 차원에서 믿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절대로 실제적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12절로 19절의 말씀을 부정하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그리하여 모든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선언합니다. 

첫째, 모든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첫 열매’라고 번역한 헬라어 ‘아파르케’(ἀπαρχὴ)는 시간적으로 ‘창조’라는 뜻의 아르케(ἀρχή)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첫 열매’라는 것은 ‘새창조 사건’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첫번째 열매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서 일어날 대표적 의미를 갖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죽음 이후 몸의 부활에 대한 약속입니다. 예를 들어 농부가 봄에 씨를 심어서 가을에 첫열매를 얻게 되었다면 이후에 우리는 그 나무에서 열매가 지속적으로 열릴 것을 알게 됩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듯이, 이제 죽은 자의 부활도 다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들어옵니다. 22 곧 한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이제 다른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절망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부활의 능력을 말하며 고통과 고난을 빼놓지 않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창조의 숨결을 느끼며 주어진 때를 살아가게 합니다. 세상이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져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첫열매가 되신 주님의 행렬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속에도 잘됨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고통의 시간, 원하지 않는 때를 맞이할 때도 있는데 하나님은 인생의 어두운 날도 회피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받아 들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을때 나사로는 이미 죽어서 장례를 치른 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부활 때에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안다고 대답합니다. 언뜻 보면 그녀가 부활하게 될 것을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녀는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주님께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요11:25~26)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주셨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사로는 다시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은 앞으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믿음을 주시기 위한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죽음의 권세까지 굴복하신 주님께서 마음의 주인으로 자리하고 계신가요? 기독교는 지적이거나 윤리적인 차원의 종교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만이 인생의 길과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심을 정말로 믿는 것입니다. 인생의 분명한 답이 바로 부활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도 부활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답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세상에 없습니다. 한치 앞을 알수 없는 인생길 주님께서는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십니다.

둘째, ‘이것을 너희가 믿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백이 믿는다라는 것입니다. 매주일 사도신경을 고백하며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부활의 신비는 누군가가 전해 주니까 믿어 주는 것도 아니고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어서 믿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묻고 계시는 주님의 질문에 정직하게 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시간 ‘너희가 이것을 믿느냐? 라고 다시 물으십니다.

이 사실을 잊고 산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일에만 급급하게 될 것이고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허무함만 더해 갈 것입니다. 지나 온 인생을 보며 후회만 남는다면 한없이 절망하게 되고 속절없이 감정의 파도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주님은 부활의 소망을 굳게 믿고 살아가라고 죽은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마음에 참된 안식이 찾아 옵니다. 잠자고 있던 영혼이 깨어나고, 상처로 인해 단단해진 마음에 주님의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이 신비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고통의 현실 속에서 부활의 능력을 끌어 당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현실과 영적인 것 사이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신앙생활의 문제는 진정으로 믿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흙에 속한 자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는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가리키는 죽음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 보아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가 접해 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해서 다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 가운데 본래적인 것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인간에게 찾아 왔습니다. 인류 역사속에서 이 죽음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에 살아가면서 사망의 권세는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대부분 애착하는 것으로 부터 분리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바울은 죽음 이후에 일어날 사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23절부터 26절을 읽겠습니다.

23 하지만 죽은 자의 부활은 각각 순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장 먼저는, 모든 죽은 자들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24 그 후에 세상 종말이 임할 것인데,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모든 권력과 권세와 권능을 다 멸하신 후, 그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실 것입니다. 25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완전히 굴복시킬 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왕으로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굴복시킬 원수는 죽음입니다.

각각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질서 있게 이 일이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때에는 초림때 비천한 상황에서 태어나신 것과 달리 왕중의 왕으로 영광과 권위를 지니고 임하실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이 세상의 완전한 종말이 온다는 의미입니다.(마 13:39, 계 14:15) 바울에 따르면 두가지 일이 일어나는데, 하나는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다 심판하시고 악의 세력이 파멸될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하나님의 나라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만 그날에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품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새로운 창조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부활의 신비가 역사적 사실임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은 믿지만 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부활 이후의 말씀도 그대로 다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예수의 생애에서 실제로 부활이 일어났고, 성경은 우리도 그렇게 될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착하게 산다고 해서 죽음을 극복할 수 없고, 오랜 시간 수행의 삶을 산다고 죽음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믿으려 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믿어지지 않고 이해되지도 않습니다. 거꾸로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이 길을 신뢰하며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 길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께서 성경의 말씀을 계시적으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초대교부들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태양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는 것에 자주 비유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태양을 온전히 살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지성과 이성이 하나님의 신비를 다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통해서 삶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숨겨진 깊이를 볼 수 있도록 열어 주시지만 온전히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닫혀진 우리의 영적 시각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굳게 닫힌 돌문이 열리고 주님께서 나오신 것처럼 말입니다. 말씀대로 살아나셨다는 것은 죽음의 의해 삼켜진 그리스도의 생명이 다시 역전되어 죽음을 삼킨 생명의 사건인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어떤 순종을 원하실까요?

27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켰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굴복시키신 모든 것에는 그 ‘모든 것’을 굴복시키신 하나님 자신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28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굴복시킨 그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것을 자기 발아래 굴복시키신 하나님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정녕 ‘모든 것의 주님’이 되실 것입니다.

굴복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강압에 의한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미에서 순종입니다. 주님은 찬양 받으실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새창조를 이루셨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며 순종하셨습니다. 깨어진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이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안에서 버려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도들은 고통중에도 십자가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만 있게 될 그 나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종말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제껏 살아온 삶으로 부터 단절시키는 것 같고,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잊혀지는 것 같고, 이제껏 쌓아 올리며 살았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의 종말은 미래에 일어날 우리에게 펼쳐질 영광의 자리이며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 내게 주어지는 일들을 부정적으로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비록 주어지는 환경속에서 고통과 고난이 있더라도 찬송의 노래를 부르며 부활의 몸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사망을 이기고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몸은 날로 쇠잔해 지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의 몸은 날마다 새사람으로 살아납니다. 바울은 자신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진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공동체 안에서 어떤이들은 새새명을 낳고 탄생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동일한 시기에 누군가는 부모와의 헤어짐을 경험하며 아픔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품을 때도 있고, 내려 놓고 떠나 보내게 될 때도 있지만 모든 시간과 모든 날들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이 하신 일을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의무적이거나 강압에 의한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의 예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는 것은 현실에서 넘치게 채워주실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의 인생에 넘치도록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믿음은 정해진 기계적인 삶이 아니라 모든 환경속에서 우리를 설계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십자가에서 이루신 죽음을 우리도 삶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인생이 이미 정해졌다는 숙명론자가 아니라  부활의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하실 하나님께 매일 묻고, 삶속에서 펼쳐질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갈망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니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생활 가운데 평탄한 길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몸을 함께 지니게 될수록 주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며 부활의 신비를 경험해 갈 것입니다. 인생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시작과 마지막을 운행하고 계시니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으로 사려 깊게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이 인생을 설계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책임있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3 31 2024 주일 설교

(부활 주일)

건강한 교회 시리즈 7

부활의 공동체

Community of Resurrection

고린도 전서 15:1-11

유민용 목사

15:1 형제들이여, 내가 전에 여러분들에게 전해 준 복음을 다시 되새겨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내게서 전해 받았고, 지금 그 복음 위에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말씀을 여러분이 헛되이 믿지 않고 굳게 잡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복음에 의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3 ○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그리고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런 다음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6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동시에 나타나셨는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죽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또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다른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달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 같은 한참 부족한 나에게까지도 나타나셨습니다. 9 나는 모든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으로, 사실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도 없습니다. 10 그러나 오늘날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을 내어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이렇게 복음을 힘껏 전하고 있으며, 또한 여러분은 그 복음을 이렇게 믿었습니다. (쉬운말 성경)

만약 예수의 탄생과 수난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세상의 다른 종교와 다를 것이 없었을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이 길이 진리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이 십자가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절을 시작으로 6주 동안 부활절기를 보내게 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 부활에 의해 나의 일상도 변화 받는 삶, 나에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기고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뀌는 삶, 주일 예배 한번으로 신앙을 지키는 삶이 아니라 매 순간 부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한 논쟁과 의문들에 대해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부활을 믿지 않는 교우들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서로가 상반된 견해로 논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 시대의 성도들이 부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도 점점 더 신앙의 개인주의화가 되어가고 공동체 안에서의 믿음은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너무 급하고 분주한 삶을 살다보니 부활의 의미는 점점 사라져 갑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의심하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전 세계 모든 이들는 예수를 주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의 권세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를 드러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교리는 논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권위를 받아 들일때에 알게 되고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의 몸을 입어 가는 과정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로 이어집니다. 성도의 구원은 부활과 연결되어 있는데 주님은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이며, 그날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선한 일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의로움을 보장해 주며, 앞으로 부활의 몸을 받게 될 것을 보장합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수고나 봉사도 아무 의미가 없는 헛된 것이 되고 말기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 중에 성도들은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죄와 슬픔이 그치고 십자가의 은혜로 충만케 하십니다. 지금은 우리가 육신의 몸을 입고 있어서 완전한 영화로운 삶은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같은 형상으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고후 3:18)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다가 온전한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하라는 말은  여러분의 개성을 잃어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은사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역사하십니다.

1절 2절을 마음을 열고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1 형제들이여, 내가 전에 여러분들에게 전해 준 복음을 다시 되새겨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내게서 전해 받았고, 지금 그 복음 위에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말씀을 여러분이 헛되이 믿지 않고 굳게 잡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복음에 의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바울은 확실하게 믿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생활을 하지만 어떤이들은 목적없이 가볍게 믿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예수님의 부활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고난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부활 신앙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는 것은 땅속에 깊이 심겨진 씨가 죽어짐으로 꽃이 자라나듯이 그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부활 신앙 토대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사망으로 이끌고 갑니다. 죄는 내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으로 거칠게 밀어 붙이는 힘을 지닙니다. 그래서 죄의 뿌리를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실제적으로 누리지 못합니다. 만일 죄를 쉽게 여기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한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죄가 죽고 우리가 다시 살아 났다는 의미가 깊어 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실제가 되지 못하도록 마귀가 끊임없이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이것이 신자 안에 소멸되지 않은 죄의 뿌리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은 허영심과 교만의 모래성을 계속 쌓아 올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내면은 영적 전쟁터와 같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말씀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이끌림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3 ○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던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 성경에 기록된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마음으로 받아 들이시기 바랍니다. 성경대로 믿으라는 것은 문자주의나 율법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상과 가치로 해석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대로 믿는 것은 깊은 이해를 통하여 성화의 삶을 꾸준히 추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옳다는 것을 부활을 통해 입증하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기자들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부활은 삶을 변화시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5 그리고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런 다음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6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동시에 나타나셨는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죽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또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다른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기독교가 당신을 변화시키려면 부활이 역사적 사건임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성경의 기자들은 생명을 걸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해서 전달하려고 애썼고 수많은 증인들이 이를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 나신 주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런 다음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에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동시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다른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믿는 성도들의 현재의 삶에도 나타나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깨닫고 삶이 변화되는 현재의 역사적 사실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이 되어 주시고 믿음을 지켜가기 위한 말씀과 기도의 자리,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도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마태복음 28 장을 보면 예수의 부활 직후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이 대제사장들에게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하자 대제사장들은 그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도둑질하여 갔다고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서만 증거된 것이 아님을 볼수 있습니다. 박해자들에 의해서도 증거됩니다. 마태복음 28장 11절로 15절입니다.

“11 여자들이 떠난 뒤, 예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 몇 사람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 대제사장들에게 그동안에 일어난 일을 낱낱이 보고했다. 12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유대 지도자들과 논의한 끝에, 경비병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당부했다. 13 “한밤중 너희가 잠든 사이에, 예수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라.” 14 그들은 또 경비병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만일 총독이 이 소문을 듣게 되더라도, 너희에게는 아무 피해가 없도록 우리가 책임을 지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지난 2천년 동안 예수의 부활 사건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 내기 위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무제한적으로 성경을 비판하며 연구했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부활을 비판하며 연구하던 이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 일들이 허다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다락방에 모여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분을 본 제자들은 완전히 변화되어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존경받는 율법학자였고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던 바울도 주님을 만난 이후 부족한 나에게까지 나타셨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인식에 대한 변화이자 새롭게 변화 된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8절로 10절입니다.

“8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달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 같은 한참 부족한 나에게까지도 나타나셨습니다. 9 나는 모든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으로, 사실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도 없습니다. 10 그러나 오늘날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난 모든 이들은 그 모습에서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빈무덤은 인간이 한줌의 재로 돌아가는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우리를 실패 가운데서나 역경들 속에서도 더 진지하게 살아가게 하십니다. 바울은 현재의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가 마음에 바라 본 영광은 어떤 것일까요? 그는 구약 성경에 능통한 자였고 성경의 약속대로 틀림없이 이뤄진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셋째, 예수의 부활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하게 해줍니다.

“10. …..내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을 내어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이렇게 복음을 힘껏 전하고 있으며, 또한 여러분은 그 복음을 이렇게 믿었습니다.”

은혜가 헛되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안에 그분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욕망과 자기 만족, 끊임없는 경쟁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잃어버리고 소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교만과 자랑, 허영심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철저히 다스림을 받는 시간입니다.

여전히 자격 없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의 믿음은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이 부활의 사건을 증거 하십시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성도들에게도 슬픈일들이 찾아 옵니다. 힘에 겨운 일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을 지닌 성도들은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속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신것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만이 인생의 소망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었지만 물과 피를 쏟으신 그 현장 앞에 예수님에게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베드로는 부활한 예수님을 다시 새롭게 만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가시고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허락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베드로를 복음 전하는 자의 삶으로 변화 시켜 주셨습니다. 수도 없이 부인했지만 또 등 돌리는 우리를 새로운 사명자로 세우시기 위해 찾아 오십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그 때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성도로 부활이 어떤 힘을 지녔는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며 우리를 새롭게 하셨으니 영화로운 날이 올때까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삶에 찾아오지 않으면 헛되고 헛된 인생을 계속 소모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은 우리의 한 시대가 지나갈 때에 증명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부활의 흔적을 살아내는 성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은 개개인이 엘리트이고 모두가 전문가들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만을 보여주어야 뒷쳐지지 않는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앞에 순종하는 삶 앞에서는 영적 전문가, 엘리트는 없습니다. 높고 낮음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거룩하게 살아내시기 바랍니다. 한사람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남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성도들의 삶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