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강림절)
건강한 교회 시리즈 14
성령의 공동체
사도행전 8:14, 17-25
14 ○ 한편,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 성읍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자,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으로 보냈다…17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니,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다.18 마술사 시몬도 그 광경을 보았다. 사도들이 사람들의 머리에 손을 얹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는,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내밀면서 부탁했다. 19 “내게도 이런 능력을 주어,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게 해주십시오!” 20 그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꾸짖으며 말했다. “감히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 하다니, 당신은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21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올바로 쓰지 못하니, 당신은 이 일에 아무런 상관도 없고 또 얻을 것도 없소. 22 그러니, 당신은 속히 악한 생각을 뉘우치고 주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런 악한 생각을 품었던 것을 용서해 주실지도 모르오. 23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마음이 뒤틀려 있고, 죄에 사로잡혀 있소.” 24 시몬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선생님들,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나지 않도록,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25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사마리아 성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선포한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두 사도는 사마리아 지역의 여러 마을에 들러 복음을 전했다. (쉬운말 성경)
14 When the apostles in Jerusalem heard that the people of Samaria had accepted God’s message, they sent Peter and John there… 17 Then Peter and John laid their hands upon these believers, and they received the Holy Spirit.18 When Simon saw that the Spirit was given when the apostles laid their hands on people, he offered them money to buy this power. 19 “Let me have this power, too,” he exclaimed, “so that when I lay my hands on people, they will receive the Holy Spirit!”20 But Peter replied, “May your money be destroyed with you for thinking God’s gift can be bought! 21 You can have no part in this, for your heart is not right with God. 22 Repent of your wickedness and pray to the Lord. Perhaps he will forgive your evil thoughts, 23 for I can see that you are full of bitter jealousy and are held captive by sin.”24 “Pray to the Lord for me,” Simon exclaimed, “that these terrible things you’ve said won’t happen to me!”25 After testifying and preaching the word of the Lord in Samaria, Peter and John returned to Jerusalem. And they stopped in many Samaritan villages along the way to preach the Good News.(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50일째 되는 날 성령의 오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적색스톨은 성령의 불과 십자가 보혈을 상징합니다.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교우들 마음안에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역사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의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약속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은 복음의 증거자들로 흩어져 증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할때에 교회가 시작되었고 성령이 임한 후 교회는 흩어졌고, 흩어진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의 소식은 확장되었습니다. 건물 중심적인 교회는 모이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교회는 거대한 역사 가운데 형성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받는 개인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교회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부터는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을 넘어 사마리아 지역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종교와 우상숭배를 수용하고 혈통적으로는 혼합민족이라서 당시 유대 기독교인들은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의 땅은 밟는 것 조차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자 경계가 무너지고 그토록 경멸하던 사마리아 지역에까지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확장시켜 나가는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박해속에서도 복음은 확장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는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스데반이 돌맹이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나오는데, 이를 계기로 핍박이 더 심해지고, 이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제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 가운데 고난을 통한 흩어짐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론의 핵심이 고난에 있는데,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다만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고 소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죄에서 비롯된 하나님과의 분리된 삶의 모습이 고난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에 죄에서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써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전에는 죄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믿고 살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 받은 성도들도 여전히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이는 고난이 죄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모든 고난이 죄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바울은 고난을 그리스도의 행렬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17절을 보시겠습니다.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개선장군들은 전차를 타고 로마 시내로 행진하여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행진하는 길은 승리의 제사를 드리는 타오르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포로들을 잡아 뒤에 세워 승리의 행렬을 이끌었는데 행진이 끝나면 포로들은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개선행진 대열 끝에 서 있는 포로들에게 이 향기는 죽음의 냄새일 것이고, 승리한 군사들의 몸에는 전쟁의 상처가 남았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향기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이미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렬에 비유했습니다. 성도들의 고난은 이미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안에서 겪는 고난은 성도들이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삶으로 그리스도를 그려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힘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뤄진 나라이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역사로 구원을 받고 살아가지만 어디까지나 첫열매이신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일 뿐이며, 종말의 때에 완성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고난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며 얻게 된 흔적이 있다면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난 영광일 것입니다. 보냄을 받는 성도들은 보낸 자를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고 고난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복음이 증거되는데 고난이 없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견딜 힘을 허락해 주십니다.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빌 클린턴의 영적 멘토로 유명한 토니 캄폴로 목사님에게 한 여인이 찾아와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저희 남편이 암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기를 기도해 주세요. 토니 목사님은 남편이 치유되어 가정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주일 뒤 여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저희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셨지요? 그리고 여인은 남편이 오늘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말을 할지 망설이던 목사님에게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제 남편은 그동안 분노에 차 있었어요. 하나님을 저주하기도 했고, 가족들이 찾아와도 상처주는 말만 잔뜩하고는 등을 돌려 버렸어요. 그런데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한 그날부터 남편의 그런 행동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데 남편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3일전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웃고, 찬양하고, 말씀을 읽으며 남편을 하늘나라에 보낼수 있었습니다.남편이 건강하게 되진 못했지만 영혼이 치유되었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마음의 방에 마음의 얼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죄함, 자책감, 두려움, 외로움, 분노와 편견, 완벽주의, 질투, 후회 등의 감정이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게 합니다. 남편을 떠나 보내며 영혼이 치유되었다고 고백한 여인의 말에는 하나님을 만난 영혼의 기쁨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령은 죄에 묶여있던 마음에 찾아 온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께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오순절날 성령께서 임하자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이 차별받고 경멸받던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였다는 소식이 이를 증명합니다. 사마리아 지역은 복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졌는데 성령은 이러한 생각을 변화시켜서 복음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도하자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에게 들렸습니다. 14절을 보시겠습니다.
14 한편,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 성읍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자,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으로 보냈다.
오늘 본문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성도들이 성령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안수기도를 해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니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을 지나치게 해석해서 안수해야 성령님이 오는 것으로 여기며 안수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안수 자체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일으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사도들의 안수로 인해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는 기도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었기에 사마리아 지역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은사 주의자들은 은사를 예수님을 믿는 것과 다른 차원으로 여기며 지나치게 성령 세례를 강조하는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에는 거듭남의 체험이 중요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신앙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을 변화시키는 주님을 실제로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빌립이 전도할때 부터 유난히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마술쟁이 시몬인데 그는 스스로를 큰자라고 여겼습니다.
9절로 11절을 보시겠습니다. 9 ○ 한편, 그 성읍에 여러 해 동안 마술을 부리며 살아온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 양 행세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10 그래서 성읍 사람들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그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하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라고 칭찬하며 감탄하였다. 11 이처럼 시몬이 신기한 마술로 오랫동안 그곳 사람들을 놀라게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
오늘날 혼합주의 신앙은 무엇일까요?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시대에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면 신앙이 하나님과 혼합되어 집니다. 돈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목적과 수단이 바뀌면 혼합주의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가치에 도전하여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일평생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도와 주십니다. 또한 지속할 믿음의 동력이 약해졌을 때 새힘을 허락해 주십니다. 18 마술사 시몬도 그 광경을 보았다. 사도들이 사람들의 머리에 손을 얹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는,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내밀면서 부탁했다. 19 “내게도 이런 능력을 주어,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게 해주십시오!” 마술쟁이 시몬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로 성령이 임하는 표적을 보자 자신도 그 능력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는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돈벌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술쟁이 시몬은 성읍에서 자칭 큰자라 여기며 살았는데 성령의 능력을 받고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돈은 하나님 보다 높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보다 앞설 수도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돈을 무시하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교회 다니며 예배를 드려도 여전히 신앙의 목적이 잘 살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모든 일들이 잘 풀리는 것에만 둔다면 믿음은 갈수록 미신화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믿음의 결과일수는 있지만 믿음 생활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영적이다’라는 것은 통합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가치와 몸의 부활을 함께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삶에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구원을 통한 복도 함께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새생명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죄로 부터 자유케 하시고, 고난을 이길 힘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릇된 생각은 신앙 공동체의 질서를 깨트리고 매우 위험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깨달음으로 인간 본성의 자기중심성과 돈을 우상화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딤후 3:1-2)
성령님은 우리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자기를 부인할 수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도 없습니다. 선한일 행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20 그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꾸짖으며 말했다. “감히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 하다니, 당신은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21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올바로 쓰지 못하니, 당신은 이 일에 아무런 상관도 없고 또 얻을 것도 없소. 22 그러니, 당신은 속히 악한 생각을 뉘우치고 주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런 악한 생각을 품었던 것을 용서해 주실지도 모르오. 23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마음이 뒤틀려 있고, 죄에 사로잡혀 있소.”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교회가 세상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세상적 가치, 능력주의, 결과주의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할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그의 악함을 회개하라고 촉구하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 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이들은 주님을 영접할때 한번 회개했으면 회개 할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릇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한번 목욕했다고 해서 몸을 씻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고 싶은 마음을 부어 주십니다. 주안에서 잘 지낸다는 것이 재정적, 물질적 번영을 이루고 아무일 없이 평안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을 행하다 보면 손해 볼 일이 있습니다.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에게 이미 주신 성령은 우리를 지키고 영원토록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에서 여러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구원받을 사람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성령 강림절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기대하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여지고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기억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부활절 일곱번째 주일, 졸업예배, 어버이 주일
건강한 교회 시리즈 13
고난의 공동체
Community of Suffering
요한복음 15:18-20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19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으로 여겨, 너희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택하였으므로, 세상이 그토록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그의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그러므로 나를 핍박한 사람이라면 너희도 역시 핍박할 것이고, 내 가르침을 따른 사람이라면 너희 가르침도 역시 따를 것이다. (쉬운말 성경)
18 “If the world hates you, remember that it hated me first. 19 The world would love you as one of its own if you belonged to it, but you are no longer part of the world. I chose you to come out of the world, so it hates you. 20 Do you remember what I told you? ‘A slave is not greater than the master.’ Since they persecuted me, naturally they will persecute you. And if they had listened to me, they would listen to you.(New Living Translation)
우리교회는 전통적으로 매년 어버이 주일과 졸업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졸업은 새로운 삶의 문을 열고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올해도 졸업하게 되는 학생들은 총 44명입니다. 그 동안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는 이들의 삶을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학업의 현장에서 꿈을 위해 걸어가며 그 모든 과정을 마치기까지 기도해 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잊지 마시고 이곳에서 함께 한 믿음의 여정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어머니의 기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네 어머니의 기도는 자녀를 살게 하네 어머니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으리 어머니의 기도는 기적을 일으키네 눈물로 뿌린 기도의 씨앗 기쁨의 열매로 거두리 눈물로 뿌린 기도의 씨앗 하나님 기억하시리 자녀의 삶에 열매 맺으리 시들지 않는 꽃 피우리 환경을 넘어 역사하리라 하나님 열매 주시리” 어머니라는 이름은 불러만 보아도 생각만 해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특별히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며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진실한 믿음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전하는 고별설교의 일부분입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세상으로 나아갈때에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오늘 본문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이란 조건문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세상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정반대였습니다. 세상은 빛으로 오신 예수를 미워하였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던 세상은 로마 황제가 숭배의 대상이 된 세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영적생명을 지닌 성도들은 로마 권력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 보다 나를 먼저 미워했음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박해는 예수께서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됨으로 명확해 졌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적대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질적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과 정직함을 추구한다면,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미움과 불편함을 겪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소비주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는 쇼핑에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검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돈이 우상이 되어 숭배의 대상의 자리에 있습니다. 돈은 지배구조적 사회속에서 힘이 됩니다. 자신의 방법을 추구하며 힘을 강화하는 사회속에서 죄는 관계 안에서 파괴력을 지닙니다. 이 죄는 도덕적 윤리적인 차원의 죄가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과 예수님과 연합되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반도덕적이고 반윤리적인 죄의 열매를 보며 죄라고 여기지만 성경은 근원적인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듣고도 거부한 자의 죄는 핑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죄를 드러내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말할수 없는 복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오히려 마음의 이기심으로 인해 예수를 미워했습니다.
21 세상 사람들은, 너희가 내 이름을 믿는다는 이유로, 너희를 그런 식으로 핍박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2 만일 내가 이 땅에 와서 그들에게 사실을 일러 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죄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와서 일러 주었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변명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른다면 그 속에서 생명을 지닌 성도들을 대적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지나온 교회 역사를 보면 고난은 필연적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뜻이 있음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지키며 거룩한 공동체로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후대에 거룩한 공동체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을 보아도 복음전파하는 사역 가운데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면 이전의 삶의 가치와 지향하는 길이 완전히 변합니다. 이전에는 세속적 가치로 살아도 갈등이 없이 자연스러웠는데 예수님을 따르게 되니까 어둠의 영역을 벗어나게 되어 불편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뿌리가 달라지면 믿음의 열매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전에는 세상에 속해 있으니 죄의 열매를 맺으며 자기의 것을 사랑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19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으로 여겨, 너희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택하였으므로, 세상이 그토록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큰 영향을 미친 두 형제가 있습니다. 라인홀드 리버와 리차드 리버입니다. 동생 리차드 리버가 쓴 책 가운데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고전은 기독교의 종교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문화 사이의 관계를 대립, 소속, 상위, 변혁, 역설 등의 표현으로 다섯가지 유형을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이 복음의 내용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고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오늘날 인본주의 문화와 세상속에서 어떤 유형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점점 더 인간의 삶과 인간의 성을 상품화 하는 문화속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불의와 악에 동조하지 않고 세상의 문화에 지배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문화에 대해서 여러가지 유형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시대에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 과 미국 문화 속해서 그리스도는 어떠한 관계 가운데 있습니까? 이러한 차원에서 오늘날 세상은 초대교회의 상황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 졸업을 하고 우리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기억해야 할 몇가지 단어들이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현대사회를 불신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께 속한 믿음은 신앙인들의 중요한 가치라 생각됩니다. 이 믿음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 안에는 나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내가 바라보고 원하는 육신의 정욕을 따라 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또한 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아버지께로 부터 온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요한 일서 2장 16,17절을 보시겠습니다.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믿음은 내가 이루고 싶고 잘 되기를 구하는 간절한 소망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삶으로 반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 방식은 누군가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 함께 하는 가족들과의 방향. 여러가지로 정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가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인생의 기준임을 믿고 행하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모든 삶에 근심이 사리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삶속에 곤고한 마음이 찾아오지만 성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힘을 하나님 안에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는 방법은 초월적인 방법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환란 가운데 인내를, 인내를 통한 연단을, 연단 가운데 거룩한 소망을 이뤄 가십니다. 인생의 길을 걸으며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갈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언제나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더 나아가 인생을 살며 핍박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깊은 신앙의 차원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바울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숱한 괴로움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가난과 궁핍함, 슬픔과 핍박이 성도들의 믿음을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필요한 존재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며 마음안에 설레임과 두려운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선한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원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여러분은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애쓰고 구한다고 여긴다면 불안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얻게 되는 상처나 실망, 이유없이 받게 되는 고난에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고 약속한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원리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둘째, 주님보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그의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복음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이 되었고, 그 은혜는 낮은 곳에 임하게 됩니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낮은 곳에 임하는 은혜를 망각하고 지나친 욕심과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의 화려한 것을 찾고 무한한 욕망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면 이제 기도의 방향을 바꿔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신 것을 삶의 태도 삼으시기 바랍니다.
반 고흐는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 비극적인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에는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결을 갈망하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예배 드리는 회중'(Church Pew with Worshippers)이라는 그의 그림을 보면 턱을 괴고 자고 있는 여인, 피곤함에 지친 여인, 고개를 떨구는 회중들의 모습속에서 노동자, 소외된 이들의 고단한 삶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그림이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지만, 현대사회 불안과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듯 합니다. 자신의 시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가 남긴 그림과 편지들이 후대에 와서 그의 삶을 다시 재조명하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이 그의 소명을 따라 산 예술의 힘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삶의 낮은 길로 가기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한없는 영광의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진리의 영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그의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라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그러므로 나를 핍박한 사람이라면 너희도 역시 핍박할 것이고, 내 가르침을 따른 사람이라면 너희 가르침도 역시 따를 것이다.
세상은 자신의 강함을 드러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약함을 숨기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포장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약하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능력이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십자가 사랑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그 말씀을 따르며 감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선택을 믿고 세상과 다른 목적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제자들을 배척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국적이나 소속이 바뀌는 결정을 앞두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얻으면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고난을 이겨 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우리를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이들에게 천국을 소유할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삶의 흔적으로 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자리로 그리스도를 앉히셨듯 우리를 성령을 통해 인도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26 그러나 ‘돕는 분’ 곧 내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면, 그분이 와서 나를 위해 증언해 줄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의 증인들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 부터 나온 성령을 내가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런데 14장 16절에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고, 아버지께서는 다른 돕는 분을 너희에게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각 위격이 하는 일에 대해 서로 동의하에 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성령께서는 증인의 삶을 도우십니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제자들은 예수의 담대한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주기철 목사님(1897-1944)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1938년 조선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를 강요하던 시절에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가혹한 고문을 받지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다가 옥고를 치르고 순교하십니다. 당시 주기철 목사님의 나이를 계산해 보니까 47세였습니다. 너무도 짧은 인생을 주를 위해 사시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던 것입니다. 그가 남긴 신앙의 유산인 ‘일사각오’라는 그분의 설교 제목이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우리의 힘과 우리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성령의 깨우침과 함께하심을 통해 주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