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24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후 제 11주)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라

Building God’s Kingdom in Daily Life

누가복음 13:10~17

13:10 ○ 예수께서 어느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그런데 그곳에는 18년 동안이나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허리가 굽어져 있어, 몸을 똑바로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그녀를 앞으로 불러내어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당신이 병마에서 해방되었소.” 13 그리고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시자, 그 여자는 즉시 허리를 똑바로 펴고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14 ○ 그러자 안식일에 예수께서 병을 고치신 것에 크게 화가 난 회당장이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일을 하게 되어 있는 날이 일주일에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날에 와서 병을 고쳐 달라고 하시오. 하지만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 말을 듣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 위선자들이여! 당신들은 안식일이라고 하여, 외양간에 매여 있는 당신들의 소나 나귀의 고삐를 풀어 물을 먹이지도 않는단 말이오? 16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도 18년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소. 그런데 안식일이라고 하여, 이 여자를 풀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법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오?” 17 이 말씀에, 예수를 반대하던 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군중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쉬운말 성경)

10 One Sabbath day as Jesus was teaching in a synagogue, 11 he saw a woman who had been crippled by an evil spirit. She had been bent double for eighteen years and was unable to stand up straight. 12 When Jesus saw her, he called her over and said, “Dear woman, you are healed of your sickness!” 13 Then he touched her, and instantly she could stand straight. How she praised God! 14 But the leader in charge of the synagogue was indignant that Jesus had healed her on the Sabbath day. “There are six days of the week for working,” he said to the crowd. “Come on those days to be healed, not on the Sabbath.” 15 But the Lord replied, “You hypocrites! Each of you works on the Sabbath day! Don’t you untie your ox or your donkey from its stall on the Sabbath and lead it out for water? 16 This dear woman, a daughter of Abraham, has been held in bondage by Satan for eighteen years. Isn’t it right that she be released, even on the Sabbath?” 17 This shamed his enemies, but all the people rejoiced at the wonderful things he did.( New Living Translation)

영국의 복음주의 목회자 마틴로이드 존스 (Martin Lloyd-Jones, 1899-1981)는 1963년 웨스트 민스터 채플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을 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복음이 선포된 지 2천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복음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오해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지금 직면한 현실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단순히 다가올 미래만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현실임을 강조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봅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나? 참 바쁘고 분주한 요즘입니다. 한주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게 일상의 분주함 속에 있습니다. 생각해야 할일은 너무 많고, 해야 할 일도 더해집니다. 이렇게 바쁜 우리의 삶에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가는 여정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때 임하냐는 질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18년 동안 보이지 않는 악한 힘에 사로잡혀 있던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긴 세월 동안 허리가 굽은 채로 굳어져 있었고, 이로 인해 하늘 한번 쳐다 보지 못했을 것이며, 땅만 바라보며 살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악한 힘에 사로 잡혀 있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병을 죄의 결과로 여겼기에, 그녀는 부정한 자로 배척당하며 사회와 종교 공동체에서 소외된 채 살아야 했습니다. 그녀가 고통 속에 갇혀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매여 근심하고, 내 힘으로 안되는 일로 걱정의 시기를 보내는 분들, 감당해야 하는 문제와 책임 앞에서 잠못 이루는 날들을 보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회복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힘겹게 버티고 있는 그 일상의 자리도 보이지 않는 문제에 묶일때가 있지만 굽은 마음의 자리에도 주님이 오시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1.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회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께서 회당에 나온 이 여인을 보셨고, 불러 내어서 여자에게 손을 얹자 여자는 즉시 허리를 똑바로 펴고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눅 13:13) 그 동안 누려보지 못했을 해방과 자유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은혜가 이 여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어둠과 죽음의 권세는 힘을 잃고, 죄에 사로 잡힌 인생이 참된 안식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사단은 지금도 끊임없이 교회와 성도들의 영혼을 흔들며 유혹합니다.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뤄집니다.

예수님은 팔복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 안에 있는 미움과 탐욕, 분노와 시기심의 소리에 이끌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한 척 할때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겉도는 대화속에서 관계가 깊어질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위선적 모습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시들어 집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병을 고치신 사건으로 회당을 책임지던 회당장과 예수님 사이에 정면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회당장이 분노한 이유는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회당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안식일에 일만 할수 없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들어서도 안되고 심지어 불을 피어도 안되도록 엄격하게 규정했습니다. 지금도 정통파 유대교(Orthodox Judaism)인들은 전기를 켜고 끄는 행위가 ‘불을 지피는’ 것과 유사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자동 타이머를 설정해 놓고 전기를 미리 켜고 끄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는 회당장의 관점에서 여인을 치료하는 예수의 행동이 안식일의 전통과 충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과 종교적 형식을 중시하던 회당장의 충돌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안식일의 참된 정신이 무엇인지,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안식’이란 단어 샤바트(שַׁבָּת, Shabbat)는 ‘쉬다, 멈추다, 그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며 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신명기 5장 말씀에 보면, “5:15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강한 손과 펼친 팔로 해방시켜 주신 것을 기억하여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쉬도록 너희에게 명령하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해방하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안식일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회당장은 안식일의 율법과 규정의 이유로 분노했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며 오히려 그 여인에게 회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형식과 규칙에 매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놓칠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억눌리고 갇힌 자 자유함이 없는 자에게 다가가 회복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주일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의 은혜를 찬양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거룩한 주일을 지키며 그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할때 우리 안에 참된 안식과 회복이 경험될 줄로 믿습니다.

2. 내 마음을 방해하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13장 16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병 고침을 받은 이 여인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딸’ 이라고 부르 셨습니다. 그러나 율법과 전통에 매였던 자들은 가축을 돌보는 데에는 세심한 배려를 했으면서도 예수께서 사람을 치유하신 것에 대해서는 율법 해석의 자기 의에 매여 혹독한 비난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여전히 우리도 마음 안에 완악함과 교만함으로 인해 굳어진 마음을 마주하고 사랑을 거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일하심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교만일 것입니다. 교만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사단은 예수님 조차 ‘너의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라’고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 되셔서 힘과 폭력 대신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사단은 우리 안에 악한 마음을 심어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하고 성령의 역사를 방해합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단절되는 죄의 시작이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1828-1917)는 겸손은 예수님의 지상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 물은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서 가득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피조물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그분의 영광과 능력이 가득 흘러들어 한껏 높임과 축복을 받게 하신다.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자기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결국 높임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강한 능력과 위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사람을 높여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교만하면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도 잘 뿌리 내리지 못하지만, 마음이 깨끗하면 작은 겨자씨 같은 말씀도 자라나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요즘 시대에 크게 영항을 끼치는 것 중 하나가 미디어입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세상 곳곳에 타락한 권세들이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지 보게 됩니다. 전 세계의 사건과 사고에 우리의 시선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무질서한 경쟁, 비인격적인 언어와 물리적인 폭력들, 모든 사람들을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생각들, 불안감을 조장하는 수많은 공포심,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생각들, 상처와 결핍의식을 통해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일들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의미없는 짧은 영상들을 보다 보면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영적인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마음의 중심에도 비교와 불안, 불신과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영성 신학자 마르바 던(Marva J. Dawn,1948-2021)은 안식의 4단계를 그침(ceasing), 쉼(resting), 받아들임(embracing), 향연(feasting)임을 보여 줍니다. 그침(ceasing)은 ‘나’ 중심에서 비롯된 성과에 대한 보상이나 소유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ceasing) ‘하나님’ 중심의 리듬을 찾는 것이며, 쉼(resting)은 모든 긴장과 근심되는 일들을 멈추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활동으로 부터의 자유함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샬롬(שָׁלוֹם, Shalom)’을 온전히 받아들이기(embracing) 위해 끈기를 지니고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적이지만, 안식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경험하도록 정기적으로 안식하는 습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인 항연(feasting)은 참된 예배를 통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며, 특별히 친구들이나 낯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과 나눔을 통해 향연속에서 곳곳에 숨겨진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마음이 머물 곳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가 이전에 가보지 않던 길을 가게 하시고, 할수 없는 것을 할수 있도록 새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해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때 은혜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 밖에 영원히 머물러야 할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다 덮어 주시고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의 영혼을 살게 합니다.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주님을 바라보며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고, 또 때를 따라 도우시는 그분의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히 4:16)  

3. 우리의 예배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참된 예배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한주간 살면서 많은 긴장감과 삶의 무게로 인해 힘겨울 때가 있지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합니까? 끊임없이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관계속에서의 상처, 아픔의 문제들, 현실의 문제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가 믿음이 무너진 것 같은 좌절감은 우리의 마음을 더 강팍해지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꼭 붙잡고, 주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인간이 만든 엄청난 문명들로 인해 수많은 것들이 하나님처럼 여겨집니다. 눈 앞에 보이는 첨단 문명들, 소유하고 또 소유해도 여전히 공허한 마음들, 치열한 현실에 압도 되어지면, 하나님의 나라는 숨겨진 듯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임했고 성령의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 속에서 나타납니다. 주님께 영광 돌리는 참된 예배를 통하여,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를 섬기는 자들로 살아갈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납니다.

악한 영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마치 주님이 승천하실때 함께 사려져 버린 것처럼 여겨지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세상권세로 부터 이미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성도는 세상을 뒤덮고 있고 어둠을 깨뜨리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싸움은 시작이 되었고, 우리의 운명은 이미 승리하도록 결정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속에 속했지만 믿음을 붙잡고 승리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내 뜻과 내 의지를 따르는 삶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우리를 또 다시 얽매게 하는 짐일 뿐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싸움이 아니라 세상 권세 잡고 있는 악한 영과의 싸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권세와의 싸움이지 권세 편에 선 사람들과의 싸움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불행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재정 문제, 자녀 문제, 인간관계, 건강 문제 등 삶의 어려움들을 솔직하게 주님 앞에 내어 놓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위로와 평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도 하나님 앞에서 고백될 때, 그의 나라는 영원하며 참된 평안과 자유를 주시는 나라임을 알게 됩니다.

안식일날 주님께 행하신 일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누구에게 나타나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인생의 문이 닫혀서 막막한 시기를 걷고 계신다면 주님께서 새 일을 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릴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진정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믿음의 깊은 터널을 지나고, 삶의 허무함에 빠진 이들을 자유케 해 주십니다. 낮은 자를 높여 주시고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며 소외된 자들을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본문속에 고통을 받던 여인이 고침 받은 후 그녀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도 증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 잠을 자도 마음이 쉬지 못하고, 불안과 염려에 매여 있는 분들 계십니까? 예배로 나오는 발걸음이 여전히 무겁고 감격없는 습관에 매여 나온 분들이 계십니까? 그저 잘 살아내고 싶었을 뿐인데 다시 일어날 힘이 없어 주저 앉아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참된 예배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내 결단과 마음으로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 앞에 나의 마음을 올려 드릴 때 굽어진 삶과 눌려진 마음에 찾아와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 위하여 살아가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08 17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후 제 10주)

하나님의 불을 켜라

Light the Fire of God

누가복음 12:49~56

49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기 위해 왔다. 이미 불이 활활 붙어 있었더라면, 내가 얼마나 좋았겠느냐! 50 하지만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의 세례가 있는데,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는 내가 얼마나 더 고난을 당할는지 모른다. 51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아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한 집안의 식구가 다섯이라면, 이제부터는 둘씩 셋씩 패가 갈라져서 싸우기 바쁠 것이다. 53 서로서로 분열되어, 아버지가 아들과 대립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등질 것이다. 어머니가 딸을, 딸이 어머니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여 서로 맞서 싸울 것이다.” 54 ○ 예수께서 군중을 향해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고는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하는데, 사실 그런 예상이 들어맞곤 합니다. 55 또 남풍이 불면 ‘날씨가 더워지겠다.’ 하고 말하는데, 그것 역시 들어맞곤 합니다. 56 위선자들이여! 여러분은 이처럼 하늘과 땅의 기상은 잘 분간할 줄 알면서도, 어찌하여 이 시대의 징조는 분간할 줄 모릅니까?” (쉬운말 성경)

49 “I have come to set the world on fire, and I wish it were already burning! 50 I have a terrible baptism of suffering ahead of me, and I am under a heavy burden until it is accomplished. 51 Do you think I have come to bring peace to the earth? No, I have come to divide people against each other! 52 From now on families will be split apart, three in favor of me, and two against—or two in favor and three against. 53 ‘Father will be divided against son and son against father; mother against daughter and daughter against mother; and mother-in-law against daughter-in-law and daughter-in-law against mother-in-law.’[e]” 54 Then Jesus turned to the crowd and said, “When you see clouds beginning to form in the west, you say, ‘Here comes a shower.’ And you are right. 55 When the south wind blows, you say, ‘Today will be a scorcher.’ And it is. 56 You fools! You know how to interpret the weather signs of the earth and sky, but you don’t know how to interpret the present times.(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기 위해 왔다’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불은 태우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사람의 옛본성을 태우시고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시키십니다. 이처럼 성도는 다른 존재로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또 다른 불의 특징은 불꽃이 위를 향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크던 작던 불꽃은 어떤 상황에도 위를 향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 끌려가서도 ‘뜻을 정해’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 결과 열흘이 지났을때 왕의 음식을 먹었던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 건강하고 빛나 보였습니다. 그러나 뜻을 정한 삶이 항상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용광로 보다 더 뜨거운 풀무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풀무불은 다니엘과 세친구들을 묶었던 손과 발의 줄만을 태웠을 뿐,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들의 신앙과 생명까지 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본문의 불은 죄에 대한 심판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모든 사람은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수술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수술대에 위에 수술등이 켜지는 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차가운 온도, 수술실 안의 고요함 속의 소음, 강렬하게 비추는 불빛 앞에서는 나의 어떤 것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의료진들의 손에 내 몸을 맡길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일점 일획의 빈틈도 없이 철저합니다.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서 사람의 지혜와 실력은 너무도 초라합니다. 숨기고 싶던 작은 죄도 밝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거룩한 빛 앞에서 값없이 주어진 새생명을 감사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1.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내 마음 안의 잔재들을 태우는 불

성령은 우리를 혼란과 불신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십자가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애쓰지 않게 합니다.(갈5:16) 하나님의 불은 마음이 강팍한 사람에게도 임하고, 성품이 온유한 사람에게도 임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게 편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선호하지만 하나님은 부족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겸손한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성령을 자신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처럼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믿음의 기초 위에 다른 것을 쌓기 시작하면 십자가는 변질됩니다.

바울은 신앙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신앙의 터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의 기준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는 사역이나 선행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의 인정과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태워지고 없어질 것임을 말씀합니다. 무엇가를 남기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이치입니다. 성경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사람의 인정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께 받을 상을 향해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금, 은, 보석”같이 가치 있는 인생으로, 사람의 박수와 갈채를 위한 삶은 “나무, 풀, 지푸라기”처럼 사라지는 삶으로 대조합니다. 매주일 우리는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고백을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세상의 것들은 바람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초가 불에 녹아지는 것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쌓아 올린 것들만 그날에 남게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등 특정 사람을 따르는 여러 파가 생겨서 분열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는 심고 물을 줄 뿐이고,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고전 3:6–7) 신앙생활의 열매나 부흥은 인간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땅을 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뿌린 씨앗이 지금 세대에 결실을 맺을지, 다음 세대에 결실을 맺을지 알수 없지만, 결과에 매달리기 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헌신하다 보면 하나님의 때에 결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진다고 결심하면, 우리가 겪게 될 고난도 두려움도 다 이기게 됩니다. 50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12:50 하지만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의 세례가 있는데,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는 내가 얼마나 더 고난을 당할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는 인간의 죄와 세상의 깨어짐으로 인해 고난의 세례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가르쳤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셨고, 유대 지도자들과 갈등을 겪으며 세상의 창과 검에 의해 외로운 싸움을 홀로 견뎌내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은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준비하신 예수님의 고난의 세례는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이기적으로 살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입술로는 높이고 고백하지만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현실 앞에 놓여질 때가 있습니다. 거룩하게 보이지만 사랑하는 일을 쉽게 포기해 버리고 내 기준의 편안함, 내게 익숙한 것들만 더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는 내가 얼마나 더 고난을 당할는지 모른다. 주님은 모진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견뎌내어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따라 가야 할 푯대입니다.

이제 51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아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마음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분열’은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복음이 들어올 때 일어나는 ‘필연적인 갈등’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배치되고, 인간의 이기심, 거짓과 위선과 자기중심성과 화평케 하신 주님의 십자가 정신 사이에서 마음의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 우리는 여전히 죄의 본성과 세상의 가치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고, 주님과 연합하게 되었으니 모든 상황속에서 끝까지 주를 따라가야 합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장 34절은 ‘분열’이라는 단어를 ‘칼’로 표현하며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기록합니다. ‘분열’과 ‘칼’이라는 용어는 ‘구별됨’과 ‘분리됨’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거룩하다’라는 것은 ‘분리와 잘라냄’의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수용하는 사람과 예수를 진리로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하며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52-53절을 보면, 가정안에서도 갈등과 분열이 생기는 긴장감을 줍니다.

12:52 한 집안의 식구가 다섯이라면, 이제부터는 둘씩 셋씩 패가 갈라져서 싸우기 바쁠 것이다. 12:53 서로서로 분열되어, 아버지가 아들과 대립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등질 것이다. 어머니가 딸을, 딸이 어머니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여 서로 맞서 싸울 것이다.”

성도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따르면 고난이 따라옵니다. 때로는 이로 인해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서도 갈등과 긴장이 생기곤 합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분들은 이러한 경험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성장과 믿음이 깊어지는 과정이 됩니다.

예수님은 명목상으로만 평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분쟁을 통해서라도 참된 평화, 곧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세상의 돈과 명예로 인한 작은 문제도 갈등을 일으키는데, 영혼이 죽고 사는 믿음생활은 한번 뿐인 인생에서 진검을 들고 싸우는 영적전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야 할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석 위에 세운 집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말씀을 믿고 모든 상황 속에서 세상적 기준을 넘어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분노와 갈등만 커지게 되므로,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인한 갈등이라면,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긍휼한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말씀은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는 간절한 초청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셔서, 죄와 사망의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을 비추셨을때에도(요 8:12) 빛이 나타나면 어둠은 물러가야 하지만, 죄로 눈이 가려진 사람들은 그 빛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어둠을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사람은, 마침내 이 진리에 의해서 살게 될 것입니다.

2. 사명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불

12:54 ○ 예수께서 군중을 향해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고는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하는데, 사실 그런 예상이 들어맞곤 합니다.
12:55 또 남풍이 불면 ‘날씨가 더워지겠다.’ 하고 말하는데, 그것 역시 들어맞곤 합니다.
12:56 위선자들이여! 여러분은 이처럼 하늘과 땅의 기상은 잘 분간할 줄 알면서도, 어찌하여 이 시대의 징조는 분간할 줄 모릅니까?”

세상속의 거대한 변화와 흐름은 커지고, 교회의 부흥은 줄어들고 있는 시대입니다. 현대 기술은 점점 발달하여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그 이상의 결과들을 만들어낼 정도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이 나오면 사람들의 관심과 돈이 쉽게 쏠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사역과 본질이 변질되는 일에는 우리의 영적인 눈이 쉽게 둔해집니다. 이 영적 분별력은 하나님의 불이 임할 때 비로소 생기며, 마음이 정결해질 때 우리는 한 달 뒤 날씨를 예측하듯 세상의 변화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깨어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빛의 자녀임을 깨달은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언젠가 회심을 하게 된다면 그들을 변하게 한 것은 분명 이 빛일 것입니다. 비록 그 죄인들이 비참한 상태에 있고 빛을 두려워한다 해도 그들을 계속해서 빛으로 인도하다 보면 점차 그 빛도 그들에게 기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자연인이 누리고 있는 안락과 평화와 위로는 어둠과 무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어둠이 사라질때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안정을 누리게 도와 주는 어둠을 파헤쳐야 하느냐고 따지는 것은 옳은 주장이 아닙니다.”

온갖 세상의 모순들과 불확실한 시대에 주님이 길 되심을 인정하지 않으면, 평생 모순속에서 답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답이 없는 상황속에 빠지고, 수많은 길에서 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허한 영혼의 빈자리를 채워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빛은 우리가 성육신 하신 예수님처럼 빛으로 어둠을 비추고 소금처럼 사람을 살리게 합니다.

신앙의 년수가 더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수록 우리는 말씀와 삶의 괴리를 경험하고, 다 실천하지 못하는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불이 우리 안에 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불로 정화된 마음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라지게 합니다. 믿어지도록 살아내도록 동전의 앞뒷면처럼 마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불을 받은 사람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모든 진리가 같다는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를 드러내는 일은 때론 고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시작하신 선한 일을 실천하는 일에 우리의 시간과 재능을 쏟아내는 일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성과를 내야 하고 변화의 긴장감이 높은 세대속에서도, 자녀를 키우며 내 커리어가 멈춘 것만 같고 뒤떨어지는 것만 같은 마음이 들때에도, 은퇴를 하고 지나온 고단한 삶을 돌아보는 세대를 지나고 있더라도 우리 모두가 지나고 있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사명을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열된 세상에 책임을 느끼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책임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른 신앙관은 교회를 세상과 분리해서 탈교회화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세상속으로 더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참된 평화를 심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 최종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가고는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무뎌진 마음의 열심과 식어진 마음의 온도가 내 마음의 불을 꺼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새로운 삶의 낯섬과 긴장감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내 결정 앞에서 고민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끊임없는 성과의 압박, 관계의 상처, 가정의 아픔, 나의 삶을 자녀에게 투영하며 기대하고 실망을 반복하고 계신가요? 하나님의 불이 임하면 내안의 죄와 두려움을 태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내가 손해 보면 그곳에 은혜가 생겨납니다. 개인의 신념으로 옳고 그름을 외치는 세상속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게 하시는 성령의 불로 내 안의 깨어짐을 확인해야 합니다. 삶의 무게 앞에서도 기쁨으로 순종하고,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의 사명입니다. 변하지 않는 세상과 가정, 삶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나로부터 변화되어 시작되는 그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08 10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후 제 9주)

주님 언제 오셔도 괜찮습니다

Lord, I’m Ready Anytime

누가복음 12:32~40

32 ○ 어린 양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진정 기뻐하신다. 33 너희가 가진 소유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어라. 그리하여 너희 자신을 위하여 영원히 낡아지지 않는 지갑을 만들어라. 그렇게 너희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이 쏠 일이 절대로 없다. 34 명심하여라. 너희의 재물이 있는 바로 그곳에 너희의 마음도 함께 있다.” 35 ○ “너희는 허리띠를 동여매고, 등불을 항상 켜 놓고, 삼가 준비하고 있어라. 36 마치 결혼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금세 열어 줄 준비를 갖추고 있어라. 37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처럼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종들에게는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이 몸소 시중드는 사람의 옷을 입고서, 그 종들을 식탁에 앉힌 후 그들의 시중을 들어줄 것이다. 38 주인이 한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에게는 복이 있다. 39 너희는 이것을 알아라. 도둑이 언제 집에 들지를 알고 있다면, 집 주인은 도둑을 막아, 자기 집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40 그러므로 너희도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인자는 너희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때에 갑자기 올 것이기 때문이다.” (쉬운말 성경)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어린 양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개역개정은 ‘적은 무리여’라고 번역했는데 개역개정 번역이 원어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하지 말라. 하늘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진정 기뻐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속에서 제자들은 힘도 약하고 숫자도 적지만 하늘 아버지가 특별히 보호해 주시니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 나라의 물질관을 보여줍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인색하지 말고 가진 소유물을 팔아 도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기쁨으로 나눌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고, 그 삶에 평안과 감사가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동산에 있는 온갖 나무 열매를 마음대로 먹어도 되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규정합니다. 이는 주신 모든 것을 바르게 사용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바르게 사용해야 할 도구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물질이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현실 앞에 놓여 있습니다. 내것을 나누고 베푸는 삶은 적당히 순종하고 나의 가치를 높이고 소유하려는 유혹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나의 욕심으로 부터 더 자유롭기 위해서는 내 소중한 것을 나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탐심에 대한 경고와 하나님 나라의 임박함을 준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한 사람이 주님께 나와 형과의 유산분배 문제를 갖고 돈에 의한 분쟁을 해결해 달라고 찾아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부모로 부터의 장남이 더 많이 상속받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말씀속에서 유추해 보면, 동생은 자신에게 부여된 유산이 부족하다고 여겼거나 모세법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유산분배의 과정에서 일어난 탐심으로 인한 돈 문제에 직접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에게 “사람의 생명이 재산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시며 어리석은 한 부자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이 부자는 이미 많은 재산과 곡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고에 가득 채우고도 곡식이 남아 더 이상 넣어 둘 데가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루 하루 일하는 소작농들과는 달리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재산을 소유할 창고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어리석은 부자는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넘쳐나는 곡식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눌 것인지? 아니면 창고를 더 크게 지어 저장해 놓을까 궁리합니다. 결국 그는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야겠다고 결정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모든 재산을 자기 곳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여러해 쓸 것을 많이 쌓아 두고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리라 하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너를 위해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이 비유는 물질에 대한 탐심을 자제하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위해 물질을 잘 사용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명심하여라. 너희의 재물이 있는 바로 그곳에 너희의 마음도 함께 있다.(12:34)

주님은 너희가 목숨을 위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려하고 걱정해서 수명을 하루라도 연장할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난주 전해진 설교 말씀이 한 주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어린아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한 모습은 없는지, 품고 돌보는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고 하지만 작은 것도 나누기 어려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짜 성숙한 믿음을 지켜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빼앗아가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원을 허락하셨고, 믿음을 통해 삶의 회복을 주시며, 간절히 구하면 살아갈 지혜도 아낌없이 주십니다. 성경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약속하셨습니다. 물질이 삶의 주인이 된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삶의 조건에 따라 바르게 인식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성숙해 지고 온전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점검할 것은 지금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주님은35절 37절과 38절에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종들이 복이 있다고 반복하시며, 허리띠를 동여매고, 등불을 항상 켜 놓고, 삼가 준비하고 있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교회사에서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의 재림을 소망하며 당시 고난 속에서도 신분을 넘어서 주인과 종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되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준비하고 깨어 기다리라는 말씀은 세상의 가치관이나 시대속에 휩쓸려 가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며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1940– 현재)는 듀크 대학교에서 신학, 윤리학, 법학을 가르친 명예교수입니다. 그는 기독교 평화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연합감리교회 윌리몬 감독과 함께 공동 집필한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이라는 책에서 윌리몬은 스탠리가 세상이 정치를 말할 때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말해야 한다고 평생 가르치려고 애썼다고 표현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정치나 이념도 하나님 뜻 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바울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라고 한 말씀을 스탠리와 윌리몬은 “우리는 하늘나라의 식민지입니다”라고 표현합니다. 교회를 이방문화 식민지로 표현하는 것이 지나치기도 하지만 이 표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우리의 소속이 바뀜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에 대해서 식민지라는 표현을 쓴 것이라 생각됩니다. 부족하고 자격없는 우리가 이 땅에서 분투하며 살아가지만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진정 기뻐하신다.라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분의 나라는 상대방을 힘으로 꺾을 필요도 없고, 다툼이나 갈등이 없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그분의 부르심을 따라 믿음의 여정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기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자기 존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흘러 나오기 때문입니다. 참된 평화는 인간의 제도나 정치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정치적 평화는 자신의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평화로 치장하는 겉치레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임하는 참된 평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작은 마음과 삶을 나누며, 서로를 지지해 주는 동역자들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러한 동지애는 우리 인생에 믿음의 여정을 견디게 하는 깊은 위로와 힘이 됩니다.

외국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첫 순간을 다들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약 없는 이별로 가족과 헤어져야 했고, 이루고 해내야 하는 마음을 품고 새로운 도전 앞에 섰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땅에서 마주하는 일들은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어제는 친구가 되었다가 오늘은 남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꿈을 찾아온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인 날들도 많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 주는 긴장감 탓인지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잘 가고 있는지 괜히 내가 더 뒤쳐진 것 같고 걸음이 무겁기만 한날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믿음의 걸음 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기에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우리의 시선을 걱정하고 염려할 일들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는 차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부모를 찾고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책임 있게 감당하면 됩니다. 믿음의 삶은 때론 두렵고 무거운 길이지만 주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배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입니다. 예배의 어원인 ‘아바드’(עָבַד)라는 단어는 ‘예배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일하다, 섬기다, 봉사하다’라는 의미도 지닙니다. 그렇다면 매주일 나와서 예배 드리고 봉사하는 일 외에도 일상과 현실의 터전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는 것도 예배의 연장선입니다.

첫째, 세상이 우리의 삶을 궁금해 하도록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다시오심을 미래의 일로만 생각하면, 신앙의 긴장감을 잃어 버리고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께서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시고, 믿고 따라가는 자에게는 영원한 상급을 주시러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35절입니다. 35 “너희는 허리띠를 동여매고, 등불을 항상 켜 놓고, 삼가 준비하고 있어라.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겉옷은 길고 통이 넓었기 때문에 일을 할 때나 여행을 하거나 전쟁시에 겉옷을 허리띠로 동여 매야 했습니다. 게다가 종들이 허리에 띠를 맨 이유는 혼인 집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 등불을 항상 켜놓아야 하는 이유도 어두워진 세상속에서 빛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생활 방식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점점 쉽고 편안해져 갑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 지 알 수 없으니 주님의 재림을 먼 훗날의 막연한 사건으로 여기며 보낼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고대 사회속에서 종들은 업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혼인잔치는 밤에 열렸기 때문에 종들은 결혼식에 갔던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한밤중이나 새벽이나 깨어 있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피곤한 시간대입니다. 그런데 깨어 있는 종들에게 복이 주어집니다.

주인이 와서는 몸소 시중드는 사람의 옷을 입고, 깨어 있는 종들을 식탁에 앉힌 후 시중을 들어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깨어 있는 성도가 누리게 될 영광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줍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가 받을 복입니다. 비록 믿음의 여정은 때론 힘들때도 있고, 고난도 겪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 다가오는 한밤중이나 새벽의 때에도 끝까지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를 기대하고 사랑의 수고를 더하며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36절 부터 보시겠습니다. 36 마치 결혼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금세 열어 줄 준비를 갖추고 있어라. 37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처럼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종들에게는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이 몸소 시중드는 사람의 옷을 입고서, 그 종들을 식탁에 앉힌 후 그들의 시중을 들어줄 것이다. 38 주인이 한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에게는 복이 있다.

둘째, 세상속에서 진리의 허리띠를 매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허리띠는 기록된 말씀입니다.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허리띠로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적의 공격으로 부터 살아 남기 위한 방어적인 무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는 세상에서 믿음의 성도로 살아가는 든든한 방패가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길을 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들 마음안에 이미 확증되게 하셨습니다. 지금 주님이 오셔도 괜찮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삶에는 무엇이 들려져 있습니까? 지금은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부르심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채워지면 순종할 수 있다고 이것만 해결되면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하며 매일을 고민 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셔도 괜찮을 만큼 매일을 준비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불안함과 두려움 앞에서 스스로의 힘만을 의지하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로 가져 갈수 없는 것에 매여 염려하기 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더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평소에 쉽게 보이지 않던 물건들이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가야 할 때 보면, 의외로 많이 발견되게 됩니다. 그때가 되어서 아끼면서 사용하지 못한 물건을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많은것을 이고 지고 살고 있었구나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한번쯤은 있을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집착하여 채워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누릴 것을 과감히 나누고 흘려 보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거운 짐, 불필요한 짐은 결국 인생의 걸음을 더 힘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생명의 길을 허락하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 길을 따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우리의 믿음을 점검할 좋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비로소 내 믿음의 상태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음의 작은 실천에서 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가진 것을 전부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실천할 때에 복된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종들을 몸소 높여 주시고, 함께 먹고 마시는 교제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날마다 새롭게 해 주실 것이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킬 힘을 주실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면 현재의 고난도 불안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의 손길이 나의 삶에 함께 하심이 감사하고 감격스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