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강절 시리즈 – 하나님과 함께
1주 숨: 함께 호흡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2:1-4
42:1 주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붙들어 주는 내 종이 여기에 있다. 그는 내가 선택한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부어 주었으니, 그가 세상의 뭇 민족들에게 공의를 전하고 베풀 것이다.
42:2 그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것이고, 길거리에서 크게 떠들지도 않을 것이다.
42:3 그는 상한 갈대도 부러뜨리지 않을 것이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신실하게 공의를 실천할 터인데,
42:4 세상에 공의를 굳게 세울 때까지, 그는 머뭇거리거나 쇠약해지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멀리 있는 섬들까지도 그에게 가르침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쉬운말 성경)
1“Look at my servant, whom I strengthen. He is my chosen one, who pleases me. I have put my Spirit upon him. He will bring justice to the nations.
2 He will not shout or raise his voice in public.
3 He will not crush the weakest reed or put out a flickering candle. He will bring justice to all who have been wronged. 4 He will not falter or lose heart until justice prevails throughout the earth. Even distant lands beyond the sea will wait for his instruction.”(New Living Translation)
2025년 한해도 열심히 잘 달려오셨습니다. 삶의 자리를 돌아보니 참 많은 순간들이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믿음 지키며 사느라 애쓴 순간들도 떠오를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들로 우리 삶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주셨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번 대강절 설교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함께 호흡하시고 (숨), 함께 길을 걸어 주시며 (길), 우리가 걷는 인생의 길을 비추시는 (빛)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1. 상한 마음에도 함께 하시는 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그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 결과 말씀을 떠나 정의와 공의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자신들의 힘으로는 벗어날수 없는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포로기의 때가 찼을때 하나님은 다시 회복을 이루셨습니다. 인간은 약속을 어겼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이루기 위해 직접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생길에는 뜨거운 광야처럼 숨이 턱 막히는 순간도 있고, 열심을 다해 걷다 보면 숨이 차오르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내리면 메마르고 건조했던 우리의 마음도 옥토처럼 부드러워 집니다. 새 마음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계셨고,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도 여전히 함께하고 계시고, 지치고 힘들 때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시고 회복해 주시는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종을 통해 이루신 일을 바라볼 때, 우리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보라’라고 하는 BEHOLD 라는 단어는 ‘보다’라는 동사의 의미도 있지만 원문상 ‘헨’이라는 단어는 동사가 아니라 감탄사입니다. 감탄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이사야는 강조합니다. 연약한 인간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 상한 갈대처럼 흔들리고, 꺼져가는 등불처럼 힘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믿음의 눈을 돌리면,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과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 중심에 놓게 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메시지 성경은 이사야 42장 1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나의 종을 유심히 보아라. 내가 전적으로 지지하는 종이다. 그는 내가 택한 사람이며, 나는 그가 더없이 마음에 든다. 나는 그를 온통 내 영으로, 내 생명으로 감싸 주었다. 그가 민족들 사이에서 모든 일을 바로 잡을 것이다”
이 종은 단순한 ‘종’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하셔서 우리에게 회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로 세우시고 공의를 이루실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로 살다가 고레스 왕을 통하여 다시 돌아왔듯이 이 종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는 이사야가 예언한 이 메시아가 예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9절에서 예수님은 안식일날 유대 회당으로 들어가시다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것은 그분에 관한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라고 이사야가 했던 말씀을 인용해서 자신을 말씀하셨습니다. 깨어지고 흩어진 마음을 바로 잡아 주실 그 분, 상한 갈대도 부러뜨리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종을 통하여 바른 정의를 회복해 나가시며 교회를 세워 나가십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상한 갈대는 이미 부러진 가지입니다. ‘가지가 부러졌다’라는 것은 그대로 놔 두어도 살아날 가망이 없습니다. 죄는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고 강팍하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의 병을 죄의 결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자비로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준다고 비판하던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오그라진 손을 펴 주시고 죄로 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의 이름은 우리가 전해야 할 교회의 사명이요. 세상 끝날까지, 심판의 날까지 성도들이 지녀야 할 믿음의 본질입니다. 그날에는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다 주 앞에 서게 됩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환경이 당장 바뀌지 않아도 마음과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릴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조금씩 선명해 집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깊은 바다와 같아서 그 속에서 모든 악은 깊이 가라앉고 수면은 고요해 집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틈속에서도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풍성하게 부어 주십니다.
마지막 날에 심판의 절차는 누구나 통과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다고 모두가 주님의 변호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때 믿음이 없음으로 드러나면 예수님은 변호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주님을 진정으로 믿을때 주님은 부러지고 꺾어진 나약한 가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다시 타오르도록 회복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2.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숨
이 생기는 단순히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호흡이 되고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은 물위의 길을 알고, 하늘을 나는 기장은 하늘의 길을 따라 비행합니다. 땅에도, 바다에도, 하늘에도 길이 있듯 우리가 믿는 믿음에도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입니다. 때로는 인생의 길이 보이지 않아 고통의 광야를 걸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걸을 때 우리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가장 분명한 길이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가장 바른 길입니다.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새 생명의 호흡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한해도 우리는 참 많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삶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 드린 기도의 시간과 감사의 시간이 충분했는지를 돌아봅니다. 아직 채우지 못한 기도와 감사의 시간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지친 숨과 무거운 마음 속에도 하나님의 숨결이 우리를 새롭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은 공의를 전하고 베푸시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시고 크게 떠들지도 않으시며 신실하게 공의를 실천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자신의 죽음과 바꾸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알면, 우리의 눈이 밝아져 교만한 마음을 보게 하시고, 우리 안에 있는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며, 죄를 이길 능력이 되십니다. 여전히 악의 저항으로 믿음으로 싸워 나가야 할 영역들이 존재하지만 예수가 걸어가신 길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소명입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긴 포로 생활 속에서 바벨론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다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내 힘으로 살아가던 그 자아를 내려놓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주를 따르는 길이 낯설고 불편함을 마주하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낙심하지 않도록 새 영을 부어 주시고, 주를 위해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통해 참된 생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일상에서의 작은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속에서 잃어 버렸던 감사와 기쁨, 내 환경이 어떠하던지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할 호흡을 허락하십니다.
랄프 턴불 목사의 저서 ‘하나뿐인 교회‘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턴불 목사가 심한 신경통으로 고통 중에 누워있는 할머니 교우를 심방했습니다. “얼마나 고생하십니까?” 하고 문안하자 할머니는 손바닥을 펴 보이며 말했습니다. “이 손에 못이 박힌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은 평안합니다.” 또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머리에 가시가 박히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시 옆구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내 옆구리는 창에 찔리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목사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삶의 증거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상처받는 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손으로 많은 일들을 해내야 하고, 머리에는 염려와 걱정이 가득하며, 마음의 옆구리에는 삶의 아픔들이 쌓여만 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처와 깨어짐 속에서도 다시 살아가게 하시고 회복하게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손에 들려진 것들을 주님께 맡기고 내 마음속의 깊은 곳에서 멈추지 않았던 생각과 흔들림을 주님께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대강절의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굳은 마음과 아픈 상처와 가시가 치유되고 숨이 막혀 있던 자리에도 하나님의 숨결이 불어 넣어지는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상하고 지친 자리, 숨이 차 멈추어 있던 그 자리에서 함께 호흡하시는 주님의 숨결과 임재가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약속을 믿고 삶의 자리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추수감사주일)
우리는 왜 예수를 찾고 있는가?
Why Do We Seek Jesus?
요한복음 6:25~35
25 사람들은 호수를 건너와 예수를 찾게 되자, “선생님, 언제 이리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여러분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찾는 것은, 여러분들이 기적의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여러분들을 배불리 먹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27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 애쓰지 말고, 영원토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기 위해 애쓰십시오. 인자가 그 영원한 양식을 여러분들에게 제공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인자가 이런 일을 하도록 승인해 주셨습니다.” 28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으십시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30 사람들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믿을 수 있도록 어떤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시겠습니까? 31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를 ‘그분은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그들로 먹게 하셨다.’ 하지 않았습니까?”32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여러분들에게 밝히 말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었던 이는 모세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늘에서 참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십니다. 33 하나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이가 세상에 참 생명을 주는 바로 그것입니다.” 34 ○ 사람들이 예수께 말했다. “선생님, 이제부터 그 빵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3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쉬운말 성경)
25 They found him on the other side of the lake and asked, “Rabbi, when did you get here?” 26 Jesus replied, “I tell you the truth, you want to be with me because I fed you, not because you understood the miraculous signs. 27 But don’t be so concerned about perishable things like food. Spend your energy seeking the eternal life that the Son of Man[f] can give you. For God the Father has given me the seal of his approval.”28 They replied, “We want to perform God’s works, too. What should we do?”29 Jesus told them, “This is the only work God wants from you: Believe in the one he has sent.”30 They answered, “Show us a miraculous sign if you want us to believe in you. What can you do? 31 After all, our ancestors ate manna while they journeyed through the wilderness! The Scriptures say, ‘Moses gave them bread from heaven to eat. 32 Jesus said, “I tell you the truth, Moses didn’t give you bread from heaven. My Father did. And now he offers you the true bread from heaven. 33 The true bread of God is the one who comes down from heaven and gives life to the world.” 34 “Sir,” they said, “give us that bread every day.” 35 Jesus replied, “I am the bread of life. Whoever comes to me will never be hungry again. Whoever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호수까지 건너와 예수님을 찾았다는 구절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대단한 열심을 보여줍니다. 지난 밤 사람들은 항구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북쪽 호수 벳세다 근처 오병이어 기적을 베푼 곳에서 주님을 기다리다가 예수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제자들이 그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갈때에도 예수님이 함께 타지 않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찾기 위해 그분이 올라가셨던 산에도 올라가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벳세대로 들어온 작은 배를 타고 호수까지 건너와 예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갈릴리 바다로 나갔을때 그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그날은 일상과 달리 갑자기 강풍이 휘몰아치면서 물결이 사나워졌습니다. 제자들의 힘으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모든 방법을 시도했을때쯤 예수께서 풍랑 위를 걸어오셨고, 제자들은 배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배는 순조롭게 가버나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밤 중에 물 위를 걸어 가신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를 찾던 사람들은 작은 배들을 타고 호수를 건너와 예수님을 다시 찾게 된 것입니다. 66절에 보면, 결국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갔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를 찾았습니까? 기적을 통하여 사람들의 배고픔을 채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 채 자기 목적으로 주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쉽게 이해하도록 비유로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나는 생명의 빵이다.”라는 선언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첫번째 자기선언입니다. 빵 자체는 언젠가 썩게 되는 음식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생명의 빵이라고 설명했을때 믿지 못한 사람들은 다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빵이 무슨 뜻일까요? 빵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밥이었습니다. 모세시대에 광야에서 내린 만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 생명의 빵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것처럼 생명의 빵은 오늘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근원이며, 삶 속에서 내 의지대로 살아가다가 내 힘으로 안되는 막막한 순간 앞에 서서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그 의미가 깊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드는 것을 내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호흡은 우리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주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의 인생의 길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믿음의 시련을 견디던 순간이 모두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버겁기만 할 때 모든 것의 품이 되어 주셨던 어머니의 밥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식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품어주던 사랑과 보호의 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빵은 고단함과 피로가 가득한 삶의 길에서,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시키는 생명이고 은혜입니다. 얼마전에는 보스턴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금요예배 후 교우들과 함께 나누었던 식탁의 시간을 은퇴를 앞두고 추억하시며 편지를 보내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 식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서 서로가 나눈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나를 먹고 마시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내가 흘린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죄사함을 주신 그 용서의 은혜를 날마다 먹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붙드신다는 믿음,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는 믿음을 일생동안 선택하는 것이 생명의 떡을 먹는 삶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예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찾는 것은 기적의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여러분들을 배불리 먹여 주었기 때문입니다.”(요 6:26)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으십시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 6:29) 하나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이가 세상에 참 생명을 주는 바로 그것입니다.” (요 6:33) “내가 곧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요 6:35)
미국 텍사스 달라스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First Baptist church of Dallas 교회 앞 분수대에는 요한복음 4장 14절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나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참 샘물이 될 것이오.” 이 교회는 지난 세월 동안 주님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지역 사회에 소망의 닻을 내리고, 세속의 물결에 떠내려 가지 않도록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시는 예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생명이 되신 주님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함께 감당하도록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주안에서 하나의 몸을 이룰때 그 안에서 사람들의 생명이 살아나고, 세상과 다른 공동체가 됩니다.
오늘의 우리는 학업의 경쟁과 결과의 압박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꿈을 향해 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현실이 버겁게 느껴지고 불확실한 두려움 앞에서 감사의 마음을 찾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아무리 척박해도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이란 하늘에 계신 주를 바라 보고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하다가 넘어질 때도 실패라 생각하며 무너져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넘어짐 조차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은 우리의 길이 되어 주시고 방향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는 새로운 시작의 설레임도 있고 열정과 힘을 가지고 살 때도 있고 노력의 결실을 맺고 풍요로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변화가 없고 수확이 없는 때도 있습니다. 마음 한켠에는 항상 불안과 두려움 갈급한 마음을 마주할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내 삶의 부요와 기적, 배부름과 현실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며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기쁨, 만족, 행복을 향해 가는 삶은 결국 목마른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채워짐은 오직 주님께 붙어 있을 때 얻게 됩니다. 우리 삶의 감사가 삶의 실력이 되도록 주님과 함께 걷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이끌어 주신 은혜는 말로 다 나열할 수 없습니다. 이 땅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한인교회, 우리의 가정과 학업의 현장에서도 보이지 않으나 이미 누리고 인도함 받은 은혜가 가득합니다. 이제 우리도 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며 감사로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생명의 빵 되신 주님이 우리의 힘이 되신다.
진정한 감사는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를 지탱하는 신앙의 힘이 됩니다. 삶이 불안정하고, 마음이 낙심되어도, 진리 되시는 주님 안에서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지쳐 단단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믿음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기름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적인 길을 알아도 걸어갈 힘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증인들은 주님이 바라보시는 같은 곳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주님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에 삶의 목적을 둡니다. 예수님을 찾던 무리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을 찾았지만 생명의 빵이 되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한 채 자신들의 배를 채워주었던 그 떡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삶에서 주님은 언제나 자신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목자였습니다. 목동으로 양들을 돌보고 지키는 순간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주님의 은혜가 아닌 순간이 없습니다. 작은 일상에서도 내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생명의 빵 되신 예수님도, 우리의 삶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인도하시고, 풍랑과 광야 같은 상황에서도 생명을 붙들어 주십니다. 감사는 환경과 상황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주시는 주님께 있습니다. 이 감사는 우리가 주를 따르게 하는 힘입니다. 좁은 길을 걸어갈 때, 앞을 가로막는 험한 산 앞에서도 주님께 올려드리는 노래가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살아나게 합니다.
믿음의 성도는 감사하는 삶을 매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감사하다는 것은 넘어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평생 감사하며 살겠다는 결단은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방향입니다. 나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내 안에 세운 우상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만나는 일들을 하나님 안에서 감사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에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빵을 먹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어릴 적 추수감사절이 되면 가장 좋은 과일과 곡식들을 정성껏 준비하여 받은 은혜의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셨습니까? 내 삶의 은혜가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믿으십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드려져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매년 추수감사 헌금의 일부를 도움이 필요한 목회자들에게 선교 헌금으로 전달합니다. 감사의 마음이 우리 교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신뢰함으로 흘려보내며 섬기는것 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사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와 성도의 사명은 감사함으로 생명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매년 추수감사예배 때 장학금을 수여합니다. 그저 정해진 날에 형식적으로 정해진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도와 은혜의 감사의 마음을 흘려 보내는 일입니다. 삶의 선교이며 결단이고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며 생명을 얻는 믿음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통하여 천국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기도의 씨앗을 심고, 이렇게 채워진 사랑을 흘려 보낼때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포기하지 않을것입니다. 어제보다 더 깊어진 오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어 열방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장학금을 수여 받는 청년들에게 우리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가 담겨있는 사랑이라고 전해주었습니다. 장학금을 수여 받았던 청년이 교우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편지 내용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케임브리지 한인교회는 저에게 큰 안식처와 나의 힘든 마음을 끌고와 기도와 예배로 눈물을 쏟아내고, 또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는 부모님의 신앙을 모방하는 정도의 믿음 이었다면, 케임브리지 한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는 오로지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인격적인 믿음의 확장을 경험하게 해준 너무 감사한 저의 아버지 교회 같은 교회 입니다. 장학생들을 위해 기도 해주셨던 예배본을 편집해 그 기도를 한동안 붙잡고 지냈습니다. 비록 내가 이 세상에 혼자 인것 같고, 힘든 일을 다 내가 짊어지고 나아가는것 같아서 내 어깨가 무겁게 느껴져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기 때문에 때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항상 감사함으로 살게끔 인도해 주십니다. 제가 재정적으로 힘들어 집 밖에 나가기도 부담 스러웠던 상황에 감사하게도 장학금을 받게 되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진정한 사랑을 배운것 같아서 참 감사합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잘 배움 받아서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FKCC에 많은 유학생들이 있기에 짧은 인연으로 끝나는 것 같아 보여도 교회를 거쳐간 많은 청년들이 좋은 영향과 배움을 받고 이곳 저곳에 좋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공부하는 저희를 위해 항상 주저하지 않고 도와주시는 많은 성도님들께도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청년에게 전해진 편지속의 고백을 통해 그리고 장학금 수여식을 영상으로 보며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우리 청년들의 부모님들의 고백을 통해,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교회를 떠난 후에도 잊지 않고 장학헌금을 드리는 그 손길 속에서 우리가 받은 삶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불안과 두려움 가득한 시대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주님을 찾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우리는 세상의 기적과 표적들에 흔들리며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주님께서 오신 삶의 목적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선택하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감사의 삶을 선택할 때, 그 감사는 교회와 가정을 살리고 열방을 살려내는 생명의 힘이 됩니다. 우리는 생명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의 은혜는 우리 삶 속에서 잠시의 기쁨의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