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22 주일설교

(성탄예배 I 부 메세지)

크리스마스의 빛

The Light of Christmas

히브리서 1:1-7

유민용 목사

1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여러 차례, 여러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시대에 이르러서는, 자기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 아들을 통해 온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3 그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고, 하나님의 본체 그대로의 모습이십니다. 또한 그 아들은 자신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굳게 붙들어 보존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 후에, 하늘에 오르셔서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4 ○ 그리하여 그 아들은 모든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 되셨으니, 곧 천사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빼어난 이름을 물려받았습니다. 5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천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또는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6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아들 곧 자기 맏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7 또 천사들을 두고는 성경에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자기 천사들을 바람처럼 부리시고, 자기 일꾼들을 불꽃으로 삼으신다.”라고 하였습니다.(쉬운말성경)

1 Long ago God spoke many times and in many ways to our ancestors through the prophets. 2 And now in these final days, he has spoken to us through his Son. God promised everything to the Son as an inheritance, and through the Son he created the universe. 3 The Son radiates God’s own glory and expresses the very character of God, and he sustains everything by the mighty power of his command. When he had cleansed us from our sins, he sat down in the place of honor at the right hand of the majestic God in heaven. 4 This shows that the Son is far greater than the angels, just as the name God gave him is greater than their names.5 For God never said to any angel what he said to Jesus:“You are my Son.Today I have become your Father.[a]”God also said,“I will be his Father,and he will be my Son.”6 And when he brought his supreme[c] Son into the world, God said, “Let all of God’s angels worship him.”7 Regarding the angels, he says, “He sends his angels like the winds, his servants like flames of fire.”(New Living Translation)

콜로라도의 달빛(Moonlight On The Colorado)이라는 1930년도에 지어진 미국 민요가 있습니다. 콜로라도는 고지대이고 공기가 맑아서 배 위에서 다른 불빛 없이도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달빛이 밝다고 합니다. 그 밝은 달밤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쓴 노래 가사이지요.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 마음 그리워 / 저 하늘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 물결 위에 비치네 / 반짝이는 금물결 은물결 처량한 달빛이여 / 콜로다로의 달 밝은 밤을 / 나 홀로 걸어가네”

1930년에 로버트 킹(Robert A. King)이 작곡한 곡으로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가 콜로라도 강을 비추는 달빛 아래 향수에 젖어 그리운 마음을 담은 노래말입니다. 1937년 박영호 선생이 번안해서 이미자 씨가 부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세상의 곳곳에 정착하며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지요. 베들레헴 말구유를 비친 그 빛은 오늘날 세상 곳곳에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분의 교회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브리서의 배경을 보면 저자에 대해서 학자들의 의견이 다양합니다. 그런데 2세기 동방 교부 오리겐은 저자에 대해서는 ‘하나님만 아신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걷는 길을 아시고, 마음 깊은 곳까지 다 살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밀실에도 주님의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빛들이 꺼진다 해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십니다.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인공적인 불빛을 모두 제거하고 세상에 어둠이 내린다면 지상에서 가장 밝은 빛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빛은 하늘에 있을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빛으로 오셨습니다.

1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여러 차례, 여러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2 이 마지막 시대에 이르러서는, 자기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간 시대 구약의 역사를 보면 여러시기와 단계를 거쳐 선지자들에게 점진적으로 계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만 그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구원의 그림을 분명하게 보이셨습니다. 마지막 시대는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재림 때까지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살아가는 시간은 이미 시작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춰져 있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고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은 주의 시간으로 볼때에 그때는 속히 옵니다.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의 시간안에 우리의 고난도 속히 지나갈 것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으니 우리의 잠깐의 고난은 속히 지나가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이 빛이라 자처하며 살아갑니다. 빛을 받아야 할 존재임에도 이성으로만 빛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계몽주의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머리와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어둠만 짙어 질 뿐입니다. 자기 힘과 노력으로 빛이 되려는 믿음은 결국 어둠을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히브리서의 1차 독자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을 했는데 시대적으로 과격한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위협을 당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유대교는 로마 정부가 허가된 종교였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64년 폭군 네로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의 대박해가 시작되었으니 유대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는 강렬한 요구를 받고 있었습니다. 히브리 성도들은 유대교의 울타리 속으로 다시 들어가가만 하면 다 해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으로 배교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만이 유일하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믿음 생활에서 ‘자기의’로 섬기는지 아닌지 구별도 안됩니다. 그러니 상처 받았다고 해서 ‘내뜻’데로 안 된다 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까지 저버리면 안됩니다. 믿음은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심을 굳게 붙들고 최후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셋째주일입니다. 성탄예배로 드리며 그리스도로부터 온 빛이 우리의 단단한 자아의 껍질을 깨트리고 우리의 지성을 파고 들어와 식어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안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전에는 혼돈과 공허함, 분쟁속에서 살아갑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다고 (사 9:2) 말씀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밤하늘의 별을 따라 예수께 경배하던 때에도 세상에는 불의와 폭력, 헤롯왕의 압제와 두살 미만의 유대인 아이의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시대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젊은이들은 공허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희망의 주로 오신 분을 모르고 깊은 절망과 흑암속에 있지요. 할로윈 축제를 즐기러 나간 젊은이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갔지만 한순간에 주검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은 공포, 두려움, 혼돈과 깊은 어둠만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한 실제적 고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새로운 길을 열고 나가게 된 이들의 고백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다고 말씀합니다. 요한은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는 생명의 빛이라 말씀합니다. 그 빛이 비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은 공허함과 깊은 절망뿐입니다.

‘하늘 소망’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 지금은 비록 땅을 벗하며 살지라도 내 영혼 저 하늘을 디디며 사네 내 주님 계신 눈물 없는 곳 저 하늘에 숨겨둔 내 소망있네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많이 생각나 때론 가슴 터지도록 기다려지는 곳 내 아버지 너른 품 날 맞으시는 저 하늘에 쌓아둔 내 소망있네 주님 그 나라에 이를때까지 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네 주와 함께 걷는 이 길에”

제레미 워커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라는 그의 책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 생을 시작하지 않는다. 타고난 혈통이나 유산이 하나님 나라에서 당신의 자리를 확보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사도요한도 혈통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지위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요1:13) 하늘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한줄기 빛의 은총입니다.

2.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3 그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고, 하나님의 본체 그대로의 모습이십니다. 또한 그 아들은 자신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굳게 붙들어 보존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 후에, 하늘에 오르셔서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보여주는 분이십니다. ‘형상’으로 번역된 헬라어 ‘카라크테르’는 ‘각인’이라는 뜻인데, ‘같은 모양의 복제’를 의미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그대로 드러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는데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소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실로암 연못에서 날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대부분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곳으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계시다”(요10:38)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아람어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아빠’입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아빠’라는 호칭에는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담겨 있지요. 하나님을 가장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신데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10:30) 말씀하셨고,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1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의 장례식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장례식 앞에서 손님으로 서 있지 마십시요. 무늬만 그리스도인들로 살면 안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주의 말씀과 하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고 예수와 함께 걷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그분의 장례식장에서 서로 헐뜯고 분쟁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상처도 아픔도 주님이 죽으심으로 함께 못박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길에서 주님께서 이루신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벗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인격의 품이 넓어졌는가’입니다. 몸된 교회를 위해 내가 구경꾼이 아니라 ‘부르심 받는 자로 헌신하고 있느냐’입니다. 하나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질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롬 8:34)

 그러나 사단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도들을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부터 멀어지도록 위장해서 다가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은 계시지 않고, 마치 이성이 진리임을 믿게 했고, 문명의 발달로 인해 과학과 의학은 창조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돈은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가운데 허덕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고 싶고, 자신의 것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문명의 발달은 편리하게 해줄 뿐이지 하나님의 창조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의 결과는 죽음이고 파멸일 뿐입니다.

가룟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모습은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그의 마음은 부패해 있었습니다.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붓는 것을 보고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이 더 옳다고 분을 내었습니다. 이미 가룟 유다의 마음에 주인은 주님이 아니라 물질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에 보면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그의 말은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훔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제자들도 메시아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위세를 높여줄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게만 들릴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이 되십시요. 성도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성령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과 깊은 하나됨을 이뤄가게 하십니다. 성도는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기에 죄를 반복적으로, 무감각하게 지속하지 않는것입니다. 죄가 점점 더 힘을 잃고 은혜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이 불가능한 삶은 없습니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새롭게 찾아 온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은 예수의 이름입니다.

4 ○ 그리하여 그 아들은 모든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 되셨으니, 곧 천사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빼어난 이름을 물려받았습니다.5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천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또는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 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구약성서에 하나님을 가르키는 명칭은 많습니다. 그리스어로는 Theos, 히브리어로는 엘(EL)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엘욘, 엘샤다이, 엘올람, 엘로힘 등 많은 이름이 파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고대 히브리 사람이 하나님에게 붙인 명칭들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이름을 밝힌 구절은 한구절도 없습니다. 그분은 존재 위에 존재이시고,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이름이 없어야 맞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이름으로 규정하면 이름 안에 가두는 존재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분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시에는 천사숭배사상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천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에 반응하는 일꾼일 뿐입니다. 천사는 성도들의 기도를 수종하는 영입니다. 갯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기도하실때에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을때 (마태복음 26:38).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천사를 보내셔서 힘을 더하셨습니다(누가복음 22:43). 천사들이 예수의 기도를 도왔습니다. 천사는 경배와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성탄절이 기독교의 기쁨의 축제가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축제이다 보니 기독교인의 성탄절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특별한 경배의 의미인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보다 해피홀리데이(HAPPY HOLYDAY)인 세속명절로 여겨집니다. 성탄절은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 보내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열으신 문을 헤롯왕은 막을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탄생하시며 마지막 시대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은 사람에게는 열린 새로운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지만 만민의 깃발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영화 속 이야기인데요. 어느날 한 기자가 런닝머신에서 운동하다 사망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다이어트에 집착하다가 비극적 사건을 초래한 여인의 사망이라 제목으로 기사를 쓰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기사를 보며 오늘날 사람들의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며 죽음을 당한 외모 집찹증에 중독된 여인들 비판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사인은 그 여인은 한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이가 아파서 장기를 이식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죠. 그 여인은 장기기증을 하기 위해 자신의 체중을 감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런닝머신 위에서 목숨을 걸고 뛰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자신의 장기를 주기 위해서 달리고 또 달리다가 결국 죽게 된 것이었음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그의 아들을 죄와 고통의 자리에 오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크리스마스 불꽃으로 삼으셨습니다. 어두운 실내에서 물건을 찾으려면 불부터 켜야 합니다. 세상에 참빛이 각 사람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이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기사와 사건들에 현혹되지 마십시요. 믿음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사실적 경험을 통해서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흠뻑 빠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자기를 포장하고 내 의견을 지지하는 것으로 사용하지 마시고 예수의 이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7 또 천사들을 두고는 성경에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자기 천사들을 바람처럼 부리시고, 자기 일꾼들을 불꽃으로 삼으신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꾼들을 불꽃으로 삼기 위해서 부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불꽃을 드러내는 전시품일 뿐입니다. 보통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소멸 시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 가운데 임한 불꽃은 떨기나무를 태우지 않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불이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모세의 인생 120년 중에 성경은 떨기나무 앞에서 부르심을 받는 80세 이후의 삶만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르시기 위해 80년 세월을 보내게 하십니다. 자기를 죽여야 하는 세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성도들도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경찰이 외부인이 집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해서는 집에 있는 보석에 눈이 멀고, 귀중품에 눈이 멀어 탐욕으로 자신의 것을 채우고 있다면 부르심을 잃어버린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흰색 촛불이 켜지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망망대해 같은 세상을 살아가며 전쟁과 경제의 불안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불안하고 공허해 합니다. 성탄의 주인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에게 소망, 평화, 기쁨, 사랑, 그리고 세상을 밝히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그 빛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온 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빛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촛불에 세번째 불이 켜졌습니다. 성탄의 빛이 화해와 사랑, 회복과 나눔의 빛이 될수있도록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빛의 삶을 잘 살아내시기를 바랍니다.

11.27.22 주일설교

그리스도의 날이 다가옵니다

The Day of Christ Is Coming

로마서 13:11~14

유민용 목사

11 <그리스도의 날이 다가옴>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벌써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12 밤이 거의 다 지나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낮에 활동하는 사람처럼 단정히 행동합시다. 난잡한 유흥을 즐기지 말고, 술 취하지 마십시오.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퇴폐적인 생활을 버리십시오. 다투지 말고 질투하지 마십시오. 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죄의 본성이 바라는 정욕을 만족시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쉬운성경)

11 This is all the more urgent, for you know how late it is; time is running out. Wake up, for our salvation is nearer now than when we first believed. 12 The night is almost gone; the day of salvation will soon be here. So remove your dark deeds like dirty clothes, and put on the shining armor of right living. 13 Because we belong to the day, we must live decent lives for all to see. Don’t participate in the darkness of wild parties and drunkenness, or in sexual promiscuity and immoral living, or in quarreling and jealousy. 14 Instead, clothe yourself with the presen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don’t let yourself think about ways to indulge your evil desires.(NLT)

여러분 어제 리뉴 집회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주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단정지을 수 없고 제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은혜 받은 처음 자리를 기억하실 겁니다. 제가 개척을 하고 담임 목회를 시작했을 당시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었고, 공감과 이해의 영역에서 조금 먼 듯한 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청년 컨퍼런스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화려한 무대와 수백명의 청년들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빛이 구석에 있는 작은 자들의 자리를 비춰 주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내면에 날서있던 감정들을 하나님께서 정리해 주시는 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힘으로 하면 못하는 일이지만 하나님과 함께하기시에 주시는 힘입니다. 주방에서 묵묵히 음식을 만드신 그 섬김들, 밤잠을 설치며 가장 어려운 자리에서 미디어 사역과 전체 집회를 컨트롤 했던 스텝들. 기도의 자리에서 매주 간절함으로 함께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들,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을 섬겨준 찬양팀. 다음날의 집회를 준비하며 교회의 구석 구석을 치우고 정리한 우리 집사님들. 다 표현할수 없는 섬김이 리뉴 안에 가득했지요.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면 손해보는 일을 누가 자처해서 할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남들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아낌없이 순종함으로 헌신하는 이들을 통해서 회복이 됩니다.

달력을 보며 벌써 한해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가 8월의 여름에 보스턴에 왔는데 어느새 겨울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현재의 믿음이 더 깊어졌는지를 돌아보게 되는데요. 우리는 예배 드리러 나왔다고 해서 주님 안에 있다고 전제해서는 안됩니다. 헌신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잊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다른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건인데,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몰려오는 세속의 물결과 자기중심적 욕망에 휩쓸려 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시간들이 무한하지 않기에 선택하는 모든 일은 주님의 재림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오는 때는 있지만 가는 때와 시기는 순서가 없습니다. 도적같이 온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거부할 능력을 주시며 죽기를 각오하셨지요. 십자가에서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시며 사랑의 길을 내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날이 다가옵니다. 주께서 오신다고 하신 시간표가 이미 2천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만큼 주께서 오실날이 가까워진 것이지요. 어둠이 깊어 질수록 낮이 가까워지는 것을 매일 마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게 되면,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주님은 약속대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오심’과 ’하늘로 올라가심’의 시간표는 이미 성취되었고, 우리는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으로 살아가고 있느냐’이지요. 그래서 자기욕망에 흠뻑 취해 사는 사람은 흘러가는 시간(Κρόνος)에 따라 가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선물로 주어진 ‘선사된 시간’(Καιρός) 속에서 불확실한 세상을 한걸음 한걸음 주님과 동행하며 나를 잡아주신 그 손을 놓지 않고 그 음성을 들으며 믿음의 균형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믿음의 명예를 지켜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대강절은 대강 대강 보내는 절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라는 뜻에서 보라색 스톨을 하게 됩니다. 제가 지난주까지는 녹색 스톨을 하고 있었지요. 초록색은 생명을 더하고 성장과 소망을 표시하는 색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색깔이 달라지니까 굉장히 스타일리쉬한 줄 알았다구요. 그런건 아니구요. 절기별로 바꾸게 되는데 이번주부터 4주 동안은 보라색을 보시게 됩니다. 이 색은 오시는 왕의 위엄과 존엄을 의미합니다. 제가 다른 색으로 바뀔때 또 그 의미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대강절기를 보내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잠에서 깨지 않으면, 깨지 못할 때가 옵니다.

11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벌써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주어진 삶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저는 2010년 그 해를 잊지 못합니다. 외국에 나와 사랑하는 아버님을 갑작스럽게 떠나 보내 드리고 찬바람이 불던 그해 겨울 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운 사명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무렵 성경대로 살아보자 외치시던 한국교회의 존경하던 목회자들이 한분 한분 별세하시는 소식을 들으며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를 제게 더 분명하게 주셨습니다. 주님의 시간표로 보니 이 땅에서는 슬픔이지만 하늘에서는 기쁜 날이었고, 주님의 품에 안기시는 믿음의 선배들을 잘했다 칭찬하시는 주의 음성이 제 안에 가득 찼습니다. 수고로운 삶을 살며 애썼다고 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그 시선을 분명히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때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말씀합니다. 세상 도처에서 일어나는 죄와 어둠의 행실들을 볼때에 주님의 때가 더 가까이 있음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표를 알지 못하면, 마치 결혼을 앞둔 신부가 준비없이 깊은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신부는 한 명도 없을겁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너무도 태연하게 살아갑니다. 이제는 잠에서 깨어날 때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대의 과실을 맺기 위해 사명으로 타오르는 신실한 예배자들을 찾으십니다. 사명감은 영적으로 어두워져 가는 시대속에서 빛이 투영되는 것이죠.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는 은총의 빛이 비춰집니다. 그 은총의 빛은 우리의 눈에 주님의 눈물이 차오르게 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삶의 옥합을 깨트리고 여인처럼 주님 발앞에 머무르십시요. 신실한 예배지들은 그날을 꿈꾸며 완전한 평화가 임하게 되는 그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무감각해져 있다면 이제 깨어나십시요. 깊은 밤이 오기 전에 깨어 나십시요

시편 108편에서 다윗은 전쟁을 앞두고 승리를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맡기는 기도였습니다. 대적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데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겠습니까? 마음이 오그라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불안한 상황과 시간속에서 하나님만 섬기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선을 주께 두는 것이지요. 다윗은 그의 시선을 보좌에 계신 어린양께 두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12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우리는 매일 살아가며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갑옷은 언제 입지요. 전쟁을 할 때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적군의 공격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갑옷을 입습니다. 죄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 성도들은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지요(엡 5:9) 예배자들은 이 갑옷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빛은 죽음이 가져오는 상처와 어그러진 관계, 어둠의 행실들을 폭로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는 일은 사실 무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육체의 정욕을 거스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손해를 보게 되는 일도 경험하고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빛의 갑옷은 세상을 향해 저항하게 합니다.

“한 처녀가 등대지기에게 시집왔습니다. 총각의 이름은 제이콥 워커(Jacob Walker)였습니다. 이 두 젊은이는 등대하나만 있는 외딴 섬 로빈스 리프(Robins Reef)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신부는 이런 데서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1개월간이나 짐을 풀지 않았으나 혼자 떠날 수도 없어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3년 뒤에 남편 제이콥은 폐렴이 되어 스태튼 아이랜드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하기 전에 제이콥이 남긴 마지막 말은 등대에 마음을 써달라.(Mind the light)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시체를 등대에서 보이는 언덕 위에 묻고 20대인 워커 부인은 등대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번 섬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북바쳐 오르는 고생과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만 70세까지 41년간을 이 여성은 혼자서 등대를 지켰던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려는 때마다 언덕 위에서 등대에 마음을 쓰라는 남편의 음성이 그녀의 발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이 시대가 어떻습니까? 미디어 안에 음란과 죄악의 열매들이 얼마나 가득합니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에 중독이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음란으로 인해 가정이 깨지고 수많은 아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인터넷의 발전으로 음란물은 더 은밀하게 찾아오고 너무도 가까이 와 있습니다. 과거에는 접하기 위해 여러 단계를 넘어서야 했다면 이제는 생각지도 못하는 순간에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인터넷 기사만 보아도 도처에 음란물 광고가 뜹니다. 스스로 구하지 않아도 찾아오는데, 찾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광활한 어둠의 세계가 열려지겠습니까? 그래서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려질 때 즉시 회개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살전 5:22) 회개를 통해 순결한 옷을 세탁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옷은 더러워 지고 그리스도의 음성은 희미해 질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어야 세상속에서 견뎌 낼 수 있습니다. 원수의 위협에도 신실함으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 고백하면서 세상의 어둠을 택하지 마십시요.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 빛의 갑옷을 입고 기다립시다. 오늘은 예배를 드린 후에 주님의 마음으로 인사와 교제를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날이 다가올 때에 케임브리지 공동체가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때를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다른 모습도 인정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각자 다르게 지어 주셨습니다. 당신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칭찬의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선함과 진실함을 드러내는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육신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죄의 본성이 바라는 정욕을 만족시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사단이 40일간 예수님을 유혹한 것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인 욕망들입니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 지배하고 싶은 욕망, 매직 같은 인생을 꿈꾸는 욕망들입니다. 이러한 욕망을 버리는 것은 광야의 훈련입니다. 우리의 옛 생활, 어둠의 습관, 나의 고집과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절개 수술하는 것처럼 도려 낼 때에 아픔과 통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잘렸던 부위에 새살이 돋아나게 하시고 이전보다 더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두려워 말고 이전에 해 오던 습관의 옷을 버리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하기로 결정하실 때 죽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를 주시고 죽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깨어진 세상을 선택하고 죄를 선택하고 돈을 선택하고 내가 주인되어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지만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스스로 죽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주님이 날마다 입혀 주시는 옷으로 마음의 옷장을 채우십시요. 부패하고 썩어질 것들을 옷장에서 꺼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고독한 기도는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끌어 안으시기 위해 자신을 아들을 죽게 내버려 두시면서 까지 주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세상속으로 나아가십시요. 영광에서 멀어진 이들 가운데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질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3절 말씀은 성어거스틴을 변화시킨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의 뒤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눈물을 뿌리며 기도합니다. 수년동안의 눈물의 기도에도 어거스틴은 여전히 방탕한 삶을 벗어나지 못했지요. 답답했던 어머니는 교회의 감독을 찾아갑니다. 어거스틴을 만나서 타이르고 혼내서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청을 한 것이지요. 감독은 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스스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끈질기게 매달리는 어머니에게 감독은 말합니다.“걱정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이렇게 눈물을 뿌리는 기도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이 방황하며 죄의 열매를 맺고 지내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어머니 모니카가 입었던 빛의 갑옷은 어두움에 거하던 아들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유언입니다 “내 몸은 어디에 묻어도 좋다. 그 일로 인하여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 단 한 가지만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하나님에게는 먼 곳이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세상 끝 날에 나를 부활시킬 장소가 어디인 줄 모를까 두려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저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겨줄것이 이것이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자녀들에게 우리의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제단앞에서 우리를 기억할수있는 그런 삶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

11.13.22 주일설교

오병이어의 세가지 교훈

Three Lessons from the Five Loaves and Two Fish

유민용 목사

마태복음 14:13~21

13 <오천 명을 먹이심> 예수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그 곳을 떠나 배를 타고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여러 마을에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전해 듣고, 걸어서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14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15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이 곳은 외딴 곳이고, 시간도 너무 늦었습니다. 사람들을 이제 보내어, 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각자 사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갈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17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뿐입니다.”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들을 내게 가져오너라.”19 사람들을 풀밭에 앉게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에게 그것들을 떼어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20 모든 사람들이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먹고 남은 조각들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21 먹은 사람은 약 오천 명이나 되었는데, 이는 여자와 어린이가 포함되지 않은 숫자입니다.(쉬운성경)

13 As soon as Jesus heard the news, he left in a boat to a remote area to be alone. But the crowds heard where he was headed and followed on foot from many towns. 14 Jesus saw the huge crowd as he stepped from the boat, and he had compassion on them and healed their sick.

15 That evening the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This is a remote place, and it’s already getting late. Send the crowds away so they can go to the villages and buy food for themselves.”

16 But Jesus said, “That isn’t necessary—you feed them.”17 “But we have only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 they answered.18 “Bring them here,” he said. 19 Then he told the people to sit down on the grass. Jesus took the five loaves and two fish, looked up toward heaven, and blessed them. Then, breaking the loaves into pieces, he gave the bread to the disciples, who distributed it to the people. 20 They all ate as much as they wanted, and afterwar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s of leftovers. 21 About 5,000 men were fed that day, in addition to all the women and children!(New Living Translation)

벌써 성령강림절기 스물 세번째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만 지나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기가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개의 위대한 시간’이 있습니다.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성탄절은 주님께서 육신의 옷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사건입니다. 주님은 죽으심과 다시사심으로 죄된 성품과 옛 기질들을 거부하고 철저한 신뢰와 순종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새로운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고난의 십자가에서 주님의 빛이 점점 어두워져 가는듯 했지만, 약속하신 성령이 임할 때에는 그 빛이 가장 강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빛을 따르며, 세상에 그 빛을 비추는 사람들입니다. 그 빛은 우리 안에 있는 빛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게 될때에 세상을 향해 비춰집니다. 의존한다는 것은 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약한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말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린 생명은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나사렛이라는 숨겨진 동네에서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나사렛은 이름 없는 동네였으며, 주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무명의 시간으로 30년을 사셨습니다. 예수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나셨더라면 고생하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로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 하나님은 그를 목수로 살게 하셨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성의 빛을 인성 안에 감추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본문의 오병이어 기적의 사건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사건입니다. 야외에서 일어난 단체식사 사건이지요. 오병이어의 기적은 대략 여자와 아이들까지 2만명으로 추정하는데, 수련회를 인도해본 경험으로 보면 이 인원이면 배급을 위해 적어도 훈련된 100명은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름도 모르는 한아이의 5개의 떡과 2개의 물고기로 모인 모든 사람을 풍성하게 먹이십니다. 언뜻 상상해 보아도 이 사건은 물위를 걷는 기적 같은 사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성경은 요한복음을 비롯해서 마태 마가 누가가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4복음서가 공통적으로 다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행적입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대에 이 말씀을 해석하기에는 이해할수 없는 사건이지요. 그러나 성경에서 기록한 기적에 대한 부분을 도려내고 성경을 보게 되면 현실에 눈에 가려져 그리스도의 신비가 감춰집니다.

2022년 한해가 조금씩 저물어 가는 이 시간에 보스턴 케임브리지 교회 공동체에 주시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1. 오병이어의 표적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주님을 가리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라고 시작합니다. 주님은 세례 요한의 순교 소식을 듣고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언하며 그 길을 예비했던 사람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예수께 세례도 주었습니다. 그런 요한을 예수께서는 많이 아끼셨습니다. 그런 그가 순교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예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모든 사람은 깨어진 세상에서 저마다 힘겨운 씨름을 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경쟁 사회속에서 패배감에 짓눌려 주눅들기도 하고, 인생의 어둡고 슬픈 터널을 지나가기도 합니다. 홀로 빈들에 나가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하고 풍요속에서 빈곤의 마음을 마주해야 할때도 있지요.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주님 앞에 갖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는 내 삶의 문제보다 더 크신 주님의 선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퓨리서치(Pew Research Center)가 경제 선진국 14개 국민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가 종교와 가족 관계 등에 미친 영향을 조사했습니다.그 결과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국가가 종교적 신앙이 ‘강해졌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전 세계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은 코로나19가 인류에게 삶과 고난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날이 저물고 어둠이 깊어지는 시간에 일어납니다. 빈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이고 허무함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주님이 계셨고 머무르셨습니다. 텅 비어 있는 곳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이 채워질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절대 한계상황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는 어둠의 시간이 주안에서는 밝아집니다. 하나님의 영이 가득해 지면 흑암이 가득하던 그곳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이 숨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서 일어난 신비는 예수님이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셨다는 확증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오병이어의 사건 이후에 예수가 유월절 생명의 떡이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6: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말씀합니다.

마가는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기 전에 모든 사람들을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했다고 기록합니다.(막6:39) 이스라엘의 기후를 보면 우기와 건기로 나눠지는데, 건기는 4월 부터 10월까지였습니다. 이때는 잔디가 다 마르기 때문에 푸른 잔디 위에 무리를 앉히셨다는 것은 4월초인 유대인의 유월절 명절 직전에 이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월절 어린양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게 새로운 삶의 문이 열려지는 예표인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목자 없이 방황하는 무리들의 삶을 불쌍히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신의 배고픔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인간의 삶의 허전함이 다 채워질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목자 없이 살아가는 것은 결국 죽음에 처하게 되는 매우 절망적이고 희망이 끊어진 상황을 뜻하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  (σπλαγχνίζομαι)는 ‘불쌍히 여기다.’ 애끓는 마음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예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의 기적은 항상 영혼들을 향한 애끓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는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로 오셨음을 오병이어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지요. 참된 신앙인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예수가 복된 소식임을 하나님의 시선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뜨거운 사랑에 눈을 뜨고, 우리가 서로 나누어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긍휼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2. 오병이어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15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이 곳은 외딴 곳이고, 시간도 너무 늦었습니다. 사람들을 이제 보내어, 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각자 사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필립얀시는 크리스챤 투데이(Christian today)에 기고한 논설에서 우리에게 3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벌었는가? 돈을 어떻게 쓰는가? 돈이 당신에게 무엇을 하는가?

오늘날 이 시대는 돈 때문에 언제든지 주님을 버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초조해지지만 주님이 계시지 않는 마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은 더 벌고, 더 누리기 위한 삶을 추구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것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을 증명하기 위해 치열한 삶의 자리를 쌓아두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의 소유는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물질은 자신에게 주신 소명 만큼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창조의 순간에 돈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돈으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복의 개념을 성공의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결정해 버렸고, 믿음의 개념도 물질의 척도로 생각하게 되는 유혹이 있습니다. 돈은 하나님의 자리를 소리 없이 대신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했는데 인간은 세상을 돈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탐욕의 신앙은 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에서 기적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예수님 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 채 표적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표적이 보여주는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세상보다 크신 주님의 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내것을 나누고 베풀때 우리의 삶에도 2만명여 명을 먹이고도 남음이 있는 오병이어의 풍성한 신비가 경험될것입니다.

날이 저물어 가는 때는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무엇을 얻을 수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는 고독한 시간입니다. 제자들은 마을로 가서 필요한 양식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갈 필요가 없다. 내게 머무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음식이 있는 세상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처가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좀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되고, 처한 상황들이 어려울 때에도 현재는 알 수 없지만 주님께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있어서 하나님의 품을 느끼고 하나님의 숨을 마음에 넣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성도들은 예배를 통해 주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빈들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취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배고픔을 채워줄 안식처가 세상에 있을꺼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안감을 잊기 위해서 더 화려한 세상속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불안할수록 주님께 좀더 머무르십시요.

16 “갈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기꺼이 가진 것을 내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작은 것을 통하여서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가 찾아오고 마음의 변화가 찾아올때에 더 많은 것을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의 나눔은 그들 안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그리스도의 피를 공유한 온전한 나눔이었습니다. 빈들에 모인 모든 무리는 주안에서 한 가족이 된것입니다. 케임브리지 공동체 안에도 오병이어를 통한 예수님의 마음이 삶에 담아지는 풍성한 나눔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 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세상은 불과 30초도 안되는 광고를 통해서 우리에게 결핍을 주입합니다. 소비자들의 결핍을 찾아내 이를 채우기 위한 수많은 광고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쏟아집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지 않으면 평생을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흔들리며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더 깊어지는 결핍속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이 절망적일때 일수록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더 큰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평소보다 더 절박하게 기도하게 되고 마음을 쏟으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보면 비슷한 고뇌의 상황들 속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는 어린 아이 음성으로 ‘집어 들어 읽으라. 집어 들어 읽으라’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쏟아지는 눈물을 억누르며 하나님의 명령이라 생각하고 책을 펴 들고 읽었던 것이 로마서 13장 13-14절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2만여명이 모인 그곳은 날이 저물어가는 밤에 모두가 그리스도의 빛을 밝히는 한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캄캄하고 암흑같던 그곳에 하나님의 전등이 켜지고, 온갖 음란과 더러운 것과 속된 것과 가증한 것들이 판치던 일들도 주님께서 감사기도를 드릴때 떡과 물고기는 이제 어두운 밤이 밝히는 주님의 도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모든 무리들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주님의 기적을 본 것입니다.

빈들에 모여 있던 무리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며 선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던 하늘의 만나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루에 먹을양 만큼만 공급 받았습니다. 쌓아 놓은 양식이 나를 살리고 풍성하게 해줄것 같지만 그것은 결국 썩을 양식일 뿐입니다.

19 사람들을 풀밭에 앉게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에게 그것들을 떼어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20 모든 사람들이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먹고 남은 조각들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21 먹은 사람은 약 오천 명이나 되었는데, 이는 여자와 어린이가 포함되지 않은 숫자입니다.

3. 오병이어의 표적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담겨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때가 찬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함께 있었고, 그 속에 하나님의 비밀과 놀라운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벳새다의 날이 기울어져도 그곳은 결코 캄캄한 빈 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 공간, 시간 속에 구원의 주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백성들의 공동체는 예배를 위해 존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이야기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셨고 그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독사’라는 단어는 내가 생각한다는 뜻의 ‘도케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영어의 도그마(dogma)인데, 성서에서는 주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는데 사용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영광은 성육신 사건입니다. 예수는 고난 받으심으로 그분의 영광을 성취하십니다. 사도 요한에 따르면 성육신 하신 예수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영광이 드러납니다. (요 1:14) 성육신 하신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시는게 사역 전체의 목적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4:16)

우리는 말하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고전 10:31)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여진 사람’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 가운데 물고기와 보리떡이 끝없이 계속 생겨나는 풍요로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을 때 손에 들린 물고기와 보리떡은 끝없이 계속 생겨났습니다. 그 능력은 바로 ‘쌓아 둠’에서가 아니라 ‘나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눔을 통해 내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으나 하나님 나라로 보면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입니다. 작은 헌신이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사용될 지 우리의 시선으로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작은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때에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이 하나님의 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식어진 마음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하고 매일 반복되는 삶속에서 은혜와 실망의 경계선에서 고민하기도 합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빈들 같아서 멈추어야 할지 더 가야 할지 모를때도 있겠지요. 평범함의 자리를 두려워 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 삶에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 밖에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온전히 순종하며 드려 보십시오. 그 작은 순종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은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놀라기만 하는 신앙 생활에 머무르지 마십시오. 우리는 더 이상 표정으로 반응하고 끄덕이면 안됩니다. 내가 그 기적의 현장을 이해하고 살아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지금 나의 삶에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 안정감을 줄지라도 오병이어의 기적 앞에 있던 이름도 모르는 그 어린 아이가 만난 은혜의 현장이 우리의 삶에 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저 멀리에서 누군가 받은 은혜를 구경만 하고 있던 잠자던 나의 마음을 깨우십시오. 하나님 내 손에 있는 것이 비록 작을지라도 혹은 너무 커서 주님께 전부를 드리기 어렵지만 이 모든것이 주님의 손에 들려 쓰임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오병이어는 일용할 양식을 먹으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갈망하며 자들에게 알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케임브리지 성도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저 기록된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