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8.2023 주일 설교

기도 시리즈 1

“끈질긴 기도”

A consistent pray

누가복음 18:1-8

유민용 목사

18:1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예수님께서 언제나 기도하고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2 “어떤 마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마을에 과부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재판관을 찾아가서 말하였다. ‘내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4 그 재판관은 한동안, 그의 간청을 들어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지만, 5 이 과부가 나를 귀찮게 하니 그의 간청을 들어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간청을 듣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미루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백성들에게 정의를 베푸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이 세상에서 이 믿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쉬운성경)

1 One day Jesus told his disciples a story to show that they should always pray and never give up. 2 “There was a judge in a certain city,” he said, “who neither feared God nor cared about people. 3 A widow of that city came to him repeatedly, saying, ‘Give me justice in this dispute with my enemy.’ 4 The judge ignored her for a while, but finally he said to himself, ‘I don’t fear God or care about people, 5 but this woman is driving me crazy. I’m going to see that she gets justice, because she is wearing me out with her constant requests!’” 6 Then the Lord said, “Learn a lesson from this unjust judge. 7 Even he rendered a just decision in the end. So don’t you think God will surely give justice to his chosen people who cry out to him day and night? Will he keep putting them off? 8 I tell you, he will grant justice to them quickly! But when the Son of Man[a] returns, how many will he find on the earth who have faith?”(NewLivingTranslation)

2023년의 한해를 건너기 위한 열두개의 징검돌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열두개의 징검돌을 밟으며 우리는 한해의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창 49:28) 엘렘의 12개의 샘물(출 15:27) 대제사장 흉배에 붙인 12개의 보석(출 28:21) 언약궤를 매고 요단강을 건너며 기념비로 세운 12개의 돌(수 4:8) 예수님의 열두제자(마 10:2) 만물을 회복하기 위한 일년 열두달 새롭게 맺히는 새로운 열매(계 22:2) 등 이외에도 ‘열둘’라는 숫자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요한 계시록 22장 1절로 2절을 보면, 1 그 천사는 또 내게 생명수가 흐르는 강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 2 ‘그 성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일년에 열두번,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또 그 잎은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교회 모든 교우들에게 펼쳐질 2023년 열두달이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수를 통해서 믿음의 기갈(飢渴)을 해결받고, 기도의 호흡을 되살리게 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이들이 아픔과 슬픔, 정신적 우울함과 미래의 대한 불안함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님과 보좌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그분의 통치아래 있기를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새로운 열매를 맺게 해주실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또한 생명나무에 있는 잎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약재료로 사용될 것을 말씀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해서 하늘의 뜻을 사람들에게 자주 가르치셨습니다. 본문의 비유에 나타난 불의한 재판관은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악해진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고아와 과부, 소외된 자들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과는 대조가 됩니다. 1차적으로는 당시 유대인을 군림하는 다신론적 신관을 가졌던 불의한 관리들을 지칭하신 것으로 보여지는데, AD 1세기는 인본주의, 혼합주의, 다신론이 성행했었습니다. 두번째 인물은 끈질기에 요청하는 과부입니다. 과부는 고대사회에서 보호 받을 수 없는 신분인데, 이 과부가 자신이 권리를 침해 당해서 보호해 달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해를 살아가면서 기도하고 싶지 않을때도 있을 것입니다. 삶에서 힘든일을 만날때도 있겠지요. 그때마다 과부의 끈질긴 간정처럼 끈질긴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진피터슨은 메세지 성경에서 본문의 1절을 “예수께서 그들에게 끈질기게 기도하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려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라고 썼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불의한 시대에 맞서는 끈질긴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일은 힘겹고 어렵습니다. 손해를 보게 되는 일도 있을테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한 환경에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수님의 비유는 2천년 전의 말씀이지만 오늘날 이 시대를 꿰뚫은 깊은 통찰(洞察, Insight)을 담고 있습니다. 다신론 신관으로 로마의 힘을 의지하던 2천년 전이나 탈기독교, 탈교회의 오늘날 시대나 비슷합니다.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가 서방국가를 중심으로 부흥의 시기였다면, 이제 기독교는 공적영역에서 밀려나 주변화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믿음도 개인적 영역으로 제한되는 시대이며. 기독교의 본질인 믿음은 다윈주의 사회속에서 믿음의 배타성으로 인해 복음전파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을 하는 것조차 공적영역에서는 어려운 형국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기독교를 평가하는 것이 다 옳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껏 기독교의 선교방식이나 전도의 태도가 부족했던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는 19장에서도 기도자의 태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대조하고 있는데, 세리의 기도나 바라새인의 기도는 둘다 거룩한 기도처럼 보여집니다. 세리도 바리새인도 둘다 거룩함을 상징하는 성전에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세리는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식하는 반면에 바리새인의 관심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행위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분별해야 하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거룩함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겸손함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다원주의 시대속에서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의 구원의 문제를 고민하는 성도들은 끈질긴 기도를 통해서 믿음의 태도를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1. 기도는 진실한 고백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감정에 정직하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마음 속에는 원한이 들끓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그렇지 않은 척 행동하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일 뿐 아니라 해로운 일입니다. 억울한 일로 인해 과부는 반복적으로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과부에게 억울한 일인데,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분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분명하게 계시 되었는데, 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깊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속감정을 숨겨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에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 분노를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것은 가장 확실한 치유이며 회복인 것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으로 보면 ‘원한을 풀어 달라’는 말이 4번이나 반복이 됩니다.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진실한 기도를 하다 보면, 원수를 향해 타오르던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과부의 끈질긴 기도를 통해서 그녀에게 있던 억울함을 하나님께서는 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거대한 계획 속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며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니 자녀들의 억울한 기도를 들으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한해를 살면서 억울한 일을 겪게 될때에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면 마음의 치유하심을 주실 것입니다.  

2. 기도는 무감각해진 우리의 마음을 깨웁니다.

기도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에 마음을 바꾸시기도 합니다. 불임으로 애통하던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영적인 감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간청하는 과부는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았다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오늘날 물질주의와 다원주의의 거센 파도는 우리의 믿음을 위협합니다. 물질은 믿음을 사용하는 것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물질을 의지하게 되면 기도의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는 돈이 많은 사람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도, 세상에서 힘이 있는 사람도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이 깨어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해 집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기도로 한해를 보내기를 원합니다.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밤낮 기도하는 제목들이 응답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바라본 새하늘과 새땅의 모습은 에덴동산의 회복이자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인생을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기도는 자동차 핸들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 핸들에서 손을 놓고 졸게 되면 사고가 납니다. 목적지를 향해 도착할때까지 핸들을 잡고, 이리 저리 조정하며 방향을 잡아 가는 것입니다. 푯대를 향한 믿음의 여정에서 두려운 일을 만나고, 생각지 못한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해도 그때마다 기도의 핸들을 놓치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여정에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이 함께 계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을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이 과부가 나를 귀찮게 하니 그의 간청을 들어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간청을 듣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미루시겠느냐?

오스왈트 챔버스(Oswald Chambers, 1874-1917)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기도의 반복은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기쁨에 찬 고집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기도를 반복하다 보면 믿음의 근육이 붙습니다. 기도는 당장의 일시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니라 시대의 불확실성을 받아 들이는 훈련입니다. 사람들은 당장의 명확한 해답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과학적인 결과들로 자신의 인생을 보장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반복하다 보면,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생명의 말씀과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무감각한 마음에 회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4-25절에 보면 야곱은 홀로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 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야곱은 끈질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소돔성의 심판을 위해 찾아온 천사에게 끈질긴 간청을 했지요. 아브라함은 소돔성 멸망 직전에 영혼의 구원을 위해 끈질기게 기도하였습니다. 소돔성 심판을 들은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서서’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창 18:22). 아브라함은 6번이나 거듭 요청하며, 의인 10명만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롯이 구원받은 것도 아브라함의 끈기 있는 기도의 열매였습니다(창 19:29) 야곱은 끈질긴 기도를 통해 자기중심적 죄를 끊어내고 하나님의 얼굴을 경험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홀로 남아 씨름하며 지난 세월들을 회상하며 했을 것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붙들고 출생했습니다. 배고픈 형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쟁취했고, 눈이 잘 안보이는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에서인 척을 했으며,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서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안에서 살았지요. 20년 동안 고향을 떠나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의 자기중심적인 기질을 훈련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가 이제 고향 땅에 돌아오는데 에서가 400인들을 거느리고 만나러 온다는 소식에 자신의 인간적인 수단을 총동원해서 두 떼로 나누고 한 떼를 치면 한 떼는 피하려고 했습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 기질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가족마저 먼저 보내고 이제 야곱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때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며 그가 의지하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쳐내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환도뼈가 부서지는 고통속에서 천사와 씨름했던 곳을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 하였습니다. 그가 밤새워 씨름한 그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얻게 됩니다.

케임브리지 교회가 오랜시간 기도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이곳에 함께 있지 않는다고 해도 함께 드린 기도는 여전히 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지속적인 기도가 교회를 유지하고 세워가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은 지나가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드린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게 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개인의 인생의 미래를 설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 올수록 성령님을 믿고 그분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현재에 기도의 답을 얻지 못할 때에도 그분께 맡기며 쉬지 않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끈질긴 기도는 기도할 힘이 나지 않을때, 기도대로 살지 못할때에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부족한 모습을 붙들고 날마다 씨름하는 것입니다.

외국에 와서 살면서 저에게는 통장잔고나 좋은 집이 저를 만족시켜 준것이 아니라 작은 방안의 기도의 자리가 저를 변화시켜주고 만족시켜주었습니다. 삶의 기도제목을 안고 작은방 한켠 에서 기도하던 그 시간들은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골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온전히 하나님만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기도의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응답의 여부와 관계없이 가장 겸손 할 수 밖에 없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일, 보잘것 없는일이라도 그분에게는 크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하나님과 함께 사도들 보다 더 큰일을 행하게 하는 힘입니다. 세상 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기도의 두 기둥은 ‘믿음’과 ‘겸손’입니다.

기도는 ‘믿음’ 위에 세워집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도하는 일이 지치고 기도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경주를 할수 있습니다. 믿음은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과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히 11:6) 믿음이 사라지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도 위로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입니다.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는 그 안에 땀과 눈물이 있습니다. 때로는 경기 안에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부상을 당할 위험한 순간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직접 경기를 뛰면서 얻게 되는 경험들 속에서 믿음의 흔적들이 남는 것입니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백성들에게 정의를 베푸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이 세상에서 이 믿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예수님은 몇 차례나 제자들에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22). 본문에도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이 세상에서 이 믿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 풍조에 휩쓸려 믿음의 길을 포기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종살이를 통해 희망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하나님의 전적인 손으로 애굽에서 구원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시기에서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보스턴 지역에 하나님은 케임브리지 교회를 세우시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시대적 도전 앞에서 기도하는 백성들을 세심하게 돌보시며 길을 내시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겸손함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기도를 그분의 큰 계획 안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어떤 기도는 간구한 그대로 응답해 주시고, 어떤 기도는 간구한 것을 거절하심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눈에 거절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서는 그것도 응답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 있으면 거절된 기도일지라도 축복이 됩니다. 겸손한 기도는 기도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고 주님을 닮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올때’ 라는 기도의 안경을 쓰시기 바랍니다. 안경은 인지하지 못할때에도 쓰고 있으면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믿음과 겸손의 안경을 쓰고 살아가면, 낙심되고 두려운 상황속에서 약속하신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은 믿음과 겸손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안경을 끼면, 성령께서는 두려움을 이기게 해주십니다. 성령의 감동과 감화는 예수께서 승천하실때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전염병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들, 지지과 기근, 예측할수 없는 기후의 변화들, 총성없는 아우성 소리가 가득 넘쳐나는 세상에 살아가지만,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쉬지말고 기도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가 여러분의 삶의 길에 기도와 말씀의 등불을 켜고 함께 걷겠습니다. 믿음의 여정을 함께하는 이 자리에서 한해도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찬송가 369장 가사를 함께 읽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1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이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12.31.22 송구영신 설교

하늘의 예배

The Heaven’s Worship

요한 계시록 5: 1-10

유민용 목사

5:1 나는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글이 씌어 있었고, 일곱 개의 도장이 찍혀 봉해져 있었습니다.  2 힘 있는 한 천사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가 이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겠는가?”  3 그러나 하늘에도, 땅에도, 지하에도 그 두루마리를 펴서 읽을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4 나는 그 두루마리를 펴 읽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울고 말았습니다.  5 그러자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입니다. 그분께서 일곱 군데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실 것입니다.”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쉬운성경)

1 Then I saw a scroll[a] in the right hand of the one who was sitting on the throne. There was writing on the inside and the outside of the scroll, and it was sealed with seven seals. 2 And I saw a strong angel, who shouted with a loud voice: “Who is worthy to break the seals on this scroll and open it?” 3 But no one in heaven or on earth or under the earth was able to open the scroll and read it. 4 Then I began to weep bitterly because no one was found worthy to open the scroll and read it. 5 But one of the twenty-four elders said to me, “Stop weeping! Look,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the heir to David’s throne,[b] has won the victory. He is worthy to open the scroll and its seven seals.”6 Then I saw a Lamb that looked as if it had been slaughtered, but it was now standing between the throne and the four living beings and among the twenty-four elders. He had seven horns and seven eyes, which represent the sevenfold Spirit[c] of God that is sent out into every part of the earth. 7 He stepped forward and took the scroll from the right hand of the one sitting on the throne. 8 And when he took the scroll, the four living beings and the twenty-four elders fell down before the Lamb. Each one had a harp, and they held gold bowls filled with incense, which are the prayers of God’s people. 9 And they sang a new song with these words:

“You are worthy to take the scroll and break its seals and open it. For you were slaughtered, and your blood has ransomed people for God from every tribe and language and people and nation.
10 And you have caused them to become a Kingdom of priests for our God. And they will reign[d] on the earth.”(New Living Translation)

2022년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은 ‘하늘의 예배’입니다. 이땅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큼 복된 일이 없습니다.

새해 첫시간를 맞이하며 예배를 향한 ‘창조적 갈망’이 더 깊어 지기를 바랍니다. 존 웨슬리는 1755년 언약예배(Wesley Covenant Service)를 시작하여 1778년에 이르러 모든 교우들과 함께 새해 첫주일과 새해를 맞이하는 밤에 지금처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갱신하기 위한 시간을 갖었습니다.

그 언약기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저를 붙들어 매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저를 붙이소서. 저를 행하게 하시고, 저에게 고난을 주소서. 저를 주님께서 고용하소서. 주님의 처분에 맡깁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를 높이시고 혹은 저를 낮추소서.저를 채우기도 하시고, 비우기도 하소서. 저에게 모든 것을 주기도 하시며, 또한 제게서 모든 것을 가져 가기도 하소서. 제 모든 것을 주님의 기쁨을 위해 쓰시도록 기꺼이 그리고 마음 다해 드립니다. 오, 영광스럽고 복되신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시여, 저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은 저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소서. 제가 이 땅에서 맺은

이 언약을 하늘에서도 확증하여 주소서. 아멘” 이 기도문을 드리며 감리교도들의 믿음은 증진시키기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언약을 두루마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22장 7절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1:5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로 듣기만 하지 말고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믿음의 길을 걷는 이들은 어느 시대속에서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최고의 열매를 맺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 계시록의 핵심은

‘세상과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당시는 거대한 로마제국이라는 박해의 풍랑 속에서 표류하는 상태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이단의 거짓 가르침과 영적 타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요.

로마의 법 앞에서 말씀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박해 상황속에서 복음은 아주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 되었습닌다. 그런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요한에게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사도 요한의 눈에 보여주시는 것은 ‘하늘의 예배’였습니다.

5:1 나는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글이 씌어 있었고, 일곱 개의 도장이 찍혀 봉해져 있었습니다.  2 힘 있는 한 천사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가 이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겠는가?”  3 그러나 하늘에도, 땅에도, 지하에도 그 두루마리를 펴서 읽을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4 나는 그 두루마리를 펴 읽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울고 말았습니다.  5 그러자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입니다. 그분께서 일곱 군데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의 상징인 보좌에 앉으시고 오른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계시는데, 그 두루마리가 일곱 인(Seal)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일곱 인으로 봉하였다는 것은, 그 안에 ‘완전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루마리 안팎으로 글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하늘에도 땅에도 지하에도 두루마리를 펴서 읽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사도요한이 애통하며 울기 시작합니다.

예배자들은 현실적인 삶에 부딪히고, 시대마다 절망의 현실을 만날때에 최대한 울어야 합니다. 요한도 아무런 위로를 얻을수 없는것처럼 크게 울고 말았습니다. 요한의 마음에 로마의 핍박과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메세지를 기다리던 성도들이 스쳐 지나갔을까요?

요한은 성도들이 실망할 모습에 깊이 낙담합니다. 주제할 수 없는 슬픔에 크게 울었습니다. 울음 가운데 그의 결연한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울고 있을때 하늘의 장로 중 한사람이 ‘울지마시오’라고 말씀합니다. 이유는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기에 그가 봉인된 일곱인을 풀어 계시할 것이니 ‘울지말라’는 것입니다.  

나인성 과부가 독자를 잃고, 슬퍼하고 있을때 그녀를 찾아가 ‘울지 말라’ 말씀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문화속에서 과부였던 여인이 그녀의 독자까지 잃었으니 얼마나 큰 슬픔입니까? 이 일로 많은 무리가 그녀를 위해 독자의 죽음의 행렬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비통함에 젖어 무덤을 향해 가고 있는 죽은 자의 행렬을 향해서 예수께서 다가옵니다. 주님은 죽음의 행렬을 마주하며 독자의 관에 손을 대시고 장례의 행렬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모든 인류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의 행렬에 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인류의 죽음의 행렬을 멈춘 분이 계십니다. 죽은 자를 향해 외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도 일어나라 하십니다.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청년이  ‘깨어났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케임브리지 교우 여러분 예배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다 들으시며, 생명의 행렬을 이뤄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3자리 중요한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예배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다시 찾으십시요.

우리는 예배의 본질을 갈망해야 합니다.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행위는 아름다움과 연결되는데, 인간은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영적인 본능입니다. 예배의 아름다움은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영성이 깊어 질수록 하나님은 ‘하늘의 아름다움’을 밝히 보여줄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될때에 세상속에서 주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영적인 삶을 채워가실 것입니다.

토론토 큰빛교회를 섬기시며 20여년간 북한을 오가며 북한 주민들을 돕는 사역을 하셨던 임현수 목사님이 계십니다. 2015년 1월 평소와 같이 북한을 방문했는데, 그는 최고존엄 모독죄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 받고 북한에 억류되셨다가 2년 7개월 9일 동안의 종신 노동역을 하며 독방 생활을 하다가 풀려났습니다. 수감된 첫날밤 두렵기도 하고 억울해서 잠이 오질 않는데,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판 과정을 묵상하게 하시며 예수님처럼 억울한 재판을 받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깨닫게 하시니 성령님께서 억울한 마음을 풀어 주시는데 ‘하늘의 평안함’이 임하더랍니다. 그리고 첫날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풀려지게 될 것을 보여 주시더랍니다. 끝이 없는 노동 종신형이 시작된 둘째날 아침에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들려지는데 디바인 스케쥴이라 말씀 하시더랍니다. ‘이제 네게 거룩한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마음을 주셨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2년 7개월 9일 동안 캐나다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요셉처럼 북한감옥으로 부터 구출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분의 일을 해나가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며 기다린 성도들 곁으로 돌아오신 목사님을 뵌 그날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고생하신 흔적이 그분의 모습에서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단위에 서신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두려움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 앞에서는 이길수 없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배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면 아름다워 보여도 그 예배는 결국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 영적인 갈망을 추구해야 합니다. 보스턴에는 분야별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두도록 깨워야 합니다. 군대에서 총기를 0점 조준하듯이, 창조성을 주시는 분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표현하는 창조적 행위와 능력은 껍데기일뿐이며 철저하게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의 능력과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움하면 우리는 외적인 아름다움, 보여지는 풍성함을 생각하는데, 내면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데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이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에 맞춰 기도했습니다. 오전 9시 오후 12시 오후 3시에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을 divine office라 불렀습니다. 거룩한 기도, 거룩한 일은 예수께서 오시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거룩한 예배를 드리며 새해에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가장 좋은 시기를 누리길 원합니다.

찬송가 143장에 보면 ‘웬말인가 날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것 없어 이몸 바칩니다.’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죄로 부터 스스로 구할 능력이 없음을 깊이 깨닫게 되면 /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이 벌레와 다른 것 없음을 보게 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넌 벌레가 아니란다. 존귀한 나의 자녀야.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감리교 예배학자 돈 셀리어스는 그의 책 ‘거룩한 예배’에서 예배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자기주심’이기에, 인간이 자기만을 드러내려는 정서는 하나님의 마음과 동떨어져 진다고 지적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어야 하고,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며, 거룩성을 채워가는 신적 예술이라고 표현합니다.

2.어린양 되시는 예수가 일곱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펴셨습니다.

5 그러자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입니다. 그분께서 일곱 군데 봉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펴실 것입니다.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릴때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특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유월절 의식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당시에 양을 잡아 양의 피를 대문 기둥에 발랐더니 언약의 피로 인해 죽음의 천사가 유대인의 집을 지나치고, 그 흔적이 없는 이집트인들 집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예배’의 광경을 왜 보게 하셨을까요? 하늘의 영광을 본 자라야 이땅의 수고와 슬픔을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경험하게 될 때 세상의 실패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하늘의 예배’의 주인은 오직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도요한 당시에는 도미티안 황제가 자신을 신격화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황제의 보좌는 통치, 권위, 심판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니 ‘하늘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통치와 권위 마지막날 심판과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예배’는 하나님의 보좌에 ‘죽임당한 어린 양’이 서 있는 것을 보는 것이죠. 주님은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상에서 드려야 할 예배의 본질입니다. 예배는 하늘과 땅을 잇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그리스도를 향한 관심이 시들어져 간다면 예배의 본질이 사라져 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예수를 하늘 높이 올리셔서 하늘의 보좌에 그리스도를 앉히셨습니다. 그러니 사도요한이 환상을 보고 구원의 계시가 풀려진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로마 황제 도미티안을 ‘주’ 라고 부르라는 명령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권세와 능력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고, 정한 날에 ‘사자’와 같은 권세와 권능으로 오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이 이땅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예수님과 일체된 사역을 하도록 도우십니다. 현실의 두려움을 이기고, 현실의 문제를 뛰어넘게 도와주십니다.

루터가 로마 가톨릭과의 오랜 싸움으로 고통과 실의에 빠져 몸져 누워 있던 어느 날,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가 검은 상복을 입고 남편의 방으로 들어 왔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서 “아니, 누가 죽었소?”하고 묻자 카타리나는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라고 슬피 울며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다음과 같이 나무랐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돌아가시지 않소.” 그러자 카타리나는 이렇게 맞받아치며 말했습니다.“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당신의 오늘 이 모습은 무엇입니까? 마치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같이 맥이 빠져 누워 있지 않습니까?” 이 말에 루터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시를 써 내려갔다고 합니다.

한해의 마지막 예배에 우리가 버려야 할 마음은 무엇이며, 잃어버린 마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믿음의 대로, 은혜의 대로, 시온의 대로를 걷게 하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어린양을 잠잠히 털 깍는 자 앞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하지만 요한 계시록에서 어린양은 더이상 종으로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의 권위를 이어받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어린 양’은 이제 힘없고 약한분이 아닙니다. ‘어린 양’ 되시는 예수의 피만이 모든 백성과 모든 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기도와 찬양은 예배의 향기입니다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세상은 지금도 전쟁과 공포, 전염병, 분쟁과 다툼, 불의와 부정 가운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성도들은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을줄 알아야 합니다. 현실을 마주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이 아파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허락하실 새하늘과 새땅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으로 부터 억압당하고 어찌할바를 몰라 당황해 하는 성도들에게 사도요한이 바라본 ‘하늘의 예배’는 용기와 위로였습니다. 어려움이 없던 시대는 인류 역사속에서 없었습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우상들과 핍박은 늘 존재했지요. 그러나 끈질긴 기도는 노년의 때에도 청년의 마음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 안에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습니다. 하늘의 백성들은 예배의 영성이 흐트러지지 않게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주어진 예배를 통해서 예배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매일마다 구원의 말씀이 계시되어야 합니다. 광야에서도 절망의 긴 터널일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최후승리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깊은 구렁에서도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십니다. 영국 속담에 “사랑하면 천 개의 눈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 개의 눈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기도의 향기입니다. 기도는 잠자는 예배를 깨어나게 합니다. 금대접 위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의 향기 외엔 처해진 시대를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본질을 강화하기 위해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존 웨슬리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찬송하게 하시려고 인간을 지었다고 말씀합니다. 유진피터슨은 ‘이 책을 먹으라’라는 그의 책에서 거룩한 공동체는 개인의 체험을 성경의 권위 아래 두어야 한다. 성경을 다시 중심부로 이끌어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깊이 있게 세워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큰 복은 설교를 준비하며 성경의 말씀을 매순간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날마다 저의 부족함을 비추는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설수 없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에도 케임브리지 교회가 44년동안 걸어 온 것처럼 말씀과 기도, 새노래 위에서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