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14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후 제 14주)

주님이 찾으신 그 한사람

The One Whom the Lord Seeks

누가복음 15:1~10

15: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2 그런 광경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교사들이 수군거리며 투덜댔다. “이 사람은 죄인들을 맞아들여, 그들과 어울려 함께 음식을 먹는다.” 3 ○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4 “당신들 가운데 누군가가 양 일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는 아흔아홉 마리를 그대로 들에 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서지 않겠소? 5 그래서 양을 찾으면, 그는 크게 기뻐하며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6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할 것이오. ‘우리 다 함께 기뻐하자. 잃어버린 내 양을 내가 도로 찾았다.’ 7 내가 진정으로 당신들에게 말하겠소. 이와 같이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 명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욱 기뻐한다오.” 8 ○ “또 어떤 여자가 은화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하겠소? 등불을 켜 들고, 온 집안을 쓸며, 부지런히 돈을 찾지 않겠소? 9 그러다가 돈을 찾으면, 그 여자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놓고 함께 기쁨을 나눌 것이오. 10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크게 기뻐한다오.” (쉬운말 성경)

1 Tax collectors and other notorious sinners often came to listen to Jesus teach. 2 This made the Pharisees and teachers of religious law complain that he was associating with such sinful people—even eating with them! 3 So Jesus told them this story: 4 “If a man has a hundred sheep and one of them gets lost, what will he do? Won’t he leave the ninety-nine others in the wilderness and go to search for the one that is lost until he finds it? 5 And when he has found it, he will joyfully carry it home on his shoulders. 6 When he arrives, he will call together his friends and neighbors, saying, ‘Rejoice with me because I have found my lost sheep.’ 7 In the same way, there is more joy in heaven over one lost sinner who repents and returns to God than over ninety-nine others who are righteous and haven’t strayed away! 8 “Or suppose a woman has ten silver coins[a] and loses one. Won’t she light a lamp and sweep the entire house and search carefully until she finds it? 9 And when she finds it, she will call in her friends and neighbors and say, ‘Rejoice with me because I have found my lost coin.’ 10 In the same way, there is joy in the presence of God’s angels when even one sinner repents.”(New Living Translation)

세상을 바꾸는 시간, ‘세바시’라는 강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2011년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15분 동안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콘텐츠입니다. 어느 방송에서 세바시 PD가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를 소개했는데,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장(場)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습니다.

성경 안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잃은 것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잃었던 양을 찾아 주님의 품으로 데려오는 이야기는 사람을 살리는 깊은 기쁨을 보여 줍니다. 마치 소방관들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할 때 느끼는 기쁨과도 같습니다. 세상의 어떤 즐거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을 살리는 기쁨입니다.  잃은 양 한마리를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해 쓴 복음서입니다. 누가는 12명의 제자중의 한 사람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었지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기 위해 붓을 들었습니다. 누가복음 외에도 교회가 세워지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퍼져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책이 시작되는 누가복음 1장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하고 차례대로 기록한 여러 사람들이 많음을 언급하며 자신도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정확히 전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고 기록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잃은 양을 끝까찾으신주님의 사랑

김형석 교수님은 ‘교회밖 하나님 나라’에서 신앙의 본질을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도 아니고, 목사나 신학자라고 해서 믿어지는 것도 아니고, 기적 같은 체험을 많이 했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은총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문제가 되지만 그분을 만난 사람은 모든 게 문제가 안 됩니다. 《김형석-교회 밖 하나님 나라》

누가복음 15장은 잃은 양, 잃은 은화, 잃은 아들의 세 가지 비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서로 연결된 하나의 비유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한 영혼을 찾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양한 상황을 통해 보여 주는 연속된 이야기입니다.

잃은 것을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삶이 완전히 회복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삶의 모든 문제를 덮고, 하루하루의 순간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 줍니다. 우리가 주님을 처음 만난 그 기쁨과 감격을 기억하시나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고 초라하고 보잘것 없던 내 삶이 자녀됨으로 완전히 새로워지는 그 순간을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배제되고 소외된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회개하고 돌아올 때, 우리도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인해 탄생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성도들의 삶은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습니다. 이 성령의 감동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마음이 잊혀지면, 교회는 형식과 전통만 남고 율법주의로 변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최종 목적지는 교회의 부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삶을 구현하고 실천하도록 도우시고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본문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 양을 찾아 광야로 나서는 목자와 잃은 은화를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부지런히 살피는 여인의 간절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지치면 포기하려 하지만, 목자는 끝까지 잃은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기쁨의 잔치를 엽니다. 한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천사들이 크게 기뻐합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열방을 향해 가라』에서 “교회는 선교가 아니라 예배를 위해 존재한다. 선교가 없는 곳에 예배가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선교는 단순히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예배가 없는 곳, 하나님의 마음과 기쁨을 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회복하는 예배가 선교입니다. 예수의 생명은 죽었던 우리의 마음을 살려 냅니다. 십자가의 흔적이 우리의 삶에 남겨질때 우리의 몸에도 생명의 흔적이 남는 것입니다. 고난과 연약함 속에 주님의 생명이 드러나고, 그 은혜가 흩어져 있던 우리의 마음을 모으고, 날마다 새롭게 회복시키십니다.

주위에 소망을 잃어 버리고,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선교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주님의 생명을 회복하는 예배의 현장으로 나아가고 육신의 삶에 매여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진정한 선교적 삶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양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율법과 규율로 사람들을 나누었고,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죄인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무리를 이탈한 어린양이 우리의 시선에는 작은 존재일지는 몰라도 하나님께는 반드시 찾아야 할 귀중한 존재였습니다. 은화 한 개 역시 전체와 같은 가치로, 잃어버렸을 때 그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개의 은화는 보통 한 세트로 결혼할때 남자가 자신의 아내에게 주는 사랑의 증표였을거란 해석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탕자의 비유에서도 더욱 분명해집니다. 아버지에게 둘째 아들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마음은 끊어질 수 없고 계산할 수 없는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본문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몰려 드는 것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비방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거룩한 행위를 지키며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던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부정하다고 여겨진 자들을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판단과 경계안에 갇히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랑 앞에서 우리의 한계를 느끼고 상처 받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사랑하다가 포기하기도 하고 힘든 현실속에서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세리와 죄인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쉽게 닫아 버리기도 합니다. 불의한 저들과 우리의 삶이 다르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에는 언제나 내가 가장 불의한 죄인일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 자신부터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연결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타인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열심과 내 경험만으로 살아가면 결국 실패와 상처 앞에서 원망과 불만이 쌓이고 영적으로 텅빈 삶에 갇히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과 세상의 길이라는 경계에 서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듯 살아갑니다. 순수한 열정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사람을 놓치기도 하고 소망을 잃어버린 자리에 서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잃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믿고 따를 때 죽었던 우리의 믿음이 살아납니다. 마음이 외롭고 고독할때, 잃어버린 양을 끝까지 찾아가신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이 끝까지 찾으시는 잃어버린 양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이유입니다.

7절 말씀을 통해 양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 명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욱 기뻐한다오.” 이 비유의 배경에는 바리새인들의 수군거림이 있었습니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이란 의미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곧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회개할 필요가 전혀 없는 완전한 의인이라고 여겼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내 안에 가려져 있던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돌아온 아들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새옷을 입혀주며 잔치를 차려주신 아버지의 마음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향해 수군거리며 투덜대던 바리새인들과 달랐습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이었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에 사는 우리는 주님의 마음이 부어질때 한 영혼을 귀히 여기며, 그들의 곁에서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사람입니다.

‘찾다’라는 의미를 지닌 제테오(ζητέω) 는 ‘발견할 때까지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여인이 잃어버린 은화 하나를 찾기 위해 쉬지 않고 집을 쓸고 부지런히 찾았듯 주님은 길을 잃은 한 영혼을 끝까지 찾으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기쁨을 잃어버린 믿음생활과 내면의 상처로 인해 닫힌 마음, 사라진 마음의 평안 이것들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은화입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은 진리의 말씀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생명을 다해 찾는 사람들, 기도하는 삶을 우선시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쉬지 않고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너희는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고니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전제가 주 안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기뻐하라’는 헬라어 ”카이로(χαίρω)는 잃어버린 것을 찾았을때 얻는 기쁨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아프고 비극적인 일들이 가득합니다. 총성없는 전쟁터가 되어가는 세상은 끊임없는 분쟁과 갈등의 자리가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둡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을 끝까지 찾으십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내신 주님은 기쁨과 감격에 겨워 그 양을 목에 업고 돌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십니다. 우리에게도 그 마음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잃어버린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서 있다면 우리를 끝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의지를 넘어 주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에는 아픔과 고통이 가득하지만 우리 모두를 끝까지 찾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앞에 설 때,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길 잃은 양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지닌 성도이며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이 기쁨이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도록 주님의 마음으로 그 기쁨을 넉넉히 흘려 보내며 살아야 합니다. 아프고 고단했던 시간, 상처로 힘겨웠던 순간들 조차도 하나님 안에서는 주님의 기쁨이 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태주 시인의 너무 늦게 라는 시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신이 주신 첫날처럼 맞이하고 하루하루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살다 가리라 만나는 사람마다 오직 한 사람으로 대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으로 맞이하리라 하나란 숫자가 세상에서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가를 나는 너무 늦게 알아갑니다.” 주님이 끝까지 찾으시는 한 영혼,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할 때, 우리 마음에 잃어버렸던 기쁨이 회복될 것입니다.   

09 07 2025 주일 설교

내 제자

My Disciple

누가복음 14:25~33

14:25 ○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면서 길을 가고 있을 때,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14:26 “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부모나 처자식이나 형제자매보다 나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도 더욱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14:28 여러분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려고 하면, 그 사람은 먼저 전체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지 계산부터 뽑아 보지 않겠습니까? 14:29 그렇게 하지 않아서, 만일 그 사람이 기초공사만 해놓고 비용이 모자라 망대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사람들마다 그를 비웃으며 말하기를, 14:30 ‘저 사람이 건축을 한답시고 시작만 해놓고는 마무리를 못하는구나!’ 하지 않겠습니까? 14:31 또 만일 어떤 왕이 다른 왕과 전쟁을 해야 한다면, 1만 명의 자기 병사로 2만 명의 적들을 과연 물리칠 수 있을 것인지, 미리 헤아려 보지 않겠습니까? 14:32 그렇게 헤아려 보아서, 아무래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면, 적군이 아직 먼 거리에 있을 때 화친을 맺기 위해 사절단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14:33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쉬운말 성경)

매년 새학기가 되면 보스턴의 곳곳에는 이삿짐 트럭과 손수레를 끌고 짐을 옮기는 학생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청년들의 모습에서는 설레임과 기대가 느껴지지만 자녀들을 새로운 땅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염려와 애틋한 마음이 함께 할 것입니다. 이제 이곳에 온 청년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새롭게 도전하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낯선 환경에서 공부를 해야 하고, 끼니를 챙기는 것도 지치는 날이 있을 것이며 외로움이 찾아 올때면, 눈물로 마음을 달래고 기도하며 꿈을 향한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낯선 땅에서 홀로 서게 되는 자녀들은 세상과 믿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결단을 해야하고, 자녀를 떠나 보내는 부모는 이제 하나님께 나의 자녀를 맡기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여러 호칭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 성도,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입니다. 이 호칭들의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둡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믿음 안에서 거룩한 성도로 선택을 받았으며, ‘제자’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여러 표현들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된 호칭이 제자입니다.신약성경에 ‘제자가 되다’ 라는 동사는 25회 정도 나오고, ‘제자’라는 명사는 246회 이상 나옵니다. 예수의 제자 가운데서  요한은 특별히 사랑을 많이 받는 제자였습니다.  그의 서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로 제자, ‘마데테스:μαθητής’는 ‘배운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제자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입니다. 선생과 제자는 배움을 통하여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갑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잇는 제자의 삶을 살았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가르침을 받아 그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예수님도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셔서 가르치셨습니다. 12제자 외에도 70여명의 제자를 훈련하여 파송하셨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보고 엘리야와 같다고 하였고, 또 어떤 이는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라고 말하며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라오던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누가 내 제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분명하고도 강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의 ‘오늘 제자로 살기’에 보면 제자됨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에 ‘관한’ 사실을 줄줄 읊을 줄 안다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지식이나 재능에 감동하시지 않는다그분이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주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다십자가라는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말이다그분이 지독히도 낮아지셔서 타인을 이타적으로 섬기신 궤도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여기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의 조건을 말씀하시며, 그 조건을 따르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세번씩이나 말씀 하셨습니다. ‘내 제자’라는 말은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요구와 내가 기대하는 것 사이에서 충돌을 경험 해본 적이 있다면, 우리는 ‘내 제자’라는 말이 부담스러운 조건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내 제자’는 주님과 특별한 관계임을 의미합니다.

“쉬운성경은 ‘누구든지 자기 부모나 아내와 자녀,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라고 번역합니다. 반면 개역개정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이라고 번역하여 보다 강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즉 어떤 대상도 예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네가 가족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면, 그때 나를 선택할 수 있겠느냐?” 묻고 계신 것입니다. 당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모두가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이 질문 앞에 서게 하셨을때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일이 쉽지 않겠다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가정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든든한 울타리와 같습니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을 배워갑니다. 하지만 주님은 혈연적 가족보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름 받았음을 더 우선순위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주님을 선택해야 할 때가 온다면 주저하지 말고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나의 가족, 물질, 명예가 중요하여 내 삶의 평안을 지키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 질문은 우리가 진정한 제자인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제자의 길을 가기 전에 반드시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네’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않아’ 이 고백은 주님의 초청에 대한 믿음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만 제시하신 분이 아닙니다. 제자의 길이 힘들고 험난할 수 있지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28:19) 마지막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끝날까지 내 제자들과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부모는 자녀의 부족함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이 말씀 하신 망대 비유는 철저하게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망대는 전쟁시 적의 동태를 살피는 높은 탑입니다. 만일 망대를 건축하다가 기초공사만 하고 멈추게 되면, 적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오히려 안 짓는 건만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망대를 세울 비용을 먼저 계산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자의 길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했으나 대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시작하면, 사명의 무게 앞에서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미 승리를 보장 받은 믿음의 경주자들입니다. 만일 건축회사들이 이곳 저곳 기초공사만 해놓고, 힘들다고 포기하고 중단해 버린다면 그 도시는 황폐해 보일 것입니다.

십자가는 짐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고’라는 헬라어 동사 바스타조 (βαστάζω)는 ‘참다’, ‘짐을 짊어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로마는 자국의 통치에 반항한 범죄자나 전쟁 포로를 처형할 때 십자가에 못박히는 자가 처형 장소까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도시 한복판을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며, 이를 통해 로마 제국이 사형을 집행한 것이 옳고, 죄수들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침묵으로 인정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님께서 옳고 참됨을 시인하는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무거울수록, 그 길에는 고통과 부담이 따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진리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며 지고 가야만 합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세상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시인하겠다.’(마 10:32)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제자들의 삶을 헛되지 않게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증거는 십자가를 짐어지는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녀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짐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공부하며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주를 위해 흘린 땀과 시간은 언제가 내 인생에 유익이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 견뎌야 할 폭풍속의 문제들도 산적히 쌓여 있습니다. 자녀의 십자가, 직장에서 져야 할 십자가, 사명의 길에서 져야 할 십자가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픈 몸을 맡기며 기도하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의 길에서 홀로 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자는 삶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며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 아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다른 이들은 병이 낫게 되었지만 정작 자신이 지녔던 육체적 질병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고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해결되지 않은 육체의 가시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임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고후12:7 그리고 내가 받은 계시가 너무나 크고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너무 교만해질까 봐 내 몸에 가시 같은 병을 주셨습니다이것은 내가 교만하지 않도록 나를 괴롭히는 사탄의 사자입니다.  12:8 나는 이 고통이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12: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므로 나는 나의 약한 것을 더욱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십자가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지만, 이는 세상의 거대한 풍조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믿음의 시련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기에 허락하신 것이라면, 십자가의 짐이 무거울수록 그만큼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녀임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있으나 열심은 사라지고, 지식은 많으나 순종은 없고, 알고 있어도 삶으로 헌신하고 포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나의 십자가를 지는 삶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으로만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피하고 싶던 아픔과 고난의 자리, 외로움과 눈물의 자리에서 십자가를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인생의 높은 산을 넘어 갈때마다 우리가 교만하지 않도록 주님과의 관계를 더 깊어지게 합니다. 지나고 보면 내가 진 십자가가 나를 바르게 살아가도록 안내해 주는 것이었구나 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때 비로소 성령께서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제자의 길은 우리의 힘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길입니다.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성도는 MADE BY GOD,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삶입니다. 우리는 분명 죄인이었는데 주님께서 거룩한 사람이라 일컬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모든 권리와 소유권을 하나님께 넘기고 하나님이 내 삶에 주인 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은 ‘내려놓음’이 포기보다 굉장히 적극적인 행위라고 말합니다. 선교사님께서 하신 인터뷰의 내용 일부입니다.

저라고 하는 사람은 제 안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어떤 생각들미움이라든지 남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인정 욕구 같은 걸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어요해결한 척 포장은 할 수 있겠지만 제 안에는 그런 힘이 없어요하지만 앞이 막막하고 희망이 안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질 때 제 삶이 여전히 감사가 넘치고 행복하고 더는 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저는 삶 속에서 체험했습니다.”진정한 내려놓음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는 내 제자다”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외롭고 지친 순간에도 다시 일어납니다. 마라톤 경주를 하기 위해서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달려야 하는 것처럼 인생의 경주에서도 짐이 많을수록 경주는 더 힘들어집니다. 주님은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 가운데 있을때 우리가 손에 붙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의 높고 크신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35) 주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제자들이 보여줄 믿음의 태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 안에는 우리의 선택과 책임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이기심으로 쌓아올린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고, 견디기 힘들고 낙심되는 자리에서도 주님의 명령을 책임있게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가치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끝까지 심고 나누고, 십자가를 지는 삶에 있습니다.  상처와 아픔이 있어도 주님이 가신 길을 기꺼이 따라가야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돌아보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보다 나를 위해 살았고,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을 따라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놓치며 믿음의 길에서 돌아서서 쉽고 형식적인 신앙의 자리에 머무르게 됩니다. 바울이 고난 중에도 영광을 바라본 이유는, 그 길 끝에 주님이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Kate B. Wilkinson 이 빌립보서 2장 5절의 말씀을 담은 찬양의 가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찬송시는 처음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매주 부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돕기 위해 쓰였습니다. 삶의 간절한 고백으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내 구주 그리스도의 마음이 날마다 내 안에 살게 하시고 그분의 사랑과 능력이 내 모든 행동과 말을 다스리게 하소서. 2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시간마다 풍성히 거하게 하시고 내가 보는 모든 것에서 오직 그분의 능력으로 이기게 하소서. 3내 아버지 하나님의 평안이 내 모든 삶을 다스리게 하시고 아플 때나 슬플 때 고요히 위로 받게 하소서. 4예수님의 사랑이 물이 바다를 채우듯 나를 채우게 하시고 그분이 높아지고 나는 낮아지게 하소서. 5 내 앞에 놓인 경주를 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적과 싸우며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전진하게 하소서. ” (Kate B. Wilkinson, “May the Mind of Christ, My Savior)

경기에 나가는 선수가 자신의 의욕만으로 경주를 끝까지 완주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 훈련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믿음의 경주 중입니다. 아직 내 인생이 더 중요하고 내 가족이 더 소중합니다. 내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는 고백도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고백속에서도 죄와 싸우며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인생의 공사는 우리의 삶이 여전히 폭풍 속과 같지만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달려갈 때 포기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무거운 짐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참된 제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