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2026 주일 설교

성령강림 후 제 23주

그 자리에 누가 앉아 계신가?

Who Sits in the Seat?

마태복음 23:1-12

1그 때, 예수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3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지는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4그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올리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짐을 지기 위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5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모든 일을 한다. 그래서 말씀 상자를 크게 만들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6이들은 잔치에서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7이들은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을 좋아하고, 선생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8그러나 너희는 ‘선생’이라는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선생님은 오직 한 분이고, 너희 모두는 형제들이다. 9그리고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인데, 하늘에 계시다. 10너희는 ‘지도자’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오직 한 분뿐인 그리스도시다. 11너희 가운데 큰 자는,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 12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고,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쉬운성경)

1 Then Jesus said to the crowds and to his disciples, 2 “The teachers of religious law and the Pharisees are the official interpreters of the law of Moses. 3 So practice and obey whatever they tell you, but don’t follow their example. For they don’t practice what they teach. 4 They crush people with unbearable religious demands and never lift a finger to ease the burden. 5 “Everything they do is for show. On their arms they wear extra wide prayer boxes with Scripture verses inside, and they wear robes with extra long tassels. 6 And they love to sit at the head table at banquets and in the seats of honor in the synagogues. 7 They love to receive respectful greetings as they walk in the marketplaces, and to be called ‘Rabbi.’ 8 “Don’t let anyone call you ‘Rabbi,’ for you have only one teacher, and all of you are equal as brothers and sisters. 9 And don’t address anyone here on earth as ‘Father,’ for only God in heaven is your Father. 10 And don’t let anyone call you ‘Teacher,’ for you have only one teacher, the Messiah. 11 The greatest among you must be a servant. 12 But those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Mt 23:1-12, NLT]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쳤으며 종교적인 의무를 철저히 지켰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경건하고 모범적인 종교 지도자들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신앙 안에 심각한 모순이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지만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도 정작 그 짐을 함께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삶의 진정성은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말씀으로 살아내기 위해 씨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엄격한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올리는 이들을 향해 그들을 따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만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1그 때, 예수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   자신을 증명하려는 마음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모든 일을 한다. 그래서 말씀 상자를 크게 만들고, 옷술을 길게 늘어 뜨린다. 개역개정 성경은 말씀 상자를 ‘경문 띠’로 번역했습니다. 이마와 팔에 매는 가죽 상자인데, 유대인들은 그 안에 말씀을 기록하여 넣고 틈나는 대로 보면서 경건생활에 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말씀 상자를 보여주고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민했던 것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쌓일수록 우리의 말씀 상자도 커질 수 있습니다. 아는 말씀이 많아지고, 맡은 일이 늘어나고, 보이는 경건이 자라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마음에 새겨지지 않은 말씀은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결국 내가 지고 다녀야 하는 짐이 되고, 그 짐은 언젠가 다른 사람의 어깨로 옮겨집니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이 욕구를 전면적으로 부정할수도 없고, 그렇게 살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인정이 나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게 될 때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문제를 단순히 감정이나 숨겨진 내면의 문제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신의 죄와 수치를 감추고 하나님 앞에서 조차 자신을 스스로 지키려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지은 첫 번째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은 후 자신의 수치를 가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물으셨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신 마음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높아지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거룩하게 살아내야 할 자리에서도 작은 일에 서운하며 마음이 상합니다. 그런데 복음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비추며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씀을 알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위선은 지도자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날마다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은혜가 희미해지면 삶의 목적도 흐려지지만,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 주를 신뢰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이끌어 갑니다.

6이들은 잔치에서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7이들은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을 좋아하고, 선생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예수님은 그들이 잔치에서 윗자리를 좋아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문제는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 사람들의 인정을 얻으려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주어진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 권위가 자신을 높이고 인정받는 수단으로 변한 것입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섰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시지 않으셨고 내기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비방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하고만 말씀하셨느냐, 우리하고는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12:2)고 따집니다. 사실상 모세의 자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권위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모세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모세는 매우 겸손했습니다. 모세는 땅 위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권위는 사람들의 인정이나 평가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겸손한 모세를 하나님께서 변호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교만의 본질을 이렇게 말합니다. ‘각 사람의 교만은 다른 이들의 교만과 경쟁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연회장에서 거물급 인사처럼 행세하는 사람을 볼 때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내가 그런 거물급 인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높아짐을 불편하게 여기는 마음 안에 나 역시 그 자리에 서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인정과 지위를 다른 사람이 누리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면 그 안에 있는 내 마음의 욕망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삶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좋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자리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삶은 세상의 평가, 인정,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에 뿌리내리는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깊이 뿌리 내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살아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삶이 사랑 안에서 강하여지고, 또 깊게 뿌리내려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한없고 넓으며, 얼마나 깊고도 높은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엡3:17-18)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나의 가치를 증명해 내야 한다는 부담과 불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정과 시선을 의식할 때 우리의 열심이 사람을 향하게 됩니다. 증명의 짐을 내려놓는 삶은 사람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깊이 뿌리 내리는 삶입니다.

2.   높이시는 분께 맡기라

8그러나 너희는 ‘선생’이라는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선생님은 오직 한 분이고, 너희 모두는 형제들이다. 9그리고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인데, 하늘에 계시다. 10너희는 ‘지도자’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오직 한 분뿐인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선생이나 아버지,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 위에 서려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도자는 오직 한 분뿐인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은 사람답게 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영생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0여러분은 하나님께 각기 다른 은혜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진 종들과 같습니다. 그러니 신실한 종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갖가지 은혜의 선물을 가지고 서로에게 봉사하십시오. 11설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은 사람답게 일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하십시오. 영광과 권능이 영원토록 그분께 있습니다. 아멘. (벧전 4:10-11)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역할과 책임을 맡겨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이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형제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맡아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섬기고 세우라고 주신 책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1너희 가운데 큰 자는,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섬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섬김은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데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힘과 권위를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다른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섬김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풍성히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뜻에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며 참된 쉼을 얻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복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웠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의 짐을 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으뜸이 되려는 자는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말씀하시며 자기 자신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12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고,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높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켜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평생 그 자리로 가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누가 계신지 아는 사람은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지키려 했던 자리와 이름과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나를 위해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묻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신 그 은혜 안에 머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를 빚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다른 사람의 어깨에 짐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지친 사람을 일으키는 말이 되도록, 우리의 직분이 사람 위에 서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자리가 되도록,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 앞에서 기쁘게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성령께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새겨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경건이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높아지려는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담아내는 우리의 삶과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