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제 18주
무엇이 우리를 낮아지게 합니까?
What Makes Us Humble?
빌립보서 2:1-13
1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친절과 동정을 베풀고 있습니까? 2그렇다면 서로 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한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3무슨 일을 할 때, 이기적이거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 주십시오. 4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5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합시다. 6그분은 하나님과 똑같이 높은 분이셨지만, 결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7오히려 높은 자리를 버리시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종과 같이 겸손한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8이 땅에 계신 동안 스스로 낮은 자가 되시며,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버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9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최고로 높은 자리에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10하늘과 땅 위, 땅 아래 있는 모든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심을 선포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12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항상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안, 여러분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곁에 없을 때,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늘 힘쓰기 바랍니다. 13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여러분에게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쉬운성경)
1 Is there any encouragement from belonging to Christ? Any comfort from his love? Any fellowship together in the Spirit? Are your hearts tender and compassionate 2 Then make me truly happy by agreeing wholeheartedly with each other, loving one another, and working together with one mind and purpose. 3 Don’t be selfish; don’t try to impress others. Be humble, thinking of others as better than yourselves. 4 Don’t look out only for your own interests, but take an interest in others, too. 5 You must have the same attitude that Christ Jesus had. 6 Though he was God, he did not think of equality with God as something to cling to. 7 Instead, he gave up his divine privileges; he took the humble position of a slave and was born as a human being. When he appeared in human form, 8 he humbled himself in obedience to God and died a criminal’s death on a cross. 9 Therefore, God elevated him to the place of highest honor and gave him the name above all other names, 10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11 and every tongue declare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12 Dear friends, you always followed my instructions when I was with you. And now that I am away, it is even more important. Work hard to show the results of your salvation, obeying God with deep reverence and fear. 13 For God is working in you, giving you the desire and the power to do what pleases him. [Php 2:1-13, NLT]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 이라는 고백을 늘 품고 살았습니다. 내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고, 내 감정보다 말씀에 순종하며, 내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고백이 점점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죽이려고 애쓰는 것만으로 정말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참 많은 것을 합니다. 새벽에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예배하고, 헌신하고, 봉사합니다. 이런 믿음의 훈련과 형식은 참 중요합니다. 형식은 믿음의 본질을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식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까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솔직하게 들어가 보면 예배의 자리에서는 은혜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지만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 일상의 자리에서 내가 주님을 드러내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바울은 3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이기적인 마음이나 교만한 마음으로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쉬운성경이 “교만한 마음”으로 옮긴 이 말을 개역개정은 “허영”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헬라어로 케노독시아(κενοδοξία)인데, ‘텅 빈 영광’을 뜻합니다. 채우고 또 채워도 남는 것이 없는 영광입니다. 이 텅 빈 영광은 세상의 자리에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장 경건해 보이는 자리에서도 드러납니다. “나는 하나님만 바라보면 된다”는 말은 신실하게 들리지만, 그 말이 또 다른 모습의 고집스런 마음이 됩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기도를 오래 할수록 마음이 단단해져서, 믿음의 잣대로 사람을 쉽게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그랬습니다. 기도의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 기도는 자기를 높이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7권에서 회심 이전의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교만으로 부어올라 당신에게서 멀어졌고, 너무 부풀어 오른 얼굴이 제 눈을 덮어 버렸습니다.” 내가 삶의 중심에 서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야가 가려집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가려진 자리에는 내가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던 기도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도로 바뀌고 내 말이 맞다는 것을, 내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느라 분주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안의 욕심과 교만이 오히려 나를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교만이 성공할 때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깊어지는데, 정작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내 마음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연수가 쌓일수록, 우리는 더 자주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의 의지만으로 내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까? 교만한 마음이 스스로 교만을 이길 수 있습니까? 미움이 가득한 마음이 미움을 이길 수 있습니까? 교만한 마음이 스스로 교만을 이길 수 없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낮아질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우리의 결심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것에서 시작합니다. 쉬운성경은 1절을 이렇게 옮겼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받고 있습니까?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권면(παράκλησις)이 있고, 사랑의 위로가 있고, 성령의 교제(κοινωνία)가 있고, 긍휼과 자비가 있습니다.라는 선언입니다. 내 마음이 메마른 날에도 그 은혜는 실재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이미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2그렇다면 서로 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한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3무슨 일을 할 때, 이기적이거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순종하기 시작하면,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대로 사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설수록 오히려 내 안에 있는 교만과 자기중심성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게 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라는 말은 헬라어로 타페이노프로쉬네(ταπεινοφροσύνη)입니다. ‘낮다’는 뜻의 타페이노스(ταπεινός) 와 ‘마음과 생각’을 가리키는 프렌(φρήν)의 합성어입니다. 기독교의 겸손은 내 삶의 중심을 예수님께 내어 드리고,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하라고 말합니다.
이 낮아짐은 바울 시대 헬라-로마 사회에서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비천함, 노예의 품성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명예와 지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낮아짐을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으로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이 높은 분이시면서도, 그 높으심을 자기를 위해 움켜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종의 모습을 입으시고, 스스로 낮은 자가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가 져야 할 죄를 대신 지신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과한 성도는 허영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바울은 4절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교만으로 부풀어 오른 눈을 내려놓고, 그 사람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필요를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함께 서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다가 갈등을 겪었던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가장 가까운 사이, 관계, 공동체 안에서 시험받습니다.
바울은 5절에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합시다.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흉내내는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시고 십자가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의 하나됨을 가로막는 내 안의 자기중심성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빛 아래에서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삶은 나 자신을 더 몰아 붙이는 삶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며 오늘의 한 걸음을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 길에서 억울함을 만나고 곤고한 날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을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지신 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인자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막 10:45) 우리의 섬김이 지칠 때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섬김의 시작은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 섬김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것은 인정받기 위해서도, 내 믿음의 크기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랑의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12절 보시겠습니다. 12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항상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안, 여러분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곁에 없을 때,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늘 힘쓰기 바랍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던 성도들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 내는 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원을 얻기 위해 애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구원이 우리의 생각과 관계와 선택 속에서 실제로 드러나도록 두려움과 떨림으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두려움과 떨림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경외의 태도입니다. 또한 빌립보 교우들은 바울이 곁에 있을 때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곁에 없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사람이 보고 있을 때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자녀를 양육할 때, 부모로서의 내 권위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지 않았습니까? 배우자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릴 때, 그 안에 내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음은 없었습니까? 밖에서는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 앞에서는 내 뜻을 내려놓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옳고 그름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누구 앞에 서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의 길을 따라 순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주님을 신뢰하며 순종의 걸음 지속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의 길은 나를 증명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며 걷는 길입니다. 주님 가신 길을 따라 걷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구절이 눈에 들어 옵니다. 13절입니다.
13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여러분에게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원하게 하시고 행할 힘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는 그 힘을 의지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이 낮아짐의 길은 어떻게 끝났습니까? 9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최고로 높은 자리에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10하늘과 땅 위, 땅 아래 있는 모든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심을 선포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걸으신 그 길이 옳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이 가장 수치스럽다고 여긴 종의 길, 십자가의 길을 하나님께서 높이셨습니다.
주가 지신 십자가는 가장 수치스런 죽음을 생명의 자리로 바꾸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낮아지게 합니까? 굳은 결심도, 더 오래 참는 인내도 아닙니다. 우리를 낮아지게 하는 것은, 나를 위해 십자가의 자리까지 스스로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의 낮아지심 앞에서 우리는 주님을 더욱 신뢰할 힘을 얻게 됩니다. 지금도 주를 신뢰하는 자들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행함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고백한 이 말씀이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내 몸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하시려고 자기몸을 바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