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제 16주
여전히 두려워 하는 이에게
Still Trembling Before Grace
창세기 50:15-21
15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이렇게 말하였다. “요셉이 아직도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서 우리가 전에 그에게 잘못한 모든 일에 대해 앙갚음을 하면 어쩌나?” 16그리하여 그들은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짓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네가 형들이 저지른 죄와 잘못을 다 용서해 주기 바란다.” 그러니 이제 우리 아버지께서 섬기시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울었다. 18그런 다음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찾아와 그 앞에 몸을 던져 엎드리며 말하였다. “우리는 아우님의 종입니다.” 19그러나 요셉은 이렇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형님들에게 벌을 주겠습니까? 20형님들은 저를 해칠 생각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처럼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게 하려고 하신 일입니다. 21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형님들과 아이들을 잘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그는 형들을 안심시키고 다정한 말로 그들을 대하였다. (읽기쉬운성경)
15 But now that their father was dead, Joseph’s brothers became fearful. “Now Joseph will show his anger and pay us back for all the wrong we did to him,” they said.16 So they sent this message to Joseph: “Before your father died, he instructed us17 to say to you: ‘Please forgive your brothers for the great wrong they did to you—for their sin in treating you so cruelly.’ So we, the servants of the God of your father, beg you to forgive our sin.” When Joseph received the message, he broke down and wept.18 Then his brothers came and threw themselves down before Joseph. “Look, we are your slaves!” they said.19 But Joseph replied, “Don’t be afraid of me. Am I God, that I can punish you?20 You intended to harm me, but God intended it all for good. He brought me to this position so I could save the lives of many people.21 No, don’t be afraid. I will continue to take care of you and your children.” So he reassured them by speaking kindly to them. [Ge 50:15-21, NLT]
어릴 적 처음으로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입체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정작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없어 불로장생의 약을 찾아 온 나라를 뒤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영생을 향한 황제의 갈망과 무덤의 한 장면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자신의 생명은 스스로 지킬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고 가져도 자기 인생을 뜻대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자, 또다시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을 살려준 요셉의 은혜보다 과거의 죄가 더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책감은 받은 은혜를 의심하게 하며 죄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합니다.
첫째, 과거의 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십시오.
요셉은 열두 아들 가운데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아들입니다. 형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열일곱 살 요셉이 자신의 꿈 이야기까지 형들에게 전하자, 그 미움은 더 깊어 졌습니다. 결국 형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은 이십에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노예가 되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이 흘러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고, 기근 중에 양식을 구하러 내려온 형들을 다시 만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끌어안고 울며, 자신이 팔려온 일조차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고백했습니다. 형들이 한 일은 분명 악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넘어 일하시며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이후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온 가족을 애굽으로 불러들입니다. 가족은 다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들은 다시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이 자신들의 과거의 죄를 기억하고 앙갚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죄가 우리 안에 남긴 두려움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후에도 다시 불쑥불쑥 우리의 마음에 찾아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온 사람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위기의 순간에는 과거의 죄를 더 크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붙들어 주던 안전한 울타리가 흔들리는 순간,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두려움이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15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이렇게 말하였다. “요셉이 아직도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서 우리가 전에 그에게 잘못한 모든 일에 대해 앙갚음을 하면 어쩌나?” 16그리하여 그들은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여전히 죄가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은 요셉의 인생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20 형님들은 저를 해칠 생각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처럼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게 하려고 하신 일입니다.
20절 원어를 보면, ‘형님들은 저를 해칠 생각으로’에서 ‘생각으로’와,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에서 ‘이루시려고’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같은 동사, 같은 어근입니다. ‘하샤브'(חשׁב)는 ‘계획하다, 궁리하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해치려 ‘궁리한’ 그 계획과, 하나님이 많은 생명을 살리시려 ‘계획하신’ 그 계획이, 원어에서는 동일한 단어로 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들의 악한 의도를 선한 것으로 바꾸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악은 여전히 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죄라고 부르시면서도 회복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 정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형들의 악한 계획을 넘어 생명을 살리신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생명을 살리십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우리가 그 은혜를 다시 삶으로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그 가슴앓이를 알아갈수록, 우리 안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조금씩 더 깊어져 갑니다.
헨리 나우웬은 『헨리 나우웬의 공동체』에서 용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용서란 상대를 하나님이 아닌 존재로 그냥 두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사람들에게 매달려, 그들이 줄 수 없는 애정과 사랑을 기대한다. ‘나를 사랑해 달라’ 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폭력과 요구와 조종을 일삼게 된다. 그래서 서로 용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용서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답게 생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든지 죄 지은 사람이 있거든, 신령함을 지닌 여러분이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바울은 지금의 죄를, 오늘 본문은 지나간 죄를 다룹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은혜라는 이름으로 덮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죄 지은 사람을 정죄하여 밀어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죄는 분명하게 다루되 온유함으로 회복을 돕고, 동시에 나 자신도 살피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용서받는 확신으로 평생 정결한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자녀 안에서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강력하게 이끄시는 복음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미움이 참 많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가 오해가 되기도 하고, 서로의 실수와 부족함이 관계의 깨어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동체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지만 과거의 죄 안에 가두어서도 안됩니다. 잘못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회복과 화해의 길을 선택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삶으로 나타내는 모습이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정체성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짓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네가 형들이 저지른 죄와 잘못을 다 용서해 주기 바란다.” 그러니 이제 우리 아버지께서 섬기시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울었다.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했지만, 창세기 49장의 야곱의 유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형들이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용서를 구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이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저는 요셉의 눈물을 안타까움의 눈물로 이해합니다. 그것은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하는 형들을 향한 긍휼의 눈물이었을 것이고, 아버지를 잃은 후의 고독한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형들은 이미 용서받았고 이집트에 와서 함께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전 것들은 지나갔고, 보십시오. 새 것들이 와 있습니다.” (고후 5:16-17)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삶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화해의 사명을 따라 살아갑니다. 삶에 고난과 두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께서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상처는 우리를 상황과 사람에게 집중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쉽게 용서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품을 만큼 우리의 마음이 넓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에서 먼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을 때, 우리는 과거의 죄가 우리 안에 남긴 두려움에 더 이상 매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상처의 깊이와 삶의 상황에 따라 회복의 과정과 시간이 다를 수 있겠지만 죄와 죽음을 이기신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밝히며 했던 고백이 바로 이것을 보여줍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악을 행했다고 생각했지만, 요셉은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그리고 또 다시 형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때의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9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형님들에게 벌을 주겠습니까?” 요셉은 자신이 심판자의 자리에 설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다시 한번 말합니다. 2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형님들과 아이들을 잘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준 것은 배신과 시기였지만, 요셉은 형들의 두려움을 안심시키고, 한걸음 더 나아가 형들의 아이들을 보살펴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형들과 함께 살아갈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선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더 큰 품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먼저 사랑과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받았다면, 그 은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조금씩 열매를 맺어 가야 합니다. 여전히 상처가 있고 용서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미움과 갈등에만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내어 드리며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용서는 상처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관계의 회복도 한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 가실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두려움이 하나님의 뜻보다 크지 않고, 우리의 아픔과 상처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만 바라보며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받은 상처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개역개정) 심판은 우리의 자리가 아닙니다. 여전히 두려워 하고 있습니까? 과거의 죄와 상처안에 붙들려 있습니까?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현실이 고단하고 마음이 연약할 때에도, 은혜로 생명을 살리고 화해의 길을 걸으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