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다섯번째 주일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God Did Not Stop
삼상 16:1-7, 12-13
1 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울 때문에 언제까지 슬퍼할 작정이냐? 나는 이미 그를 버렸다. 사울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다. 이제 너는 기름을 뿔에 가득 채워 베들레헴으로 내려가서 이새라는 사람을 만나라. 내가 그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뽑아 놓았다.” 2 사무엘이 말했다.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사울이 그 사실을 알면 당장 저를 죽일 것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주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다.’라고 말하여라. 3 제사를 드릴 때,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초청하여라. 네가 그 다음에 할 일은 그때 가서 가르쳐 주겠다. 너는 내가 일러준 그 사람에게 나를 대신하여 기름을 붓게 될 것이다.” 4 ○ 사무엘은 주의 말씀대로 따랐다.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이르자, 성읍의 장로들이 두려워하면서 그를 맞았다.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5 사무엘이 대답했다. “그래요, 좋은 일이오. 주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이곳에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서 몸을 깨끗이 씻고, 나와 함께 제사를 드리도록 합시다.” 또한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에게도 몸을 깨끗하게 한 후에 제사에 참석하라고 초대했다. 6 이새의 아들들이 오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주께서 기름을 부으시려고 선택하신 자로구나!’ 7 그러나 주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용모와 키만 가지고 판단하지 말아라. 그는 내가 정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외모를 보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12 이새가 사람을 급히 보내어 막내아들을 데려왔다. 그는 눈에 총기가 있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이다! 그가 바로 내가 택한 사람이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13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을 가져다가 그의 형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날부터 주의 영이 다윗을 사로잡았다. 그런 뒤, 사무엘은 그곳을 떠나 라마로 돌아갔다. (쉬운말 성경)
1 Now the Lord said to Samuel, “You have mourned long enough for Saul. I have rejected him as king of Israel, so fill your flask with olive oil and go to Bethlehem. Find a man named Jesse who lives there, for I have selected one of his sons to be my king.”
2 But Samuel asked, “How can I do that? If Saul hears about it, he will kill me.”
“Take a heifer with you,” the Lord replied, “and say that you have come to make a sacrifice to the Lord. 3 Invite Jesse to the sacrifice, and I will show you which of his sons to anoint for me.”
4 So Samuel did as the Lord instructed. When he arrived at Bethlehem, the elders of the town came trembling to meet him. “What’s wrong?” they asked. “Do you come in peace?”
5 “Yes,” Samuel replied. “I have come to sacrifice to the Lord. Purify yourselves and come with me to the sacrifice.” Then Samuel performed the purification rite for Jesse and his sons and invited them to the sacrifice, too.
6 When they arrived, Samuel took one look at Eliab and thought, “Surely this is the Lord’s anointed!”
7 But the Lord said to Samuel, “Don’t judge by his appearance or height, for I have rejected him. The Lord doesn’t see things the way you see them. People judge by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12 So Jesse sent for him. He was dark and handsome, with beautiful eyes.
And the Lord said, “This is the one; anoint him.” 13 So as David stood there among his brothers, Samuel took the flask of olive oil he had brought and anointed David with the oil. And the Spirit of the Lord came powerfully upon David from that day on. Then Samuel returned to Ramah.(New Living Translation)
최근 상영 중인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어린 단종이 왕에서 쫓겨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살아가는 인간 ‘이홍위’. 더 이상 왕이 아닌 한 죄인을 지켜야 하면서도 감시해야 하는 마을 촌장 엄흥도.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시선을 통해, 비극적인 역사 앞에 선 한 인간의 고뇌를 깊이 있게 그러낸 작품입니다. 단종은 고립된 유배지에서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게 되고, 용기를 내지만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역사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 무력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왕을 잃은 자리에 서 있는 선지자 사무엘이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사무엘상 16장은 다윗이라는 한 사람이 역사의 무대에 오르게 되는 장면이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기름부으셨고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의 자리에서 이미 길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선지자 사무엘의 깊은 애통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을 버리셨다는 사실 앞에서 사무엘은 깊은 애통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무엘이 슬픔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은 마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끝나버린 것처럼 슬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슬퍼하는 사무엘을 일으키시고 두려워하는 사무엘에게 믿음의 길을 예비해주셨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일으키시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사울 때문에 언제까지 슬퍼할 작정이냐? 나는 이미 그를 버렸다. 사울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다. 이제 너는 기름을 뿔에 가득 채워 베들레헴으로 내려가서 이새라는 사람을 만나라. 내가 그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뽑아 놓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사무엘이 슬퍼하는 동안에도 이미 다음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본문은 단순히 사무엘의 슬픔만이 아니라 지나친 자기 확신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주께서 기름을 부으실 자라고 확신했습니다. 엘리압은 사울왕 처럼 키도 크고 외모도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하시며 나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나의 슬픔, 나의 확신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눈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방향을 잃어버린 확신이 순종이 아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실패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세우셨습니다. 사울이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만약 십자가에서 끝났다면 우리에게 소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던 그 자리에서 부활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인간적 감정이나 확신이 하나님의 뜻을 가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사무엘의 지나친 슬픔과 자기 확신으로 분별력이 흐려졌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속에 살아 간 로렌스 형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사는 삶보다 더 달콤하고 기쁜 삶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실천하고 체험하는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동기에서 그것을 연습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이 연습에서 우리가 구해야 할 동기는 오직 하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원하시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주의 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슬픔 자체를 책망한 것이 아니라, 슬픔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너가 언제까지 슬퍼할 작정이냐’라는 구절에서 슬픔 ‘너가 언제까지 슬퍼할 작정이냐‘라는 구절에서 슬픔 ‘아발’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를 표현할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야곱이 사랑했던 요셉이 짐승들의 밥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여러날 동안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슬퍼할때 쓰인 단어입니다.(창 37:34) 사무엘은 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의 운명이 끝난 것처럼 애통하고 있었을때, 하나님은 그를 슬픔에 머물러 있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기름을 뿔에 채우고 가라.”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두려움 앞에 선 우리에게 믿음의 걸음을 열어 주십니다.
이민 땅에서 살아가는 삶에는 저마다의 무게가 있습니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말씀의 평안보다 불안이 먼저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가 하나님의 음성보다 더 크게 들리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흔들립니다.
사무엘은 어린 시절 “주님,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고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던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사울이 그 사실을 알면 당장 저를 죽일 것입니다.”(2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두려워 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사울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너는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주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다.’라고 말하여라. 제사를 드릴 때,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초청하여라. 네가 그 다음에 할 일은 그때 가서 가르쳐 주겠다. 너는 내가 일러준 그 사람에게 나를 대신하여 기름을 붓게 될 것이다.”(3절) 하나님은 전부를 보여 주시지 않았지만 두려움 가운데에서도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게 하셨습니다.
이민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해오신 분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 외국에 나왔을 때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고 영어가 서툴고 문화가 다른 곳에서 한달 한달의 렌트비를 내기 위해 일했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살아낸 시간의 이야기였습니다. 주일에 예배에 오는 시간만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한주를 치열하게 살았노라고, 알고 보고 온 길이 아니라 매일의 하루를 살아낸 시간이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주어진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믿음의 걸음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을 이긴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영적으로 승리를 경험한 후 그는 이세벨의 한마디에 두려움에 빠져 더 이상 살 수가 없으니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은 쓰러진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어 먹이시고 재우시고 다시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가 아닌 불안과 절망의 자리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든든한 힘이 될 때까지 말씀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을 떼어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우리의 경험도 아니고 우리의 노력도 아닙니다. “다음에 할 일은 그때 가서 가르쳐 주겠다.”(3절) 이 말씀은 두려움 앞에 선 우리에게 믿음의 걸음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사람을 세우십니다.
16:7 그러나 주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용모와 키만 가지고 판단하지 말아라. 그는 내가 정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외모를 보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소년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새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맏아들 엘리압은 사울을 이어 왕이 될 만한 모습을 갖춘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는 내가 정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소년 다윗을 데려왔을 때, “바로 이 사람이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선택받은 것은 그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앞에 선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골리앗 앞에서의 고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과 사울 왕까지도 주저하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골리앗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습니다. 그가 일상에서 양을 지키며 던졌던 그 물맷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하셨습니다. (삼상 17:45)
같은 환경이라도 누구는 선택받고 누구는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차이는 환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삶의 중심과 방향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특별한 언약을 맺으시고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악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끝까지 이루어 가셨습니다. 합리적인 이성도 성령의 뜨거운 경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목적이 사라질 때 우리는 곁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인간적인 정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 머물지 않으면 교만해지기 쉽고, 경건의 자리를 날마다 세우지 않으면 거룩함으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것은 모든 길을 다 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바로 세워져 매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새의 막내 아들을 보시고 ‘바로 이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의 걸음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공동체도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넘어지고 실수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매일 매일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의 자리에서 우리를 일으키시고 두려움의 자리에서 길을 보여주시고 흩어졌던 시선을 주님께로 돌려 우리를 세우십니다. 사무엘이 애통할 때 이미 길을 예비하고 계셨고 두려워 할 때 나아가야 할 한 걸음을 보여주셨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미 보고 계시고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믿음의 여정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인도하심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