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01 2026 주일설교

사순절 두번째 주일

고개를 들어 바라보라

Look Up and Live

요한복음 3:8-15

3:8 바람은 제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법이오. 당신은 바람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 다음에는 그 바람이 어디로 갈 것인지 알 수 없소.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도 이와 같소.” 3:9 니고데모가 다시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3: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오? 3:11 내가 진정으로 당신에게 말하겠소.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하고, 또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증언하오.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소. 3:12 내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해도 당신들이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면 당신들이 어찌 믿을 수 있겠소? 3: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외에는 아무도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소. 3:14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 뱀을 높이 쳐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높이 들려져야 하오. 3:15 그것은, 인자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오.(쉬운말 성경)

8 The wind blows wherever it wants. Just as you can hear the wind but can’t tell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is going, so you can’t explain how people are born of the Spirit.” 9 “How are these things possible?” Nicodemus asked. 10 Jesus replied, “You are a respected Jewish teacher, and yet you don’t understand these things? 11 I assure you, we tell you what we know and have seen, and yet you won’t believe our testimony. 12 But if you don’t believe me when I tell you about earthly things, how can you possibly believe if I tell you about heavenly things? 13 No one has ever gone to heaven and returned. But the Son of Man[e] has come down from heaven. 14 And as Moses lifted up the bronze snake on a pole in the wilderness,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15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will have eternal life.(New Living Translation)

지난주 창세기 3장을 통해 뱀에게 유혹당한 아담과 하와를 보았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그 탐스러운 열매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만은 ‘먹지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이후 단단한 사람도 냉정한 사람도 순하고 착한 사람도 죄의 기원 앞에서 누구도 벗어날 사람이 없기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걷자고 권면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는 유대사회에서 유력한 지도자였고, 율법교육도 철저하게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니고데모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간 것은 그의 영적인 어둠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표적을 보고(3:2)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알았기에 그 말씀을 더 알고 싶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찾아 온 밤이 우리의 인생에도 있을 것입니다. 생각했던 답이 흔들리고 낯설게 느껴지는 밤, 하나님의 뜻이 느껴지지 않는 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생의 밤에 찾아오시며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초대하십니다. 신앙의 연수가 쌓이고 성경적 지식이 쌓일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식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깨어 살아가라는 도전을 주십니다. 내게 익숙한 예배의 자리, 말씀, 기도의 자리가 더 이상 새롭지 않다고 느껴질 때에도 성령의 바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독자적으로 붑니다. 스스로 시간을 결정하기 때문에 언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난 사람이 이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야고보 사도는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다’라고 표현하고(야 1:18), 바울은 창조하다의 뜻을 담아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단어로 묘사합니다. 그렇다면 거듭남이 무엇일까요?

1.거듭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 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 “내가 진정으로 당신에게 말하겠소.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남, 아노덴(ἄνωθεν)이라는 단어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다시’라는 뜻입니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율법을 교육받은 니고데모는 구원을 위해 무엇을 쌓아올려야 한다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다시”라는 것은 다시는 삶의 중심이 이전처럼 살수 없도록 바뀐것입니다. 아노덴의 두번째 의미는 ‘위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다는 말씀처럼 위로 부터 다시 주어지는 영적인 삶을 의미입니다.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깊은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0.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끝까지 스스로 빠져나오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결국 나올 수 없었습니다. 내 삶이 지금 척박하고 절박하든, 평온하고 아무 문제가 없든 성경은 인간이 영적으로 죽어 있어서(엡 2:1),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손을 내밀어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이것이 곧 거듭남입니다.

또 거듭남은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형질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그 순간 아무것도 스스로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이 심겨졌기에 세상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 생명의 원리를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점점 알아가듯이, 거듭난 사람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고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인자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오. 진실로 그렇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소. 그것은, 누구든지 그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오.”(요 3:15-16) 예수님을 믿는 누구든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라는 말이 가끔 마음에 걸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더 열심히 하고 노력한 사람이 인정 받고 성과를 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으로 신앙의 자리에 서면 불편함이 생길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더 오래 믿었고, 더 많이 헌신했고, 더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그 자리에 서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가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믿음은 내가 쌓아 올린 것을 들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헌신과 내 공로를 내려놓고 그분을 붙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는 우리의 자격과 공로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경험하고 이해하면 대부분의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믿음은 내 공로로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내 삶의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안에 감추어져 있던 나의 의로움과 교만을 내려놓고 위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삶속에서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연약해지는 그 자리에 십자가를 세워주셨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 스스로 삶의 문턱을 경험하고 실수를 배우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때가 옵니다. 그때 부모는 아이의 부족함을 대신 채워줄 수 없고 문턱을 대신 넘어줄 수도 없습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말없이 안아주고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살아가지만 결국 품에 안고 기도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를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그 자리, 실수하여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더 깊이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능통한 니고데모에게 그가 알고 있었던 민수기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3:14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 뱀을 높이 쳐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높이 들려져야 하오. 3:15 그것은, 인자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오.”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장대에 매단 것은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죽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광야의 뱀에게 물린 것은 심판의 자리 한가운데에 있는 백성들을 위해 구원의 길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릴수만 있다면 예수께서 기꺼이 십자가에 달릴것이니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이뤄 놓으신 방법을 믿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들을 만납니다. 그 불편한 자리가 우리를 멈추게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미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을 닮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이 생명의 원리가 계속 작동이 됩니다. 그래서 더 깊이 은혜를 발견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들려지다’ 휩소데나이 (ὑψωθῆναι)는 단순히 위로 올려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 그것이 곧 높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설교 하시면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조차 이것이 어떤 죽음을 가리키는지 물었을 만큼, 십자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오? 3:11 내가 진정으로 당신에게 말하겠소.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하고, 또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증언하오.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소. 3:12 내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해도 당신들이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면 당신들이 어찌 믿을 수 있겠소?

쌓아온 지식으로는 이 일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작하신 이 일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영적인 어둠 속에서 어디로 가는지 조차 알지 못하던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되었기에 십자가의 능력에 이끌림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쌓아 올려서 하나님의 뜻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 길에서 불평과 낙심의 자리, 스스로 해결할수 없는 자리에 놓일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실패하면 안되고 약해지지 말라고 흔들리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광야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버티고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삶의 민낯을 만나는 자리, 연약함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됩니다. 환경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고개를 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분명 로마의 처형 도구였지만 하나님은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믿었는지, 잘 살아 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고개를 들었는지를 보십니다. 십자가에 달린 인자를 믿는 순간, 이미 시작되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이 일을 도우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바람을 만들지 못하지만 그 바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가장 낮은 자리가 영광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시작된 생명을 품고 걷는 사람들입니다. 고개를 들고 십자가를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