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 후 마지막 주/ 변화주일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Witnessed with Our Own Eyes
베드로후서 1:16~21
16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여러분에게 전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지어 낸 근사한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위엄 있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17 장엄한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그로 인해 무척 기쁘다.”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셨습니다. 18 우리는 그 음성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거룩한 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 들은 그 음성은 분명히 하늘로부터 울려 온 것이었습니다. 19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예언자들이 전한 말씀을 보다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 말씀을 가까이 하고 따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그들이 전해 준 말씀은 어두움을 환히 밝혀 주는 빛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빛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동이 트고, 아침 샛별이 환히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을 밝혀 줄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분명히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어떠한 예언의 말씀도 예언자가 마음대로 해석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며, 21사람의 뜻대로 말하고 싶은 것을 적어 놓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 놓았습니다. (쉬운성경)
16 For we were not making up clever stories when we told you about the powerful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We saw his majestic splendor with our own eyes 17 when he received honor and glory from God the Father. The voice from the majestic glory of God said to him, “This is my dearly loved Son, who brings me great joy.”[f] 18 We ourselves heard that voice from heaven when we were with him on the holy mountain. 19 Because of that experience, we have even greater confidence in the message proclaimed by the prophets. You must pay close attention to what they wrote, for their words are like a lamp shining in a dark place—until the Day dawns, and Christ the Morning Star shines[g] in your hearts. 20 Above all, you must realize that no prophecy in Scripture ever came from the prophet’s own understanding,[h] 21 or from human initiative. No, those prophets were moved by the Holy Spirit, and they spoke from God.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날은 정보가 넘쳐나지만 오히려 혼란스럽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정보는 많아졌는데 진실을 찾는 것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가 선호하는 영상들을 보여주고 내가 걸어온 길. 내 의견과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만 머물게 합니다. 더 많이 알고 볼수록 불안해 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의 확신이 더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가리고 시야를 좁아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쓰던 그 때에도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이 복음을 흔들었고 성도들의 마음에는 깊은 의심이 들어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은 목격된 진리라고 선언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목격된 진리입니다. (16-19절)
성도들에게 지도는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은 수천년에 걸쳐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나침반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기록자로 사람을 삼으셨지만 인간의 뜻을 배제한채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도록 성령을 통해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후서1장 16-21절은 그 말씀의 확실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를 기록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직접 올라갔던 변화산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증언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셨는데, 그곳에서 주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영광스런 예수를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여기 있으니 정말로 좋습니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초막 세 채를 지어서 하나는 주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마 17:1-4) 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지만 그 얼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광채를 보았고 하늘로부터 직접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변화산 이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지만 산에서 내려온 이후에 예수께서 기도하실때 육신이 피곤해서 잠들어 있었고, 대제사장의 뜰에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실패속에서도 말씀이 성취된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믿음의 방향은 분명해졌지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로 결단할때에도 밤이 새도록 잡은 것이 없었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을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혔던 것도 말씀의 경험입니다.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오실때에도 말씀을 믿고 물 위를 걸었지만 바람을 보고 두려워 물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토대로 유언처럼 남긴 편지가 오늘 본문입니다. 1장 13절 14절을 보시면, ” 1:13 내가 이 육신의 천막에 살고 있는 동안만큼은,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 늘 새롭게 해주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1:14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보여 주신 대로, 내가 이 육신의 천막을 벗고 세상을 떠나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가장 강조하고 싶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희망의 신학’을 전개한 독일의 개혁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은 말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세워진 역사 안에서 살아간다. 그리스도를 생생히 회상함으로써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게 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활기차게 희망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회상하게 된다. 이 회상과 희망의 현재적인 능력을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경험이 어떻게 미래의 확신이 될수 있습니까? 교회는 완성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기록된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 위에 다시 일어서는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을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이 익명의 목격자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며 시작합니다.(눅1:2)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졌다고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 16절로 19절을 보시겠습니다. “16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여러분에게 전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지어 낸 근사한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위엄 있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17 장엄한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그로 인해 무척 기쁘다.”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셨습니다. 18 우리는 그 음성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거룩한 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 들은 그 음성은 분명히 하늘로부터 울려 온 것이었습니다. 19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예언자들이 전한 말씀을 보다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 말씀을 가까이 하고 따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그들이 전해 준 말씀은 어두움을 환히 밝혀 주는 빛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빛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동이 트고, 아침 샛별이 환히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을 밝혀 줄 것입니다.” 어둠은 아직 완성되지 않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입니다. 샛별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의미합니다. 완성될 마지막 날입니다. 등불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말씀입니다. 즉 성도는 등불을 들고 세상을 밝히며 샛별이 환히 떠오를 때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권위를 믿고 믿음의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2.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20-21절)
성령께서는 말씀을 의지할때 실패속에서도 깨닫게 하십니다. 문제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알아도 베드로처럼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신뢰한다면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영적 훈련입니다. 은혜는 받는데 용서할 힘은 사라지고 사랑은 배웠는데 사랑할 힘은 없습니다. 부르심의 사명 앞에서 거룩한 부담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섬김의 자리에서 나의 정성과 시간을 내어드리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롬7:19)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무너진다고 생각했는데, 십자가로 나아가지 않고 여전히 내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도, 주님을 위해 나의 시간을 내어 드리는 일도 내 힘이 아니라 영적인 공급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이번주 수요일부터 우리는 사순절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사순절은 세상속에서 살아가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서 주님을 깊이 바라보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의 자리는 단순히 개인의 영성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다시 붙들어 주는 시간입니다. 더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한 결단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믿음의 성도가 되는 시간입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의 차이에서 우리의 약함을 발견합니다. 그 속에서 실패하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실패와 아픔의 자리도 신앙의 여정의 과정입니다.
각자의 기도의 자리에서 사순절 시기에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변화산에 머물자는 베드로의 제안을 거절하시고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십자가의 길로 가셔야 했습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또한 그 길은 부활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상처와 고통, 비난과 오해를 온 몸으로 견뎌야 했던 자리를 지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셔야 했던 자리였습니다.
사순절 40일간의 시간은 우리가 사랑하고 믿는 예수께서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신 그 길을 동참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깊은 어둠의 시간속에서 우리의 내면 깊이 감춰둔 죄가 드러나고, 깨닫지 못했던 진리를 재발견하는 시간이 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힘은 언제나 무너지기 쉽고, 누군가 뾰족한 말로 건드리면 터지는 물풍선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경건은 우리의 연약함을 붙들어 줍니다. 경건의 훈련을 통해 나의 죄를 마주하고 연약함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경건은 우리의 마음이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기쁨으로 찬양과 감사의 자리에 살게 합니다.
인생에 간증이 많은 사람을 보면,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손이 인도하심을 깨닫기 때문에 그 사람들 곁에 있으면 함께 있는 사람도 기쁨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땅속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경제적인 불안함이 있습니다. 믿음의 정체성의 혼란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낯선 땅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며 두려움 속에 있을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이 자리에 보내시고 살아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청년의 때에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고 공동체 안에서 쌓여가던 신앙이 결혼을 하고 현실과 부딪힙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함께여서 더 단단해질 것 같지만 같이 무너질 때도 많습니다. 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기도할 시간도 봉사할 여력도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내가 살아온 삶의 패턴을 내려놓고 경건함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관계 속에서의 반복되는 상처, 영혼의 갈증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20 그러므로 분명히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어떠한 예언의 말씀도 예언자가 마음대로 해석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며, “사람의 뜻대로 말하고 싶은 것을 적어 놓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 놓았습니다.”(벧후1:20-21)
우리는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말씀을 붙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미 주어진 진리는 충분하고 완전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죄책감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다릅니다. 복음은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여 우리를 살리고 회복하게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남겨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될 뿐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걸어가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이제 우리가 들고 있던 믿음의 거울의 방향을 나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선 나를 비추어야 합니다. 사순절의 40일은 완벽한 성도로 살아가자는 권면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십자가를 다시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을 비추며 함께 걸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길은 주님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절대 넘어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길입니다. 옆에 앉아있는 지체들, 오랜 세월 함께 걸어준 신앙의 선배들, 우리의 걸음을 함께 따라오는 다음 세대들과 함께 걷게 하십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됨을 배우는 시간이 바로 함께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은혜는 우리 안에 어둠이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십자가의 은혜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날이 밝기도 전에 한적한 곳으로 홀로 나아가 기도하신 그 자리, 그 은혜가 지금 우리가 찾아가야 할 자리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진짜 부모의 마음을 알아갈 때 성령이 인내를 가르쳐줍니다. 우울하고 외로워 길을 잃고 헤매일 때 성령이 소망과 희망을 안겨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의 길을 따라갈 때 우리의 어두웠던 밤을 비추는 등불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말씀의 등불을 켜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기쁨으로 믿음의 경주를 함께 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