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11 2026 주일설교

예배로 살아가게 하는 힘 (POWER) 시리즈

2주: ‘순종’ 예배를 살아내는 힘

Week 2: ‘Obedience’ Living Out Worship Through Obedience

창세기 4:1-7

4:1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가지니,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가인을 낳고 말했다. “주께서 돌봐주셔서 내가 남자아이를 얻었구나.” 4:2 하와는 또 가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치는 목자가 되었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사꾼이 되었다. 4:3 세월이 흘렀다.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께 제물로 바쳤다. 4:4 아벨도 자기 양의 첫 새끼를 잡아, 그중 가장 기름진 부분을 주께 제물로 바쳤다. 주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다. 4:5 그러나 주께서는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가인은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4:6 ○ 주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 어째서 네 얼굴빛이 달라졌느냐? 4:7 네 행실이 바르다면,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다가 너를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그러면 죄가 너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쉬운말 성경)

1 Now Adam[a] had sexual relations with his wife, Eve, and she became pregnant. When she gave birth to Cain, she said, “With the Lord’s help, I have produced[b] a man!” 2 Later she gave birth to his brother and named him Abel. When they grew up, Abel became a shepherd, while Cain cultivated the ground. 3 When it was time for the harvest, Cain presented some of his crops as a gift to the Lord. 4 Abel also brought a gift—the best portions of the firstborn lambs from his flock. The Lord accepted Abel and his gift, 5 but he did not accept Cain and his gift. This made Cain very angry, and he looked dejected. 6 “Why are you so angry?” the Lord asked Cain. “Why do you look so dejected? 7 You will be accepted if you do what is right. But if you refuse to do what is right, then watch out! Sin is crouching at the door, eager to control you. But you must subdue it and be its master.”(New Living Translation)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낙원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진정한 낙원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나기 위해 한 길을 여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배였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자리에서도 인간은 다시 갈라집니다. 가인은 제물을 드렸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죄의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7절에 보시면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다가 너를 집어 삼키려 할 것이다.”라고 기록합니다. 죄가 ‘도사리다’라는 로베츠(רוֹבֵץ)라는 단어는 맹수가 상대를 공격하여 일격에 쓰러뜨리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죄가 문 앞에 도사리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는 기다리고 있다가 인생을 통째로 삼키는 것입니다. 매주일 일손을 내려놓고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도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힘을 얻기 위함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의 차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둡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11:4 믿음으로 아벨은 형 가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바친 믿음의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면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벨은 믿음으로 제물을 바침으로써, 그 제물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권세를 누리던 사울 왕에게 하나님은 ‘너는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명령의 일부만 따르고, 일부는 남겼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묻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켰습니까?’ 사울은 대답합니다. ‘예, 제가 살려서 갖고온 좋은 가축들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남겼다’라고 변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전히 순종하지 않은 그의 제사와 고백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은 간밤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울왕에게 전합니다.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소? 번제물과 화목제물이겠소, 아니면 주께 순종하는 것이겠소? 주께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고, 주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윌터 부르그만은 복음의 공공선이라는 책에서 안식일의 핵심은 일을 멈추는 것이고  개인적인 행복만 끝없이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그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개인적인 만족과 개인의 구원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 가정과 사회속에서 선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순종이라는 단어가 수동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역동적인 행동이며,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힘을 얻는 비결입니다. 2026년 예배에 전심을 다하는 성도들의 순종의 삶에 하나님이 주신 복과 능력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없는 예배

우리는 예배를 통해 죄를 대적할수 있는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말씀에 순종할 힘을 기르는 훈련과 같습니다. 입대한 군인들은 이제 사회인이 아닌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군인은 제식훈련을 하며 기본 자세부터 배우고 몸과 마음을 훈련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세워 나가기 위한 시간입니다. 유혹은 때때로 그럴듯한 모양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데, 베드로가 “주님, 그런 일은 절대 안 됩니다!”라며 예수님을 만류합니다.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말이 사람의 생각임을 아시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 뒤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생각을 따르느냐?”라고 하시며 뜻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분주한 일상 탓도 있지만 내 마음이 건조해지고 하나님을 만난 그 기쁨이 삶에 가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듯, 우리도 순종의 길이 외롭고 힘들더라도 바르게 걸어야 합니다. 선한 길을 따라 순종할수록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참된 순종은 나의 한계를 깨닫고 내 삶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결단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 우리 안에 부어집니다. 구원의 능력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순종할 때 그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삶의 주권을 내어 드릴 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고, 우리의 삶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 자체가 죄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행동으로만 생각하지만, 죄의 시작은 마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혹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내 욕심, 살아가면서 만나는 관계와 일 속에서 하나님보다 내 마음과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장 28-29절 보시겠습니다.

1:28 더욱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아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그런 타락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셔서, 그들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들을 하도록 놓아 두셨습니다. 1:29 그 결과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또한 질투와 살인과 분쟁과 사기와 악독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험담을 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우리의 욕심과 생각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그대로 두시고 그 선택의 결과는 우리의 현실로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편안함 때문에 전심을 다해 예배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순종은 죄를 이기신 승리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삶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삶으로 자라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의 쟁기가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손에 쥐어진 쟁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손에 쥐고만 있다면, 말씀을 듣고도 자녀됨의 은혜를 받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사명의 쟁기를 쥔채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있으면 때가 되면 주가 주시는 힘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도 능동적인 믿음입니다. 말씀 안에 우리의 마음과 삶을 고정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힘이 우리 안에 부어질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에는 몸을 성결케 하는 물을 담아 두었던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지름이 4.56m, 높이 2.28m, 둘레가 13.68m에 달하는 꽤나 큰 크기입니다. 재료는 금속을 녹인 물을 부음으로 주조해서 만들었습니다. 이 물두멍을 바치고 있는 것이 12마리의 소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 소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순종과 희생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12마리의 소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예수님의 12제자들을 상징합니다. 즉 교회는 거룩한 백성들의 순종과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왕상 7:25) 누군가의 헌신으로 사람을 살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순종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순종의 예배는 우리의 삶 전체를 드리는 것입니다.

타락 이후 인간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습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드렸고, 아벨은 자기 양의 첫 새끼를 잡아, 그중 가장 기름진 부분을 주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벨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지만, 가인은 일부만 취해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신데, 두 형제가 제사를 드리는 태도가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지 가인과 아벨의 예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제사를 드리는 규례도 보면, 흠없는 것을 드리라는 것과, 살과 기름을 분리하여 제단 불 위에 태우고, “기름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레 3:16) 이 원리도 흠 없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말하면서도 정작 삶속에서는 관계의 서운함, 욕심, 불평과 불편함의 마음을 채우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흠없는 삶이 우리의 노력만으로 다 해결할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죄는 영원히 패배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얻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예배를 받지 않는 하나님께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지만, 하나님은 가인에게 두번이나 질문하십니다. ‘너는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 어째서 네 얼굴빛이 달라졌느냐?’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그의 마음을 회복시키고, 순종과 마음 중심의 예배로 돌아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할때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는 회복의 자리입니다. 마음의 불안, 상처, 미움을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다 내어 드리고, 성령의 불로 태우는 것입니다. 순종의 예배는 내가 먼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 안에서 먼저 실천하는 삶인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깊은 고통을 겪으며 죄의 형벌이 너무 무거워 감당할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자신의 표를 주셔서 누구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보호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는 육체적 가시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함 속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은 율법과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 때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 갈수록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삶 전체를 예배로 드리기를 요청하십니다. 삶에서 많은 일에 정성을 다해 살지만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삶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