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6.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스무번째 주일)

하나님 앞에 서는 기도

Standing in Prayer Before God

누가복음 18:1~14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끈질기게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2 “어떤 도시에 사람들을 무시하고,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다. 3 그런데 그 도시에 살고 있는 한 과부가 그를 줄곧 찾아가서 졸라대기를, ‘재판관님, 저의 억울한 처지를 들으시고, 법으로 제 권리를 찾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 그러나 그 재판관은 오랫동안 그 과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무시해 왔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5 하지만 이 과부가 이토록 줄기차게 나를 찾아와 성가시게 하니, 할 수 없이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나를 찾아와서 아주 귀찮게 졸라댈 것이다.’” 6 주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간구를 어찌 들어주지 않겠느냐? 어찌 계속 모른 체하고,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겠느냐? 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밤낮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간구를 들으시고, 신속하게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과연 세상에서 이 같은 믿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는지, 그것이 걱정이구나!”  9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소.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소. 11 바리새파 사람은 따로 서서 이렇게 기도했소. ‘하나님, 저는 남의 것을 빼앗는 강도나 정직하지 못한 사기꾼이나 간음을 저지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더구나 저기 있는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하나님께 바치고 있습니다.’ 13 그런데 세리는 멀찌감치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볼 생각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하기를 ‘오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하였소. 14 내가 당신들에게 분명히 말하겠소. 결국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세리요. 이처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오.” (쉬운말 성경)

1 One day Jesus told his disciples a story to show that they should always pray and never give up. 2 “There was a judge in a certain city,” he said, “who neither feared God nor cared about people. 3 A widow of that city came to him repeatedly, saying, ‘Give me justice in this dispute with my enemy.’ 4 The judge ignored her for a while, but finally he said to himself, ‘I don’t fear God or care about people, 5 but this woman is driving me crazy. I’m going to see that she gets justice, because she is wearing me out with her constant requests!’” 6 Then the Lord said, “Learn a lesson from this unjust judge. 7 Even he rendered a just decision in the end. So don’t you think God will surely give justice to his chosen people who cry out to him day and night? Will he keep putting them off? 8 I tell you, he will grant justice to them quickly! But when the Son of Man[a] returns, how many will he find on the earth who have faith?” 9 Then Jesus told this story to some who had great confidence in their own righteousness and scorned everyone else: 10 “Two men went to the Temple to pray. One was a Pharisee, and the other was a despised tax collector. 11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this prayer[b]: ‘I thank you, God,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cheaters, sinners, adulterers. I’m certainly not like that tax collector! 12 I fast twice a week, and I give you a tenth of my income.’ 13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and dared not even lift his eyes to heaven as he prayed. Instead, he beat his chest in sorrow, saying, ‘O God, be merciful to me, for I am a sinner.’ 14 I tell you, this sinner, not the Pharisee, returned home justified before God. For those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New Living Translation)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게 답하는 시대입니다. 오늘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이 됩니다. 한국에는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이 있어서 필요한 물건을 아주 빠르고 편하게 받아보게 됩니다. 내 물건이 어디쯤 왔는지 검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알수 없는 기다림 속에서 인내하고 버텨내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을 통해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굳게 서며 믿음으로 기도하는 삶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두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18:1-8)와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입니다.(18:9-14) 두개의 비유는 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하나님의 응답을 끝까지 신뢰하며 기도할 수 있는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조율되도록 기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비유는 지금까지 의심치 않고 지켜온 기도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교훈입니다.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꼭 붙들어야 할 몇가지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평가하고 비판하며 깨어진 현실을 드러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 나라의 기대와 기쁨 보다는 불안과 의심이 쌓여져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혼돈과 불안 속에서도 힘차게 다가오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불의한 세상을 구원하셨고, 지금도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다만 그때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우리는 믿음의 간구를 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도 과부의 끈질긴 간청에 응답했다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조율하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실리가 없습니다. 끈질긴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선택할 힘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결과에 연연하기 보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주의 자녀들에게 주신 즐거움입니다. 주의 자녀들은 낙심될 자리 상심할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이것은 기도의 결과의 차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특권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미에 반전의 말씀을 하시며 믿음에 대해서 분명히 하셨습니다.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과연 세상에서 이 같은 믿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는지, 그것이 걱정이구나!” 모든 성도는 인자가 다시 오는 날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방향을 점검하며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입니다. 성경에서 그날은 심판의 때를 가리킵니다. 누구도 알수 없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그 마지막 날에는 불의한 일들이 사라지고 정의와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며 경험하게 되는 불의와 혼란은 천년이 하루처럼 정말 잠시 스쳐가는 고난일 뿐입니다. 낙심되는 일을 만나 기도가 힘을 잃어 버릴때마다 기도의 방향을 점검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절망의 끝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힘이 부족할 때는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간절히 호소하던 과부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완전히 이루실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목적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온전히 이루어 주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빌1:6)

둘째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두번째 비유를 보면,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신앙적인 일들을 행하며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인 것에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경건함의 상징인 금식을 일주일에 두번이나 했다는 기도에서는 한해 동안 104일을 금식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득의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리며 경건함을 지켰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로마 정부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뇌물을 받고, 자기 민족의 세금으로 부를 축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던 사람들은 당연히 바리새인이 더 의롭다고 생각했을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기는 사람은 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결론으로 ‘이처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오.’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감사를 드리며 겉으로는 경건해 보였지만 그 마음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기도였습니다. 금식은 마음을 깨끗히 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는 시간인데, 바리새인의 금식은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느라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자신을 높이는데 집중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 상황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그분께 마음을 내어 맡기면, 모든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오스왈드 챔버스의 기도》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교만은 무너지고 불안한 삶의 이유는 하나님의 평안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낮아진 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을 높이고 싶었던 바리새인과 자신을 낮춘 세리의 기도의 차이는 단 하나 였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 앞에 서 있었고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무의식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이쯤이면 선하다 착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혹으로 부터 벗어나려면 내 안에 교만한 마음이 보일때마다 작은 불의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타인을 향해서는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형식적인 신앙에 갇히지 않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의지적으로 기도의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사건 이후 시대를 살아갑니다. 세리는 당시 흔한 행동이 아닌 가슴을 치며 기도드리고 있었음을 묘사합니다. 구원을 이뤄가는 여정에서 성도는 끊임없는 자기점검과 영적 긴장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는 나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드는 고백입니다.

과부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 앞에 섰습니다. 그녀는 흔들림 속에서도 끝까지 기도하며 호소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응답을 받은 결과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믿음에 있습니다. 우리 삶도 불안과 의심으로 흔들리지만 하나님 안에서 견고한 믿음으로 확신을 갖으며 기도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맡겨진 믿음의 성도로서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을 보면 불의한 일들이 가득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이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십니다. 결국엔 진리가 승리합니다. 그날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기대해야 합니다. 맡겨진 일을 다 마친 그때에 내려 놓는 것이 허무함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충성된 자에게 허락해 주시는 영광과 존귀의  자리에 앉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세번째 복음 안에서 겸손한 회개의 삶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육신의 죄를 따르려 하지만, 우리는 혼자의 힘으로 의로워 질 수도 없고 혼자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본문속 과부의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의 의를 끝까지 신뢰하며 인내할때, 우리 가운데 역사 하시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의 논리와 권력, 평가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세워집니다. 기독교의 가치는 생명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정의로움도 지나치면 생명을 해치는 행동이 되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우리도 어느 순간 마음이 안일해져 겉으로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듯하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그 기도 속에 자기의 의가 담겨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하지만 하나님 보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 살아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 (마15:8 )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에서도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과연 세상에서 이 같은 믿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는지, 그것이 걱정이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두개의 비유는 오늘날 신앙인들의 상태를 비추는 영적인 거울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집중하기에는 일상의 즐거움과 분주함이 더 큰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제 주안에 있는 참된 보물을 발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단순히 쉽고 편안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책임과 헌신, 사랑과 겸손한 회개로 날마다 믿음의 길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그 사랑에 응답하며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신실한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의 풍성한 은혜와 진리 안에서 죄와 사망으로 부터 자유케 된 길을 따라 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