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2 2025 주일설교

(케임브리지한인교회 창립 47주년 기념예배)

우리의 영광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Christ, Our Hope of Glory
골로새서 1:24-29

김태환 목사


24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합니다.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겪으셔야 할 고난의 남은 부분을 내가 겪을 수 있으니, 그것을 기쁨으로 견뎌 냅니다. 25 나는 특별한 사명을 받고 여러분을 돕기 위해 보내진 교회의 일꾼입니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숨김없이 여러분 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26 이 말씀은 이 세상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숨겨져 왔던 비밀이었는데,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27 모든 사람을 위한 풍성하고도 영광스러운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만민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이 진리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며,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영광스러운 소망이 되십니다. 28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어느 누구에게나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힘껏 사람들을 가르치고 바 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기 원하기 때 문입니다. 29 이 일을 위해 힘쓰고 애쓰며, 내 안에서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힘차게 나 아갑니다. (쉬운성경)


24 I am glad when I suffer for you in my body, for I am participating in the sufferings of Christ that continue for his body, the church. 25 God has given me the responsibility of serving his church by proclaiming his entire message to you. 26 This message was kept secret for centuries and generations past, but now it has been revealed to God’s people. 27 For God wanted them to know that the riches and glory of Christ are for you Gentiles, too. And this is the secret: Christ lives in you. This gives you assurance of sharing his glory. 28 So we tell others about Christ, warning everyone and teaching eve- ryone with all the wisdom God has given us. We want to present them to God, perfect1 in their relationship to Christ. / 1Or mature 29 That’s why I work and struggle so hard, depending on Christ’s mighty power that works within me.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 47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예배는 평소와 달리 우리 교회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갖게 하는 예배입니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교회의 영향력이 급 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때입니다. 유럽과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교회의 영향력 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 포스트 지(紙)에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9가지 이유’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이유들을 보면 이렇습니다. (1) 교회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2) 교회가 반지성적(anti- intellectual)이다. (3) 교회 안에 사랑이 없다. (4) 무조건적인 경건의 삶을 요구한다. (5) 맹목 적인 봉사와 헌신을 요구한다. (6) 교회 외에도 다른 옵션들이 많이 있다. (7) 교회가 복음을 올바로 가르치지 않는다. (8) 교회가 더 이상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9) 진부하고 무식한 (unenlightened) 목사의 설교/교인들의 삶과 연관성(relevance)이 부족한 설교를 한다.

물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유가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겸손하게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와 통계로 유명한 Pew Research Center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현재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종교가 없는 사람들 의 수가 증가하고 있고, 기독교를 탈퇴하는 현상(disaffiliation)이 지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2024년 한국 리서치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에서도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들이 51% 로,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2024년 9월에 ‘한국 개신교 교세 현 황 및 감소 원인 분석’이라는 AI의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 개신교 교회의 교인 비율 이 계속 감소 추세에 있고, 특히 젊은 세대들의 감소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2001년 부터 2023년까지 개신교 교인의 비율이 20.6%에서 16.3%로 감소했고, 2050년에는 11.9% 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우리 교회는 창립 47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 시대에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입니 다. 교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입니다. ‘세상에서(ek-) 불러냄(kaléō) 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일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희망이 되신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선교활동을 하던 때는 대략 서기46-57년 경입니다. 이 때 복음을 위협하던 세력 중 하나가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였습니다. ‘영지주의’는 영과 지식을 최고의 덕목(德 目)으로 삼는 그리스 철학사상입니다. ‘영지주의’의 핵심은 모든 현상과 사물을 이원론적(二 元論的)으로 구분해서 영은 선하고 물질(육체)은 악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동시에 영지주의 는 최고의 지식은 비밀(mystery)에 감춰져 있어 소수의 ‘완전한 사람들(Gnostics)’에게만 공 개되기 때문에 결국 구원은 이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합니다.

바울은 영지주의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영지주의에 대한 주의를 환 기시킵니다. 바울은 영지주의를 ‘헛된 속임수’ ‘초등학문’, ‘헛된 말(골로새서 2:8)’, ‘거짓된 지 식(디모데전서 6:20)’이라고 경고합니다. 바울이 영지주의를 배격한 이유는 그것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 구원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 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은퇴하고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다 보니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장르를 정해 놓고 듣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게 됩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S. Bach, 1685–1750)의 칸타타 BWV 147 ‘With Heart, Mouth, Action, And Life (마음과 입과 행위 와 삶)’의 마지막 합창 부분에 ‘예수, 인간의 갈망의 기쁨(Jesu, Joy of Man’s Desiring)’이라 는 유명한 곡이 나옵니다. 바흐가 300년 전에 작곡한 이 곡은, 저에게는 우리 시대에 주는 메시지처럼 들렸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갈망(渴望)하는 이유는 거기에서 기쁨을 얻기 위해 서입니다. 하지만, 모든 갈망의 끝에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갈망의 끝이 허무하게 끝 나기도 하고, 절망적으로 끝나기도 하고, 방황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바흐는 인간의 갈망 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기쁨이 예수라고 했습니다. 바흐는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해서 궁극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지금은 가치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많은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 매우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2,000년 전의 크리스천들도 그랬습니다. 아직 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영지주의’라는 사상이 교회로 밀려들 어왔습니다. 당시에 ‘영지주의’는 사회의 엘리트들이 따르는 세련된 철학 사상이었습니다. ‘영지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그 시대의 대세(大勢)였습니다. 골로새 교회 교인들은 영지주 의자들의 주장과 복음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이런 때에 바울은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은밀 한 지식의 비밀과 지혜는 이미 여러분이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 모두 들어 있습니 다(27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숨겨 있습니다(골로새서 2: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희망은 “앞으로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 라 ‘영광의 희망(27절, the hope of glory, ἐλπὶς τῆς δόξης)’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영광 을 의미하는 독사(δόξα)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들어갈 영광 스러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 영광으로 들어 갈 때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수도 있고, 실패를 맛볼 수도 있고,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영광의 희망 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시 와이넌스(CeCe Winans)가 부른 노래 “Come Jesus Come”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가끔 나는 무릎 꿇고 기도해요. 오소서 예수님, 오늘이 그날이 되게 해 주세요. 가끔은 무 너질 것만 같아요. 하지만 나는 붙잡고 있어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Sometimes I feel like I’m gonna break. But I’m holding on To a hope that won’t fade)” 가사가 아주 감동적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도 이 희망에 대하여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 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희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4) 바울은 이 희망을 ‘하나님의 영광의 희망’이라 고(로마서 5:2)했습니다. 이 희망은 하나님의 영광이 보증된(guaranteed) 희망입니다. 우리 에게 이 희망이 있기 때문에 환난을 당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더 견고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하고 있는 환난을 더 나은 삶을 창조할 기회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약속된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 세 상을 살아가는지, 사람들에게 말(설교)하고(proclaiming), 주의를 주고(admonishing), 가르치 고(teaching), 보여주고(presenting), 사람들과 함께 그것을 나누는 것(sharing)을 말합니다 (28절).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시대적인 사명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 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 말씀 2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 해 받는 고난을 기뻐합니다.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겪으셔야 할 고난의 남 은 부분을 내가 겪을 수 있으니, 그것을 기쁨으로 견뎌 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 말씀이 이렇게 나옵니다. “I am glad when I suffer for you in my body, for I am partici- pating in the sufferings of Christ that continue for his body, the church.” 이 말씀은 예수 그 리스도의 고난은 오늘날에도 그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 고난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고난을 함께 나눌 때,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 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교회의 정체성은 큰 교회 건물이나 그 교회에 모이는 많은 교인들, 그리 고 많은 교회 예산에 있지 않습니다. 2020년 1월 20일에 선언했던 팬데믹은 교회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주었습니다. 팬데믹은 교회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겸손하 게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였습니다. 교회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정체성을 새롭게 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런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 지 못하고 오히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 독일)이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희망의 신학 (1964)’,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 등의 책들을 저술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 신학교와 대학원 시절을 보냈습니다. 몰트만은 2,000년에 쓴 ‘신학의 체험’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신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세상에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돌보는 사람은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 스도는 그들이 받는 고난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몰트만은 교회는 고난 받는 공 동체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고난 받는 사람들 과 함께 하고, 그들을 돕고,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가 오늘날처럼 섬김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던 적이 과거에 없었던 것 같 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섬김과 봉사의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 프로 그램을 운영하는지, 왜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에 대한 설명 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同參)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 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1910-1997)는 오스만 제국의 코소보(현, 북마케도니아)에서 출 생했습니다. 1929년에 소속 수도회의 결정에 따라 인도로 건너가 콜카타(옛 이름 캘커타)의 빈민가를 둘러본 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가운데서 일하라”는 소명(召命)을 받습니다. 그 리고, 거기서 그녀는 죽을 때까지 무려 68년 동안 빈자와 약자들의 어머니로 살았습니다. 인종과 국경을 넘어서, 그것도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섬기며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삶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 람들에게 많은 영감(靈感)을 줍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테레사 수녀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섬김의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외로운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대화의 상대가 되 어 주고,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로마서 12:15). 그리고, 주변에서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면 다가가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로 마서 12:16). 그리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사람들을 사랑과 용서와 온유함으로 대하 는 것입니다(에베소서 4:32).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이런 섬김의 삶이 곧 그리 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4절). 섬김의 삶을 크고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케임브리지한인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들이 케임브리지한인교회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 케임브리지한인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정체성(identity)이 결 정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 예배 를 통해 새롭게 창조되는 교회, 그리고, 주변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교회, 환 난과 고난을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아 더욱 단단해지는 교회, 그리고 세상으로 들어가서 각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섬김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해 야 합니다. “이 시대에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우리 교회의 시대적인 사명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