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제 10주)
하나님의 불을 켜라
Light the Fire of God
누가복음 12:49~56
49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기 위해 왔다. 이미 불이 활활 붙어 있었더라면, 내가 얼마나 좋았겠느냐! 50 하지만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의 세례가 있는데,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는 내가 얼마나 더 고난을 당할는지 모른다. 51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아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한 집안의 식구가 다섯이라면, 이제부터는 둘씩 셋씩 패가 갈라져서 싸우기 바쁠 것이다. 53 서로서로 분열되어, 아버지가 아들과 대립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등질 것이다. 어머니가 딸을, 딸이 어머니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여 서로 맞서 싸울 것이다.” 54 ○ 예수께서 군중을 향해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고는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하는데, 사실 그런 예상이 들어맞곤 합니다. 55 또 남풍이 불면 ‘날씨가 더워지겠다.’ 하고 말하는데, 그것 역시 들어맞곤 합니다. 56 위선자들이여! 여러분은 이처럼 하늘과 땅의 기상은 잘 분간할 줄 알면서도, 어찌하여 이 시대의 징조는 분간할 줄 모릅니까?” (쉬운말 성경)
49 “I have come to set the world on fire, and I wish it were already burning! 50 I have a terrible baptism of suffering ahead of me, and I am under a heavy burden until it is accomplished. 51 Do you think I have come to bring peace to the earth? No, I have come to divide people against each other! 52 From now on families will be split apart, three in favor of me, and two against—or two in favor and three against. 53 ‘Father will be divided against son and son against father; mother against daughter and daughter against mother; and mother-in-law against daughter-in-law and daughter-in-law against mother-in-law.’[e]” 54 Then Jesus turned to the crowd and said, “When you see clouds beginning to form in the west, you say, ‘Here comes a shower.’ And you are right. 55 When the south wind blows, you say, ‘Today will be a scorcher.’ And it is. 56 You fools! You know how to interpret the weather signs of the earth and sky, but you don’t know how to interpret the present times.(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기 위해 왔다’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불은 태우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사람의 옛본성을 태우시고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시키십니다. 이처럼 성도는 다른 존재로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또 다른 불의 특징은 불꽃이 위를 향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크던 작던 불꽃은 어떤 상황에도 위를 향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 끌려가서도 ‘뜻을 정해’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 결과 열흘이 지났을때 왕의 음식을 먹었던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 건강하고 빛나 보였습니다. 그러나 뜻을 정한 삶이 항상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용광로 보다 더 뜨거운 풀무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풀무불은 다니엘과 세친구들을 묶었던 손과 발의 줄만을 태웠을 뿐,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들의 신앙과 생명까지 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본문의 불은 죄에 대한 심판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모든 사람은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수술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수술대에 위에 수술등이 켜지는 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차가운 온도, 수술실 안의 고요함 속의 소음, 강렬하게 비추는 불빛 앞에서는 나의 어떤 것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의료진들의 손에 내 몸을 맡길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일점 일획의 빈틈도 없이 철저합니다.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서 사람의 지혜와 실력은 너무도 초라합니다. 숨기고 싶던 작은 죄도 밝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거룩한 빛 앞에서 값없이 주어진 새생명을 감사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1.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내 마음 안의 잔재들을 태우는 불
성령은 우리를 혼란과 불신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십자가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애쓰지 않게 합니다.(갈5:16) 하나님의 불은 마음이 강팍한 사람에게도 임하고, 성품이 온유한 사람에게도 임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게 편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선호하지만 하나님은 부족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겸손한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성령을 자신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처럼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믿음의 기초 위에 다른 것을 쌓기 시작하면 십자가는 변질됩니다.
바울은 신앙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신앙의 터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의 기준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는 사역이나 선행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의 인정과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태워지고 없어질 것임을 말씀합니다. 무엇가를 남기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이치입니다. 성경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사람의 인정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께 받을 상을 향해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금, 은, 보석”같이 가치 있는 인생으로, 사람의 박수와 갈채를 위한 삶은 “나무, 풀, 지푸라기”처럼 사라지는 삶으로 대조합니다. 매주일 우리는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고백을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세상의 것들은 바람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초가 불에 녹아지는 것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쌓아 올린 것들만 그날에 남게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등 특정 사람을 따르는 여러 파가 생겨서 분열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는 심고 물을 줄 뿐이고,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고전 3:6–7) 신앙생활의 열매나 부흥은 인간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땅을 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뿌린 씨앗이 지금 세대에 결실을 맺을지, 다음 세대에 결실을 맺을지 알수 없지만, 결과에 매달리기 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헌신하다 보면 하나님의 때에 결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진다고 결심하면, 우리가 겪게 될 고난도 두려움도 다 이기게 됩니다. 50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12:50 하지만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의 세례가 있는데,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는 내가 얼마나 더 고난을 당할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는 인간의 죄와 세상의 깨어짐으로 인해 고난의 세례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가르쳤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셨고, 유대 지도자들과 갈등을 겪으며 세상의 창과 검에 의해 외로운 싸움을 홀로 견뎌내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은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준비하신 예수님의 고난의 세례는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이기적으로 살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입술로는 높이고 고백하지만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현실 앞에 놓여질 때가 있습니다. 거룩하게 보이지만 사랑하는 일을 쉽게 포기해 버리고 내 기준의 편안함, 내게 익숙한 것들만 더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는 내가 얼마나 더 고난을 당할는지 모른다. 주님은 모진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견뎌내어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따라 가야 할 푯대입니다.
이제 51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아느냐?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마음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분열’은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복음이 들어올 때 일어나는 ‘필연적인 갈등’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배치되고, 인간의 이기심, 거짓과 위선과 자기중심성과 화평케 하신 주님의 십자가 정신 사이에서 마음의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 우리는 여전히 죄의 본성과 세상의 가치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고, 주님과 연합하게 되었으니 모든 상황속에서 끝까지 주를 따라가야 합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장 34절은 ‘분열’이라는 단어를 ‘칼’로 표현하며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기록합니다. ‘분열’과 ‘칼’이라는 용어는 ‘구별됨’과 ‘분리됨’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거룩하다’라는 것은 ‘분리와 잘라냄’의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수용하는 사람과 예수를 진리로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하며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52-53절을 보면, 가정안에서도 갈등과 분열이 생기는 긴장감을 줍니다.
12:52 한 집안의 식구가 다섯이라면, 이제부터는 둘씩 셋씩 패가 갈라져서 싸우기 바쁠 것이다. 12:53 서로서로 분열되어, 아버지가 아들과 대립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등질 것이다. 어머니가 딸을, 딸이 어머니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여 서로 맞서 싸울 것이다.”
성도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따르면 고난이 따라옵니다. 때로는 이로 인해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서도 갈등과 긴장이 생기곤 합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분들은 이러한 경험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성장과 믿음이 깊어지는 과정이 됩니다.
예수님은 명목상으로만 평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분쟁을 통해서라도 참된 평화, 곧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세상의 돈과 명예로 인한 작은 문제도 갈등을 일으키는데, 영혼이 죽고 사는 믿음생활은 한번 뿐인 인생에서 진검을 들고 싸우는 영적전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야 할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석 위에 세운 집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말씀을 믿고 모든 상황 속에서 세상적 기준을 넘어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분노와 갈등만 커지게 되므로,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인한 갈등이라면,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긍휼한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말씀은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는 간절한 초청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셔서, 죄와 사망의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을 비추셨을때에도(요 8:12) 빛이 나타나면 어둠은 물러가야 하지만, 죄로 눈이 가려진 사람들은 그 빛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어둠을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사람은, 마침내 이 진리에 의해서 살게 될 것입니다.
2. 사명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불
12:54 ○ 예수께서 군중을 향해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고는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하는데, 사실 그런 예상이 들어맞곤 합니다.
12:55 또 남풍이 불면 ‘날씨가 더워지겠다.’ 하고 말하는데, 그것 역시 들어맞곤 합니다.
12:56 위선자들이여! 여러분은 이처럼 하늘과 땅의 기상은 잘 분간할 줄 알면서도, 어찌하여 이 시대의 징조는 분간할 줄 모릅니까?”
세상속의 거대한 변화와 흐름은 커지고, 교회의 부흥은 줄어들고 있는 시대입니다. 현대 기술은 점점 발달하여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그 이상의 결과들을 만들어낼 정도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이 나오면 사람들의 관심과 돈이 쉽게 쏠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사역과 본질이 변질되는 일에는 우리의 영적인 눈이 쉽게 둔해집니다. 이 영적 분별력은 하나님의 불이 임할 때 비로소 생기며, 마음이 정결해질 때 우리는 한 달 뒤 날씨를 예측하듯 세상의 변화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깨어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빛의 자녀임을 깨달은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언젠가 회심을 하게 된다면 그들을 변하게 한 것은 분명 이 빛일 것입니다. 비록 그 죄인들이 비참한 상태에 있고 빛을 두려워한다 해도 그들을 계속해서 빛으로 인도하다 보면 점차 그 빛도 그들에게 기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자연인이 누리고 있는 안락과 평화와 위로는 어둠과 무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어둠이 사라질때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안정을 누리게 도와 주는 어둠을 파헤쳐야 하느냐고 따지는 것은 옳은 주장이 아닙니다.”
온갖 세상의 모순들과 불확실한 시대에 주님이 길 되심을 인정하지 않으면, 평생 모순속에서 답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답이 없는 상황속에 빠지고, 수많은 길에서 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허한 영혼의 빈자리를 채워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빛은 우리가 성육신 하신 예수님처럼 빛으로 어둠을 비추고 소금처럼 사람을 살리게 합니다.
신앙의 년수가 더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수록 우리는 말씀와 삶의 괴리를 경험하고, 다 실천하지 못하는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불이 우리 안에 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불로 정화된 마음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라지게 합니다. 믿어지도록 살아내도록 동전의 앞뒷면처럼 마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불을 받은 사람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모든 진리가 같다는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를 드러내는 일은 때론 고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시작하신 선한 일을 실천하는 일에 우리의 시간과 재능을 쏟아내는 일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성과를 내야 하고 변화의 긴장감이 높은 세대속에서도, 자녀를 키우며 내 커리어가 멈춘 것만 같고 뒤떨어지는 것만 같은 마음이 들때에도, 은퇴를 하고 지나온 고단한 삶을 돌아보는 세대를 지나고 있더라도 우리 모두가 지나고 있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사명을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열된 세상에 책임을 느끼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책임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른 신앙관은 교회를 세상과 분리해서 탈교회화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세상속으로 더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참된 평화를 심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 최종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가고는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무뎌진 마음의 열심과 식어진 마음의 온도가 내 마음의 불을 꺼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새로운 삶의 낯섬과 긴장감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내 결정 앞에서 고민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끊임없는 성과의 압박, 관계의 상처, 가정의 아픔, 나의 삶을 자녀에게 투영하며 기대하고 실망을 반복하고 계신가요? 하나님의 불이 임하면 내안의 죄와 두려움을 태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내가 손해 보면 그곳에 은혜가 생겨납니다. 개인의 신념으로 옳고 그름을 외치는 세상속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게 하시는 성령의 불로 내 안의 깨어짐을 확인해야 합니다. 삶의 무게 앞에서도 기쁨으로 순종하고,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의 사명입니다. 변하지 않는 세상과 가정, 삶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나로부터 변화되어 시작되는 그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