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제 9주)
주님 언제 오셔도 괜찮습니다
Lord, I’m Ready Anytime
누가복음 12:32~40
32 ○ 어린 양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진정 기뻐하신다. 33 너희가 가진 소유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어라. 그리하여 너희 자신을 위하여 영원히 낡아지지 않는 지갑을 만들어라. 그렇게 너희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이 쏠 일이 절대로 없다. 34 명심하여라. 너희의 재물이 있는 바로 그곳에 너희의 마음도 함께 있다.” 35 ○ “너희는 허리띠를 동여매고, 등불을 항상 켜 놓고, 삼가 준비하고 있어라. 36 마치 결혼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금세 열어 줄 준비를 갖추고 있어라. 37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처럼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종들에게는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이 몸소 시중드는 사람의 옷을 입고서, 그 종들을 식탁에 앉힌 후 그들의 시중을 들어줄 것이다. 38 주인이 한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에게는 복이 있다. 39 너희는 이것을 알아라. 도둑이 언제 집에 들지를 알고 있다면, 집 주인은 도둑을 막아, 자기 집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40 그러므로 너희도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인자는 너희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때에 갑자기 올 것이기 때문이다.” (쉬운말 성경)
32 “So don’t be afraid, little flock. For it gives your Father great happiness to give you the Kingdom. 33 “Sell your possessions and give to those in need. This will store up treasure for you in heaven! And the purses of heaven never get old or develop holes. Your treasure will be safe; no thief can steal it and no moth can destroy it. 34 Wherever your treasure is, there the desires of your heart will also be. 35 “Be dressed for service and keep your lamps burning, 36 as though you were waiting for your master to return from the wedding feast. Then you will be ready to open the door and let him in the moment he arrives and knocks. 37 The servants who are ready and waiting for his return will be rewarded. I tell you the truth, he himself will seat them, put on an apron, and serve them as they sit and eat! 38 He may come in the middle of the night or just before dawn.[d] But whenever he comes, he will reward the servants who are ready. 39 “Understand this: If a homeowner knew exactly when a burglar was coming, he would not permit his house to be broken into. 40 You also must be ready all the time, for the Son of Man will come when least expected.”(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어린 양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개역개정은 ‘적은 무리여’라고 번역했는데 개역개정 번역이 원어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하지 말라. 하늘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진정 기뻐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속에서 제자들은 힘도 약하고 숫자도 적지만 하늘 아버지가 특별히 보호해 주시니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 나라의 물질관을 보여줍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인색하지 말고 가진 소유물을 팔아 도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기쁨으로 나눌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고, 그 삶에 평안과 감사가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동산에 있는 온갖 나무 열매를 마음대로 먹어도 되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규정합니다. 이는 주신 모든 것을 바르게 사용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바르게 사용해야 할 도구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물질이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현실 앞에 놓여 있습니다. 내것을 나누고 베푸는 삶은 적당히 순종하고 나의 가치를 높이고 소유하려는 유혹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나의 욕심으로 부터 더 자유롭기 위해서는 내 소중한 것을 나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탐심에 대한 경고와 하나님 나라의 임박함을 준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한 사람이 주님께 나와 형과의 유산분배 문제를 갖고 돈에 의한 분쟁을 해결해 달라고 찾아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부모로 부터의 장남이 더 많이 상속받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말씀속에서 유추해 보면, 동생은 자신에게 부여된 유산이 부족하다고 여겼거나 모세법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유산분배의 과정에서 일어난 탐심으로 인한 돈 문제에 직접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에게 “사람의 생명이 재산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시며 어리석은 한 부자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이 부자는 이미 많은 재산과 곡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고에 가득 채우고도 곡식이 남아 더 이상 넣어 둘 데가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루 하루 일하는 소작농들과는 달리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재산을 소유할 창고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어리석은 부자는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넘쳐나는 곡식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눌 것인지? 아니면 창고를 더 크게 지어 저장해 놓을까 궁리합니다. 결국 그는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야겠다고 결정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모든 재산을 자기 곳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여러해 쓸 것을 많이 쌓아 두고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리라 하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너를 위해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이 비유는 물질에 대한 탐심을 자제하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위해 물질을 잘 사용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명심하여라. 너희의 재물이 있는 바로 그곳에 너희의 마음도 함께 있다.”(눅 12:34)
주님은 너희가 목숨을 위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려하고 걱정해서 수명을 하루라도 연장할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난주 전해진 설교 말씀이 한 주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어린아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한 모습은 없는지, 품고 돌보는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고 하지만 작은 것도 나누기 어려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짜 성숙한 믿음을 지켜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빼앗아가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원을 허락하셨고, 믿음을 통해 삶의 회복을 주시며, 간절히 구하면 살아갈 지혜도 아낌없이 주십니다. 성경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약속하셨습니다. 물질이 삶의 주인이 된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삶의 조건에 따라 바르게 인식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성숙해 지고 온전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점검할 것은 지금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주님은35절 37절과 38절에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종들이 복이 있다고 반복하시며, 허리띠를 동여매고, 등불을 항상 켜 놓고, 삼가 준비하고 있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교회사에서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의 재림을 소망하며 당시 고난 속에서도 신분을 넘어서 주인과 종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되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준비하고 깨어 기다리라는 말씀은 세상의 가치관이나 시대속에 휩쓸려 가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며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1940– 현재)는 듀크 대학교에서 신학, 윤리학, 법학을 가르친 명예교수입니다. 그는 기독교 평화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연합감리교회 윌리몬 감독과 함께 공동 집필한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이라는 책에서 윌리몬은 스탠리가 세상이 정치를 말할 때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말해야 한다고 평생 가르치려고 애썼다고 표현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정치나 이념도 하나님 뜻 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바울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라고 한 말씀을 스탠리와 윌리몬은 “우리는 하늘나라의 식민지입니다”라고 표현합니다. 교회를 이방문화 식민지로 표현하는 것이 지나치기도 하지만 이 표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우리의 소속이 바뀜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에 대해서 식민지라는 표현을 쓴 것이라 생각됩니다. 부족하고 자격없는 우리가 이 땅에서 분투하며 살아가지만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진정 기뻐하신다.라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분의 나라는 상대방을 힘으로 꺾을 필요도 없고, 다툼이나 갈등이 없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그분의 부르심을 따라 믿음의 여정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기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자기 존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흘러 나오기 때문입니다. 참된 평화는 인간의 제도나 정치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정치적 평화는 자신의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평화로 치장하는 겉치레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임하는 참된 평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작은 마음과 삶을 나누며, 서로를 지지해 주는 동역자들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러한 동지애는 우리 인생에 믿음의 여정을 견디게 하는 깊은 위로와 힘이 됩니다.
외국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첫 순간을 다들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약 없는 이별로 가족과 헤어져야 했고, 이루고 해내야 하는 마음을 품고 새로운 도전 앞에 섰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땅에서 마주하는 일들은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어제는 친구가 되었다가 오늘은 남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꿈을 찾아온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인 날들도 많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 주는 긴장감 탓인지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잘 가고 있는지 괜히 내가 더 뒤쳐진 것 같고 걸음이 무겁기만 한날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믿음의 걸음 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기에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우리의 시선을 걱정하고 염려할 일들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는 차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부모를 찾고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책임 있게 감당하면 됩니다. 믿음의 삶은 때론 두렵고 무거운 길이지만 주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배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입니다. 예배의 어원인 ‘아바드’(עָבַד)라는 단어는 ‘예배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일하다, 섬기다, 봉사하다’라는 의미도 지닙니다. 그렇다면 매주일 나와서 예배 드리고 봉사하는 일 외에도 일상과 현실의 터전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는 것도 예배의 연장선입니다.
첫째, 세상이 우리의 삶을 궁금해 하도록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다시오심을 미래의 일로만 생각하면, 신앙의 긴장감을 잃어 버리고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께서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시고, 믿고 따라가는 자에게는 영원한 상급을 주시러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35절입니다. 35 “너희는 허리띠를 동여매고, 등불을 항상 켜 놓고, 삼가 준비하고 있어라.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겉옷은 길고 통이 넓었기 때문에 일을 할 때나 여행을 하거나 전쟁시에 겉옷을 허리띠로 동여 매야 했습니다. 게다가 종들이 허리에 띠를 맨 이유는 혼인 집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 등불을 항상 켜놓아야 하는 이유도 어두워진 세상속에서 빛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생활 방식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점점 쉽고 편안해져 갑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 지 알 수 없으니 주님의 재림을 먼 훗날의 막연한 사건으로 여기며 보낼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고대 사회속에서 종들은 업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혼인잔치는 밤에 열렸기 때문에 종들은 결혼식에 갔던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한밤중이나 새벽이나 깨어 있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피곤한 시간대입니다. 그런데 깨어 있는 종들에게 복이 주어집니다.
주인이 와서는 몸소 시중드는 사람의 옷을 입고, 깨어 있는 종들을 식탁에 앉힌 후 시중을 들어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깨어 있는 성도가 누리게 될 영광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줍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가 받을 복입니다. 비록 믿음의 여정은 때론 힘들때도 있고, 고난도 겪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게 다가오는 한밤중이나 새벽의 때에도 끝까지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를 기대하고 사랑의 수고를 더하며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36절 부터 보시겠습니다. 36 마치 결혼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금세 열어 줄 준비를 갖추고 있어라. 37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처럼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종들에게는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이 몸소 시중드는 사람의 옷을 입고서, 그 종들을 식탁에 앉힌 후 그들의 시중을 들어줄 것이다. 38 주인이 한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에게는 복이 있다.
둘째, 세상속에서 진리의 허리띠를 매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허리띠는 기록된 말씀입니다.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허리띠로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적의 공격으로 부터 살아 남기 위한 방어적인 무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는 세상에서 믿음의 성도로 살아가는 든든한 방패가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길을 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들 마음안에 이미 확증되게 하셨습니다. 지금 주님이 오셔도 괜찮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삶에는 무엇이 들려져 있습니까? 지금은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부르심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채워지면 순종할 수 있다고 이것만 해결되면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하며 매일을 고민 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셔도 괜찮을 만큼 매일을 준비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불안함과 두려움 앞에서 스스로의 힘만을 의지하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로 가져 갈수 없는 것에 매여 염려하기 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더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평소에 쉽게 보이지 않던 물건들이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가야 할 때 보면, 의외로 많이 발견되게 됩니다. 그때가 되어서 아끼면서 사용하지 못한 물건을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많은것을 이고 지고 살고 있었구나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한번쯤은 있을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집착하여 채워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누릴 것을 과감히 나누고 흘려 보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거운 짐, 불필요한 짐은 결국 인생의 걸음을 더 힘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생명의 길을 허락하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 길을 따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우리의 믿음을 점검할 좋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비로소 내 믿음의 상태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음의 작은 실천에서 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가진 것을 전부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실천할 때에 복된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종들을 몸소 높여 주시고, 함께 먹고 마시는 교제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날마다 새롭게 해 주실 것이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킬 힘을 주실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면 현재의 고난도 불안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의 손길이 나의 삶에 함께 하심이 감사하고 감격스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