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제 7주)
누가복음 11:1~13
이렇게 기도하라
Pray Like This
1 어느 날, 예수께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기도를 마치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와서 예수께 말했다. “주님,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같이,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2 그러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속히 임하게 하소서. 3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들을 용서하오니,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소서.’” 5 ○ 예수께서 또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해보자. 한밤중에 그 친구에게 가서 ‘여보게, 빵 세 덩이만 꾸어 주게. 6 친구가 여행 중에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내가 그 친구에게 내놓을 것이 없다네.’ 하고 말하면, 7 그 친구는 침실에서 큰 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친구여, 제발 나를 귀찮게 하지 말게. 문단속을 하고 식구들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네.’ 8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가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아주 끈질기게 졸라대면 결국 그 친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9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어주실 것이다. 10 그렇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생각해 보아라. 너희 가운데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 12 아들이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
11:13 이와 같이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자녀가 원하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자기 자녀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쉬운말 성경)
1 Once Jesus was in a certain place praying. As he finished, one of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Lord, teach us to pray, just as John taught his disciples.” 2 Jesus said, “This is how you should pray:[a] “Father, may your name be kept holy. May your Kingdom come soon. 3 Give us each day the food we need, 4 and forgive us our sins, as we forgive those who sin against us. And don’t let us yield to temptation.[c]” 5 Then, teaching them more about prayer, he used this story: “Suppose you went to a friend’s house at midnight, wanting to borrow three loaves of bread. You say to him, 6 ‘A friend of mine has just arrived for a visit, and I have nothing for him to eat.’ 7 And suppose he calls out from his bedroom, ‘Don’t bother me. The door is locked for the night, and my family and I are all in bed. I can’t help you.’ 8 But I tell you this—though he won’t do it for friendship’s sake, if you keep knocking long enough, he will get up and give you whatever you need because of your shameless persistence.[d] 9 “And so I tell you, keep on asking, and you will receive what you ask for. Keep on seeking, and you will find. Keep on knocking,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10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Everyone who seeks, finds. And to everyone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11 “You fathers—if your children ask[e] for a fish, do you give them a snake instead? 12 Or if they ask for an egg, do you give them a scorpion? Of course not! 13 So if you sinful people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heavenly Father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New Living Translation)
기도(祈禱)는 한자어로 빌 ‘기'(祈), 빌 ‘도'(禱)인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로 인도하는 은혜의 도구인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성소 안에 있던 법궤를 함부로 만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야훼 (YHWH) 하나님의 이름도 경외하는 차원에서, 직접 발음하지 않고 ‘아도나이’ 즉 ‘주’라고 읽었습니다. 이러한 전통 가운데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 기도를 마치자 예수의 제자 중에 한명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주님께서 어떤 유형의 기도를 하셨는지는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실제로 기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습관처럼 기도하시며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셨고, 기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도록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22:39 예수께서 밖으로 나가셔서, 평소처럼 올리브 산으로 올라가셨다. 제자들도 예수의 뒤를 따랐다. 22:40 그곳에 이르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여라.” 22:41 제자들과 떨어져, 예수께서는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곳으로 가시더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주님은 졸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는 주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주님을 보면서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기도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해줍니다.
첫째, 기도의 핵심은 바른 관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유대 신학에서는 신성 모독이자 불경건한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데 누가복음의 본문과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을 원어로 보면, ‘아버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Πάτερ:파테르 라는 단어는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기도하시며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친밀한 관계를 누렸으며, 예수를 믿는 우리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마음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의 자세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2가지 형태의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위선자들 같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고, 은밀히 보시는 아버지께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순전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또한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의미없는 말을 반복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 가운데 교회의 진짜 위기는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가 멀어지는 데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을 찾지 못하게 된다면 갈등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은채 교회는 세속의 물결에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의 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기도의 모델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하늘의 뜻이 이땅에 이뤄지는 기도, 만족함이 없는 시대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 용서와 회개의 기도, 유혹에 빠지지 않게 지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마틴 루터는 ‘시편을 통해 우리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또 하나님이 베푸시는 온갖 은혜에 대한 행복한 생각들로 이루어진 꽃들로 만발한 하늘의 정원을 들여다 본다.” 라고 말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기도의 자리에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오늘 하루 어떤 옷을 입을까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말씀의 옷을 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구원 서사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어둔 인생길을 비추는 빛이 되어 주고, 불확실한 삶속에 분명한 방향이 되어 줍니다.
엉킨 실타래 같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내어드려야 합니다. 어릴때 외웠던 주기도문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기도의 방향을 모르던 어릴때 암송했던 주기도문이 기도의 첫 걸음이 되었고 믿음의 고백이 되어 주었습니다. 기도 속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불렀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화려한 기도의 기술이 쌓여 가지만 주기도문으로 살아낼 힘이 부족합니다. 무엇을 구해야 할지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지 나의 고민과 염려를 안고 찾아가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기도의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부름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렇다면 바른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사명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도록 해줄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마태복음에는 7개의 청원들로 구성되어 있고, 오늘 본문 누가복음에는 좀더 간결하게 5개의 청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기도와 인간의 삶을 위한 기도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기도없이 내 힘으로 살다가 인생의 문제 앞에 좌절하고 실패할때 비로소 기도해야 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하나님께 간절히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잘못이 아니라, 겸손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아버지와 자녀는 여러가지 수식어가 필요없는 관계이기에 기도의 삶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둘째,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드리는 우리의 간구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유대교의 기도와 다른 것들이 많습니다. 당시 유대교 뿐 아니라 모든 종교는 제사 중심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귐 안에서 성품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과정입니다. 마음을 터놓은 관계에서는 내 마음을 채울 공간을 내어주게 됩니다. 받아 들일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깨우는 것입니다.
A.W 토저는 ‘하나님’에 대한 책에서 밀턴의 기도를 인용합니다. “오 성령님!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은 온갖 신전들이 아니라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입니다. 성령님이여 저를 가르치소서!’ 그는 깨끗한 마음과 순종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아무도 하나님에 대해 올바로 설교할수 없고, 아무도 그런 설교를 올바로 들을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동과 조명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관한 것을 이해할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오류가 있다면, 우리의 바른 생각과 바른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비유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해보자. 그 친구가 여행 중에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밤중입니다. 밤중이라는 시간은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요구에 응하기 힘든 시간입니다. 하지만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행자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오후 늦게 여행을 시작했고 밤늦게 목적지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늦은 밤 찾아온 친구에게 줄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집 친구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떡 세 덩이만 꾸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웃집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끈질기게 졸라대면 결국 그 친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라는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면 얻을 것이고, 찾으면 찾을 것이며 두드리면 열릴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비유의 핵심은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끈질긴 간청이 응답을 얻는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인색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보다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가 더 선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끈질기에 주님의 성품을 형성하기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기도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도가 살아야 믿음이 메마르지 않고 깊은 골짜기에서도 생명의 꽃이 피어납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더욱 선명해 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끈질긴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수단이 아니라 끈질기게 기도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의 기도에는 하나님과의 만남과 간구가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주를 찾는 기도시도 담겨 있고,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고 탄원하는 기도도 담겨져 있습니다. 때로는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는 일을 겪을지라도 기도를 드리며 선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성령께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며 우리가 기도의 권리와 의무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와 같이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자녀가 원하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자기 자녀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 어거스틴은 참되고 완전한 기도는 사랑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참 사랑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친밀하도록 인도해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주어진 상황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허락하신 일이라 믿고 신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존 스트토 목사는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숨이 떨어질 때까지 주님께 신실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기도 제목이 생깁니다. 그런데 임종을 앞둔 그 순간에는 그 동안의 기도 제목들이 아닌 본질적인 기도를 남겨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 앞에 신실한 기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간구해야 합니다.
얼마전에 전화 한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 꿈을 이루기 위해 보스턴에서 유학을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남편의 학회 참석차 다시 보스턴을 방문하게 되었고, 자녀와 함께 교회 앞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면서도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그때의 시간을 회상하며 전화를 주신것입니다. 모르는 분과의 전화 통화였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 믿음의 자리를 걸어 가셨던 분의 삶의 고백이었기에 짧은 통화였지만 여운이 깊이 남습니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찾던 그 시절의 간절함이 남아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화 통화였지만 그분과 그 자녀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드렸습니다. 삶이 불안하고 불안정 하던 그 시절의 간절한 기도는 세월이 지나도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막막하고 불확실한 지금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학업과 연구에 매여 치열하게 꿈을 향해 살아가지만 깊은 곳의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기도 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단단해지기 위해 씨름하지만 영적 무기력함 앞에 서있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예수님이 무릎꿇고 기도하셨던 그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