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0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후 제 6주)

말씀이 삶을 붙들게 하라

Let the Word Uphold Your Life

누가복음 10:38~42

10:38 ○ 예수께서 제자들과 여행하던 중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마르다’라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셔 들였다. 10:39 그 여자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앞에 앉아,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10:40 그러나 마르다는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했다. “주님, 제가 바빠 죽을 지경인데도 제 동생은 저렇게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보고만 계십니까? 어서 저를 도와주라고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10:41 그러자 주께서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여러 가지 일로 마음 쓰느라 너무 염려가 많구나. 10:42 하지만 참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그것을 찾았다. 마리아에게서 그것을 빼앗고 싶지 않구나.” (쉬운말 성경)  

38 As Jesus and the disciples continued on their way to Jerusalem, they came to a certain village where a woman named Martha welcomed him into her home. 39 Her sister, Mary, sat at the Lord’s feet, listening to what he taught. 40 But Martha was distracted by the big dinner she was preparing. She came to Jesus and said, “Lord, doesn’t it seem unfair to you that my sister just sits here while I do all the work? Tell her to come and help me.” 41 But the Lord said to her, “My dear Martha, you are worried and upset over all these details! 42 There is only one thing worth being concerned about. Mary has discovered it, and it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성령강림절기 여섯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두었다면, 오늘 본문은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수직적 측면이 드러납니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마르다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자신의 집에 모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마르다는 주방일을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예수님께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며 도움을 요청합니다. “주님, 제가 바빠 죽을 지경인데도 제 동생은 저렇게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보고만 계십니까? 어서 저를 도와주라고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마르다야 네가 여러가지 일로 마음 쓰느라 너무 염려가 많구나. 많은 일로 분주한 것보다 참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은 한가지 뿐이다. 마리아에게서 그것을 빼앗고 싶지 않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지금 우리의 신앙의 자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마르다는 자신의 분주함 속에서 불평과 분노의 마음을 마주합니다. 마음의 시작은 섬김이었고 감사였는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심으로 섬기고 일하다가 마음 안에 있는 근심과 불평을 이겨내지 못하고 금새 지치며 포기하고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마음의 방향이 주님께 향하지 않고 나의 열심 안에 멈추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으로 섬기는 자리에 서면 영혼이 살아나고 기쁨이 회복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여전히 불안하고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도 마르다와 같이 여러 가지 일로 마음 쓰느라 염려를 쌓아두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역 후에 지치고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무엇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많은 일로 마음이 분주해져 있던 마르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선순위를 따르지 않으면 은혜가 메마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은 한가지 뿐이다’라고 하시며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말씀 하셨습니다.

말씀 없는 섬김은 쉽게 지치게 되고 말씀 없는 사랑은 감정에 따라 금새 식어지며 말씀 없는 관계는 쉽게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말씀을 굳게 붙들 때 힘들었던 섬김의 자리도 기쁨이 되고 문제가 기회가 되는 회복의 전환점이 됩니다. 그렇다면 삶에서 중요한 한가지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나의 기질과 열심만으로 섬기려고 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은 바른 관계에서 부터 흘러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주님과의 관계를 놓칠때가 많습니다. 섬김의 자리에서 주님을 위해 일을 하다 가도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되기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면서도 마르다 처럼 자기 의로 가득 차 처음 지녔던 주님의 마음을 잃어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선택적 섬김’과 ‘적당한 섬김’ 을 정해 놓지만 진정한 섬김은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라고 권면하며, 장차 주께로부터 유업의 상을 받게 될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골3:23)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그분의 일에 함께하도록 도와주십니다.

하지만 모든 일의 동기에서 나의 마음을 떼어 놓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섬기지만 분주함 속에서 불평이 쌓이게 되는 긴장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우리는 사람 앞이 아닌 하나님 앞에 서서 관계를 점검해야 합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초대했지만 주를 위해 일을 하다가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결국 기쁨을 잃어버린 헌신과 섬김은 염려와 근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돕지 않는 동생 마리아가 얄미웠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보고만 계십니까? 어서 저를 도와주라고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라는 구절에서는 자신의 열심을 인정받고자 하는 기대와 서운함이 담겨 있습니다. 마르다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마리아에 비해 열심으로 접대 준비를 하고 있는 자신의 행위가 옳다는 것을 주님께서 알아 주시기를 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르다의 마음안에 얽혀 있는 우리의 본성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하기 전에 예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는지를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 그 관계가 명확해지면 삶의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둘째, 섬김의 능력은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부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지면 불평과 남을 향한 불편함만 남게 됩니다. 주님은 마르다의 마음에도 기쁨이 넘치길 바라셨을 것입니다. 섬김의 자리에서 말씀이 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 마음 안에 불평이 찾아오고 기쁨으로 섬긴 자리가 불평의 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을 하나님 앞에 먼저 서야 합니다. 섬김의 능력은 예배와 말씀을 통해서 흘러 나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했는데, 주께서는 좋은 편을 선택할때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바쁘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느리면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대 속에서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다.’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섬김과 헌신의 자리에서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의 마음을 품고 따를때 우리는 좋은 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동생 마리아를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던 동생의 절실한 마음,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동생의 모습을 은혜의 시선을 바라보았다면 동생의 몫까지 마르다가 감당할 순종의 힘이 더해졌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와 마르다는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께서 죽은 오빠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에 등장하는 여인들입니다. 요한복음 11장 5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그리고 나사로를 사랑하셨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마리아와 마르다 모두에게 향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주님께서 유월절 엿새전에 베나디에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초대받는 다른 사건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그 사건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아래 값비싼 향유를 다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으니 제자 중에 유다가 비싼 향유를 왜 낭비하느냐고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느냐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때도 마리아의 행위는 나의 죽음을 예비하는 귀한 일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많은 업적,더 많은 성과를 내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마르다가 차린 음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책망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마음의 동기와 마음 중심을 보시며 마르다가 기쁨을 회복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조금 느린 아이라는 동요가 있습니다. 저도 추천을 받아 들어보게 된 노래입니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여러번 들어보면서 노래의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보다 더 빠른 세상에서 친구보다 앞서라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천천히 걸어가는 한걸음 느린 아이 꽃향기 맡아보고 밤하늘의 별 쳐다보고 친구 얘기 들어주고 가끔씩 뒤도 돌아보는  조금 느리게 가는 아이 마음은 커다란 아이 저 길 끝에 보이는 꿈 따라가면 느린 걸음 걸음마다 반짝반짝 환하게 빛이 난다.”

우리는 모두가 자기만의 속도와 시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꼭 지키고 싶은 내 삶의 가치가 있고 이루고자 하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앞서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천천히 걸어 간다는 것은 마치 실패한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느린 걸음으로 걷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분주함에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의 발 앞에 앉아, 예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분주하고 복잡한 세상 가운데에서도 주님 앞에 머무는 가장 좋은 편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수많은 소리에 마음을 빼앗길 때에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며 말씀 앞에 멈추어 서는 그 평안을 누리며 살아 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분주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깊은 뜻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은혜가 사라질 때 사랑을 붙드는 힘도 약해집니다. 쉽게 상처 받고 말 한마디에 마음을 닫아버릴 때도 있습니다. 마르다도 그랬습니다. 자신의 열심 앞에서 서운한 마음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김 너머의 본질적인 것을 보셨습니다. 이 사랑은 마르다의 음식 준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완전하시고 공의로우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그 길은 어떤 길입니까? 구원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사랑의 길, 고난과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세상의 일들과 낙심케 하는 현실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마음에 생긴 틈은 염려와 불평으로 이어져 우리안의 기쁨을 빼앗아 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의 틈도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 사랑으로 주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우리 내면의 영적 공간을 지키는 방법을 헨리 나우웬의 삶의 영성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우리 삶은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힘써야 할 활동도 많다. 우리는 빈틈없이 바쁜 삶을 원한다. 몸이 바쁘지 않으면 생각이라도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이나 아직 있지도 않은 일로 온갖 염려를 다한다. 혹시 벌어질지 모르는 일에 대한 근심과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내면의 공간을 잔뜩 채운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고 싶다면 훈련된 삶을 살아야 한다. 훈련이란 통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영적 삶에서 훈련이란하나님이 활동하실 수 있는 공간을 내려는 노력”을 뜻한다. 훈련이란 자기 삶이 다른 것들로 가득 차지 못 하게 막는 일이다. 훈련된 삶에는 정신없이 바쁘지 않은 공간, 염려에 찌들지 않은 공간이 존재한다. 영적 삶에서 훈련이란, 내가 계획했거나 의지하고 있는 일이 아닌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을 내는 것이다.《헨리 나우웬 삶의 영성》

분주함 속의 염려가 가득 차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의 공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붙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르다가 적극적으로 예수와 제자들을 집에 환대한 것도 사랑받을 만한 일이고,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아래에서 말씀을 듣는 것도 사랑 받을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을때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따라가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고통을 겪으신 그 사랑 앞에서 우리는 참된 자유를 찾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듣는 세대 에서 말씀이 삶을 붙드는 세대 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알아도 말씀이 내 삶에 힘이 되지 않으면 영적 무감각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믿음 생활이 편안한 익숙함에 멈추어 버리면 말씀의 은혜가 더 이상 나를 깨우지 못합니다. 말씀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위기의 순간에 그 힘이 드러날 것입니다. 말씀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받은 은혜를 전하고 싶어집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분주함으로 지쳐 있는 마음의 방향을 재점검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2천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아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는 살아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있는 삶의 자리마다 주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내 마음의 집에 초대된 주님의 말씀이 삶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의지할 분이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삶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말씀 앞에 다시 서서 말씀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