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25 2025 주일설교

(성령강림 후 제 3주)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I Will Follow the Lord

누가복음 9:51-62

9:51 ○ 예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실 때가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마음에 굳게 결심하시고, 52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냈다. 그들은 사마리아 동네에 들어가서 방을 구하려다가 그냥 돌아왔다. 53 그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는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예수 일행을 맞아들이지 않겠다고 거절했기 때문이다. 54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말했다. “선생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벼락을 내리게 해서 그들을 태워 버릴까요?” 55 그러자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다. 57 ○ 예수 일행이 길을 가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58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소. 하지만 인자는 머리 누일 곳조차 없소.” 59 또 한 번은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가서, 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60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장사를 지내게 하고, 당신은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전파하시오.” 61 한번은 또 다른 사람이 예수께 말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집안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습니다.” 62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않소.” (쉬운말 성경)

51 As the time drew near for him to ascend to heaven, Jesus resolutely set out for Jerusalem. 52 He sent messengers ahead to a Samaritan village to prepare for his arrival. 53 But the people of the village did not welcome Jesus because he was on his way to Jerusalem. 54 When James and John saw this, they said to Jesus, “Lord, should we call down fire from heaven to burn them up?” 55 But Jesus turned and rebuked them.[k] 56 So they went on to another village. 57 As they were walking along, someone said to Jesus,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58 But Jesus replied, “Foxes have dens to live in, and birds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 place even to lay his head.” 59 He said to another person, “Come, follow me.” The man agreed, but he said, “Lord, first let me return home and bury my father.” 60 But Jesus told him, “Let the spiritually dead bury their own dead![l] Your duty is to go and preach about the Kingdom of God.” 61 Another said, “Yes, Lord, I will follow you, but first let me say good-bye to my family.” 62 But Jesus told him, “Anyone who puts a hand to the plow and then looks back is not fit for the Kingdom of God.”(New Living Translation)

성령강림절기 세번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평안이 교우들 마음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The Purpose Driven Life’이라는 책을 아실겁니다. 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도 번역되었고, 성경적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는데 도전을 주었습니다. 40일의 훈련을 통하여, 내면의 상처, 피해의식, 삶의 죄된 습관이 변화되는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땅에 교회가 세워진 목적, 예배를 드리는 목적, 주안에서 교제하는 목적이 분명할때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께 힘을 얻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때가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마음에 ‘굳게 결심하시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굳게 결심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예루살렘 길은 십자가로 향하는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뜻이었습니다. 그 길은 수난과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간절히 기도 하셨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가는 길에 사마리아 지역 한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숙소를 구하기 위해 일행중 몇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요단강 동편으로 우회해서 가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서 통과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와 그 일행들을 배척합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였던 야고보와 요한이 분노해서 말합니다. “선생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벼락을 내리게 해서 그들을 태워 버릴까요?” 이는 구약의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때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한 것을 떠올리며 사마리아 사람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심판하자고 요청한 것입니다.

54절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보시겠습니다. “이에 그분의 제자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목격하자 그들이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께서는 우리가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도록 명령하여 바로 엘리야가 한 것처럼 저들을 소멸시키기를 원하시나이까?” 하였더라.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종교 혼합주의로 인해 경멸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할수 없었고, 대신 그리심 산에 독자적으로 성전을 세워놓고 예배해 왔습니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사마리아 사람들 내면에는 피해의식과 분노가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유대인들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일부 극단적인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는 유대인 순례자들을 위협하고 살해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적대적인 분위기속에서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의 극단적인 요청을 들으셨지만, 동의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55절 56절을 킹제임스 성경 버전으로 보시겠습니다. 55 그러나 그분께서 돌이키시어 그들을 꾸짖으셨고 이같이 말씀하셨더라. “너희는 어떤 부류의 영이 너희에게 있는지 모르는도다 56 이는 인자가 사람들의 생명들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라.” 그런즉 그들이 또 다른 촌락으로 갔더라. 요한도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7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사랑과 인내의 길을 선택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목적을 잘 몰랐기에 감정에 휘둘려 심판하자는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목적지를 향해가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때로는 가는 길이 막히기도 하고 우회해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목적지만 분명하면 우리가 겪는 거절이 끝은 아닙니다.

예루살렘행은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창조의 목적대로 다시 회복하는 것은 섬김과 낮아짐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이나 사마리아인들의 마음은 우리 안에도 존재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숨막히는 광야, 답답하고 낙심되었던 삶의 순간들이 나를 고통속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뤄지게 해달라고 진심을 다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감정은 하나님의 뜻 앞에서 종종 부딪히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이 영적 싸움에서 내가 죽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승리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이 일을 도와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는 영이고, 성령이 임했을때 사람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salvation)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거룩함의 중요성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에 치중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거룩함이 없이 주를 보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히12:14)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거룩함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때때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위기의 순간도 마주합니다. 때로는 그 길에서 많은 눈물과 아픔, 갈등도 있지만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생명의 은혜가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우리는 고난의 시간 앞에서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주가 걸으신 길만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은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주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현실이 믿음대로 펼쳐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헛되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에는 분명하지만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얽매이기 쉬운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한 짐은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주님을 따르는 길을 어렵게 만듭니다. 때로는 고난이 두려워 등을 돌리기도 했고 성공이 아니면 실패인 것처럼 두려워 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 (James Packer, 1926-2020) 는 ‘거룩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거룩함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추구하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사적인 면이나 대인관계에서 죄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한다. 거룩한 삶이란 구별된 삶, 즉 하나님을 위해 성별되고 그분의 능력에 의해 내적으로 새롭게 된 삶의 향기이다.’《제임스 패커-거룩의 재발견》

본문에 보면 한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57 “선생님,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58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소. 하지만 인자는 머리 누일 곳조차 없소.”

주께서 머물 곳 없는 이 길을 걸어가신 것은 우리의 짐과 고통을 가볍게 해주시기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믿음의 수천 수만의 앞서간 증인들도 인내로 이 경주를 뛰었고, 지금은 둘러싸서 믿음의 길을 걷는 자들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응원하는 승리의 함성으로 주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에는 결심과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야 할 길이 결코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편안한 곳, 낙심이 없는 곳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 머리 누일 곳 조차 없는 길을 걸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손해 보고 싶지 않고 많은 것을 보장 받고 싶은 삶에서 그것이 약속되지 않고 보장받지 못한다면 나의 기대와 다른 그 길이 낯설고 두렵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는 참 소망을 이미 얻었습니다. 복음은 조율되거나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들림 없이 우리에게 찾아온 구원의 삶이며 우리를 소망 가운데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또 다른 제자가 말합니다. “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에게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장사를 지내게 하고, 당신은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전파하시오.”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는 주님의 말씀 안에는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절박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땅에서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땅의 일은 잠시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장례식을 치르며 세상의 아픔과 슬픔속에 멈춰 있을 수 밖에 없을 때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변하지 않으시고 잠시 머무르는 이 땅보다 더 큰 기쁨과 소망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슬픔 앞에서도 하늘 소망을 구하는 것은 주님의 영원한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제자의 말을 들어보실까요?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집안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습니다.” 62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않소.”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분명한 결단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고 있습니까?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방해 요소가 참 많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메시아 였습니다. 그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이유가 있었겠지요. 표적을 보고 따라온 사람들은 예수의 기적에만 주목했고, 예수의 제자들 마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정치적인 승리를 가져 오실 분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의 가르침도 자신들의 뜻으로 해석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길에는 돌아보아야 할것도 많고 챙겨야 할것도 많고 안되는 이유가 가득합니다.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할 것을 알기에 여전히 손에 쥐고 그것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내 삶의 안전지대 안에만 서 있습니다. 믿는다고 해서 성공도 포기하고 명예도 구하지 말고 자녀를 잘 키워내고자 함도 다 내려놓고 현실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두는 선택을 하며 내 삶의 안전 지대를 벗어나야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로는 불가능합니다. 내 안의 것을 내려 놓는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약속과 소망을 붙들겠다는 결단입니다.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소망을 가진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다음 세상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면서, 기독교는 세상에서 그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천국을 지향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지향하면 둘 다 잃을 것입니다. 건강은 큰 축복이지만, 건강을 직접적이고 주된 목표로 삼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노상 어디가 병들지는 않았나 노심초사하며 까다롭게 살피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은 전부 이 세상에 마음을 붙들어 놓는 것들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 볼 줄만 안다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바란다는 사실, 그것도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C. S. Lewis 순전한 기독교》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결단은 실패와 낙심의 그림자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담대하게 걸어가는 삶입니다. 성공을 통해서만 인생의 길을 찾아가려고 한다면 실패속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가 어렵겠지만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 처럼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겪는 현실속에서 그 뜨거운 눈물과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을 풍성히 누릴수록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를 참된 제자로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이 고백은 사람의 계산과 타협으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길입니다. 불확실한 인생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명한 고백이고 결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