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제 1주)
불안한 시대에 붙드는 소망
The Anchor of Hope in Uncertain Times
로마서 5:1-5
5: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2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인내를 낳고, 4 인내는 우리의 성품을 단련시켜 주며, 그러한 성품은 마침내 소망을 이루는 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5 우리가 품는 소망은 우리를 절대로 낙심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가득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쉬운말 성경)
1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made right in God’s sight by faith, we have peace[a] with God because of what Jesus Christ our Lord has done for us. 2 Because of our faith, Christ has brought us into this place of undeserved privilege where we now stand, and we confidently and joyfully look forward to sharing God’s glory. 3 We can rejoice, too, when we run into problems and trials, for we know that they help us develop endurance. 4 And endurance develops strength of character, and character strengthens our confident hope of salvation. 5 And this hope will not lead to disappointment. For we know how dearly God loves us, because he has given us the Holy Spirit to fill our hearts with his love.(New Living Translation)
성령강림절 하나님의 은총이 이곳에 모인 우리에게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19세기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1813-1855)는 『죽음에 이르는 병』(The Sickness Unto Death)이 ‘절망’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책에서 ‘절망’을 자기인식의 단계로 구분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無知)로 인한 절망,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고 회피하려는 소극적인 절망, 하나님 없이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려는 적극적인 절망입니다. 가령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낙심하는 마음이 들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 마음에 머물러 있으면, 낙심된 마음은 완전히 포기하는 상태인 절망으로 빠져 들게 됩니다. 만일 소망이 없다면, 절망은 우리를 더 깊은 어둠속으로 끌고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번쯤 삶의 영역에서 기대하는 것으로 부터 무너졌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다가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믿었던 관계속에서 상실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거룩한 삶을 위해 말씀대로 실천하려고 애쓰지만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마주하며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75세에 받았던 하나님의 약속을 25년 동안 기다렸는데 인간적으로 소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100세가 되었을때에 자신은 죽은 자처럼 연약해 졌고, 아내는 태의 기능이 끊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지니고 약속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대로’ 말씀이 성취가 됩니다. 이 믿음은 ‘나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성도들을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된 약속입니다. 로마서 4장의 증언을 보시겠습니다.
4:18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에도 아브라함은 소망을 갖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4:19 아브라함은 백 살이 거의 다 되어 자기 몸이 죽은 자처럼 연약해졌고, 아내 사라의 태 또한 기능이 다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조금도 연약해지지 않았습니다. 4:20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믿음이 날로 더욱 굳건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성경에서 ‘소망’이라는 단어 엘피스(ἐλπὶς)는 헛된 기대라든지 두려움의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고, 항상 좋은 것에 대한 기대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속에서 하게 되는 감정적인 기대감과 성경이 말하는 소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감정적 기대감이라는 것은 사람과의 인간관계의 거리, 주어진 환경에 따라 상대적이고, 쉽게 흔들립니다. 이에 반해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변하지 않는 관계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낙심시키지 않습니다.
본문 2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확신으로 소망(ἐλπὶς)이라는 단어가 쓰여졌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고난과 죽음에 직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좋은 것 만을 기대하는 엘피스(ἐλπὶς) 소망을 바라 볼 수 있었을까요? 로마서 5장 1절과 2절을 보시겠습니다.
5: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2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인정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은혜 받은 후에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으며, 과거의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며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기 있는 식당을 가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고 줄을 섭니다. 단지 입소문만으로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누군가의 만족과 기대를 이미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고 소유하는 것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도 쉽게 신뢰하고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증명하기 원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찾기 원하지만 정작 분명하고 확실한 복음 앞에서는 수없이 고민하고 의심하며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듣고 싶은 말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고 편한 관계들로만 관계 형성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소망은 세상과 사람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의롭다 하시는 믿음이며, 그 사랑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혀진 담이 있고, 깨어져 있을 때 오는 절망은 인간의 노력으로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은혜의 자리에 있는 성도들에게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품으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관계에 틈이 생기면 점점 더 버거워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속적으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가령 죄를 반복적으로 짓다보면 마음이 굳어지지만,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나아가면 용서를 통하여 새마음을 주십니다. 은혜는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서로의 연약함에 집중하느라 이미 주신 화평의 자리를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휘장을 찢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주셨습니다. 은혜 밖에 있던 삶이 은혜 안에 초대 되었기에 소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아서 성도들이 삶에서 만나는 어떤 풍랑속에서도 은혜의 자리에서 떠내려 가지 않도록 잡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복음 안에서 살아가기로 결단하면 할수록 믿음의 길은 좁고 낮은 길이지만 우리가 지닌 소망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합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6장 19절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같은 소망은 안전하고 튼튼한 영혼의 닻과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휘장 안의 지성소에까지 곧장 들어가게 해줍니다.”
찬송가 490장은 제가 참 좋아하는 찬송시입니다.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 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이 세상에서 이슬같은 삶을 살다가 사라진다고 해도 이 찬양의 참된 의미를 알고 그 소망을 찬양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이미 참된 삶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소망은 고난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어지게 합니다. 우리의 꿈은 주님의 얼굴 뵙기를 소망하는 것이고 그 소망은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바울은 소망의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합니다.
5: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인내를 낳고, 5:4 인내는 우리의 성품을 단련시켜 주며, 그러한 성품은 마침내 소망을 이루는 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어려움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견디며 인내를 낳습니다. 그 인내는 우리의 성품을 단련시켜 주며, 그렇게 다듬어진 성품은 마침내 소망을 이루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1장 3절에서는 소망(ἐλπὶς)의 인내를 말하며 소망을 인내의 원천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8절에서는 소망(ἐλπὶς)의 투구라고 표현하며, 사단으로 부터 믿음을 지키는 방어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찾아오는 고난은 두가지의 얼굴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끝이라 여기는 절망의 얼굴과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소망의 얼굴입니다. 소망 없는 마음은 영적으로 사단에게 우리의 마음을 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단은 “너는 절대 회복할 수 없어”, “이겨내기엔 너무 늦었어” “하나님은 너와 함께 하지 않어”라고 속삭이며 우리 안에 소망이 사라지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망 가운데에 있는 우리들을 끝까지 품고 새힘을 주십니다. 주님은 책망하시기 보다 따스한 손길로 우리를 먼저 감싸 안아 주십니다. 다윗은 세상 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조롱하고, 마치 사막에 홀로 있는 것 같아서 밤낮으로 눈물을 흘릴때 중요한 선택을 합니다. 그가 선택한 소망의 기도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42:5 오 나의 영혼아, 어찌 그리 풀이 죽어 낙심하느냐? 어찌 그리 불안해하며 괴로워하느냐? 오직 너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아라. 이제 나는 내 구원자이신 나의 하나님을 도리어 찬양하며 살리로다. 다윗의 이 고백은 우리를 믿음의 시선으로 전환시켜 줍니다.
다니엘은 소망의 근거를 말씀에서 깨닫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포로생활이 70년간 지속될 것을 깨닫고 상황을 탓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단 9:2 곧 다리오가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하던 첫 해에, 나 다니엘이 두루마리 책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다가, 주께서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의 황폐함에 관한 연수를 정해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끝날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9:3 그러므로 나는 굵은 베옷을 걸치고 잿더미에 앉아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며 간구했다. 9:4 그때 나는 우리 동족이 지은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오, 크시고도 두려우신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진실로 주께서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주님의 언약을 신실히 지키시고 또 주님의 크신 자비를 풍성히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민족을 향한 중보자로 서서 아픈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하란 땅으로 도망가는 신세였습니다. 가장 깊은 외로움의 자리에서 돌을 베고 잠이 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 말씀 하시는데 “내가 너희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킬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창28:15) 야곱은 그 소망을 붙잡고 연단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며 과거에 아버지와 형을 속였던 자신의 죄성을 직면했을 것입니다. 무려 20년 동안 외삼촌의 집에 머물며 연단을 받는 동안 하나님은 그의 성품을 다듬어 가십니다. 야곱은 인내하며 마침내 형과도 극적인 화해를 이루게 됩니다. 야곱의 삶의 여정은 바울의 말씀처럼 어려움-인내-성품-소망의 열매를 맺어가는 복음의 예표를 보여줍니다.
5:5 우리가 품는 소망은 우리를 절대로 낙심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가득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의료의 방향을 바꾼 감동적인 포옹 The hug that helped change medicine’이란 제목의 CNN 토픽 영상이 있습니다. 1995년 10월 17일 우스터의 매사추세츠 메디컬 센터에서 쌍둥이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좋은 진전을 보이고 있었지만 한 아이는 호흡과 심박수에 문제가 있었고, 산소 수준은 낮았습니다. 의사들은 이 아이의 병세를 지켜보았고 계속 악화되어 죽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얇은 팔과 다리는 푸르스름한 회색으로 변했습니다. 아이의 심박수가 천천히 뛰었고, 그의 부모는 어린 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하며 지켜보았습니다. 절박한 순간에 간호사는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사용했던 미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절차를 시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모의 허락을 받고 그녀를 쌍둥이 언니의 같은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녀가 인큐베이터 문을 닫자마자, 건강한 언니가 작은 여동생을 왼팔을 뻗어서 감쌌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었습니다. 아팠던 아이의 심박수가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더니 체온도 정상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통의 자리에 있을 때 진짜 믿음이 드러납니다. 때로는 서로의 마음의 온기를 통해서도 회복되고 살게 되는것 처럼 고통과 절망 가운데에서도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실 소망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더딘 길, 내 약점이 드러나는 자리,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자리에서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품은 소망은 영광의 소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삶 속에서 진정한 십자가를 만났고,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인생의 갈보리,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 실패의 길이 아니라 구원의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과의 성공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찾아내려 애쓰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무너진 자리, 실패의 자리에서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불 가운데서도 우리를 신실하게 지키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세상의 절망 앞에 지칠때마다 주님께서 소망이 되심을 기억하십시오. 고난이 깊어질수록 은혜도 커집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안아 주시고, 지금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로마서 5장 1-5절의 말씀은 불안한 시대에서도 소망을 품고 살아내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음의 메세지입니다. 공허한 세상의 말로 위로받지 않을 것입니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반드시 주님의 일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품으로 소망을 기대할 것입니다. 서로의 기도 제목을 품고 함께 성장하는 성도, 말씀을 통해 현실을 살아내며 복음의 기적을 경험하는 삶,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영원한 소망을 품고 하나님 안에서 다스림 받는 공동체가 되어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붙드시는 소망의 하나님과 함께 오늘을 살아내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