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제 7주, 승천주일)
주께서 다스리시니
The Lord Reigns!
시편 97:1-5, 10-12
97:1 주께서 다스리시니, 온 땅아, 기뻐하여라. 바다의 많은 섬들아, 즐거워하여라. 97:2 짙은 구름과 흑암이 주님을 에워쌌고, 공의와 공평이 주님 보좌의 기초가 되었도다. 97:3 불이 주님 앞에서 나와, 사방의 적들을 모두 태워 버리는구나. 97:4 주께서 일으키시는 번개가 번쩍번쩍 온 세상을 두루 비추니, 땅이 보고서 무서워 벌벌 떨고, 97:5 산들이 주님 앞에서, 온 땅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서, 양초처럼 녹아내리는구나 …… 97:10 주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악을 미워하여라. 주께서는 신실한 성도들의 영혼을 지켜주시고, 모든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신다. 97:11 의로운 자들에게는 빛이 비추일 것이고,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에게 기쁨이 넘쳐나리라. 97:12 너희 의인들아, 주님을 기뻐하여라.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름에 감사를 드려라. (쉬운말 성경)
1 The Lord is king! Let the earth rejoice! Let the farthest coastlands be glad.
2 Dark clouds surround him. Righteousness and justice are the foundation of his throne.
3 Fire spreads ahead of him and burns up all his foes.
4 His lightning flashes out across the world. The earth sees and trembles.
5 The mountains melt like wax before the Lord, before the Lord of all the earth.
10 You who love the Lord, hate evil! He protects the lives of his godly people and rescues them from the power of the wicked.
11 Light shines on the godly, and joy on those whose hearts are right.
12 May all who are godly rejoice in the Lord and praise his holy name!(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부활절 7번째 주일로, 다음주일 부터 성령강림절기가 시작됩니다. 한 철학자가 중력과 은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중력은 아래로 떨어지게 한다. 그러나 은총은 들어 올린다. 은총이 없다면 우리는 오직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상은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걸음마를 하면서 수천번 넘어지는 것도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어릴적부터 걷기 위해서 넘어지고 일어나며 스스로 일어날 힘을 키워갑니다. 장성한 어른이 되어도 인생의 무거운 짐은 마음을 짓누르지만, 소망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줍니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말씀과 씨름할때 넘어짐과 일어섬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주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넘어짐을 보셨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스스로 불균형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아들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묵상하며 인생의 넘어짐 속에서도 회복을 경험합니다. 날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 앞에 설때 한 사람의 일생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 앞에 저절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1절에서 ‘온 땅아, 기뻐하여라. 바다의 많은 섬들아, 즐거워하여라.’ 선언하는데, 온땅과 많은 섬들은 이땅의 성도들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눈에 공평하지 않게 보이는 캄캄한 곳, 외딴 섬처럼 고립된 듯 느껴지는 때에도 하나님의 통치는 계속되며, 실패의 자리, 넘어짐의 자리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실패한 것처럼 보였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통치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온 땅이며, 바다의 많은 섬들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97:1 주께서 다스리시니, 온 땅아, 기뻐하여라. 바다의 많은 섬들아, 즐거워하여라. 97:2 짙은 구름과 흑암이 주님을 에워쌌고, 공의와 공평이 주님 보좌의 기초가 되었도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한 상황 앞에서 믿음이 무기력해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눈에는 그저 부조리하게만 보일 때가 많습니다. 짙은 구름과 흑암이 주님을 에워싸고 있어서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의와 공평을 기초삼아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시편의 기자는 그것을 믿음으로 본 것입니다.성경은 그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는 그림 이상의 메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중앙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전에는 중후한 그리스도의 모습이었는데, 미켈란젤로가 그린 예수는 근육질의 인간의 몸으로 세상을 심판하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 안에 주님은 하나님의 공의와 강력한 권위를 가지면서도, 우리를 십자가의 은총과 회복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 그날에 주의 의를 따라 살아온 이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좁은 문 앞에서 은총에만 기대어 머뭇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좁은 길을 주와 함께 걸어 온 이들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 에서 인간의 자아가 어떻게 죄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합니다. 자아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갖게 되는 순간, 여러분에게는 자기 자신을 앞세울 가능성—스스로 중심에 있고 싶어할 가능성, 사실상 하나님이 되고 싶어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지은 죄였고, 사탄이 인류에게 가르친 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상관 없는 행복이나 평화를 주실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스스로 중심에 있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매일 성령의 불로 자기 의로움을 소멸시키고, 마음 안에 아집과 교만을 태워가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의 꺼지지 않는 불은 마음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인간의 죄성을 태우시며 양초가 녹듯 우리의 자아를 천천히 녹여 가십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녹아지고 깨어지며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가게 됩니다. 주의 크신 신비 앞에서 우리는 더 녹아지고 작아지지만 그 삶에 불꽃이 타오르게 됩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다 이해하지 못할때에도 그 길을 신뢰하도록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더 밝히 깨닫게 하십니다.
다윗은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죄를 짓고 난 후,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난 후에 회복시켜 달라고 했던 기도는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달라는 통회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스스로 정직한 길로 갈수가 없습니다. 시편 97편은 기뻐하라. 즐거워하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의로운 자들에게 빛이 비추일 것이고,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에게 기쁨이 넘쳐나리라 고백합니다. 즉 의로운 자들과 마음의 정직함이 연결되어지고, 그 빛은 하나님의 기쁨으로 구체화 됩니다. 다윗이 죄로 인해 무너졌다가 다시 회복될 수 있던 것은 하나님께 나아간 정직한 마음이었습니다.
97:3 불이 주님 앞에서 나와, 사방의 적들을 모두 태워 버리는구나. 97:4 주께서 일으키시는 번개가 번쩍번쩍 온 세상을 두루 비추니, 땅이 보고서 무서워 벌벌 떨고, 97:5 산들이 주님 앞에서, 온 땅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서, 양초처럼 녹아내리는구나.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는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교만과 욕심과 죄를 녹여 주시는 불을 경험해야 합니다. 단순히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말씀 앞에 엎드릴 때 내 안에 있는 죄성이 녹아지고 내 교만과 욕심이 하나님의 불앞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하고 존재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사방의 적들이 태워지고 땅이 벌벌 떨며 산들이 주님 앞에서 양초처럼 녹아 내린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삶에 태워져야 할 것이 무엇이며 내가 올라가려고 하는 인생의 높은 산은 무엇입니까? 좋은 직장, 재물과 안정된 삶, 자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경쟁심, 내가 쌓은 지식과 믿음과 경험이 자칫 복음의 능력을 가리우는 인생의 높은 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인생의 평화를 가로 막고 있는 산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더 잘하고자 했던 나의 열심,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고, 높아지려고 했던 마음이 하나님 보다 더 소중한 우상이 되어가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 앞에서 조금씩 내려 놓아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잃어버린 기쁨과 평안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예배의 삶 가운데에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마음 안에 숨겨진 죄된 본성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서 수없이 엎드려 주어진 삶을 마주할 때 내 안에 죄로 가려진 것들이 벗겨지고 진짜 ‘나’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내가 집착하고 있는 세상의 우상들이 하나님 앞에서 녹아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의 삶을 내어드릴 때 시작됩니다.
97:6 하늘은 주의 의로우심을 선포하고, 온 세상 사람들은 그분의 영광을 우러러 보도다. 97:7 조각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치욕을 당하고, 헛된 우상을 자랑하는 자들은 모두 다 수치를 당하리라. 모든 신들아,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경배하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의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능력도 갖게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갈림길에 서게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다고 경고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믿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바람처럼 흔들리고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삶을 지켜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처럼 섬겼습니다. 이 일로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출 32:28) 북이스라엘 열지파가 금송아지를 단과 벧엘에 만들고 섬겼을 때에도(왕상 12:25-33) 그 끝은 북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여 열지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왕하 17:24) 남유다가 결국 망하게 된 것도 왕국말기의 우상숭배가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도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숨어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선택하고 일상의 무뎌짐속에서 마음과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우상에게 내어줍니다. 감춰진 마음의 우상들이 하나님보다 세상과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고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고 있습니다.
97:10 주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악을 미워하여라. 주께서는 신실한 성도들의 영혼을 지켜 주시고, 모든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신다. 97:11 의로운 자들에게는 빛이 비추일 것이고,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에게 기쁨이 넘쳐나리라. 97:12 너희 의인들아, 주님을 기뻐하여라.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름에 감사를 드려라.
하나님의 사랑은 빛과 같아서 마음 안에 어둠을 몰아냅니다.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우리 안에 악을 더 미워하게 되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시며 제자들을 직접 찾아가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굳게 잠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너희에게 평안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박혔던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도마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도 찾아가셨습니다. 밤새 허탕을 친 날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그의 실패를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베드로를 또 다시 사명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죄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시작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총은 한 사람이 점점 더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해줍니다.
믿음을 붙들고 살아간다고 해도 항상 평화롭고 평안할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 차별과 폭력, 경제적 억압으로 고통 받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마치 외딴 섬에 고립된 듯한 마음이 찾아 올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오직 주의 이름만 붙들 때, 진정한 기쁨이 우리 안에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이 공평과 공의로 새로운 삶을 살수 있도록 고민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 뜻에 동참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붙드는 진짜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참된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눈물을 닦아주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무릎 꿇은 기도의 자리에서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능력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 위에 인생을 세워갑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숨김없이 드러나는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합니다.
본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의로운 삶을 살라고 촉구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붙들릴때 삶의 토대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반석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의 빛이 비추고, 그 빛 속에서 진짜 기쁨이 시작됩니다. 이 기쁨은 정직함으로 악의 유혹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이땅에 몰입하여 뿌리내릴 때 결국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갑니다. 사탄은 하나님으로 채울수 있는 마음을 정욕으로 땅의 것으로 만족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정직함과 신실함으로 삶의 예배를 세워가야 합니다. 마음과 뜻을 다해 예배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주의 나라가 임하는 기쁨을 허락하십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마주하고, 불안한 미래를 끌어안고 살아가더라도, 말씀 안에서 악을 미워하고 선을 따르며, 겸손히 섬기는 삶으로 나아가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완벽해지기 위해 애쓰는 인생의 짐을 조금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더 깊어지고 더 가까이 함께 성장해 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 웨슬리의 언약 기도문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 기도에는 주님의 뜻대로 우리를 사용하시고, 높이시려거든 높이시고 낮추시려거든 낮추어 달라는 깊은 겸손과 순종의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언약 기도문 John Wesley’s Covenant Prayer
“주님, 저는 더 이상 저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뜻 가운데, 주님 원하시는 곳에 저를 두소서. 수고의 자리에도 두시고, 고난의 자리에도 두소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기도 하시고, 물리치기도 하소서. 높이시려거든 높이시고, 낮추시려거든 낮추소서. 저를 채우기도 하시고, 비우기도 하소서. 주님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마음 다해 모든 것을 주님 손에 내어놓습니다. 영광스럽고 복되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주님은 저의 것이며,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소서. 제가 이 땅에서 맺은 언약이 하늘에서도 맺어지게 하소서. 아멘.”
요한 웨슬리의 기도문의 고백처럼 주어진 환경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세상이 줄수 없는 진실한 찬양의 기쁨이 넘쳐나야 합니다. 시편 97편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서로가 다른 이해와 믿음의 여정을 넘어서는 평안과 기쁨을 전해줍니다. 때로 인생의 허무함과 두려움에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말씀 안에서 우리 삶을 다스리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들며 오직 한분 하나님만 드러내는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